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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입니다.
자욱하게 올라오는 연기.
그와 함께 숲에 누린내가 진동했다.
쿡, 쿡.
옆에서 누군가가 강현의 옷을 당겼다. 설기였다.
“끼잉, 낑.”
애처로운 울음소리. 어떻게든 해보란 소리였다.
‘...그렇게 말해도.’
강현의 시선이 정면으로 향했다.
란돌프가 장작에서 고기를 굽고 있었다.
나뭇가지로 만든 꼬챙이에 고기를 꽂아서 굽는 기본적인 방식.
심지어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강현과 눈이 마주친 란돌프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 조금만 기다리게. 금방 끝나.”
“...예,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저런 란돌프에게 피하라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강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냄새만 저럴 뿐, 맛있을 수도 있어.”
“끼잉?”
설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진짜?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강현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설기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런 설기를 보니 강현은 양심에 찔렸다.
‘...그럴 리가 없지.’
사냥이 끝나자마자 일행들은 텐트를 쳐놓은 냇가로 돌아왔다.
그리고 란돌프는 능숙하게 뜀새를 손질했다.
그 모습을 보며 강현도 살짝 기대하였으나···.
거기까지였다.
손질만 잘할 뿐, 요리에는 소질이 없었다.
핏물도 빼지 않고 그대로 구웠다.
심지어 누린내를 날려줄 기본적인 양념조차 하지 않았다.
굳이 맛보지 않아도 예측할 수 있었다.
“자, 다 되었다네!”
란돌프가 고기를 접시에 담아왔다. 접시는 강현이 제공한 것이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더 심하네.’
겉은 타고 안에는 아직 핏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린내가 아까보다 강렬해졌다.
강현은 한 점을 잘라서 입에 넣었다.
“...”
오물오물.
고기를 삼켰다.
‘...미각이 둔한 게 다행이야.’
둔해진 미각으로도 알 수 있었다. 죽은 미각까지 살릴 정도로 쓴맛과 떫은맛이 강렬했다.
강현이 이렇게 느낄 정도면.
강현은 슬그머니 설기를 보았다.
“...!”
한 입 깨문 설기가 그대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리고는 두 앞발로 제 코를 붙잡았다. 후각이라도 막아서 고통을 줄이려는 것이었다.
참으로 눈물겨운 노력이었다.
그런 설기를 보며 란돌프가 웃음을 터트렸다.
“조금 쓰지? 어쩔 수 없네. 원래 몸에 좋은 것일수록 쓴 법이야.”
란돌프는 그리 말한 뒤 고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먹는 것도 훈련이라네.”
“...”
정말로 전투에 임하듯이 고기를 씹는 란돌프.
그 모습에서는 비장함만 감돌 뿐, 식사의 기쁨 따위는 없었다.
강현은 어색한 웃음과 함께 뺨을 긁적였고, 설기는 그런 란돌프를 노려봤다.
조금 쓰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서 먹게 고기가 아직 많이 남았어.”
란돌프가 뒤를 가리켰다. 한 마리만 손질했을 뿐인데, 거대한 덩치만큼이나 고기의 양도 많았다.
“음.”
또 하나의 고기를 입으로 가져간 강현이 남은 고기와 설기를 번갈아 보았다.
미각이 둔한 강현은 참고 먹을만했지만 설기는 아니었다.
곧 무언가를 떠올린 강현의 시선이 냇가로 향했다.
아까 물속에 넣어놓은 맥주들.
‘있다.’
원하는 걸 발견한 강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란돌프씨. 괜찮으시면 남은 고기는 제가 요리해봐도 될까요?”
“으음?”
고기를 씹던 란돌프가 의아해했다.
“괜찮긴 하네만, 소용없을 걸세. 영지의 요리사도 이 녀석에게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어.”
란돌프의 말에 설기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했다.
반짝거리는 눈빛.
강현은 다를 거라는 믿음이었다. 그리고 강현은 그 믿음을 저버릴 수 없었다.
“한 번 해보겠습니다.”
적어도 지금 이 상태보다는 나을 거다.
강현은 먼저 썰어놓은 고기들을 냇물에 담갔다. 핏물을 빼려는 것이었다.
‘오래 빼는 게 좋긴 하지만.’
보통이라면 반나절 이상.
