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당 가문의 새아가 (264)화 (264/282)

<264화>

그사이 아스트리야는 발칵 뒤집혀 있었다. 탐사를 마친 요하네스 대공을 비롯해,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위치가 파악된 어둠의 심장은 전부 아홉 개에 달했다.

실로 끔찍한 일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아스트리야와 벨슈타인, 아니 어쩌면 제국 전체가 위험해질 가능성도 있었다.

“……이럴 수가.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땅이자, 성역에 이런 짓을…….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짓입니다.”

요하네스의 안내를 받아, 어둠의 심장을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한 안드레아는 큰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저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신전의 일은 비단 제국의 일이 아니지요. 천공 기사단에 정식으로 협조를 요청해 주시면……!”

요하네스의 말에 안드레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국의 군사가 움직이는 것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 놓아야 합니다, 레이놀드 황자와 그가 결탁했을지 모르는 이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을 텐데요.”

그러자 안드레아 추기경의 뒤에 굳은 얼굴로 서 있던 성기사 하인델이 캐서린에게 물었다.

“아직 공자비님은 연락이 안 되는 거요?”

“……예. 몇 번 해 보았지만 아직이에요. 사실 한밤중이니 주무실 시간이니까요.”

아르제온이 찾아낸 어둠의 심장 위치를 전달해 주고 캐서린도 아스트리야에 와 있는 상태였다.

루시엘의 연락을 조금 더 기다려 보고 내일 아침까지 오지 않는다면, 캐서린도 이 일을 벨슈타인과 자신의 마스터인 랜버트 후작에게도 알릴 생각이었다.

“1차적으로 이것은 신전 내부에서 벌어진 문제입니다. 제가 믿을 수 있는 고위 신관들만 따로 불러서 은밀하게 대책을 마련해 보겠습니다. 여러분께 레트라논의 은총이 닿을 것입니다.”

안드레아의 호박색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그리고 하인델에게 오라클의 신관들 일부에게 전서구를 보내 달라고 명했다.

오라클은 고위직 신관을 총칭하는 말로써, 서른 명이 넘는 오라클의 신관 중 믿을 만한 자들은 다섯 손가락에 꼽혔다.

이내 흰 비둘기들이 시간 차를 두고 다섯 명의 신관들이 기거하는 방 창문으로 날아갔다. 그로부터 오래지 않아 오라클의 원탁실로 신관들이 한 명씩 모이기 시작했다.

한편 밤하늘을 멍하니 보던 하급 신관 아멜리는 흰 비둘기를 발견하고 반가움에 눈을 빛냈다.

“……흰 비둘기야!”

그녀의 머릿속에 황자가 속삭이던 말이 떠올랐다.

‘……여기서 잘 보고 있다가 흰 비둘기가 오라클의 누구에게 날아가는지, 내게 알려 주거라. 그럼 우리는 그날 만날 수 있는 거야.’

이제 얼마 후, 신전 맞이가 지나면, 그는 영영 아스트리야를 떠나게 되었다.

“그 전에 황자님께 도움을 드리면, 나도 데려가 주실 거야!”

어느새 아멜리의 두 눈에는 탐욕이 차올랐다. 그녀는 레이놀드의 방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흰 비둘기를 봤어요, 황자님!”

레이놀드의 자안이 오묘하게 빛나면서 아멜리를 안으로 들여,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듣자마자 레이놀드는 밖으로 뛰쳐나가, 회의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흰 비둘기는 평범한 전서구였지만, 추기경이나 고위급 신관들은 평소 보통 더 빠르고 영리한 매와 같은 새를 쓰곤 했다.

그러나 추기경이 은밀한 일이 있을 때는 평범한 흰 비둘기를 택한다고 측근인 고위 신관에게 들은 바 있었다.

바로 저 안에 있을 고위 신관 카인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불이 켜진 회의실을 보며 레이놀드가 속으로 되뇌었다.

‘……어쩐지 요즘 추기경의 휘하 움직임이 수상하다 했는데. 날 감시하기 위함이었나?’

최근 그가 지내고 있는 건물에 유독 경비를 서는 성기사가 평소보다 많아졌다.

게다가 얼마 전 안드레아 추기경은 식당과 예배홀에서 마주쳤을 때 자신을 피하는 것 같았다. 어쩌다 함께 말을 섞게 될 때면 경계의 눈빛이 서려 있었다.

* * *

잠에서 깨어난 루시엘은 시계부터 보았다.

