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르게 해주세요! >
“윽.”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눈을 떴다.
그리고는 옆을 돌아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쪽쪽.
강현의 손가락을 빠는 모나.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자 텐트 구석에 있는 설기가 눈에 보였다.
강현은 모나에게서 손가락을 뺐다.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자국이 남아있었다.
‘아니, 모나의 기준에서는 살살 문 건가?’
닭 뼈도 씹어먹는 모나였다.
“아우, 아.”
허우적거리는 모나. 모나를 설기의 옆에 던져놓을까, 생각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둘이 깨지 않게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밖은 아직 어두웠다.
‘좀 이르긴 하지만.’
다시 잘 생각은 들지 않았다. 텐트 밖으로 나와서 문을 닫던 강현은 실소를 흘렸다.
모나가 꿈틀거리며 설기 쪽으로 기어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런 것도 본능인가?’
사냥꾼의 본능. 설기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재앙을 알지 못하고 곤히 자고 있었다. 강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문을 닫았다.
새벽의 숲은 쌀쌀했다.
강현은 스토브에 물을 올리고는 의자에 몸을 뉘었다.
보글보글.
끓어오르기 시작한 냄비.
멍하니 수증기를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하늘 너머에서 붉은빛이 올라오고 있었다.
뜨거운 물을 홀짝이고 있자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설기가 깬 것이었다.
문을 열어줄까 했는데 알아서 여는 모습을 보며 실소를 흘렸다.
“낑.”
앓는 소리와 함께 나온 설기. 꼬리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문 너머로 배를 드러낸 모나가 보였다.
터벅터벅 걸어온 설기가 강현의 옆에 다시 몸을 뉘었다.
강현은 그런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물을 마셨다.
그리고 얼마 뒤, 모나가 깼다.
부스스한 머리로 설기가 열어놓은 문으로 기어 나오는 모나.
곧 강현을 보더니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번쩍 들어서 내려놓자 머리 위로 올라가지 않고 무릎 위에서 웅크리는 모나.
잠이 덜 깼는지 길게 하품했다.
강현은 피곤해하는 둘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간단히 아침이나 먹을까?”
강현의 말에 둘의 귀가 쫑긋 올라왔다. 언제 졸렸다는 듯이 반짝이는 눈으로 강현을 바라보는 둘.
‘노아씨가 일찍 온다고 했으니.’
강현은 피식 웃고는 몸을 일으켰다.
무릎 위에 올라가 있던 모나가 자연스레 바닥에 내려왔다.
아침은 말 그대로 간단했다.
버섯과 고기를 넣은 스튜.
둘은 불만스러워 보였지만, 이른 아침에 먹기에 적당했다.
따뜻한 스튜가 들어가니 몸도 풀렸다.
그리고 먹은 것과 텐트를 정리하고 있자, 노아가 나타났다.
노아는 주변을 돌아보더니 입을 열었다.
“준비는 다 된 것 같군. 갈까?”
“아, 잠시만요.”
고개를 끄덕이려던 강현이 무언가를 떠올리고 나무쪽으로 다가갔다.
목검.
아직도 익숙해 지지가 않았다. 갔다가 다시 올 것이지만,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순 없었다.
배낭에 목검을 끼자 노아가 손을 뻗었다.
“배낭은 내가 들지.”
배낭만 드는 게 아니었다. 노아가 배낭을 한쪽 어깨에 걸치자 모나가 후다닥 노아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노아는 반대쪽 손을 뻗었다.
‘...역시.’
강현은 눈을 질끈 감고 노아에게 몸을 맡겼다.
영화나 만화였다면 신기한 광경이었겠지만, 강현에게 고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안겨 가는 것보단 나으니.’
강현은 흔들리는 와중에도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 * *
탁.
노아가 멈추자마자 강현은 바닥에 내려와서 헛구역질했다.
그래도 전보다는 상황이 나았다.
헛구역질일 뿐, 진짜로 토하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본 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훈련의 효과가 있군.”
그 소리에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네 발로 뛰는 훈련 덕분이었다.
‘이런 걸로 성과를 확인하고 싶진 않았는데···.’
