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당 가문의 새아가 (236)화 (236/282)

<236화>

결과를 기다리면서 눈을 초롱이는 루시엘을 보며, 에리카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하트 모양의 선명한 선홍빛 보석을 마도구 위에 올려놓았다.

“페어리 하트의 힘을 확인하려면, 일단 죽은 생명이 필요하거든.”

“뭐어? 그게 무슨 말이야, 언니?”

충격적인 에리카의 말에 루시엘은 심장이 쿵 떨어져서 눈을 크게 떴다.

이윽고 루시엘은 머릿속에 피닉스가 가진 힘을 떠올렸다.

피닉스의 심장 역시 죽은 자를 되살리는 부활의 힘을 가졌으니까.

페어리 하트는 키제프를 향한 진실한 사랑의 감정으로 만들어진 보석이었다.

설렘의 감정으로 만들어진 스피넬 역시 소원을 들어주는 강력한 힘을 지녔으니 페어리 하트의 힘도 아주 강력하리란 예상은 했었다.

“……혹시 페어리 하트의 힘이 죽은 자를 되살리는 거야? 부활?”

에리카의 눈이 잠시 커졌다가 이내, 고개를 주억였다.

“맞아, 역시 똑똑하구나. 루시엘.”

“응, 스피넬이 소원을 들어주는 힘이었으니까. 페어리 하트는 더 특별하고 강한 힘을 가졌을 것 같았어.”

“……맞아. 이 힘을 발견하게 된 계기도 사실 그런 생각에서 출발했었어. 보통 사람들의 소원으로도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갈라놓는 가장 커다란 이별의 이유가 무엇일까 고찰해 보았지.”

자못 심각해진 표정을 보니 그녀가 정말 진지하게 제르다 씨를 좋아하고 있구나, 느껴졌다.

루시엘이 살포시 웃자 에리카가 주먹을 꼭 쥐고는 말했다.

“어쨌든 정답을 찾아냈어. 제르다 씨가 죽는다면, 나는 그를 살리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 방에 파리 한 마리가 거슬려서 마침 죽였는데.”

“……으응? 그래서 보석을 사용해서 살렸어?”

에리카가 고개를 주억이고는 씩 웃었다.

“응, 살린 표본 기념으로 채집함에 넣어 두었어.”

로맨틱한 전개로 나가다가 뭔가 이상해진 것 같지만 루시엘이 말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럼 발동 조건은 뭐였어?”

“음…… 생명의 가치는 위대하고, 동등하지. 그래서 다른 살아 있는 생명이 필요해.”

에리카가 눈을 가느다랗게 뜨면서 비장하게 말했다.

“……마, 말도 안 돼.”

“그래서 다른 살아 있는 벌레를 바쳤더니 파리가 부활했어. 다른 식물로는 살아나지 않았어. 아마도 부활의 조건은 적어도 비슷한 종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

“아……. 그럼 모기로 강아지의 목숨을 살릴 순 없다는 거구나.”

“그렇지. 그리고 하나 더. 죽은 지 24시간 내인 경우만 부활시킬 수 있었어. 죽은 지 하루 지난 모기는 살아나지 않았거든.”

“우선 보석을 사용한 방법이나 측정하고 연구한 결과는 이 두루마리 안에 기록해 두었어. 루시엘의 다른 보석과 달리 이 페어리 하트는 연구를 이어 가기가 좀처럼 쉽지 않아서……. 일부러 생명을 죽이는 일은 싫기도 하고.”

루시엘도 그녀의 심정이 이해가 가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페어리 하트가 생명에 관련된 보석이란 걸 알게 된 이상, 가볍게 다루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자리했다.

‘어른들과 상의해야겠어. 그렇지만 이 보석으로 정말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기적을 만들 수 있겠지?’

“에리카 언니 말대로 염려스럽기도 하고, 우리의 힘만으로는 연구가 수월하지 않을 거야. 일단 어떤 힘을 가졌는지는 알았으니까 만족해. 페어리 하트의 연구는 보류하자.”

“나도 동감이야, 루시엘.”

“긴 시간 연구하느라 고생했어, 에리카 언니.”