시계는 새벽 여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자기 전엔 밤이었으니, 아홉 시간도 넘게 잔 모양이었다. 지팡이의 성에서 보낸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은 것 같았는데.

“이렇게 많이 잤을 줄이야.”

하기야 요즘 내내 쉬지 못했던 건 사실이었다. 그녀의 피곤한 몸은 회복이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루시엘은 침대에서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서는 얼른 협탁으로 손을 뻗었다.

연락이 잔뜩 쌓여 있는 통신구를 보고 있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윽고 다시 한번 통신구의 빛이 반짝 빛났다. 루시엘이 얼른 받아 들었다.

상대는 캐서린이었다.

“……캐서린, 무슨 일이에요? 밤새 통신이 너무 많이 쌓여 있어서 다 보지 못했어요. 하룻밤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루시엘은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연신 쓸어넘기며, 걱정과 불안으로 흐려진 얼굴로 말했다.

―아가 마님, 밤새 일이 좀 많았답니다. 어둠의 심장이 아홉 개나 발견되었고 고위직 신관들과 함께 아스트리야를 정화하기 위해서 힘쓰고 계세요.

“……아, 이런. 고위직 신관들에게 이미 알리신 건가요?”

루시엘이 입술을 짓씹었다.

―예, 신전 내부에서 해결할 문제라고 하셔서, 요하네스 대공자님이나 벨슈타인의 도움 없이 먼저 해결하려고 하셨어요. 아가 마님과 오늘 아침까지도 연락이 안 되면, 벨슈타인에도 알리려 했는데…….

캐서린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루시엘은 자꾸만 드는 위화감을 억누르면서 말했다.

“레이놀드는 권모술수에 능한 인간이에요. 어쩌면 그에게 정보가 넘어갔을지도 모르겠어요. 만약 그렇다면…… 추기경님이 위험할지도 몰라요.”

루시엘의 조심스러운 추측에 캐서린이 말했다.

―제게 호위를 붙여 주시면, 가서 추기경님의 안전을 살펴보고 돌아오겠어요.

“그럼 저도 같이 갈래요!”

“그건 안 되겠는데. 루시엘.”

들려온 목소리는 키제프의 것이었다. 고개를 들자 그가 침실 문간에 기대 있었다.

“……엇, 캐서린. 잠시만요. 이따 다시 이야기해요.”

통신구를 닫은 루시엘이 키제프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그가 다가와 옆에 걸터앉았다.

“황자가 뭔갈 눈치챘다면, 지금 네가 아스트리야에 가는 건 너무 위험해.”

“하지만 어둠의 심장을 파괴해야 하는데…….”

루시엘이 입술을 꼭 깨물면서 중얼거렸다.

“캐서린과 호위 기사들이 그곳 상황을 파악한 다음, 네가 움직여도 늦지 않아.”

“……응. 네 말대로 우선 그렇게 할게. 그렇지만 걱정이 되는걸.”

“아무리 레이놀드가 악한 놈이래도, 현재 아스트리야의 실질적 1인자를 쉽게 해치진 못할 거야. 정 걱정되면 내가 가 볼게.”

키제프가 가만 그녀의 어깨를 도닥이자, 루시엘은 번지던 불안이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응, 그러면 고맙지만 우선은 캐서린과 호위 기사를 보낼게. 그리고 아르제온에게도.”

“그나저나 지팡이 안에서 원하는 건 찾았어?”

키제프의 물음에 루시엘은 손을 들어, 지팡이에서 얻은 사슬 반지를 보여 주었다.

“……바로 이거야. 번개의 힘이 담긴 사슬인데, 아직 써 보지는 못했어. 무슨 힘을 가졌을까 궁금해.”

“내 눈엔 그냥 예쁜 반지로만 보이는데.”

키제프의 말에 루시엘도 반지의 힘을 한번 사용해 보고 싶었다.

얻어 낸 다음 바로 돌아와서, 제대로 살필 겨를이 없었으니까.

기대감에 이채가 돌던 진홍빛 눈망울을 굴리고 있는데, 키제프가 먼저 제안했다.

“루시엘, 그걸 나한테 한번 써 봐. 어떻게 되나.”

“……널 다치게 하고 싶진 않은데.”

“괜찮으니 어서.”

“좋아.”

결국 두 사람은 마법 수련장으로 이동했다. 그가 대치하듯이 간격을 벌린 채 자리를 잡자 루시엘은 키제프를 향해 반지에 겨냥하고 마나를 연결했다.

