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44화 (44/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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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문제라도 있었습니까?

살랑, 살랑.

코끝을 간지럽히는 느낌에 강현이 눈을 떴다.

하지만 눈을 떴음에도 주변이 어두웠다. 잠결에 아직 날이 밝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곧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얼굴에 손을 뻗자 폭신폭신한 털 뭉치가 느껴졌다.

“아우웅.”

동시에 옆에서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수인족의 어린아이. 하나가 아니었다.

강현의 주변으로 아이들이 뒤엉켜있었다. 입안이 텁텁해서 손을 넣었더니 털 조각들이 나왔다.

‘...기도가 막히지 않은 게 다행이네.’

아이들의 자는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얌전하게 몸을 웅크리고 있는 아이부터 잠꼬대하면서 꼬리가 움직이는 아이.

심지어 제 손가락이나 꼬리를 입에 물고 있는 아이도 보였다.

그리고 모나는 제 손가락이 아닌 옆에 있는 아이의 머리를 물고 있었다.

“아우, 우우.”

악몽이라도 꾸는지 괴로워하는 아이.

강현은 한숨을 내쉬고 모나를 아이로부터 떼어냈다. 모나가 안 떨어지려고 꼼지락거렸지만 자고 있는 탓에 힘이 없었다.

그제야 자고 있던 아이의 표정이 풀렸다.

그렇게 아이들을 둘러보던 강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설기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강현은 얼마 뒤,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멀찌감치 떨어진 곳.

구석에 보이는 작은 털 뭉치. 자세히 보지 않았으면 장식으로 오해했을 거다.

‘저 녀석.’

자신을 아이들 사이에 놔두고 혼자만 도망친 것이었다.

눈살을 찌푸리던 강현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허우적거리며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 모나. 자면서도 사냥 본능에 충실했다.

강현은 모나를 들어다가 설기의 옆에 눕혔다.

바로 새로운 목표를 포착하고 껴안는 모나.

설기의 털에 얼굴을 파묻었다.

“끼이잉.”

설기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잠은 깨지 않고 있었다.

강현은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다가 다른 아이들이 깨지 않게 조심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오자 햇살이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강현은 옆을 지나가는 그림자가 깜짝 놀라서 뒷걸음쳤다.

수인이었다.

그러나 어제와 달리 네 발로 걷고 있어서 놀란 것이었다.

수인은 강현을 못 봤는지 흐느적흐느적 걸어갔다.

고개를 갸웃하던 강현은 곧 마을을 둘러보고는 탄성을 뱉었다.

방금 지나간 수인만이 아니었다.

곳곳에서 네 발로 걷고 있었다. 비틀거리는 모습.

어제의 늠름한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강현은 뜬금없이 스핑크스의 고사를 떠올렸다.

아침에 네 발, 점심에 두 발, 저녁에 세 발로 걷는 짐승.

그리고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녁에도 두 발이긴 했지.’

그때, 두꺼운 손이 강현의 어깨를 감쌌다.

“잘 잤나?”

“...아, 족장님.”

카샨이 강현을 보며 히죽 웃고 있었다. 그리고는 마을을 보더니 못마땅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다들 나약해 빠졌어. 고작 이 정도 취기도 이겨내지 못하다니.”

카샨의 뒤로 노아의 모습도 보였다.

다른 수인처럼 네 발로 걷지는 않았지만, 표정이 어두웠다.

그제야 강현은 이 기괴한 광경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숙취.

‘감각이 예민한 만큼 숙취도 크게 오나 보네.’

그래서 다들 네 발로 걷는 것이었다. 그들의 상태를 보니 다시 술 냄새가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그대는 괜찮나?”

“아, 예.”

카샨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강현은 의아해했다.

어제 강현이 마신 술의 양도 적지 않았다. 평소였다면 제대로 일어나기도 힘들 것이었다.

그러나 강현의 머릿속은 어느 때보다 상쾌했다.

‘...냄새만 그렇고 사실은 술이 약했나?’

그러나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잘 알았다.

마실 때마다 화끈거리던 그 감각은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왜···.’

강현의 상념은 이어지지 못했다.

“다들 저 꼴이어서 송별회도 해줄 수 없겠군. 아쉬운 대로 나와 한 잔 더 할까?”

카샨의 말에 강현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이 괜찮다고 어제의 고통이 없었던 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강현을 본 카샨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 그렇군.”

무언가를 떠올린 카샨이 노아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노아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목걸이.

중앙에는 작은 뿔이 걸려 있었다.

