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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삼촌이야!
“대접해준다고 해놓고 또 얻어먹는군.”
“아닙니다. 덕분에 사냥도 해봤잖아요.”
강현의 말에 란돌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네. 사냥이 뭐가 어렵다고. 어찌 비교하겠는가.”
강현은 어색하게 웃었다.
‘사냥이 더 어려운 거 아닌가?’
강현의 상식으로는 요리가 더 쉽다. 하지만 이곳은 강현의 세상이 아닐뿐더러 란돌프 역시 강현이 아니었다.
“게다가 요리법도 마찬가지네. 귀한 걸 배웠어. 맥주로 넣는 것부터, 삶은 뒤 다시 굽다니. 상상도 못 한 방법이야. 아, 혹시 괜찮으면 나도 이 방법을 써도 되겠는가? 이걸 먹으니 다시 예전 걸 먹기 힘들 것 같네.”
란돌프의 말에 강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째서 자신의 허락이 필요한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강현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예. 어차피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야.”
강현의 말에 란돌프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영주의 요리사에게 들어서 알고 있네. 이러한 요리법이 어떠한 가치를 지니는지.”
란돌프가 진지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겸손한 것도 좋지만, 자신의 가치를 낮추지 말게나.”
강현은 란돌프의 기세에 눌려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곧 이 세상이 자신의 세상과 다르단 걸 깨달았다.
중세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 되어서 누구나 쉽게 레시피를 구할 수 있었지만, 불과 30년 전만 해도 한국 역시 레시피를 아무나 가르쳐주지 않았다.
매장에서 오랫동안 허드렛일해야 얻을 수 있는 게, 요리법이었다.
아니면 그만한 대가를 지급하거나.
정보, 지식이 귀한 시대.
“좋아! 그냥 넘길 순 없지. 내 다음에는 자네에게 검을 가르쳐주겠네.”
“예?”
강현은 눈을 껌뻑였다. 아니, 왜 이야기가 그리로 튀는 걸까?
놀란 강현을 보며 란돌프가 웃음을 터트렸다.
“내 검술이라면 자네의 요리법의 대가로 충분하겠지.”
“굳이 그럴 필요는···.”
“하하하. 사양할 것 없네! 어차피 딸아이는 검에 흥미가 없어. 내 대에서 끊기는 것보단 자네라도 이어주는 게 낫겠지.”
그리 웃은 란돌프는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런 시골에 있다지만 나도 한때는 왕도에서 이름 좀 날렸었네. 영지 내에서도 내게 검술을 배우고 싶다는 녀석들이 많아.”
“...그럼 그분들에게 가르치시는 건···.”
자신이 검을 배워봤자 아무런 쓸모도 없을 거라는 걸, 장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란돌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마음에 드는 녀석이 없네.”
란돌프가 강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너무 부담가지지 말게. 스승처럼 대하라고는 안 할 테니. 그래, 친구가 좋겠네. 가끔 만날 때마다 난 자네에게 검술을, 자네는 오늘처럼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주게. 그걸로 충분하네. 그럼 나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지 않겠는가.”
강현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의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강현이 허락하자 란돌프가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좋군! 나에게도 제자가 생긴 건가? 아니, 친구 겸 제자이지!”
즐거워하는 란돌프를 보니 강현도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꼈다.
정말로 밝은 사람이었다.
‘운동한다고 생각하면 되겠지.’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란돌프의 말대로 이세계에서도 친구가 생긴 것이었다.
“그래, 배우다 보면 자네의 체력도 좋아질 걸세. 그래야 사냥도 자주 하지.”
“컹! 컹!”
“오, 어린 늑대께서도 그리 생각하는가?”
옆에 있던 설기가 사냥이란 말에 반응했다.
또 할 거야?
초롱초롱한 눈빛을 본 강현도 슬며시 미소 지었다.
아무래도 사냥의 재미에 눈을 뜬 것 같았다.
‘...아니, 사냥이라면 전부터 했었지.’