“괜찮아. 사실 루시엘의 보석을 연구하면서 자극받은 것이 많아서 새로운 마도구를 개발 중이니까.”

“그렇다면 영광이야. 언니, 혹시 다른 보석들도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더 줄게.”

루시엘이 보석을 종류별로 넣어 둔 주머니를 꺼내, 에리카에게 건네자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렇게 귀한 걸 덥석 받아 버려도 되는 거야?”

“응, 언니라면 믿을 수 있으니까. 대신 마탑 사람들에게는 비밀 지켜 줘.”

“물론이지. 그럼 나는 이만 마탑으로 귀환해 볼게. 자수정의 힘도 결과가 있으면 알려 줄게.”

에리카를 배웅한 루시엘은 별장의 보석 방으로 들어왔다. 마법 서랍장의 한 칸에는 그간의 보석 연구들을 기록한 마법 두루마리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파아아.

조금 전 놀랐던 감정이 아직 채 가시지 않아서인지, 루시엘은 혼자만의 공간에 들어오자마자 자연스럽게 연둣빛의 페리도트를 만들었다.

페리도트를 서랍장에 넣어 두면서 여전히 찬란하고 영롱한 보석들을 바라보았다.

수시로 보석을 만들어 내다 보니, 이제 세기도 어려울 만큼, 많아졌다.

‘이러다가 드래곤 레어만큼 가득 쌓이겠는걸.’

그동안 만들어 낸 보석들의 종류는 전부 열두 가지.

‘……보석이 가진 힘들은 분명 점점 강해지는 것 같아.’

마력 수치의 기록만 봐도 그렇다.

루시엘은 빛나는 보석들을 손안에 움켜쥔 채 생각을 이어 갔다.

‘핑크 다이아몬드는 환상, 가넷은 분신을 소환하게 만들었어. 페어리 하트는 죽은 생명을 부활시켰고. 어쩌면 보석의 힘들이 인간의 영역을 점점 벗어나는 건 아닐까?’

그야말로 신의 권능에 버금가는 능력이 아닌가.

이번에 질투와 동경으로 만들어 낸 자수정은 어떤 힘을 가졌을까.

감히 상상도 되지 않았지만 루시엘은 지팡이의 이노센트 캐슬로 들어갔을 적에 두 번째 각성을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이후로 만들어 낸 보석들은 확실히 더 강력한 힘들을 가지고 있었다.

페어리 하트는 모양부터 특별하니 상위 등급인 듯했고, 자수정은 다른 보석들과 똑같이 컷팅 된 형태였다.

‘그렇다면 가넷이나 핑크 다이아몬드와 동급의 힘을 가졌을 것 같아.’

그간 보석을 만들어 낸 경험이 쌓이다 보니 이런 예측도 가능했다. 루시엘은 저도 모르게 두근거렸다.

전생의 보석 노예로 살던 그녀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었다.

이 보석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온전히 제 소유, 제힘이자 무기였다.

그렇다면 완벽하게 이용해 줄게.

루시엘이 투명한 눈망울을 빛내며 입꼬리를 올렸다.

‘앞으로 다른 새로운 보석을 또 만들어 낼까?’

그게 어떤 보석이든, 스스로와 벨슈타인에 도움이 되어 준다면……. 얼마든지 이용할 참이었다.

‘……카일라와 레이놀드의 최후를 위해서.’

다가올 그날을 앞두고 한 번 더 계획을 점검하고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루시엘은 빨간색 노트를 펼쳐, 이룬 것들은 예전처럼 줄을 긋고 몇 가지는 수정하거나 추가했다.

「검은 장벽 실드 마무리에 도움 주기.

류프델 설득해서 미스릴 제련하기.

노아를 호위 기사로 만들기.

(노아를 스콰이어 검투 대회의 우승자로 만들어, 여동생 만나게 해 주기.)

핑크 다이아몬드의 비밀 알아내기. (새로운 보석들의 비밀 알아내기)

레오니가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 돌봐 주기.

아르제온의 봉인 풀어 주기. (아르제온을 권속으로 두기.)

