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55화 (55/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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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일이 생겼네.

“으엇.”

달그락, 달그락. 말이 움직일 때마다 저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들썩거리는 몸. 그때마다 고통이 올라왔다.

그러자, 란돌프가 속도를 줄였다.

“허벅지로 꽉 조여야 하네. 안 그러면 안쪽이 다 상해.”

란돌프의 조언. 그러나 강현은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란돌프의 말대로 허벅지에 힘을 줬다.

그러자 놀랍게도 흔들림이 줄어들었다.

그 모습에 란돌프가 웃음을 터트렸다.

“금방 배우는군! 그동안의 수련이 헛되지 않았어. 말을 타는 것도 수행이야.”

다시 앞으로 달리는 란돌프의 말.

그런 말을 따라 강현의 말도 달렸다.

분명 안장 위에 앉았지만, 엉덩이로 말의 근육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리고 말의 숨결 역시.

신기한 경험.

“좋아. 적응한 것 같으니 본격적으로 달려보지.”

“...예?”

란돌프의 말에 뒤늦게 강현의 입이 열렸다.

본격적으로 달려본다니, 이제까지 달린 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강현이 다시 입을 열기도 전에 란돌프가 말의 옆구리를 발로 두드렸다.

“이럇! 이럇!”

빨라지는 속도. 덩달아 강현의 말도 속도를 올렸다.

“억, 어헛!”

이상한 비명과 함께 필사적으로 허벅지를 조였다. 엉덩이가 많이 떠오를수록 고통도 심해졌다.

순식간에 주변 경관이 바뀌었다.

나무들이 줄고 사람이 다닌 흔적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나 강현은 경관을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

그렇게 달리던 강현은 문뜩, 불안한 마음이 떠올랐다.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억지로 고개를 돌려서 뒤를 돌아보았다.

하얀 털 뭉치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해맑게 웃으며.

‘...안 돼.’

머릿속으로 경고가 떠올랐으나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지금 꺼냈다간 혀가 잘릴 거다.

설기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꼬리 역시 신나게 흔들리고 있었다.

말이 뛰기 시작하면서 본능을 자극한 것이었다.

눈앞에 쥐가 보이면 반사적으로 사냥하는 고양이와도 같았다.

이미 강현의 경고는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컹! 컹!”

기분 좋게 짓는 설기. 달리는 말들을 향해 눈을 반짝였다. 그에 따라 말의 근육이 긴장하는 게 강현에게도 닿았다.

‘맙소사!’

말들이 가속했다. 앞서가고 있던 란돌프도 침음성을 흘렸다.

그러나 곧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전쟁터에서는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지. 이것 역시 수행인가!”

고삐를 당기고 자세를 낮췄다. 날뛰는 말을 제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쟁이고 뭐고 그냥 멈춰줘.’

강현은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 * *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군. 강현, 자네 괜찮나?”

“...아무 말도 하지 말아주세요.”

땅바닥에 엎드려있는 강현.

몸을 살짝 움직이려고 하자 아흑, 하고 야릇한 비음이 흘러나왔다.

란돌프가 미안한 눈빛으로 강현을 내려다보았다.

무릎을 꿇고 있는 두 다리가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리고 있었다.

‘꼬리뼈, 부서진 거 아니야?’

강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끼잉.”

옆에 설기가 위로하려고 했지만, 큰 도움이 되진 않았다.

상처 부위가 상처 부위인지라 설기의 침도 쓸 수 없었다.

말들은 설기의 눈치를 보며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이 상태라면 다시 타는 건 불가능했다.

‘...걷는 것조차 힘드니.’

심호흡하니 어느 정도 고통이 가라앉았다.

강현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송골송골 맺힌 땀.

가만히 보기 미안했는지 란돌프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허험, 원래 처음이란 그렇게 고통스러운 법이지.”

“...”

강현이 쳐다보자 란돌프가 시선을 피했다.

한숨을 내쉰 강현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숲이 끝난 자리에는 언덕이 보였다.

그리고 언덕 너머에 보이는 조그마한 마을.

인간들의 마을이 눈앞에 있었다.

마을을 보자 란돌프가 턱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슬슬 갈아입어야겠군.”

뜬금없는 말에 강현이 의아해하자 란돌프가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안에 들어있는 것을 본 강현의 눈이 커졌다.

* * *

란돌프가 잘라 준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 절뚝거리며 언덕을 넘는다.