강현과 같이 놀 수 있는 수단이 생긴 걸 기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현이 미처 모르고 있는 사실도 있었다.
란돌프가 가르쳐주려는 건 단순한 체력 증진용이 아니었다.
강현은 그 가치를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새 모닥불의 빛이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다.
꺼져가던 모닥불을 보던 란돌프가 슬며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강현, 자네. 요정에 대해서는 아는가?”
요정?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강현을 본 란돌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자네는 수인도 몰랐으니.”
란돌프도 강현이 수상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을 들어서 한쪽을 가리켰다.
“여기서 북서쪽으로 올라가면 수인들의 영역이라네. 그리고 전에 봤던 강 너머는 요정들이 살고 있지. 엘프라 불리는 이들이네.”
북서쪽. 강현이 세상을 오가는 문이 있는 방향이었다.
그리고 동쪽의 강은 전에 늑대 무리가 머물던 곳.
“요정들은 강 너머로 잘 넘어오지 않지만, 혹시 마주칠 수도 있으니 조심하게. 다짜고짜 공격하진 않겠지만, 그들은 하얀 늑대를 섬기지 않아.”
수인과 달랐다. 란돌프의 말에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엘프라.’
어릴 적 유행했던 영화에서 나온 적이 있었다.
‘게임에서도 나왔지.’
게임에 관심이 없는 강현에게도 그리 낯선 단어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름만 같을 뿐, 다른 존재일 거다.
“이 숲은 인간과 수인, 요정. 이 셋의 접경지이기도 하네. 일종의 중립 지역이지.”
란돌프의 말에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아무리 이 세상에 대한 정보가 없는 강현이라도 란돌프가 말한 것의 의미는 알 수 있었다.
“...그런 것치고는 경계가 적네요.”
타국도 아니라 다른 종족과의 접경 지역이었다.
오히려 병사들이 많아야 했다.
강현의 물음에 란돌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맹약 때문이지.”
맹약. 전에도 들었던 단어였다.
란돌프는 의아해하는 강현을 위해 설명을 이어갔다.
“과거 큰 전쟁이 있었네. 수백 년이 넘게 지속된 대전쟁이었지. 대륙 전체가 전화로 휩싸였네. 결국, 보다 못한 신들이 나서게 되었지. 그렇게 각 종족 간의 분쟁이 금지되었다네.”
강현이 고개를 주억였다. 강현으로서는 짐작하기도 힘든 규모의 이야기였다.
여러 이종족.
그리고 신들까지. 강현은 새삼스레 이곳이 지구가 아니란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이 백여 년 전의 일이라네. 사실 요정이나 수인이나 우리 인간과 그리 나쁜 사이는 아니었어. 좋다고도 말할 순 없었지만, 어느 정도 교류도 하던 사이였지.”
란돌프는 쓴웃음을 짓고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맹약이 생긴 이후, 교류 자체도 끊겼다네.”
분쟁을 피하려고 교류도 제한한 것이었다.
‘현명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쉬운 방법이긴 하네.’
강현이 이를 비판할 순 없었다. 강현 역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바로 서울을 떠난 것이었다.
“이 숲도 마찬가지지. 예전에는 세 종족 간, 화합의 장소이기도 했다네. 이제는 수인도, 요정도 잘 오지 않아. 그 때문에 점차 맹수들의 숫자도 늘어났지. 그러한 맹수들이 마을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내 임무라네.”
란돌프의 말에 강현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란돌프는 그런 강현을 보며 웃었다.
“난 이렇게 자네와 어린 늑대께서 나타난 것도 신의 뜻이라고 보네. 혹시 아는가? 자네가 이 숲을 예전처럼 다시 떠들썩하게 만들어줄지. 자네의 요리에는 마법과도 같은 힘이 있어.”
마법이라니. 너무 거창했다.
멋쩍어진 강현이 볼을 긁적이자 란돌프가 몸을 일으켰다.
“그럼 난 슬슬 가보겠네. 나도 가정이 있어서 외박은 힘들어.”
강현은 어색하게 웃었다.
