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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정의는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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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단탈리온.
그녀는 세계 지배의 야욕을 내비췄다.
그에 맞서는 우리는 용사들이었다.
마법, 검술, 주술, 암기(??)의 용사.
그 중 나는 마법 용사였다...만,
사실 우리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과제에 치이고 있던 컴퓨터공학과 대학생, 야근에 시달리던 직장인,막 퇴근하던 편의점 알바, 학원에서 복귀하던 여고생.
지구인이자 한국인이라는 것만 빼고는 아무런 접점이라고는 없는 네 명이 원형 마법진 안에 옹기종기 모인 채 이 세계에 대뜸 떨어졌다.
그리곤 국왕에게 마왕 단탈리온으로부터 세상을 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에 당연히 거절했지만, 국왕을 비롯해 그의 신하들은 끈질겼다.
그렇게 용사 인턴 생활이 시작됐다. 강요된 생활이었기에당연히 의욕은 없었다.
일행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국왕이란 놈을 어떻게 구슬리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것뿐이었다.
‘꾸에엑!’
작디작은 고블린 무리가 저마다 몽둥이를 들고 우리 앞에 씩씩거렸을 때도 우린 아무런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다.
초등학생 혼내주듯 때려주면 꼬리 말고 도망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었다.
“......”
그 안일한 생각이 고쳐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왕군의 고블린이 인간에게 하는 짓은 어린애들 장난으로 취급할 것이 결단코 아니었다.
놈들은 눈앞에서 인간을 강간하거나 뜯어먹었다.
마을에 불을 지르고 어린아이를 고깃덩이로 만들었다. 사방에 피가 튀긴다. 어린아이의 눈알이 또르르 굴러와 내 신발에 부딪혔다.
오징어 탄내가 진동한다. 머리칼을 비롯해 온몸이 새빨간 화염에 휩싸여 검은 연기를 내뿜는다.
겨우 도망친들 고블린에게 포위되어 피떡이 되도록 얻어터진다. 기사단이 애써 막아봤지만 고블린은 끝없이 튀어나왔다.
그제야 우리는 상황을 직면했다.
마왕의 포부. 이 세계 자체를 다 부숴버리겠다는 건 농담이 아니었다.
인간들은 마왕군 앞에서 너무나도 무력했다. 그 때문에 국왕은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심각성을 깨달은 후에야 일행의 본격적인 용사 생활이 시작됐다.
우리 용사의 성장세는 다른 이와 비교할 바가 못 됐다.
이건 우리 용사들만의 특전이었다. 평범한 인간들은 피땀 나는 노력 끝에 마왕군을 죽여봤자 별로 얻어가는 게 없었다.
다른 방법으로 전력을 키우는 강한 인간은 있었지만, 우리만이 타고난 마왕군의 천적이었다.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건 용사 뿐이다. 우리는 선택받은 자들이었다.
‘마왕군을 죽여라!’
‘용사님들을 도와라! 마왕군을 해치울수록 용사님들은 강해지신다!’
여러 인간들에게 도움을 받은 덕에 마왕군은 우리의 양분이 되었고, 차차 마왕 토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전에 4개의 관문이 있었다. 그들은 사천왕이라 불린다.
흑마장(???) 메이블 토진.
귀검사(???) 토텔리 프리온.
광포(??)의 드루이드 브룩.
암전(??)의 단검 긴.
암전의 속공은 우리 여고생 암기 용사의 숨통을 쉴 새 없이 조여왔다.
마지막 숨겨둔 한 수가 없었더라면 그녀는 싸늘한 주검이 되었으리라.
광포의 주술은 우리 편의점 알바생 주술 용사의 주술을 훨씬 웃돌았다.
드루이드의 대표적인 전투방식은 동물 자체로 형상 변환을 하는 방법인데, 편의점이 하룻강아지라면 광포는 늠름한 맹호였다.
귀검사의 다크 오러는 우리 직장인 검술 용사의 오러보다 몇 곱절 강력했다.
