< 맙소사! >
날씨가 선선해지자 거리에도 다시 사람이 보였다.
마을회관에 모여있던 어르신들이 거리의 정자에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강현의 매장에도 반가운 이가 찾아왔다.
딸랑딸랑.
“어서오, 어?”
방울소리에 반사적으로 인사를 건네려던 강현의 눈이 커졌다.
수진이 문 앞에서 배시시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볼록했던 배가 사라지고 없었다.
“어떻게, 아니. 이제 나와도 되는 거예요?”
놀라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런 강현을 보며 수진이 웃음을 흘렸다.
“아직 어려서 오래 있지는 못하지만, 잠깐이라면 괜찮아요.”
아직 어려서?
고개를 갸웃하던 강현이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수진을 뒤따라오는 민호.
민호가 유모차를 끌고 있었다.
“아!”
감탄과 함께 조심스레 다가갔다. 거기에는 곤히 잠든 아기가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유리창 너머로 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와는 달랐다.
강현이 아기를 바라보고 있자 설기가 궁금했는지 강현의 곁에 다가왔다.
하지만 강현의 곁에서 아기가 보일 리가 없었다.
테이블 위로 폴짝 뛰어서 유모차 안을 확인하더니 동그란 눈을 껌뻑였다.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수진이 미소 지었다.
“방금까지 울다가 이제 잠들었어요.”
“아···.”
강현이 황급히 입을 막았다. 그러자 민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작게 이야기해도 됩니다.”
수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은 다시 유모차 안을 보았다.
‘정말 작네.’
신기한 느낌이었다. 멍하니 바라보던 강현은 뒤늦게 민호와 수진이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죄송합니다. 자리에 앉으세요.”
황급히 강현이 고개를 숙였다.
“아니에요. 그만큼 반겨주신 거니.”
수진의 시선을 받은 민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유모차 아래에 짐칸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건···.”
“뭘 드릴까 고민하다가 이런 건 잘 못 드실 것 같아서요. 묵은지에요.”
반찬통이 묵직했다. 사실 얼마 전에 박씨 할머니가 한 통 준 게 있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강현이 웃으며 김치를 받았다.
둘이 테이블에 앉자 손님들에게 관심이 없던 설기도 둘을 따라갔다.
옆 테이블에 올라서 아기를 바라보는 설기.
강현이 그런 설기를 제지하려고 했지만 둘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수진은 오히려 잘 볼 수 있게 의자 하나를 유모차 옆에 놓아줬다.
의자로 폴짝 뛰어내린 설기.
아이는 싫어하지만, 아기는 다른 것 같았다.
수진과 민호는 그런 설기를 보며 웃었다.
“그럼 돈가스로 준비해드릴까요?”
강현의 물음에 수진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돈가스랑 카르보나라로 부탁드려요. 모처럼이니 다양하게 먹고 싶어서···.”
나눠 먹겠다는 뜻이었다.
“알겠습니다.”
강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주방으로 향했다.
벌써 몇 번이나 만들었던 돈가스.
이제는 익숙했다.
미리 펴놓은 고기에 밀가루와 계란물, 빵가루를 묻히고 기름에 넣었다.
그리고는 바로 팬을 올려서 카르보나라를 준비했다.
기름을 두르고 베이컨을 올린다.
전통식은 크림도 안 들어가고 관찰레라는 돼지 볼살이나 턱살로 만든 이탈리아 베이컨을 사용하지만, 국내에선 구하기가 힘들었다.
국내에서 판매하는 대부분은 카르보나라가 아닌 베이컨 크림 파스타란 명칭이 더 정확했다.
‘큰 상관은 없지.’
수진이 원하는 파스타는 전통식이 아니라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카르보나라를 뜻했다.
베이컨에서 기름이 나오기 시작하면 양파와 버섯을 넣고 후추와 소금을 살짝 뿌려준다.
이후 크림소스를 넣고 면을 넣어주면 된다.
주방 가득 올라오는 크림 향에 강현이 미소 지었다.
금세 나온 돈가스와 카르보나라를 본 둘의 눈이 빛났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예!”
“감사합니다.”
나오자마자 돈가스를 자르는 민호. 그 사이 수진은 카르보나라를 민호의 접시에 덜어줬다.
그리고는 민호가 돈가스를 자르기만을 기다렸다.
짧은 기다림.
그 끝에 둘은 포크를 가져갔다.