“수인의 친구라는 증표다. 도움이 필요하면 불러.”

부르다니?

카샨의 말을 듣고 나서야 강현은 뿔에 구멍이 뚫렸다는 걸 깨달았다.

지난번, 노아가 준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호각.

“그대는 냄새 때문에 맹수들이 많이 꼬일 거야. 물론, 신성한 늑대가 있으면 상관없겠지만.”

웃으며 강현의 어깨를 두드리는 카샨.

카샨에게는 웃긴 이야기였지만, 강현은 웃을 수 없었다.

“마침 나오는군.”

카샨의 말에 강현의 시선이 돌아갔다.

문틈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설기.

잠깐 사이 많이 시달렸는지 털 군데군데가 뭉쳐 있었다.

설기는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오더니 강현의 곁에서 하품했다.

피곤해 보이는 모습.

강현은 원인을 알았지만 모르는 척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래. 다음에 또 오도록. 우리 마을은 그대를 환영할 테니.”

웃으며 말하는 카샨. 그녀의 미소에 강현도 웃으며 화답했다.

그러나 강현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게 있었다.

카샨이 턱을 쓸며 말했다.

“이제 돌아가는 게 문제군.”

“제가 데려다주겠습니다.”

노아였다. 황급히 거절하려던 강현은 여기까지 오는 길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마나 멀지 짐작도 하기 힘들었다.

노아의 말에 기운 없던 설기의 귀가 쫑긋 섰다.

달릴 거야?

반짝이는 눈빛. 그 모습에 강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부탁드립니다.”

고개를 끄덕인 노아가 강현을 들어 올렸다.

* * *

수인족 마을에 다녀오고 며칠이 지났다.

정말로 잊지 못할 경험. 하지만 강현은 금세 일상에 적응했다.

6월로 접어들면서 마을에도 여름이 찾아왔다.

밖에는 매미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고 날이 더워짐에 따라서 사람들의 발길도 전보다 줄었다.

더운 탓도 있지만, 일이 바빠지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딸랑, 딸랑.

“어서 오세요.”

테이블을 정리하던 강현은 방울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안으로 들어온 이는 모자를 푹 눌러쓴 사내였다.

버킷 모자. 흔히들 벙거지모자라 부르는 것이었다. 코트까지 입고 있어서 나이를 구분하기 힘들었다.

‘이 날씨에 코트를?’

심지어 선글라스까지 쓰고 있었다.

사내는 매장을 두리번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정말 레스토랑이 있었군.”

탁한 목소리. 노인이었다.

노인은 코트를 벗고 구석진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나 모자와 선글라스만은 그대로였다.

‘이곳 사람은 아니야.’

옆 마을 사람이라면 얼굴이 눈에 익었을 거다.

게다가 계절과 맞지는 않지만, 옷차림 역시 시골과 어울리지 않았다.

“주문을 도와드릴까요?”

강현은 노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봉골레. 혹시 면은 페투치네로 변경할 수 있나?”

노인의 말에 강현의 눈이 커졌다. 이곳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요청.

“죄송합니다. 지금 페투치네 면은 없습니다.”

강현의 말에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것이지, 큰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이었다.

“페투치네는 없지만, 링귀네는 가능합니다.”

강현의 말에 선글라스 너머, 노인의 눈이 커졌다.

“그럼, 그걸로 부탁하네.”

주방에 들어온 강현은 링귀네 면을 꺼냈다. 잘 나가지 않는 면이라 미리 삶아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잘이 아니라 아예 나간 적이 없지.’

찾는 이가 없기 때문이었다.

페투치네는 스파게티 면을 납작하게 눌러놓은 듯한 모양이었다.

면적이 넓은 만큼 소스의 맛이 짙게 묻어나는 면이었다.

링귀네는 그런 페투치네와 비슷한데 좀 더 폭이 좁았다.

강현은 면을 끓일 물을 올리고 재료를 준비했다.

봉골레.

이탈리아어로 조개란 뜻이었다.

의미 그대로 조개를 넣고 만든 오일 파스타였다. 이탈리아 해안 지역에서 자주 먹던 음식.

바다를 연상케 하는 짠맛이 특징이었다.

하는 방법 역시 어렵지 않았다.

오일을 두르고 마늘을 구워준다. 그리고 페페론치노를 넣고 한번 저어준 후 해감한 모시조개와 화이트 와인을 넣고 뚜껑을 닫아준다.

타닥, 탁.

뚜껑 안에서 기름이 튀는 소리가 울렸다.