그것뿐일까? 검술 실력만으로도 귀검사가 아득하게 우위에 있었다.
이미 전대륙의 검술을 터득했던 직장인이 귀검사의 앞에서 갓난아기마냥 가지고 놀아지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마지막 흑마장. 놈은 그야말로 마법의 천재였다. 마법 용사인 나보다 훨씬 말이다.
내 마법을 예상하곤 마법진 자체를 역산하여 무로 돌려버린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마법진은 하나둘 완성하여 내게 노도 같은 공격을 쏟아냈다.
마법의 위력 자체도 하늘과 땅 차이였다. 내 마력은 사천왕 토벌 당시 5,000 수치를 막 넘겼었으니까 예상컨대, 놈은 20,000도 가뿐히 넘겼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천왕을 모두 물리쳤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 사천왕들이 모두 자만심과 오만함으로 가득 뭉쳐서 1 대 4를 원했었던 덕이다.
확신한다. 이들이 방심하지 않았더라면 승리는 물 건너갔을 것이다.
멍청하게도 마지막까지 방심해줬기에 우리는 그들을 각개격파했고, 마침내 승리할 수 있었다.
동료들과 함께 마지막 사천왕 흑마장 메이블 토진을 해치우고 마왕을 알현하기 전, 그가 온몸이 피칠갑이 된 채 내 바짓가랑이를 잡은 건 그때였다.
‘...마왕만은 살려줘. 그대들이 여태껏 보아왔던 재앙은 모조리 내가 계획했으니 마왕은 아무 잘못이 없다. 다른 마왕군은 마음대로 해도 좋으니 제발 마왕만에게만은 자비를 베풀어줘. 부탁이다... 제발, 제발 마왕만은...’
‘...개소리, 우리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해한다. 그대들 생각은 누구보다 이해하지만, 제발 내 마지막 부탁을 들ㅇ’
서걱
내 손에서 마법진이 회전했고, 흑마장 메이블 토진의 목은 날아갔다.
이제야 이 길었던 모험의 종착지, 마왕 단탈리온을 죽이고 이 세계의 영웅이 되는 순간을 고대하며 거대한 문을 열었다.
‘...당신들이군요. 4인의 용사.’
금색 단발의 미녀. 그녀의 손바닥에는 징그러운 여러 개의 사람 얼굴이 흐느끼고 있었다.
저 여성이 현세대의 마왕. 마왕군을 부리며 인간들을 학살했던 절대 악(?) 단탈리온이다.
‘제발 마왕만은...’
메이블 토진의 유언이 조금은 신경 쓰였지만 글쎄.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꼬마가 떠오른다. 마왕군이 없었더라면 아들은 살아있을 거라고 내 옷자락을 잡으며 피눈물을 흘리던 아주머니가 떠오른다.
집이 불타 길거리에서 구걸로 연명하던 노부부가 떠오른다. 몬스터에게 온몸이 찢겨 죽던 기사단이 떠오른다.
너무 지독한 걸 봐왔고, 이 모든 건 이 여성을 죽이기 위한 투기에 불을 지폈다.
이제 이 여자만 죽이면 ONE(?)에는 평화가 드리운다. 물러날 수 없었다.
‘이제 끝입니다 마왕.’
‘시발! 드디어 끝이구나!!’
‘너무 힘들었지만... 드디어 끝났어요...’
마왕의 목에 금빛 오러를 가득 두른 장검, 화염이 이글거리는 발톱, 독이 뚝뚝 떨어지는 단검, 냉기가 시퍼렇게 드리우는 마법진.
4명의 용사 각각의 흉기가 다가갔다.
그러나,
이미 포기한 걸까? 단탈리온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우리는 그녀의 무표정을 일관하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그대들의 앞에 평화가 오기를...’
