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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가문의 새아가 (248)화 (248/282)

<248화>

루시엘은 클로디아의 손을 잡고, 모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과거 자신의 보석을 착취한 레이놀드가 벨슈타인을 무너뜨리고, 황제를 노렸다는 것도.

제 아들을 위해서 마검 블루 익스큐션을 손에 넣고 카일라 황비가 악령으로 돌아온 이야기까지도.

짧은 시간 내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들이었기에 클로디아 황녀는 긴 침음을 삼켰다.

바르르 온몸을 떨면서 루시엘의 이야기를 내내 듣고 있던 클로디아는 연신 탄식을 터트렸다.

충격에 쉬이 말문을 열지 못하던 클로디아를 루시엘이 꼭 안아 주었다.

“도저히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었네요, 루시엘.”

고개를 가로젓던 클로디아가 제 드레스 자락을 움켜쥐었다. 루시엘의 투명한 보석안이 여느 때보다 다양한 빛으로 물들었다.

그만큼 많은 걸 품은 눈빛으로 루시엘이 말을 이었다.

“그 끔찍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벨슈타인이 노력해 온 거예요. 지금도 달라지고 있고요. 이제 클로디아 황녀님께서 차후 황위를 이으시게 된다면 저는 더 바랄 것이 없어요.”

나아가 더 먼 미래를 내다보는 듯한 루시엘의 시선에 클로디아도 고개를 주억였다.

“사악한 사탄에게 제국을 맡길 수야 없지요. 루시엘, 그간 얼마나 힘들었나요?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 주고 싶은데.”

클로디아의 말에 루시엘이 기다렸다는 듯 싱그레 웃었다. 그녀가 해 줄 일은 아주 많았다.

“이번 일부터 도와주시면 좋겠어요. 레이놀드와 카일라 황비는 과거에 독을 탄 와인을 황제 폐하께 드렸을 거예요.”

“하…… 하기야 악마 같은 놈에겐 부모도 없겠지요.”

클로디아의 보랏빛 눈이 일그러지며 실소를 터트렸다.

“……어쩌면 황후 폐하와 황녀님께도 그런 짓을 했을지도 모르고요. 그 증거가 혹시 있는지 황성의 와인 창고를 면밀하게 조사해 주세요.”

“알겠어요.”

더한 짓을 하고도 남았을 위인이었다. 그들에게는 자신 또한 방해물일 테니. 과거 정략결혼을 제안한 것도 애초에 그런 이유였을 테니까.

“네, 발루크 상단도 카일라 황비에게 잠식당했으니 그 와인 재배지와 그곳에서 일하던 일꾼들도 전부 그 증거가 되어 줄 거예요.”

“아, 그래서 황자궁 개조 사업을 제안한 거였군요.”

그제야 루시엘의 의도를 파악한 클로디아가 말했다.

“네, 거기에 증거를 옮겨 놓으려고요. 그리고 한 가지 청이 더 있어요. 블루 익스큐션은 본래 황성의 보물인 마검 중 하나일 거예요. 검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 있다면 부탁드려요.”

류프델이나 정보 조직을 통해 얻은 것보다 황실 내부에 더 자세한 정보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때 클로디아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말했다

“황족들만이 드나들 수 있는 내부 장서관이 있어요. 그곳을 뒤져 보면 보물에 대한 서적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정말요?”

“하지만 책을 빌려 올 수는 없어요.”

‘그 책을 직접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방법이 없을까.’

살짝 눈을 빛낸 루시엘은 잠시 접어 두고, 클로디아에게 말했다.

“황녀님께 이야기를 털어놓으니 후련하고도 든든하네요. 오늘 제가 해 드린 모든 이야기는 비밀로 해 주세요.”

클로디아에게도 모든 걸 고백하니 루시엘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클로디아 역시 그랬다. 그동안 루시엘이 혼자서 많은 것을 끌어안고 있었지만 이제는 레이놀드를 물리치고 함께 도모해야 할 미래도 그려졌다.