파아아.

촤악!

그러자 손가락에 감겨 있던 사슬이 풀려, 금빛으로 길게 늘어졌다. 기다란 속박의 사슬이 된 그것은 곧이어 키제프의 몸에 달라붙더니 뱀처럼 칭칭 감겼다.

더 강력하게 조일 수도 있었지만, 루시엘은 최대한 약하게 사슬을 조종했다.

“키제프가 안 다치게 우선 이 정도로만 할까.”

“……윽. 제법 세긴 하지만. 이게 전부라고?”

“좋아. 그럼 조금 더 강하게 해 볼게.”

그 순간 루시엘이 사슬을 더 조이자, 키제프가 더욱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벽까지 질질 끌려갔다.

이내 페어리 문이 금색의 갈고리가 되어, 그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헉, 키제프…… 잘 피해 봐!”

키제프가 얼른 머리를 숙여, 피했다.

“윽!”

“미안! 이거 너무 빨라서 아직 숙련을 더 해야겠어.”

그녀가 적당히 조절해 보려 노력은 했지만, 천천히가 안 되었다.

날아가는 페어리 문은 어느새 칼날처럼 날카롭게 변형이 되어 있었다.

쿠웅!

쩌저저적!

키제프 대신 부딪힌 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저기, 루시엘? 방금 남편 머리 날릴 뻔했……!”

식겁한 키제프가 중얼거린 것도 잠시, 루시엘은 근처에 생성된 번개를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이건 뭘까?’

그러자 벽에 꽂혀 있던 페어리 문에서 섬광탄이라도 터진 듯 화려하게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펑! 펑!

화아아악, 번쩍!

‘이건 번개의 힘이구나…….’

키제프는 눈앞이 핑 돌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뭣보다 속박당한 채로 사슬을 통해 번개가 찌릿찌릿 전해졌다.

“너 방금 번개 맞은 것 같은데 괜찮아?”

“…….”

키제프가 걱정된 루시엘이 물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몸의 감각이 둔화하는 듯한 느낌에,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던 그가 실드를 구동했다. 간신히 입을 연 키제프가 말했다.

“이 정도면 힘은 충분히 확인한 것 같아.”

그제야 루시엘이 사슬을 풀어 주면서 다가와 그를 살폈다.

“……안 다쳤어?”

“응. 전투에 쓰기엔 좋아 보이네. 감전과 마비시키는 힘도 있고, 아까 그 빛 공격으로 차단하면 적을 상대할 시간을 벌기에 좋겠어.”

“그러게. 내 지팡이에도 번개 속성은 없었는데. 도움이 될 거 같아. 방어구만 갖추면 마법을 쓸 수 없는 급박한 때도 유용할 것 같고.”

루시엘이 만족한 듯 미소 지었다.

그러자 말을 마치기 무섭게 그녀의 주변을 빙빙 돌던 금빛 사슬이 이번에는 갑옷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페어리 문은 스슥, 방패로도 변했다.

“이번엔 갑옷과 방패로 변했어. 뭐지?”

“……? 아니, 이런 말도 안 되는 게 존재한단 말이야?”

키제프도 놀라서 힘을 채 다물지 못했다. 거기다가 루시엘은 현재 여러 강한 마법을 구사할 수도 있고, 권속까지 있어서 제법 강해졌다.

“그러게 말이야…….”

열세 번째 보석이 이렇게나 강하고 다양한 힘을 가졌는지 상상도 못 했다.

이 정도면 누굴 마주쳐도 안전하지 않을까?

루시엘이 살짝 그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키제프, 나 이 정도면 아스트리야에 가도 되지 않을까? 어둠의 심장을 파괴하든, 정화하든 어쨌든 돕고 싶어.”

루시엘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자, 키제프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대신에 그 모습으로 가지 마. 황자가 널 보면 곤란해.”

“응, 그럴 거야. 블랙 다이아몬드를 이용해서 다른 모습으로.”

“그래. 나도 같이 갈게.”

“키제프는 다른 할 일이 많잖아. 얼른 다녀올게, 걱정하지 마. 아! 거기 다녀와 줘. 하멜 씨의 장인 길드. 유리관 스케치는 전달하긴 했지만, 아직 감을 못 잡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사실 하멜은 그 유리관의 정확한 용도를 모를 테니, 그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장인 길드의 제자들과 함께 열심히 제작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신전 맞이까지는 이제 고작 4일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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