그런 강현의 모습은 전과 달랐다.

란돌프처럼 가죽옷을 입고 있었다. 신발 역시 마찬가지였다. 생소한 복장. 안에 천을 덧씌우긴 했지만 걸을 때마다 까칠한 감촉이 느껴졌다.

지구의 옷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칠었다.

강현이 입고 온 옷은 너무 눈에 띄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행히 딱 맞는군.”

강현을 힐끗거린 란돌프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희미했던 마을의 전경이 점점 선명해졌다.

강현이 있던 마을과도, 수인족의 마을과도 또 다른 모습.

영화에서나 보던 중세 유럽의 모습이 그 자리에 있었다.

마을을 본 강현의 걸음이 멈추자 란돌프가 미소 지었다.

그의 손에는 말들의 고삐가 들려 있었다.

잔뜩, 긴장한 말들.

그러나 전처럼 도망치지는 않았다.

“벌써 놀라기는 이르다네.”

란돌프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을에 있던 사람들이 분주해졌다.

마을에서 란돌프와 강현이 오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강현이 란돌프를 돌아보자 란돌프는 고개를 저었다.

“직접 가보면 알걸세.”

란돌프의 말에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마을에 가까워지자 더욱 분주해졌다.

그런 마을을 바라보던 강현의 눈이 커졌다.

뿌우-

나팔 소리가 들리더니 십여 명의 사람들이 마을 밖으로 걸어 나왔다.

넷은 란돌프와 같은 갑옷을 입고 있었고 나머지는 파란 복장에 창을 들고 있었다.

병사들.

차이가 있다면 란돌프와 달리 기사들과 병사들은 모두 투구를 눌러쓰고 있었다.

길을 만들 듯이 양쪽으로 정렬한 기사들과 병사들.

곧 선두에 있던 기사가 검을 뽑았다.

“단장님과 친구분을 위하여. 발검!”

스르릉. 척!

기사의 구호에 맞춰서 다른 기사들과 병사들이 창을 들어 올렸다.

움찔, 절도 있는 모습에 강현의 발걸음이 멈췄다.

‘...저 사이로 지나가라는 건가.’

부담스러웠다.

강현이 머뭇거리자 란돌프가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우리가 지나갈 때까지 계속 들고 있을 걸세.”

빨리 지나가는 게 저들을 위한 것이란 소리였다.

“...저런 걸, 해도 되는 겁니까?”

자신이 뭐라고. 강현의 물음에 란돌프의 미소가 진해졌다.

“단지 단원들이 단장에게 인사하는 것인데, 문제가 될 리가 없지.”

“...아.”

강현이 뒤늦게 탄성을 뱉었다. 그랬다.

저들은 강현이 아니라 란돌프에게 인사하는 것뿐이었다.

“물론 매번 저러진 않네. 제식도 훈련의 하나이지. 훈련 장소를 이곳으로 바꿨을 뿐이야.”

란돌프가 강현을 향해 한쪽 눈을 찡그렸다.

“진짜 준비한 건 아직 나오지도 않았어.”

그러한 란돌프의 말에 강현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저것 말고도 또 준비한 게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저거보다 더 큰 게.’

이제는 알기가 두려워졌다.

“저기를 절뚝거리며 갈 건 아니지? 저 어린 늑대를 보게나.”

란돌프의 시선에 고개를 돌린 강현은 실소를 흘렸다.

언제 앞으로 갔는지 설기가 걷고 있었다.

턱을 치켜들고 위풍당당하게 걷는 설기.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를 보니,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자, 가세.”

강현의 어깨를 친 란돌프가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 한숨을 내쉰 강현이 지팡이를 내려놓았다.

‘이제 통증도 가라앉았으니깐.’

억지로 몸을 꼿꼿하게 세웠다.

란돌프의 말대로 기껏 이런 그림을 만들어줬는데, 절뚝거려서는 꼴이 우스웠다.

그렇게 기사들과 병사들이 만든 길을 지나치자 선두에 있던 기사가 다시 외쳤다.

“착검!”

검과 창을 거둔다. 그리고는 아까와 달리 가벼운 걸음으로 란돌프에게 다가왔다.

“경, 고생했네. 고마워.”

“아닙니다. 저희는 그럼 성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란돌프가 고개를 끄덕이자 기사 하나가 병사들을 데리고 움직였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절반 정도는 남아서 쓰고 있던 투구까지 벗고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성?”

