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 최초의 수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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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 용사가 전송되기 몇 달을 남겼을 때.
카티골은 지구의 고등학생을 연기하고자 여러 자료를 찾아보고 있었고, 그 자료는 대부분 만화 혹은 소설이었다.
처음에는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무표정하게 읽어내려갔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는 웃음까지 지으며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주 인간을 사랑하기라도 하겠어?”
브룩이자 케다시.
아주 뚱뚱한 인간을 연기하는 그는 카티골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의 반대 손에는 큼지막한 육적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연기하는 캐릭터에 완전히 동화되어 폭식을 즐기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잘 들어. 우린 이 종이에 그려지거나 활자로 표현된 인간들과는 근간부터 다른 존재야. 우린 태생이 몬스터였고, 신을 포식하고선 아버지 다음으로 전능한 존재가 되었지.”
“나도 알아.”
“아는 애가 이래? 너 전부터 이상했어. 멍청한 용사 새끼 두 명 죽은 게 그렇게 대수야? 아주 눈물이라도 흘릴 기세더만. 그것도 연기라고 해보지 왜?”
“그래, 그것도 연기였어.”
“연기는 무슨. 내가 널 모를까. 우린 형제야. 네가 내 성격을 알듯이 나도 너 성격을 알아.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도 알고. 너는 지금 아버지에게 불만이 있어. 짜여진 각본 속에서 놀아나는 인간들과 몬스터가 유린당하는 걸 탐탁치 않게 여기고, 특히나 마왕이라는 왕좌에 앉은 미천한 악마를 동정하고 있다고.”
케다시는 꿀꺽 육적을 입에 구겨넣었다. 고기를 꿰뚫었던 나무 꼬치조차도 씹어먹었지만 아파 보이지는 않았다.
“우리는 다른 몬스터를 밀치고, 그들의 틈을 노련하게 비집고 들어가며, 설령 힘이 강한 몬스터에게 밟히거나 얻어맞더라도 손을 뻗는 걸 멈추지 않았어. 누구보다 치열하게 아버지의 형제자매를 겨우 뜯어먹었고, 그 노력 끝에 이토록”
콰자자자작!!
케다시가 살랑 손끝을 휘두르자 에이브(AYV)가 만들어낸 새하얀 공간이 쪼개진다.
균열이 크게 생기자 공간은 깨진 유리처럼 무너져내렸고, 현실 세계가 나타났다.
그곳을 보자 케다시가 손을 휘두른 방향을 따라 땅과 바위, 하늘 위에 떠 있는 구름마저도 원통 모양으로 길을 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치 커다란 대포라도 지나간 것처럼 말이다.
“우월한 존재가 됐잖아. 인간? 내가 손 까딱하면 죽어. 몬스터라고 다를까? 악마라고 다를까? 현 사천왕도 마찬가지야. 마음먹는다면 그들을 죽이는 건 포크로 고기 덩어리를 푹 찍는 것보다도 쉬워. 초월자라는 이름에 취해 감히 아버지께 도전했던 미련한 첫 번째 용사들마저도 우리의 노리개에 불과하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인간, 몬스터, 악마 따위를 동정하거나 사랑하지 마. 그들은 미물에 불과해. 나는 네가 가지고 있는 이상한 생각을 하루라도 빨리 버렸으면 좋겠다.”
카티골은 불쾌감을 느꼈다. 본인을 꿰뚫어본다는 것에 대한 게 아니었다.
그는 인간을 사랑하지 않았다. 다른 두 종류의 생명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조금 흥미가 생긴 것 뿐인데 왜 멋대로 단정짓고 충고랍시고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지껄이는지 이해가지 않았다.
‘인간에게 동화된 건 네가 아닐까.’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대식가 드루이드 캐릭터를 연기하다보니 정말 대식가가 된 것처럼 용사 생활을 두 번이나 한 케다시 네가 인간을 사랑할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그는 어쩔 때는 진심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긴이 독이 묻은 손으로 식사를 준비한 바람에 브룩을 제외한 모두가 복통에 시달렸을 때에도, 멍 때리던 토텔리가 대차게 엎어져 진흙으로 온몸이 뒤덮였을 때에도, 메이블이 생각에 잠긴 채 걷다가 건물 간판에 대차게 머리를 박고 몇 초간 기절했을 때에도.
그는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카티골이 보기엔 그랬다.
그 웃음마저도 거짓이란 말인가?
*
새로운 용사가 전송되었고, 카티골은 여성 고등학생에 대한 공부를 마친 터라 아무렇지도 않게 용사 일행과 뜻을 함께하고 있었다.
‘나와 함께했던 용사들은 모두 죽었어. 이들도 마찬가지로 죽음을 맞이할 거야. 그리고 그것에 내가 눈 하나 깜빡할리 없지. 이들은 하등 종족이니까.’