그러나 그럴 여유는 없었다. 그렇게 고기를 담그고 돌아온 강현이 고기를 씹었다.
맛만 그런 게 아니라 진짜 고무를 씹는 것처럼 질겼다.
이미 구워버린 고기는 되살릴 수 없었다.
그건 강현이 아니라 다른 누가 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직 굽기 전이라면 방법이 있었다.
란돌프는 냇물에 담긴 고기를 힐끗거리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만들지 모르겠지만 기대가 되는군.”
그리 말한 란돌프가 고기를 뜯어 먹었다.
이미 설기는 고기를 먹지 않고 앞발로 밀어버렸다.
강현은 그런 설기를 보며 살짝 걱정이 들었다.
‘나중에는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거 아니야?’
강현의 요리에 너무나 익숙해졌다.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생각할 문제는 아니었다.
강현의 고기를 힐끗 보았다.
서서히 핏물이 빠져나오는 게 줄고 있었다.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준비하는 시간도 생각해야만 했다.
강현은 고기를 건져와서 냄비에 담았다.
란돌프가 손질한 덕분에 쉽게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냇가에서 맥주캔을 가져왔다.
그걸 본 란돌프의 눈이 커졌다.
“음? 술을 넣는 건가?”
“예. 이게 잡미를 잡아줄 겁니다.”
탁.
캔을 열자 검은 액체가 냄비 위로 떨어졌다.
“흑맥주. 이 귀한 것을···.”
란돌프가 탄식을 뱉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강현은 한 캔 더 가져왔다.
옆에서 란돌프가 아쉬워하는 게 보였으나 못 본 척 넘겼다.
그것까지 모두 붓자 냄비 절반이 찼다.
‘이쯤이면 되겠네.’
강현은 고기가 모두 잠길 때까지 물을 더 부어주고 양파와 후추, 소금과 설탕을 넣었다.
‘월계수나 허브가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거기까지 챙겨오지는 못했다. 그렇게 뚜껑을 닫은 냄비를 모닥불 위로 가져갔다.
그러자 란돌프가 몸을 일으켰다.
“잠시만 기다리게.”
숲속으로 달려가더니 순식간에 나뭇가지 세 개를 베어왔다.
그것을 교차시킨 후 밧줄로 묶으니 냄비 걸이가 뚝딱 만들어졌다.
강현은 냄비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잘 묶었다.
타닥, 타닥.
불꽃이 튀어 오르는 게 보였다.
스토브를 쓸 때와는 다른 화력. 금세 냄비 뚜껑 사이로 김이 올라왔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향을 맡아본 란돌프와 설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향만으로는 어떤 맛일지 짐작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리 맛있게 느껴지는 냄새는 아니었다.
강현은 다시 냇가로 걸어가서 맥주 두 캔을 더 가져왔다.
흑맥주가 아닌 일반 에일 맥주.
하나를 까서 란돌프에게 건넸다.
“오, 고맙군.”
란돌프는 웃으며 맥주잔을 받았다. 설기가 그런 란돌프를 힐끗거렸으나 곧 흥미를 잃고 냄비를 바라보았다.
술은 설기의 관심 밖이었다.
강현도 맥주를 따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다가 문뜩, 얼마 전 만났던 모나를 떠올렸다.
그 이야기하니 란돌프의 눈이 커졌다.
“수인족의 아이인가. 대단한 녀석이군. 미래에는 훌륭한 전사가 되겠어.”
“대단하다뇨?”
“수인족은 공동으로 육아를 보지. 마을에서 빠져나왔단 소리는 마을의 전사들의 감시를 피하고 도망쳤단 소리야. 한 번도 아니라 두 번이라면 재능이지.”
한 번은 우연일 수 있지만 두 번은 아니었다.
그리 말한 란돌프가 유쾌하게 웃었다.
“아마 그 아이를 데리러 온 건 마을을 지키는 전사 중 하나일 걸세.”
란돌프가 맥주를 들이켰다.
“크으, 시원하군! 요리도 요리지만 자네가 가져오는 맥주도 일품이야.”
그리고는 고기를 뜯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감탄하는 란돌프를 보며 강현이 말을 이었다.
“지난번에 설기 때문에 무사할 거라고 하셨는데. 혹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강현의 물음에 란돌프가 돌아보았다.
