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당 가문의 새아가 (182)화 (182/282)

<182화>

“마스터를 만나고 오셨단 말인가요?”

“그렇다.”

캐서린이 묻자, 그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공작은 혼자 온 것이 아니었다.

그의 뒤로 안경을 낀 푸른 머리의 마도사가 대기 중이었다. 최면 마법을 전문으로 하는 마도사라는 것을 이벨린만이 살짝 눈치챘다. 그녀의 드래곤 마나를 정제한 향을 제조할 때 마주친 적이 있었다.

마스터라는 엘리샤 리즈벳은 생각보다 쓸 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정확히는 공작이 원하는 정보가 그녀에게 없었다.

그녀는 테일러들을 관리하고 연결해 주는 통로, 그들 말로는 게이트일 뿐이었다.

그래도 그녀에게서 알아낸 것도 있었다. 정보 조직 테일러의 핵심이 되는 정보원, 즉 키를 찾으면 정보는 알아서 모여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테일러 정보 조직 전체와 거래하지 않고, 키가 되는 자를 찾아서 거래해야겠다고.

마침 귀족들 사이에서 전담 테일러를 고용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라리에트에게 전해 들었다.

그중 가장 상위층의 고객을 접하는 사람이 바로 이 캐서린 몽트엘이라는 여자였다.

하여 제 어머니 이벨린에게 소개시켜 주라고 라리에트에게 말해 놓았다.

그리되면 자연스럽게 벨슈타인 안에서 만나게 될 터이니.

이어 엘링턴과 던컨의 보고를 듣고 이렇게 달려왔다.

그리고 거래가 결렬된다면, 다소 합의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뒤따라온 마도사의 최면 마법으로 그녀가 알고 있는 정보를 캐낼 수 있었다.

“자네 이름이?”

“캐…… 캐서린 몽트엘입니다. 각하.”

공작이 느른하게 붉은 눈을 굴리면서 캐서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떨리고 긴장된 상태를 감추지 못한 채 대답했다.

“자네, 남성 귀족도 맡아 본 적 있나?”

공작이 소파에 기대앉고는 손에 깍지를 끼면서 말했다.

“……무, 물론이지요. 오늘은 미리 준비하지 못했지만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그거 잘됐군. 자네가 우리 벨슈타인의 전담 테일러가 되어 줬으면 해서.”

그의 말에 캐서린이 고개를 푹 숙였다.

“여, 영광입니다.”

“인사치레는 그쯤하고 본론으로 들어갈까. 자네가 키인가?”

키, 열쇠.

테일러의 가장 고급 정보가 모이는 사람을 칭하는 그들만의 은어였다. 그것이 공작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캐서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예.”

잠자코 듣고 있던 루시엘도 놀라 물었다.

“아빠. 키가 무엇인가요?”

“테일러 정보 조직 내에서 가장 중요한 상위 정보들이 모이는 핵심 정보원을 키라고 한다더군.”

“아…….”

루시엘은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공작은 캐서린과 정보를 거래할 셈인 것이다.

이벨린도 푸른색의 눈동자를 굴렸다.

“잠깐. 캐서린, 자네가 그렇게 굉장한 정보력을 가졌는지 테스트를 좀 해 보고 싶구나. 나에 대해서 정보가 있나?”

“……이벨린 대부인에 대한 정보라면 대외적으로는 특별한 점이 없습니다.”

“으흠. 이거 내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은 것에 대해 기뻐해야 할지, 자네의 정보력이 부족하다고 실망해야할지 모르겠구나.”

이벨린이 후훗 웃자 루시엘이 눈을 반짝이며 캐서린의 말을 놓치지 않았다.

“그럼 비공식적으로는 있다는 이야기지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비공식적인 것은 추측과 소문이 합쳐진 정보이기에 사실과는 거리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몇 가지 추론은 할 수 있답니다.”

“어디 들어 볼까.”

다들 경청하자 캐서린이 이벨린을 보며 말을 이었다.