카티골이자 진 키아라이자 최세린은.
이들에게 정을 주지 않았다. 아니, 주지 않고자 노력할 것도 없었다.
다르칸의 썰렁한 농담에 맞춰 핀잔을 줬고, 바비룬 필라이트의 저급한 말에 맞춰 인상을 구겼다. 악쿤 토든이 진지한 표정을 지을 때에는 일행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복돋았고, 현 마왕군을 섬기는 몬스터를 상대할 때에는 어느 누구보다도 냉철한 암기 용사가 되어 비수를 던져 용사를 보호해왔지만,
이 모든 건 연기였다.
그런 캐릭터일 뿐이다. 진 키아라는 일행에겐 쾌활하고 애교 넘치는 여동생이지만 적에게 있어서는 누구보다 냉철하고 등골을 서리게 만드는 암기 용사다.
그 배역에 맞춰 행동했을 뿐이다.
일행이 어떤 액션을 취하면 그에 맞춰 반응하면 된다.
의심만 피하면 된다. 의심할 여지도 남기지 않았다.
에이브(AYV)와 케다시를 제하곤 어느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았고, 그 소통 수단조차 마법 용사 악쿤 토든도 간파할 수 없는 전파를 통해 의견을 교환해왔으니 이들은 감쪽같이 진 키아라를 저들처럼 지구에서 영문 모르고 잡혀온 용사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일행의 분위기에 완전히 익숙해진 건 오래전 얘기다.
진 키아라는 용사 일행을 완전히 분석했다.
세간에서는 ‘마법 용사 악쿤 토든은 냉혈한이지만 결단력 있는 유능한 용사다...’라고 하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그는 몬스터를 죽이는 것조차에도 죄책감을 느꼈다.
그는 분명 무신론자다. 허나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 손에 죽어간 몬스터에게도 애도를 표하기 시작했다. 그가 기도한 나날들의 공통점은 아마 전투가 있었던 것 같다.
신이 있다면 이들을 부디 좋은 곳으로 이끌어달라며.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에 소리 없이 기도하곤 침낭에 드러누웠다. 그리곤 밤잠을 설치곤 했다.
결단력이 좋은 것도 아니다.
세간에서는 그가 용사 일행의 중심이라며 평가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독히도 우유부단하며 동료에게 무척이나 기대는 성격이다. 바비룬 필라이트와 의견이 충돌될 때는 많지만 그의 의견을 단 한 번도 묵살한 적 없다. 그를 넘어서 다른 의견에 귀가 팔랑거려 자기가 주장한 바도 까먹고 줏대없는 결정을 많이도 내렸던 게 악쿤 토든이다.
그에 답답함을 꽤나 느꼈던 기억이 떠오른다.
바비룬 필라이트는 가장 포악한 용사라고들 말한다.
그의 심기를 건드려선 좋은 꼴 보기 어렵다며 모두가 그를 조심스럽게 대한다. 조금만 잘못 건드렸다가 그의 앞발톱에 팔 하나가 잘려나갈 수도 있다며 자녀에게 교육하는 부모도 본 적 있다.
해명이 절실했다. 진 키아라가 바라본 주술 용사는 그런 무뢰배가 아니다.
바비룬 필라이트는 절대로 먼저 손을 휘두른 적 없다. 시비가 붙어왔을 때에만 무력을 사용했고, 그마저도 굉장히 절제했다는 걸 수년간 옆에서 바라봐온 진 키아라는 알 수 있었다.
그는 본인이 지닌 강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강한 힘에는 강한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일행에게 언제나 언급했던 것도 의외로 바비룬 필라이트다.
분명 망나니 같은 면모가 있다는 건 사실이지만 그는 한 마디로 서투른 사람이었다.
그의 감정표현에 있어서 고마움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그에 무덤덤해진 일행은 언젠가부터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모두가 목이 메였다는 걸 숨기면서 그의 말을 들었던 적이 떠오른다.
회식을 했을 때였다. 진 키아라도 지구에서의 나이로 성인이 되었기에 포도 주스가 아닌 향만 맡아도 코가 찡한 독한 술을 연거푸 마셨다.
물론 독에 절대 면역인 용사를 연기하는지라 취기가 올라오진 않았지만, 일행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모닥불 하나를 빙 둘러싸 들짐승 고기를 뜯어먹으며 회포를 풀었던 그 회식. 그날 일행에게서 의외의 면모를 굉장히 많이 봤던 게 증거였다.
바비룬은 상념에 잠긴 표정으로 자신은 부모 없이 자랐다 말했다. 고등학교도 나오지 못했다며 자신을 버린 부모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다음날 다르칸이 진 키아라의 어깨를 두드리며 바비룬은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사람이니 그의 언행을 일반적인 기준에서 바라보지 말고 너그러운 눈길로 바라봐달라고 따로 말했었다.