강현이 의아해하자 란돌프가 입을 열었다.

“우리의 직장이지.”

그리고는 손을 들어서 한곳을 가리켰다. 란돌프의 손을 따라 고개를 돌린 강현이 탄성을 뱉었다.

저 멀리 성이 하나 보였다.

“영주님의 성이라네. 몇을 빼고는 다들 저기에서 생활한다네.”

“그럼 란돌프씨도?”

그러자 란돌프가 고개를 저었다.

“성안은 불편해서. 일 끝나고까지 주군과 함께 지낼 순 없지 않은가?”

그리 말하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강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여기도 그런 건 마찬가지이나 보네.’

사람 사는 곳은 똑같았다.

란돌프는 강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물론, 농담이고. 아내가 원한 것이라네.”

뒤늦게 란돌프가 말을 고쳤지만, 어느 정도는 진심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친구인가?”

그때, 뒤쪽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수염을 길게 늘어트린 노인이 있었다.

로브에 지팡이까지.

‘...마법사?’

영화에서 본 마법사의 모습이 분명했다. 강현을 힐끗거린 노인이 란돌프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란돌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로멘님.”

로멘이라 불린 노인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란돌프를 돌아보았다.

“약속이라서 오긴 했지만, 정말로 그걸로 되겠는가? 잘 생각하게. 내게 부탁할 수 있는 일은 흔하지 않아.”

“괜찮습니다.”

란돌프의 대꾸에 로멘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뜻이 그렇다면 알겠네.”

그리고는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강현은 본능적으로 로멘이 란돌프가 말했던 준비란 걸 깨달았다.

조용히 눈을 감고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로멘.

동시에 지팡이가 빛났다.

그를 본 강현의 눈이 커졌다.

겉모습만 그런 게 아니라 진짜 마법사였던 것이었다.

곧 로멘의 오른손에 불꽃이 피어났다.

“오오!”

“와!”

지켜보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감탄을 토했다. 강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 강현은 로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려간 걸 놓치지 않았다.

“잘 보게나. 이게 바로 마법이란 것이네.”

로멘은 불꽃을 하늘 위로 던졌다.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감탄. 강현도 기대 섞인 눈빛으로 불덩어리를 따라갔다.

하늘로 올라간 불덩어리는 곧, 검은 연기와 함께 흩어졌다.

마을 사람들이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쳤다.

그리고 강현은 사라지는 마법을 보며 눈을 껌뻑였다.

‘...저게 끝?’

좀 더 다른 게 있을 줄 알았다. 폭발이라든지, 모양이 변한다든지.

처음만 화려했지, 마지막은 어쩐지 허무했다.

‘저거면 폭죽이 낫지 않나?’

그러한 생각을 하던 강현은 곧 자신을 바라보는 로멘의 시선에 황급히 박수를 쳤다.

“와, 대단합니다! 놀랍네요.”

강현의 말에 로멘이 눈살을 찌푸렸다. 강현의 표정에서 실망감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쪽은 마법을 본 적이 있나 보군.”

로멘의 말에 강현은 대답이 궁해졌다. 란돌프 역시 놀란 눈으로 강현을 돌아보았다.

실제 마법은 본 적이 없었다.

당연했다.

그러나 매체로는 많이 접해봤다.

현실만큼이나 사실적으로.

CG로 뒤덮인 화려한 마법들을 보다 보니 로멘의 마법이 밋밋하게 느껴진 것이었다.

강현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로멘은 강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강현의 입 모양과 귀에 들리는 말이 다르다는 걸 깨달은 것이었다.

‘통역 아티펙트.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니 은신 아티펙트도 있는 건가?’

로멘의 감각을 속일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가 제작한 게 분명했다.

로멘의 시선이 란돌프에게 향했다.

‘...그래, 란돌프 경이 부탁할 정도의 인물이 평범할 리가 없지.’

너무 쉽게 생각한 건 자신이었다.

강현에 대해서 오해한 로멘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 오늘 자네 집에서 파티가 있다고 했었나? 나도 참가하지.”

그러자 란돌프의 눈이 커졌다.

“연구가 있어서 바로 돌아간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내 연구보다 중요한 일이 생겼네.”

로멘의 시선이 강현을 향했다. 그리고 로멘의 시선을 받은 강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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