“우선 이벨린 님은 아주 젊고 아름다운 외견을 지니셨습니다. 늙지 않으세요. 여기 아드님인 공작 각하와 몇 살 차이가 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

“그래서 사람이 아니라 마녀라는 소문도, 아주 강한 마법사라는 추측도 있지요. 저는 이벨린 님의 그간 행보에 주목했습니다.”

“나의 행보?”

“벨슈타인은 원체 좀처럼 외부 활동을 잘 하지 않지만, 최근에는 잦은 활동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행을 가셨다고 밝히셨는데, 행선지가 어디셨는지는 몰라도 유명 휴양지에선 이벨린 님이 다녀가신 흔적이 없었지요. 장거리 이동포탈 게이트를 이용한 기록 또한 없으셨고요.”

“……그건 개인적으로 이동했으니 그렇다네.”

“또한, 이벨린 님은 유명 디자이너 수아레 드 뽀의 의류를 좋아하셔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자주 구매하시는데 3년간은 방문하지 않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옷은 사다가 안 살 수도 있는 거고. 하지만 제법 꼼꼼하게 알아보았군그래.”

이벨린이 웃으면서 점차 드래곤 마나를 흩뿌렸다. 예민한 자라면 일반 마나와는 다르다는 걸 알아차릴 터였다.

“일반 사람과는 확실히 다른 분이세요. 아주 강한 마나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어떤 분인지 사실 저는 정체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그것뿐이지요. 하지만 마녀는 절대 아니신 것 같습니다. 드래곤이라면 몰라도요.”

“재밌는 추론이군. 왜 드래곤이라고 생각하나?”

“나이를 먹지 않고, 인간보다 월등하게 강한 기운을 가진 지성체. 그리고 벨슈타인의 문장이 검은 드래곤이지요. 마족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벨슈타인이라면, 드래곤과 어울릴 정도의 막강한 힘을 가지셨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이것은 저의 사견으로 어디까지나 추론입니다. 노여워 마십시오.”

아까의 그 사근사근하던 테일러 캐서린은 온데간데없고 눈앞의 사람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성적인 어조로 말했다.

“참으로 재밌구나. 좋다, 이제 계속하렴. 루이비드.”

이벨린의 말에 공작이 이어받았다.

“거래를 제안하지. 자네에게 들어오는 정보를 우리에게 가장 먼저 보고해 주도록. 보수는 얼마든지 주겠다.”

“최선을 다하여 움직이겠습니다.”

캐서린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눈치 있고 똑똑한 그녀라면 알 터였다. 거래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벨슈타인 공작가에 포착된 이상, 빠져나갈 수 없다는 걸.

공작의 손짓에 마도사가 나가고, 대신에 엘링턴이 서류를 몇 가지 가져왔다.

“우선 가장 먼저 자네가 알아봐 주었으면 하는 것들이다.”

“알겠습니다.”

“자네들이 침투할 수 있는 곳은 어디까지인가? 황성이나 신전, 이국도 가능할까?”

캐서린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저희가 취급하는 정보를 사람을 통해서만 모으는 것은 아닙니다. 마도구를 통해 얻기도 합니다.”

“그거 잘됐군.”

공작은 새로운 정보상이 마음에 든다는 듯 입매를 올렸다.

거래를 마치고, 캐서린은 의뢰를 받아 타운하우스를 떠났다.

루시엘은 의자에 기대앉은 공작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새로운 정보원을 찾아서 다행이에요.”

“그래, 발루크에 관련된 흔적을 하나라도 찾았으면 좋겠군.”

“너무 조급해하지 말거라. 내 생각엔 그쪽도 때를 기다리면서 숨어 버린 것 같으니까. 곧 드러내겠지.”

“제 생각도 그렇긴 해요. 너무 조용한 게 수상쩍긴 하지만요.”

“일단은 캐서린이 가져오는 게 있는지 기다리도록 하지.”

공작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가 이내 루시엘을 보곤 풀어졌다.

“예쁘구나. 어딜 가려고 이렇게 차려입었지.”

“아, 할머니와 데이트하기로 했어요. 똑같이 민트색으로 맞춰 입었어요, 가족 커플룩이에요.”

루시엘이 생긋 웃으면서 이벨린과 나란히 옷을 자랑하자, 공작이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테일러를 다시 부를까?”