그렇게 고개를 든 강현은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들을 보며 숨을 삼켰다.
네 명의 수인 여성.
나이도 제각각이었다.
민망해진 강현이 자세를 바로 했다.
‘...마을은, 아니네?’
저 멀리 마을이 보였다. 마을 근처에 있는 공터.
강현의 시선에 노아가 입을 열었다.
“마을에는 시끄러운 이가 있어서 이곳으로 바꿨다.”
강현은 노아가 말하는 이가 누군지 짐작이 갔다.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시선이 수인 여성들에게 향했다.
“그럼 이분들이?”
“부족 내에서 손재주가 좋은 이들을 뽑아왔다.”
노아의 말에 강현이 웃음을 흘렸다.
요리 실력은 남자 수인이나 여자 수인이나 거기서 거기이니 조금이라도 손재주가 좋은 이들을 선별한 것이었다.
넷 여성은 진지한 눈빛으로 강현을 바라보았다.
그중에 한 여성이 눈에 익었다.
‘하만, 이었나?’
앳된 외모.
네 여인 중에 가장 젊었다.
고양이를 닮은 수인은 강현과 눈이 마주치자 움찔하며 입을 열었다.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혹시 준비해달라고 했던 건···.”
노아가 눈짓하자 여성 수인 하나가 구석에서 거대한 자루를 가져왔다.
자루를 열자 안에는 식자재가 가득했다.
“모으라는 걸 모았는데. 이 정도면 될까요?”
“아, 예···.”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대체 얼마나 모은 걸까?
놀란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강현은 소매를 걷었다.
* * *
“핏물을 빼는 게 중요합니다. 핏물이 남아있으면 비린내가 올라와요.”
“요리 전에 넣는 것보다 미리 향신료와 함께 고기를 재워두면 향이 잘 스며들어요.”
“안까지 잘 익게 하려면 이렇게 칼집을 넣어주세요.”
강현은 돌아다니면서 수인들을 가르쳤다.
기본적인 요리법. 수인들은 그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번거로운 작업에 난색을 드러내던 수인들은 완성된 고기를 먹자 눈빛이 바뀌었다.
“맛있어!”
“정말로 다르군!”
그러한 수인들을 보며 강현이 미소 지었다.
“요리는 정성입니다. 수고와 번거로움이 맛을 결정해요.”
그때, 고기를 먹은 하만이 고개를 갸웃했다.
“...맛이 다르네요?”
강현이 만든 요리.
같은 방식으로 만들었는데 맛이 달랐다. 강현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조리법이 같더라도 경험이 달랐다.
그러한 강현을 대신해서 노아가 나섰다.
“당연하다. 그는 특별하니.”
낯간지러운 말이었으나 모두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사 역시 그랬다.
모두가 같이 배운다고 해서 똑같은 경지에 도달하는 건 아니었다.
곧 수인들은 서로의 요리를 교환해서 맛보았다.
서로 의견을 나누는 수인들.
‘이제 내가 없어도 되겠네.’
요리에 흥미가 생겼으니 알아서 발전시킬 거다. 강현은 구운 고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역시나 비린 맛이 느껴졌다.
완전하지 않은 레시피.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저 녀석들만 신났군.’
강현의 시선이 수인들 곁에 있는 설기와 모나에게 향했다.
수인들이 한 요리를 받아먹고 있었다.
작게 흔들리는 꼬리. 그리 맛있진 않지만 고기라서 먹는 것이었다.
둘을 바라보고 있자 노아가 걸어왔다.
“수고했다. 덕분에 좋은 걸 배웠다. 이 은혜는 갚지.”
요즘 들어서 자주 들었던 말이었다. 강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친구잖습니까.”
그런 강현의 말에 노아 역시 작게 미소 지었다.
다시 원래의 무표정으로 돌아왔지만.
곧 노아의 시선이 모나에게 향했다.
“당분간 모나는 나가지 못할 거다.”
“예?”
“밖에만 다녀서 아직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있다. 게다가 요 며칠 먹는 것으로 투정을 부리더군.”
노아의 말에 강현이 볼을 긁적였다.