“내 명예를 걸고 비밀은 지킬 것이에요, 루시엘. 이제 가 볼까요.”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면서 고개를 주억인 후, 걸음을 옮겼다.

* * *

“벨슈타인 공작께서 친히 방문해 사업 제안을 주시니 무척 기대가 큽니다.”

황제가 공작이 혹여 물어다 줄 돈줄을 기대하며 말했다.

“이번 일은 여기 있는 소공작 부부 내외가 같이 진행하게 될 겁니다.”

“아…… 그렇소? 어디 한번 소공작에게 이야기를 들어 보지.”

공작은 그 속내가 빤히 보이는 듯해, 가벼운 미소를 걸친 후 한 걸음 뒤로 빠졌다.

키제프가 황후에게 공개용 마법 문서를 펼쳐 보여 주었다.

그러곤 설명을 하기 위해 목을 가다듬었다.

“폐하, 기회를 주셔서 기쁩니다. 저희는 황성 내에 유리온실 건축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유리온실이라. 이미 정원은 많이 있을 텐데……. 게다가 마땅한 자리가 있는지도 봐야 하겠소.”

노이슈반 황제가 턱을 문지르며 말하자 클로디아가 슬쩍 끼어들었다.

“폐하. 레이놀드 황자가 과거 이용하던 궁을 허물어 그 터와 사냥터가 비어 있습니다. 그 자리가 적합한 줄로 압니다.”

“아, 그래. 그 자리가 있구나.”

도움을 준 클로디아에게 루시엘이 고맙다는 눈빛을 보냈다.

황제가 납득하자 키제프가 말을 이어 갔다.

“황성의 수려한 경관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사계절 내내 연회와 다과회 등 다목적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겁니다.”

이내 키제프가 마법 문서를 톡 두드려, 건축 설계도와 전경을 예측한 조감도를 나타나게 만들었다.

유리온실을 가득 채운 꽃들과 수로는 보기만 해도 감탄이 나오는 아름다운 디자인이었고, 천장에는 스테인드글라스로 되어 있었다.

“본 건축 설계도는 건축가 갈리우스 백작이 제가 그린 조감도를 바탕으로 완성해 주었습니다. 실제 건축 작업도 그의 감독하에 이루어질 겁니다.”

그걸 보던 이사벨 황후의 눈이 반짝였다. 황후는 소공작이 된 그를 존중하기 위해 존칭을 쓰며 말했다.

“소공작께선 아주 믿음직하게 성장하시었어요. 유리 온실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너무 아름답군요. 저 온실의 천장 부분은 문학 살롱에서도 보았던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닌가요?”

황후가 반갑다는 듯 말했다. 문학 살롱 이야기가 나오자 루시엘도 기억해 주는 그녀가 고마워 옅은 미소를 입가에 담으며 답했다.

“기억해 주시니 기뻐요. 황후 폐하.”

“그래, 나도 그때 문학 살롱 이후로 황성의 곳곳에 유리공예 장식품을 두었는데. 반가운 이들이 모두 와서 기분이 좋습니다.”

황후는 루시엘에 이어, 뒤따라왔던 하멜도 눈겨여보았다. 하멜은 황후의 말에 감격한 듯 깊이 인사를 올렸다.

“기, 기억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황후 폐하.”

“그런데 다목적 유리 온실이라니…… 도대체 누구의 의견인가요?”

황후의 물음에 루시엘이 조용히 자리에서 한걸음 나와, 예를 갖춰 대답했다.

“제 의견입니다. 황후 폐하.”

루시엘을 보며, 이사벨 황후는 온유한 미소를 지었다.

“과연 공자비구나. 어쩜 이리도 내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본 것처럼 아름다운 아이디어를 내었을까?”

“이렇게 기뻐하시니 오히려 제가 황공합니다.”