진 키아라에게 있어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지만, 어쨌거나 불우한 과거를 보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러니 그가 포악하다는 세간에서의 평가는 수정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건드리지 않으면 입만 빼고 얌전한 사람인데 뭘 그리 뒤에서 흉을 보는지들 하등 이해가 불가했다. 진 키아라의 눈에는 그저 까칠한 인간 A일 뿐인데. 더군다나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가여운 희생양인데.
다르칸과는 가장 접점이 없었다. 그는 진 키아라를 굉장히 어려워했고, 무언가 책임감을 느낀 건지는 몰라도 이따금씩 나름 그럴듯한 말은 해주었지만 포장지에 비해 실속은 없는 느낌이었다.
그럴법도 하다곤 생각했다. 실제 나이를 계산하면 다르칸의 수십 배의 나이를 먹고도 충분했기에.
다르칸은 본인보다 10살은 더 어린 고등학생을 생각했을 테니 잘난 척 했던 거겠지만 당연히 심금을 울리는 말도 없었고, 하등종족이니 귀담아들을 필요도 없었다.
그래도 지켜본 결과, 그는 누구보다도 정이 깊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몬스터를 혐오하는 건 아버지가 명령하여 전송된 때부터 그러한 사상을 주입시켰으니 별 방도가 없었지만, 그 사상이 없었더라면.
몬스터 하나는 무슨, 들짐승 하나 잡는 것조차도 수년은 걸렸을 사람이다. 그는 굉장히 소심하고 마음이 여렸으니까.
그는 누구의 흉을 본 적이 없었다. 화를 낸 적도 없었다.
언제나 일행의 맏형으로서 정신적 지주가 되기만을 원했던 게 그의 유일한 욕심이었다.
아니, 되짚어보니 그 말고도 하나가 더 있었다. 그는 언제나 전장의 최전방을 고집했다.
그곳에서 오러를 터트리며 귀신처럼 검을 휘둘러 용사 중 가장 많은 몬스터의 숨통을 끊었다.
그에 잔혹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진 키아라는 일방적 관찰 끝에 그의 생각을 얼추 예상해볼 수 있었다.
혹여나 사랑하는 동생들이 다칠까 본인이 앞장섰다는 게 가장 다르칸다웠다.
절대로 몬스터가 증오스러워서 따위의 이유가 아니다. 그는 몬스터를 싫어했지만, 죽이는 걸 좋아하진 않았다.
천성이 순한 사람이다.
이러한 평가들이 진 키아라가 가진 생각이었다.
*
마왕을 죽이고 5세대 용사 이야기는 막을 내렸다.
휴식기가 찾아왔다. 그 휴식기가 끝나는 시기는 두 경우 중 하나다.
용사 중 누군가가 전대 용사에게 의문을 품어 이 세계에 의문을 품거나.
지독한 전쟁이 펼쳐져 마왕군은 필요악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거나.
4세대 용사 메이블 토진의 경우에는 전자였다.
그는 실렉티스와 에이브(AYV)가 누구인지 알아내고자 안간힘을 썼고, 1세대 용사 줄을 찾아냈으나 마땅한 해답을 찾지는 못 했는지 다른 곳을 들쑤시고 다니다가 결국 마왕군을 재건축하여야 실렉티스를 찾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단탈리온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마왕군은 세워졌다.
이들의 목표는 세계 지배라고 한다.
‘애석한 거짓말이야.’
대외적인 목표가 아닌, 감춰진 마왕군의 진짜 목표는 단계별로 두 개였다.
첫 번째 목표는 실렉티스와 에이브(AYV) 추적.
그를 성공하자 강제로 세워진 두 번째 목표는 신살 혹은 생존이었다.
5세대 용사가 이들을 죽일만큼 성장하기 전,어떻게든 에이브(AYV)를 하늘에서 끌어내려 살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
그 몸부림은 힘을 다했고, 4세대 용사는 모두 죽었다.
진 키아라는 생각했다.
‘이번 용사들도 모두 죽을 테지. 3세대 용사도 모두 죽었으니.’
이번만큼은 달라질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불가능하다.’는 부정적인 대답.
아버지가 용사에게 죽을 일은 없다. 이 세계가 끝나는 순간까지 아버지를 시해할 자는 절대로 나올 수 없다.
애초에 격이 다른 존재다. 그러니 더 입맛만 더러워질 뿐이었다.
쿵쿵
그때였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택배입니다. 착불이라 서명하셔야 돼요.”
순간 진 키아라는 모든 행동을 멈췄다.
다가오는 것은 분명히 기척으로 알고 있었으나 목소리를 듣자 어째서인지 말문이 턱 막혔다.
“...세린아? 안에 없나? 분명히 이 오두막 맞을 텐데......”
마법 용사 악쿤 토든의 목소리.
마왕군을 무너트린 후 3년만의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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