카르보나라를 먹는 민호와 달리 수진은 돈가스에 포크를 가져갔다.
“와.”
“음!”
먹는 순간 행복한 미소를 짓는 둘.
“역시 직접 먹으니 다르네요. 전보다 더 맛있어진 거 같은데요?”
“감사합니다.”
강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진의 착각이 아니었다.
같은 재료에 조리법을 사용했는데, 맛있어졌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미각이 살아나면서 자신감이 붙은 것이었다.
그것이 그대로 요리에도 나타나고 있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떠나가려는 강현을 붙잡은 건 설기였다.
“끼잉.”
작게 울음을 뱉는 설기.
강현과 유모차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강현은 의아해했지만 수진은 바로 이상을 깨달았다.
“어머. 언제 일어났지?”
유모차 안에 아기가 깨어난 것이었다.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강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수진이 살포시 웃었다.
“신기하네요. 낯선 사람을 보면 바로 울던데.”
옆에 있던 민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꼼지락꼼지락 손을 뻗는 아기. 그런 아기를 본 수진이 강현을 돌아보았다.
“한번 만져보시겠어요?”
“...괜찮을까요?”
“그럼요.”
수진의 말에 강현이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런 강현의 손가락을 아기가 잡더니 방긋 웃었다.
“아우우”
“강현씨가 마음에 들었나 보네요. 벌써 잘생긴 걸 알아보는 건가?”
수진의 농담에 강현이 난감해했다. 그러나 시선은 아기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강현은 아이가 손을 놓을 때까지 망부석처럼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친 둘은 매장을 나왔다.
“이제 자주 올게요.”
“예. 좋아 보여서 다행입니다.”
강현의 말에 수진과 민호가 미소를 지었다.
둘이 떠나간 뒤에도 한참을 바라보던 강현이 제 손을 들어 올렸다.
“...뭔가, 신기하네.”
“컹!”
저렇게 어린 아기를 만져본 건 처음이었다.
강현의 말에 설기도 따라 짖었다. 곧 매장으로 돌아온 강현은 주방에 놓인 김치를 보고는 볼을 긁적였다.
받은 건 좋은데 혼자 먹기에 양이 너무 많았다.
‘설기가 있지만···.’
김치 자체만으로는 설기에게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전에 돼지고기 김치찜을 먹긴 했지만, 메인은 어디까지나 돼지고기였다.
게다가 박씨 할머니가 준 김치도 아직 남아있었다.
그때, 강현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혼자 먹을 필요는 없지.”
이제 당분간 모나도 오지 못한다고 했다.
모나가 있을 때는 매운 요리를 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상황이 달랐다.
모두를 불러서 함께 먹으면 되었다.
‘노아씨가 매운 걸 먹을 수 있으려나?’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모나보다는 나을 거다. 맵기를 조절하면 다른 이들도 충분히 먹을 거다.
‘좋아.’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 있던 설기가 의아해했다.
강현은 그런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다려 봐. 이제 김치를 좋아하게 해줄 테니.”
고개를 갸웃하는 설기를 보며 강현이 미소 지었다.
* * *
이주 뒤.
짐을 바리바리 싸든 강현은 이세계로 넘어갔다. 그리고 강현을 맞이하는 이들.
“허, 정말로 공중에서 나타났군.”
“무언가 힘이 있는 건 느껴지는데 보이지 않아.”
신기한 듯 강현을 바라보는 란돌프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로멘.
둘의 눈에는 설기와 강현이 넘어 온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 왜 부른 것이지?”
로멘의 물음에 강현의 시선이 란돌프에게 향했다.
저번 주에 만났을 때, 사정을 설명했다. 란돌프는 강현의 시선에 눈을 껌뻑이더니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사정도 이야기하지 않고 데리고 온 것이었다.
강현은 로멘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제가 사는 곳의 요리를 대접해드리려고요.”
“오호?”
로멘의 눈이 커졌다. 수염을 쓸어내리는 로멘.
“기대되는군!”
“내 좋은 곳을 미리 찾았네. 어서 가지.”
란돌프가 강현의 배낭과 짐을 건네받았다. 배낭뿐만 아니라 큰 짐을 든 상태였다.
고개를 끄덕인 강현은 란돌프를 뒤따랐다.
일행들이 도착한 곳은 넓은 공터.
경치 자체는 전보다 못했지만, 평지가 넓은 건 큰 장점이었다.