‘...저주 치고는 이상한데? 인간의 평화를 해친 건 당신이야. 그런 주제에 평화를 운운하다니 정신이 나갔군. 우리는 차근차근 당신의 소중한 부하들을 모조리 죽이면서 성장했고, 마침내 그 강력한 사천왕마저도 찢어죽였다. 그런 우리의 평화를 바란다고?’
‘...네. 부디 지금까지와는 달라지길 소망해요. 부디... 부디...’
혼란이 가중된다.
ONE(?)에서 처음 마주한 단탈리온은 우리가 생각해오던 마왕상과는 거리가 아득했다.
‘이게 뭔 개소리야? 나만 이해 안 돼?’
‘걱정 마세요. 머지않아 이해하실 겁니다...’
‘단체로 약이라도 했나? 방금 메이블도 너만은 꼭 살려달라고 그렇게 빌던데.’
‘...흑. 흐으윽... 메이블, 메이블...! 어째서, 날 지켜주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당신이 어째서...!’
말실수를 한 걸까, 마왕은 수도꼭지라도 돌린 듯 눈물을 펑펑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래서야 우리가 악당이 된 기분이다.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뜻 같지는 않은데.
‘메이블, 토텔리! 브룩! 긴! 어째서? 어째서어?! 나를 이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꼭 구해준다고 큰소리 떵떵 치던 당신들이 어째서 이렇게 먼저 가버리셨나요?!’
‘...눈 뜨고 못 봐주겠네.’
석
검을 다루는 직장인이 그녀의 숨통을 끊었다.
엄청난 악명을 떨쳤던 마왕이었지만, 그녀의 죽음은 단출했다.
목에서 피가 솟아오르더니, 그대로 퉁 바닥에 엎어졌다.
그게 끝이었다. 사천왕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간단히 그녀는 죽어줬다.
느껴지는 마나의 기척? 없다. 어디론가 도망쳤을 가능성? 그 또한 없다.
‘어째 마무리가 너무 허무한데.’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편의점 드루이드의 말마따나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ONE(?)은 우리 4명의 용사에게 구원받았다. 경사 났네 경사 났어.
*
Q. 용사는 마왕을 토벌하면 어떻게 되나요?
A.마왕을 물리쳤다고 평화의 상징이 되지는 않더라고요. 되려 마음먹는다면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존재가 된다라나 뭐라나...
Q. 그럼 순순히 죽어주나요? 혹은 전쟁을 일으키나요?
A. 더러워서 피했습니다.
Q. 평생 망명 신세로 지내나요?
A. 아니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Q. 그 사업이라 함은?
A. 한마디로 일축하면 '필요악'입니다.
마왕군을 무너트린 것, 벌써 4년이나 된 일이다.
그 생각에 잠기자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심드렁하게 말하자 부하 중 하나가 방문을 벌컥 열고 침까지 튀기며 입을 열었다.
“절대빙결(??) 악쿤 토든 참모장님! 드디어 새로운 용사 일행이 전송됐답니다!”
“미치겠네, 그 이명은 들어도 들어도 마음에 들지가 않아. 메이블도 나랑 같은 마음이였으려나.”
“예? 너무 멋지신데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참모장님의 이명은 그야말로 찰떡입니다! 마법 속성도 빙결에 특화되어있지만, 무엇보다 냉철하게 상황을 판별하시고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은 채 딱 결정하는 잘 벼려진 명도와도 같은 결단력이”
“고블린 1호, 그만 좀 해 제발... 부끄러워 미칠 것 같아......”
“헤헤... 제 생각을 말했을 뿐입니다.”
베시시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이는 고블린 1호, 녀석을 보며 짙은 한숨을 뱉었다.
“...하아, 10분 후에 다른 사천왕 놈들 모두 회의실로 집합하라고 해. 각 몬스터별 두목도 말이야.”
“본부대로!”
고블린 1호가 나가자 나는 다시 옛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새로운 직업이란 내 용사 커리어를 모두 깨부수는 것이었다.
나는 신 마왕군의 참모장이 되어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