카빌가의 사업 방해하기. (카빌가 망하게 만들기.)

와이번 경매 수익 거둔 후, 경매소에서 구출하기.

페넬로페와 발루크 후작 부인의 행적을 찾고, 음모 파헤치기. (블루 익스큐션 탈환, 프리다 박사와 크루거 백작, 와인 재배지의 일꾼 확보)

아스트리야 신전 정찰을 위해 비행선 오르기.

황궁 개조 사업, 이동포탈 가호석, 보석과 마법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레이놀드와 카일라에 맞서 싸우고, 그들을 파멸시키기.

클로디아 황녀를 지지해 황위에 오르게 만들기.

인형사 제르다와 류프델을 협력시켜 분신 인형 만들기.

정보원 만들기.

내 사람들과 함께 눈토끼 상회 만들기.

지팡이 속 공간(이노센트 캐슬)의 비밀 풀기.

모든 적에게 복수하기.」

여기에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벨슈타인 가족과 영원히 행복하게 살기’를 추가하고 싶었다.

그러나 루시엘은 고개를 살랑 저으며 펜을 내려놓았다.

그건 너무도 당연한 결과니까 가슴에 새겨넣을 일이지, 리스트로 적을 일이 아니었다.

차분히 정리하니 그동안 어렴풋하게 그려 둔 밑그림들이 한결 선명하고 또렷하게 형체가 드러났다.

아주 오랜 시간 공들여 그려 온 그림이었다.

과거의 루시엘이 내내 후회하며 당하기만 했던 것과 다르게 이번 생에서는 제 발로 직접 뛰면서 만들어 낸 것들이기도 했다.

‘신을 원망하던 그때도, 신께 기도드리게 된 지금도 사실은 신이 도와줄 거라고 믿지는 않아.’

루시엘은 눈을 부드럽게 휘며, 사르르 웃었다.

‘진짜 믿을 건 따로 있으니까. 나와 가족.’

어느새 루시엘의 가슴에는 가족들의 존재가 꽉꽉 들어차 있었다.

그들이야말로 제 삶의 진정한 보석이었다.

한참 미래에 대한 계획을 다지고 나서 본성으로 돌아온 루시엘에게 검은 날개의 기사가 와서 고했다.

“아가 마님, 카빌 영애가 깨어났습니다.”

다음 발걸음을 떼기 전에 페넬로페는 한번 만날 필요가 있었다.

‘페넬로페는 카일라와 밀접하니까, 어쩌면 이용할 패가 되어 줄지 모른다. 회유로는 안 될 것 같고 협박을 할까.’

‘아빠, 그럼 제가 상대할게요. 페넬로페는 제가 가장 잘 아니까요.’

공작은 그리 말했다.

평소의 악독했던 페넬로페라면 냉혹한 그가 상대하게 두었을 테지만, 카일라에게 버림받고 고통스러워하는 페넬로페를 보니 혹, 다른 방법이 통하지 않을까 싶었다.

“……네, 안내를 부탁해요.”

루시엘은 기사를 따라서 긴 회랑을 걸었다.

지하 감옥의 어두운 독방 안에 붉은 머리 소녀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찍찍찍.

루시엘은 과거 옛 기억이 떠올라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걸음을 멈칫하고 말았다.

‘……하, 하지 마!’

‘루시엘, 그렇게 더러우면서, 쥐랑 같이 있는 건 싫어?’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이자 페넬로페가 천진난만하게 미소 지으며 시종에게 명령을 내렸다.

‘쿡쿡, 아아. 너무 좋아서 미치겠다고? 알겠어, 얘 소원대로 어깨에 올려 줘. 기쁨으로 보석을 만들지도 몰라.’

그러자 시종이 루시엘의 어깨 위로 팔뚝만 한 굵기의 새카만 쥐를 올렸다.

그때의 그 끔찍하고 불쾌했던 경험을 되새기며, 루시엘이 생각을 달리 먹었다.

회유든, 협박이든 우선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다. 루시엘은 치맛자락을 꾹 잡으며 말했다.

“이 쥐, 독방 안으로 풀어 주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