루시엘은 알현을 하기 전에 응접실에서 공작과 나눈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번 유리 온실 제안 건은 반응이 좋으면, 황후 폐하의 탄신일 선물로 드리는 것이 어떨까요? 언젠가는 드리고 싶은 선물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얻는 것은? 벨슈타인의 유리공예 부흥 말고.’

‘대외적으로는 황후 폐하의 전폭적인 지지요. 그리고, 클로디아 황녀님께 들었는데, 황성 장서관에 헨드릭 황실의 보물에 관련된 서적이 있다고 해요. 황후 폐하의 도움을 얻어 그걸 열람하면, 블루 익스큐션의 또 다른 비밀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로군. 알았다. 유리온실 건축 비용쯤은 벨슈타인에는 무리도 아니니까.’

‘허락해 주셔서 감사해요, 아빠.’

루시엘은 조금 전 공작과 키제프와 논의했던 내용을 입에 담았다.

“황후 폐하의 탄신일은 아직 멀었지만, 유리온실을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에…… 그토록 커다란 탄신 선물이 어디 있더냐. 이 고마움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이사벨 황후는 자못 놀라기도 하고, 옆에 있는 남편인 황제보다도 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듯해서 몹시 감격스러웠다.

루시엘은 그를 놓치지 않고 황후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황후 폐하께서 유리온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고 누리신다면 더할 나위 없을 거예요.”

“고맙구나, 루시엘. 아니지, 벨슈타인께 깊이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장차 나도 무슨 일이든 도울 일이 있다면 알려 주시지요.”

황후가 인사하며 환히 웃었다. 클로디아 황녀가 보기에도 황후의 화사한 미소는 근 몇 년 만에 보는 것 같았다.

그에 루시엘이 슬쩍 공작의 눈치를 보면서 황성의 장서관 방문을 요청하려고 할 때였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요. 나 역시 황후와 황궁을 위한 귀하고 값진 선물에 보답하고 싶은데.”

황제 노이슈반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곤 황후와 잠시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더니 말했다.

“황성에 기여한 바가 큰바, 공훈을 치하하는 의미로 벨슈타인에 황실과의 수교훈장을 내릴 예정이오.”

“네에?”

“우리 헨드릭 황실은 벨슈타인과의 우호적인 유대를 이어 오려고 노력했는데, 오늘 그것을 이룰 수 있어 기쁘오. 앞으로 함께 많은 길을 갈고 닦았으면 좋겠소.”

‘노이슈반 황제는 어지간히 벨슈타인과 무언가를 도모하고 싶은 모양이네.’

루시엘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황제의 말에 루시엘은 깜짝 놀랐다. 황실 수교훈장은 황실에서 그 공헌을 인정한 훈장으로, 명예는 물론이고 많은 혜택이 있었다.

황성에 방문할 시 언제든 최고의 귀빈 대우를 받으며, 황궁에 장기간 머물 수도 있으며 황궁의 호위를 받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황성의 장서관에 출입할 수 있다는 것. 됐어. 원하는 건 얻었어.’

게다가 무척 영예로운 일임에는 틀림없는 일이었다. 루시엘은 기쁜 낯이었다.

“폐하, 은혜에 감복합니다.”

공작을 비롯한 키제프와 루시엘도 고개를 숙였다.

“수교훈장 수여식은 유리온실이 완성되는 날에 하면 되겠군. 그러나 권리는 지금부터 누릴 수 있을 거요. 그대들은 우리의 우군이요. 하하하.”

황제가 몹시 친하게 굴자, 공작은 당황하긴 했지만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억지 미소를 지어 주었다.

“하. 하. 하.”

루시엘은 속으로 그를 부추겼다.

‘아빠, 조금 더 활짝 웃어요.’

어찌 되었든 일은 수월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증거를 내놓기 전에도 레이놀드의 설 자리는 없어 보이니, 조금만 더 분발하면 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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