모시조개를 한 번 삶은 뒤 넣는 방법도 있지만, 이렇게 와인과 같이 넣으면 자연스레 육수가 나와서 풍미가 더 깊었다.

조개가 입을 벌렸으면 건진 후, 면을 넣고 졸여준다.

조개가 있는 상태로 면을 넣고 저으면 조개가 깨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후 면에 간이 충분히 배면 조개를 다시 넣고 섞어준 뒤, 그릇에 옮기면 되었다.

그 위로 파슬리를 뿌려주면 완성.

강현은 완성된 파스타를 홀로 들고 나갔다.

“봉골레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노인은 테이블에 놓인 봉골레를 빤히 쳐다보더니 향을 맡았다.

그리고는 면을 조심스럽게 입으로 가져갔다.

“음!”

짧은 감탄. 다시 한 입.

전보다 양이 많았다.

“...이런 곳에서 이 정도의 파스타를 먹을 수 있을 줄은 몰랐군.”

노인은 천천히 음미하듯이 파스타를 먹었다.

스푼과 포크를 쓰는 것이 능숙했다.

그렇게 한 그릇을 비운 노인이 강현에게 다가왔다.

카드를 건네는 노인.

그리고 계산이 끝난 뒤에도 강현을 빤히 바라보았다.

노인의 시선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음식에 문제라도 있었습니까?”

“아니, 아닐세.”

고개를 젓는 노인. 그때, 매장의 문이 열렸다.

딸랑, 딸랑.

“아, 손님이 있었구먼.”

이장이었다. 이장의 등장에 노인은 헛기침하더니 매장을 빠져나갔다.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노인을 본 이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 양반은 날도 더운데 뭘 저리 꽁꽁 감싸고 있어?”

이장의 말에 강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강현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무슨 일이세요?”

“아, 밭일 때문이여. 정말로 괜찮겠어? 나중에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하면 안 돼.”

지난번에 말했던 내용.

일손이 부족해서 강현이 돕기로 한 것이었다. 강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고작 이틀인데요.”

어차피 마을 전체가 바빠서 손님도 없었다. 그동안 마을에 도움을 받았으니 이번에는 강현의 차례였다.

그리고 요즘 매일같이 마을을 달리고 있었다.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었다.

“그려? 알겠어. 그럼 그리 올릴게!”

이장을 그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이장이 떠나가자마자 맞춘 것처럼 핸드폰이 울렸다.

윤섭이었다.

강현은 고개를 갸웃하며 윤섭의 전화를 받았다.

“어, 무슨 일이야?”

[뭔 일은. 이 형님이 곧 휴가라서 전화했지.]

휴가? 그게 자신과 무슨 상관인가.

강현이 의아해하자 핸드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올해에는 해외 안 가고 한국에서 보내려고. 겸사겸사 네 얼굴도 볼 겸, 삼일 정도만 거기서 머물게.]

“...”

내키지 않았다. 강현이 침묵하자 핸드폰 너머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괜찮지?]

침묵은 긍정에 가깝다고 했던가.

진짜 싫으면 단번에 거절할 걸 알기 때문이었다.

결국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

[좋아. 오랜만에 광란의 밤을 보내자고. 그럼, 출발할 때, 연락할게!]

광란의 밤.

이미 마을의 잔치와 수인족의 축제를 경험한 강현으로서는 큰 감흥이 없었다. 윤섭이 아무리 잘 놀아도 그 둘을 넘어서기 힘들었다.

그렇게 통화를 종료한 강현은 무언가를 떠올렸다.

‘...아니, 잠깐만.’

윤섭이 말한 날짜가 익숙하기 때문이었다.

날짜를 확인한 강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다급히 매장 밖으로 뛰어나가는 강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던 강현의 눈이 반짝였다.

“이장님!”

다행히 멀리 가지 않았다. 걷던 이장은 강현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뭔가를 짐작했는지 고개를 주억였다.

“...역시, 힘들겠지? 너무 신경 쓰지 마. 가게도 봐야 하니.”

“아뇨. 일꾼 하나 더 온다고요.”

“엉?”

생각지도 못한 말에 이장이 눈을 껌뻑였다. 그런 이장의 반응에 강현이 미소 지었다.

강현은 지난번의 일을 잊지 않았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지.’

모처럼이니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줄 것이다.

그렇게 강현은 윤섭 덕분에 방금 왔다 간 손님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리고 강현이 그 손님에 대해서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이틀 뒤였다.

노인이 다시 매장을 방문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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