“호호, 루이비드. 다시 불러도 민트색 정장은 없을 거란다. 루시엘, 그럼 우리끼리 맛있는 걸 먹으러 갈까?”

둘이서만 간다는 이야기에 공작이 정색했다.

“……어머니. 이러시깁니까.”

“농담이다, 농담. 오늘은 모처럼 셋이서 근사한 외식을 하는 것도 좋겠구나.”

“네! 아, 그런데 저 와이번을 이제 경주장에 데려다주어야 해요.”

“엘링턴에게 맡기면 되겠군.”

“네, 어차피 후원주는 엘링턴 명의로 되어 있으니까요. 그래도 작별 인사 하고 올게요.”

루시엘은 블랙스콜피온에게로 다가갔다. 구석에 있던 와이번이 고개를 샥 들었다. 점점 더 포동포동해지고, 몸도 커지는 것 같았다.

루시엘이 우리 안으로 손을 뻗었다. 그새 버블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 동글동글 방울 같으니까.

“안녕, 잘 가, 버블. 우리 이제 헤어질 시간이네. 나중에 다시 만나면 좋겠다. 건강해.”

-꾸아앙.

와이번도 아쉬운 모양인지, 루시엘의 손을 콧등에 얹어 놓았다. 마치 쓰다듬어 달라는 것처럼.

루시엘은 와이번의 얼굴을 매만졌다. 매끈했던 피부가 우툴두툴하고 보다 딱딱해진 것 같았다.

루시엘은 와이번에게 빛나는 보석을 세 개 주었다. 낼롬 받아먹은 와이번이 꼬리를 흔들면서 한 바퀴 우리 안에서 돌았다.

“달리고 싶어? 곧 그렇게 될 거야.”

루시엘이 와이번에게 보석을 주면서 길들인 이유는, 그거였다.

보석을 심은 식물도 빨리 자랐으니, 제 보석을 원해서 먹은 와이번도 빨리 성장을 하지 않을까?

성장을 앞당기면, 빨리 우승을 거두고 성적을 낸 다음에는 블랙스콜피온을 조금 더 일찍 자유롭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루시엘은 응접실로 돌아와서 엘링턴에게 짧게 부탁했다.

“엘링턴, 사육 매니저에게 블랙스콜피온의 사육 환경을 보장해 달라고 말 좀 해 주세요. 조금 걱정되니까요.”

“그들에게도 와이번은 경주장의 자산이니,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건 좀 씁쓸한 이유네요.”

“매달 블랙스콜피온의 상태가 어떤지, 자료를 보내 달라고 요청해 둘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응. 고마워요. 그러면 조금 안심이 되겠어요. 그리고 후원금의 5배수 정도 달성하면…… 아니, 일 년이 되기 전에 저 아이를 자유롭게 해 주고 싶어요.”

“……예?”

뜻밖의 말에 엘링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스륵 휘어졌다.

“마음 여린 상냥한 분이라 예상은 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 건은 차후에 각하와 논의를 해 보아야겠습니다.”

“고마워요, 엘링턴.”

“그럼 잘 다녀오십시오. 제 몫까지 많이 드시고.”

엘링턴이 손을 흔드는 사이, 이벨린이 민트색 투피스 위로 하얀 진주 목걸이와 숄을 두르고 나왔다. 공작도 함께였다.

미색의 정장에 민트색 행커치프와 루시엘이 예전에 선물한 하얀 장미 부토니에를 포켓에 착용한 공작은 기분이 몹시 좋아 보였다.

“아빠, 오늘따라 더 근사하신데요?”

“그러게. 하필 이런 날 네 엄마가 외출을 나갔군. 루시엘, 뭘 먹고 싶으냐?”

공작이 눈을 사르르 접으면서 묻자, 루시엘은 자신이 아는 음식 중에 가장 비싼 걸 말했다.

“음, 랍스터요!”

“……우리 새아가가 먹고 싶다면야, 해역을 뒤집어서라도 아주 작살을 내 주지!”

진짜 누군가를 작살 낼 것 같은 그 표정에 엘링턴은 흐린 눈으로 그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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