공터를 둘러보던 강현은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지난주에 왔을 때, 노아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강현이 받은 목걸이는 어디까지나 비상용이었다.
이런 사적인 일에 쓸 수는 없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렇게 고개를 돌리려는 강현의 눈에 수풀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노아씨!”
강현의 표정이 환해졌다.
노아의 등장에 란돌프와 로멘이 반응했다. 그러나 전처럼 무기로 손을 가져가지는 않았다.
“...선객이 있었군. 다음에 오겠다.”
“아뇨. 잘 오셨어요.”
강현의 말에 노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강현은 그런 노아를 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제 고향의 요리를 대접하려고 하는데 같이 어떠신가요?”
노아의 시선이 란돌프와 로멘을 향했다. 역시나 인간은 불편한 것이었다.
그때, 로멘이 눈을 감더니 주문을 외웠다.
움찔, 자세를 낮추는 노아.
그러나 로멘의 주문은 노아를 향한 게 아니었다.
쿵!
지팡이를 땅 위에 꽂자 푸른 막이 생겼다.
공터를 덮을 정도의 크기.
“우린 괜찮으니 같이 들게. 안 그래도 강현에게 이야기를 들었다네.”
로멘의 말에 노아의 눈이 커졌다.
“...광역 마법인가.”
일정 지역 내에 통역 마법을 설치한 것이었다. 노아뿐만 아니라 란돌프도 놀란 눈으로 로멘을 바라보았다.
“실력이 더 늘었군요.”
“사람은 발전해야지. 강현이 준 물건들 덕분에 깨달음을 얻었네.”
로멘이 한 마법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모르는 강현만이 눈을 껌뻑였다.
로멘을 만날 때마다 물건을 하나씩 선물해주긴 했지만, 그게 이런 마법과 무슨 상관인지 몰랐다.
“이걸 쓰면 다른 마법은 쓰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우리가 싸울 건 아니지 않는가?”
로멘이 땅에 꽂힌 지팡이를 보며 웃었다.
그러자 란돌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노아를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이야기를 한번 나누고 싶었네.”
란돌프의 말에 노아의 눈빛이 변했다.
노아 역시 내심 란돌프가 신경 쓰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노아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껄끄러운 건가?
잠시 머뭇거리던 노아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나 혼자가 아니다.”
혼자가 아니라니?
모나라도 오는 건가? 그때, 강현을 제외한 일행들의 시선이 노아의 뒤로 향했다.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저, 전사장님 좀 천천히 가주···. 엇!”
달려오던 이가 란돌프와 로멘을 보더니 굳었다.
그 탓에 나뭇가지를 헛디뎠지만 금세 자세를 바로 했다.
“아, 하만씨.”
“스승님!”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던 하만이 강현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노아와 란돌프가 대치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스승?”
하만의 말에 란돌프와 로멘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했다.
강현은 어색한 웃음과 함께 사정을 설명했다.
“...우와. 말이 통해.”
노아의 뒤에 숨어서 조용히 감탄하는 하만. 일행들은 모른 척 넘어갔다.
그렇게 강현의 이야기가 끝나자 로멘이 입을 열었다.
“그 아가씨도 같이 먹는 게 어떤가?”
강현이 이야기하는 동안 노아에게 사정을 들었던 하만의 눈이 반짝였다.
노아를 빤히 바라보는 하만.
인간들이 낯설긴 하지만 음식은 먹고 싶은 모양이었다.
결국, 노아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로멘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모일 사람은 다 모인 건가?”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려던 강현이 탄성을 뱉었다.
한 사람 더 있었다.
강현이 설기를 향해 몸을 숙였다.
“혹시, 지금도 있어?”
“컹!”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설기.
“그럼 데려올 수 있어?”
강현의 말에 머리를 갸우뚱하며 고민하는 설기.
하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컹!”
자신만 믿으라는 듯이 턱을 치켰다.
“싫어하면 억지로 데려오지 않아도···. 벌써 갔네.”
강현은 사라진 설기를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잘하겠지?’
막상 보내고 보니 불안했다.
그런 강현의 모습에 란돌프와 로멘이 고개를 갸웃했다.
“누가 또 있는 건가?”
그러나 노아는 누군지 짐작하는지 눈살만 찌푸렸다.
그리고 얼마 뒤에 설기가 다시 나타났다.
입에는 무언가를 물고서.
‘...맙소사!’
그걸 본 강현은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