투정을 부리는 건 강현의 탓이 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족장님께서 당분간 직접 훈육하신다고 하더군.”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마을에서 봤던 다른 아이들의 경우에는 어눌하지만, 어느 정도 말을 할 줄 알았다.
강현과 눈이 마주치자 모나가 배시시 웃었다.
자신의 미래도 모른 채, 천진난만한 미소에 강현은 손을 흔들었다.
‘고생하겠구나.’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 역시 모나의 업보였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대의 훈련은 내가 책임질 테니.”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강현을 바라보는 노아.
그 눈빛에 강현이 숨을 삼켰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지금으로서도 충분했다.
강현이 입을 열려는 찰나, 위에서 그림자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쿵!
“오, 열심히 하고 있군!”
흙먼지와 함께 걸어오는 이는 카샨이었다.
수인들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런 수인들에게 일어나라고 손짓한 카샨은 걸어가서 고기를 집어 먹었다.
곧 카샨의 눈이 번뜩였다.
“음! 확실히 달라.”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서 강현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이군! 잘 있었나?”
“예.”
강현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터벅터벅 걸어온 카샨이 강현의 어깨를 감쌌다.
“좋은 걸 가르쳐줘서 고맙군. 역시 마음에 들어.”
강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음을 터트리는 카샨. 그때마다 강현의 몸이 흔들렸다.
그러나 전보다 흔들림이 적었다.
카샨이 강현을 향해 머리를 낮췄다.
“이제 볼만해졌군. 전에는 너무 약해서 안쓰러웠는데. 그래, 우리의 무술을 배우고 싶어 했다고? 배워보니 어때?”
카샨의 말에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배우고 싶다고 했다고? 자신이?
강현의 시선이 노아에게 향했다. 무심한 표정으로 먼 산을 바라보는 노아.
그러나 그의 눈빛이 떨리고 있었다.
속으로 한숨을 내쉰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몸이 좋아졌네요. 배려에 감사합니다.”
몸이 좋아진 건 사실이었다. 강현의 대답에 카샨이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지! 체술은 우리가 제일이지! 또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도록. 서로서로 도와야지.”
그리 말한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강현도 크가 큰 편이지만, 그녀를 올려다보아야 했다.
“돌아가시는 겁니까?”
노아의 물음에 카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잠깐, 저 녀석을 데리러 나온 거야.”
카샨의 시선 끝에 모나가 있었다. 그리고 카샨은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모나를 집어 들었다.
“아우!”
모나가 허우적거렸으나 카샨의 손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그럼 강현, 다음에 또 한잔하자고.”
윙크를 날린 카샨은 그대로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점이 돼서 사라진 카샨.
올 때만큼이나 갑작스러운 퇴장이었다.
그러나 수인들은 익숙한지 이미 사라진 카샨을 향해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이제 그대도 돌아가야겠군.”
노아의 말에 강현이 하늘을 보았다.
아침에 왔었는데 벌써 노을이 생기고 있었다.
내일은 매장을 열어야 하니 돌아가야 했다.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누군가가 앞으로 나섰다.
“저, 저기···.”
하만이었다.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호, 혹시 다, 다른 것도 가르쳐 주실 수 있을까요?”
하만의 말에 강현의 눈이 커졌다. 강현이 슬쩍 노아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끄덕이는 노아.
“...가르쳐주는 건 괜찮은데, 제가 여기까지 오기가 어렵습니다.”
노아가 아니면 올 수도 없었다. 강현의 말에 하만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괘, 괜찮아요! 제가 갈게요.”
“온다고 해도 제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문제없어요! 강현씨한테는 맛···. 좋은 냄새가 나서!”
방금, 맛있는 이라고 말하려고 했던 건가?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어려운 일도 아니니.’
그러자 하만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럼 앞으로 스승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스승님. 너무 거창한 표현이었다.
“그럴 필요는···.”
“아니, 부르게 해주세요!”
소녀의 기백에 밀린 강현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노아가 다가왔다.
“이야기는 끝난 건가?”
“아, 예.”
둘을 보더니 강현의 허리를 잡았다.
‘...또 구나.’
강현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곧 강현의 몸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