이미 한밤중이었다. 외박이나 마찬가지였으나 란돌프에겐 다른 의미인 것 같았다.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마을을 안내해주겠네. 자네만큼은 아니지만 내 아내도 요리 실력이 좋아.”
란돌프가 유쾌하게 웃었다. 멋들어진 웃음.
“예. 기대 하겠습니다.”
강현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세계의 마을. 강현 역시 궁금했다.
그렇게 란돌프가 자리를 떠나갔다.
자연스레 강현의 시선이 설기에게 향했다.
“...많은 일이 있었네. 그렇지?”
“컹!”
설기의 꼬리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사냥서부터 란돌프의 이야기까지.
“좋은 사람이야.”
설기의 머리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강현도 란돌프의 시선으로 보면 자신이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 말도 없이 넘어갔다.
강현을 배려해준 것이었다.
‘다음에 만나면 나도···.’
강현은 그리 생각하며 의자에 몸을 뉘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강현은 란돌프가 뜀새를 사냥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역한 맛을 참으면서까지 먹어야 했던 이유.
‘...한국에 있었으면 진작에 멸종했겠네.’
아침부터 힘이 넘쳤다. 강현은 침낭을 정리하며 실소를 흘렸다.
* * *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른다.
몇 번이나 올랐지만 익숙해지지 않았다. 설기는 이미 언덕 끝에 올라가서 강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제법 참을성이 늘어난 설기였다.
좌우로 흔들리는 꼬리가 마치 강현을 응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꾸역꾸역 페달을 밟던 강현이 중간에 멈춰 섰다.
“...오늘은 여기까지인가?”
뒤를 돌아보니 제법 많이 올라와 있었다.
처음 때와 비교하면 큰 발전이었다.
‘몇 번 더 타면 끝까지 오를 수 있겠네.’
강현은 자전거를 끌고 남은 언덕을 올랐다.
그러자 설기가 언덕 위에서 강현을 반겼다.
“컹! 컹!”
짖으며 한 바퀴 돌더니 뒷발로 땅을 팠다. 그 모습이 싸우기 전의 소처럼 보였다.
피식, 웃은 강현이 자전거에 올랐다.
“이번에는 안 질 거야.”
“컹!”
어림없다는 듯이 짖는 설기. 곧 강현이 페달을 밟았다.
설기와 강현이 바람을 가르며 나아갔다.
* * *
금세 마을로 내려온 강현은 언제나처럼 슈퍼로 향했다.
그러나 강현을 맞이한 건 언제나 보던 할머니가 아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 이국적인 외모의 여인이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고개를 갸웃한 강현은 슈퍼 안으로 향했다.
‘며느님이신가?’
그리 생각하며 슈퍼 안을 살폈다. 그리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은 없는 게 좀 있네.’
강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메뉴를 바꿔야 하나.’
그리 고민하고 있던 강현은 문뜩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다.
아까의 여인이었다.
경계심 가득한 눈빛. 벌써 몇 번이나 온 마을이었으나 모든 사람을 마주친 건 아니었다.
게다가 강현이 오는 시간이 사람이 없을 때였다.
낯선 이가 물건도 사지 않고 멀뚱멀뚱 서 있으니 수상하게 본 것이었다.
강현은 아차 싶어서 손에 집히는 채소를 바구니에 담았다.
‘잠깐, 이러면 더 수상한 거 아니야?’
아니나 다를까. 강현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경계심이 더욱 강해졌다.
‘...오늘은 읍내에 나갈까.’
어차피 원하는 재료도 없으니. 그러한 생각을 하던 도중, 예상치 못한 목소리 하나가 강현을 구해줬다.
“어? 삼촌!”
고개를 돌리자 상후가 손을 흔들었다.
상후 뒤에는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이 모여있었다.
“오빠, 누구야?”
“요리사 삼촌이야!”
상후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의 표정이 변했다.
“전에 말했던 아저씨?”
“응!”
부담스럽게 쏟아지는 눈빛들. 그와 함께 여인의 눈에서 의심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