이제까지와 다르게 무심한 눈빛. 마치 강현의 꿰뚫어 보는 것만 같았다.
곧 웃음을 흘린 란돌프가 입을 열었다.
“자네는 정말 특이하군. 수인에 관해서도 모르는 것 같고, 가지고 있는 장비들도 그렇고.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것 같아.”
란돌프의 말에 강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란돌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긴, 상관없겠지. 나도 이야기만 들었지. 직접 본 것은 처음이라네. 하얀 늑대. 저들은 옛 신의 피를 이어받은 일족이라네. 말하자면 늑대 신의 후예지.”
신의 후예.
또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나왔다.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걸 알아챈 설기가 고개를 들었다.
“늑대 신은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눈과 뛰어난 지혜를 가졌다고 전해지네. 그리고 하얀 늑대의 일족 역시 그 능력의 일부를 이어받았지.”
설기가 턱을 세웠다. 이제 자신의 대단함을 알았냐는 눈빛.
그 모습에 강현과 란돌프가 미소 지었다.
나름 멋지게 보이려고 한 것 같지만, 귀엽기만 했다.
맥주를 홀짝인 란돌프가 말을 이었다.
“그 때문에 수인들은 아직도 하얀 늑대를 신성시하지.”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란돌프가 한 말과 수인이 보였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대단한 녀석이었네.’
강현의 시선이 설기에게 향했다.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신의 후예라니.
강현이 살던 세상이었다면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겪은 경험이 진실이란 걸 알려줬다.
‘저쪽 세상에 따라올 수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인가?’
다른 동물들은 지나치지 못했다. 그때, 냄비에서 흘러나오는 향이 바뀌었다.
‘됐다.’
강현은 서둘러서 냄비를 열었다. 맥주를 섞은 물이 졸여져서 얼마 남지 않았다.
강현은 냄비 안에 든 고기를 꺼내서 식혔다.
“오, 다 된 건가?”
“아뇨. 한 번 더 구워야 해요.”
원래라면 오븐에 넣어야 했지만, 여기서는 그럴 수 없었다.
강현은 삶은 고기에 칼집을 넣고 란돌프가 그랬던 것처럼 꼬챙이에 꼈다.
곧 고소한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허! 확실히 다르군. 달라.”
향만으로도 다른 음식처럼 느껴졌다.
아까까지 심드렁했던 설기의 꼬리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슈바인학센.
돼지 다리를 삶아서 만드는 독일식 족발이었다.
강현은 그 레시피를 응용한 것이었다.
‘비록, 돼지 다리는 아니지만···.’
이걸로 누린내는 어느 정도 잡힐 거다.
곧 겉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면서 달콤한 향이 올라왔다.
야영지에 적막이 내리 앉았다.
란돌프와 설기. 둘 다 숨을 죽이고 고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실소를 흘린 강현이 고기를 꺼냈다.
그리고 다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냈다.
하얗게 올라오는 김.
그와 함께 퍼져가는 향.
누군가가 마른침을 삼켰다.
“완성입니다.”
강현은 고기를 그릇에 옮겨 담은 후 둘에게 건넸다.
그리고는 자신의 접시에 담긴 고기의 향을 맡아보았다.
‘...완전히 없애진 못했네.’
살짝 누린내가 올라왔다. 그러나 이 정도면 큰 발전이었다.
강현은 고기 한 점을 입으로 가져갔다.
전보다 부드러워진 살코기. 강현의 미각으로서는 누린 맛을 잡아내지 못했다.
힐끗,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옆에서는 이미 식사 한창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
‘나쁘지 않은 정도인가?’
설기의 반응이 저 정도이니 란돌프는 말할 것도 없었다.
“맛있군! 굉장해!”
연신 감탄하면서 고기를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겠어!”
란돌프의 말에 강현은 쓴웃음을 흘렸다.
‘역시 그동안 억지로 먹었구나.’
아마 강현의 미각이 정상적이었다면 설기의 반응과 다르지 않았을 거다.
고기는 금방 동이 났다.
주변은 이미 어두워진 상태. 밤하늘 별과 장작만이 주변을 밝힐 뿐이었다.
멀리 풀벌레들과 밤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모닥불 타는 소리와 어울려져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모닥불을 바라보던 란돌프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