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당 가문의 새아가 (150)화 (150/282)

<150화>

페넬로페가 가져간 다이아몬드 브로치는 예사 물건이 아니었다. 일명 류프델의 마도구 역작 시리즈 넘버 18. <우아한 추적>이었으니까.

육안으로는 당연히 평범한 브로치로 보였고, 탐지 마법으로도 걸리지 않는 미세한 마나 주파수를 사용한 고도 기술이 담긴 물건이었다.

브로치에는 몇 개의 마법이 걸려 있었다. 소유자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추적 마법. 소유자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도청 마법.

게다가 주변 풍경을 볼 수 있게 다이아몬드로 위장된 마법 렌즈까지.

남편의 불륜 현장을 잡으려고 의뢰를 받았던 물건이라는데, 그 전에 이혼해 의뢰는 취소되었고 생각보다 너무 잘 만들어져 그의 역작으로 남았다는 뒷이야기를 가진 물건이었다.

류프델이 처음에는 내어주지 않으려고 해서 애를 먹었지만 세스 주방장 덕분에 무사히 거래를 성공시켰다.

‘제 보석을 종류별로 하나씩, 그리고 다이아몬드까지 드릴게요.’

‘고, 고작 말이냐?’

‘거기에 시럽이 듬뿍 담긴 메이플 쿠키 열 상자 얹어서!’

보석보다 어째 메이플 쿠키에 더 움찔 반응하던 류프델의 모습이 떠올라 루시엘은 슬쩍 웃었다.

루시엘은 자리로 돌아온 페넬로페의 표정을 힐긋 살폈다. 아주 좋은 일이 있는 양 방긋 웃고 있었다.

‘기분이 좋은가 보네. 길리아트 할아버지, 확인은 잘하고 계시겠지?’

* * *

그 시각 길리아트는 공작성 서재에서 동그랗고 작은 마도구를 귓구멍에 꽂고 있었다.

브로치에 연결된 영상구를 통해 길리아트는 마도구가 무사히 작동하는지 알아보는 중이었다.

마법 지도 위에 불빛이 반짝이면서 황도의 황성, 정원의 위치까지 정확히 알려 주었다. 들려오는 소리도 주변 말소리나 잡음까지 잡아 주었다.

다만 주변이 어두워서 그런지 옆에 켜 놓은 평범한 영상구에 비해서 브로치를 통해 비치는 화면은 질이 떨어졌다.

“만듦새는 제법 훌륭한 것 같군.”

류프델 앞에서는 안 했을 칭찬이었다. 그는 공작에게 통신석이 빛나게끔 한번 살짝 신호를 주었다. 마도구에 걸린 마법들이 문제없이 돌아간다는 뜻이었다.

확인을 마친 길리아트는 한결 편안한 얼굴이 되어서는 어슬렁거리듯, 응접실로 걸음을 옮겼다.

공작성의 응접실에는 평소와 다르게 환하고 둥근 빛을 내는 구체가 둥실 떠 있었다.

이벨린은 소파에 앉아서 영상구를 통해 문학 살롱을 감상 중이었다.

그 뒤로는 에바와 베시를 비롯해 다른 사용인들도 조마조마한 얼굴로 영상구를 지켜보았다. 벨슈타인이 화면에 잡힐 때마다 다들 들썩거렸다.

특히 루시엘의 뽀얗고 말간 모습이 잡히자 다들 영상구로 점점 가까이 모여들었다.

“흑, 어쩜…… 영상구로 보니 우리 아가 마님 더 귀여우셔요. 큰 주인님!”

기대에 가득 찬 베시가 그리 말하다가 길리아트의 얼굴을 확인하곤 고개를 숙였다.

길리아트를 본 이벨린이 손짓하며 불렀다.

“여보, 어서 와서 앉으세요. 이미 많이 진행되었어요. 조금 더 있으면 우리 루시엘 차례인가 봐요.”

“오, 내가 때를 잘 맞춰서 왔군.”

그때 뒤뚱거리며 이 층 복도로 나온 레오니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머리에는 하늘색 수면 곰 모자를 쓰고 품에는 토끼 인형을 질질 끌면서.

“이잉, 밤인데 다들 왜 이르케 시꾸럽게 막 그래요. 레오니 코하러 누었는데 와장창 깨 버려써…….”

“아이구, 우리 임금님이 일어나셨구나.”

길리아트의 말에 에바와 이벨린이 서둘러 층계를 올라갔다.

“도련님!”

“근데 레오니, 혼자서 어떻게 여기까지 나왔니? 사샤는?”

“몬나여.”

레오니가 고개를 붕붕 젓고는 잠이 완전히 달아나 이벨린의 품에 안겼다.

“다시 자러 갈까? 할미가 재워 주랴?”

“아니이, 갠차나. 잠 다 깨써여. 또 자서 기싱이 꿍꾸믄 안 대. 베니가 약해서 레오니 모 찌켜조요.”

“귀신 꿈을 꾸었어?”

“녜.”

이벨린이 레오니에게 좋은 꿈만 꾸도록, 드래곤의 가호를 여러 번 걸어 주었다.

그러나 아이는 눈이 점점 말똥말똥해졌다.

“하는 수 없지. 레오니도 같이 보자꾸나. 엄마랑 루시엘 누나 보고 싶지?”

“엄마랑 뉴나?”

“그래, 황성에 간 엄마랑 누나. 저기 영상구에 나온단다.”

“레오니, 할애비 품에 오려무나.”

“녜.”

할아버지 품에 안긴 레오니가 그제야 만족했는지 석류알 같은 눈동자를 깜빡였다.

영상구에서 루시엘이 말하는 모습이 잡히자 가족들은 또다시 난리가 났다.

* * *

힐스 대부인은 여신상까지 준비해 여덟 장이나 되는 직접 쓴 축복의 기도를 읊었고, 마랑드 후작 부부는 원수를 사랑하는 희극의 주인공이 되어 연기를 펼쳤다.

이제 순서가 남은 가문은 벨슈타인과 발루크 둘뿐이었다. 영상구가 두 가문을 차례로 비추었다.

“다음은 누가 먼저 하시겠어요?”

황후의 물음에 페넬로페가 사근사근 웃으며 답했다.

“공자비에게 양보할게요. 주인공은 원래 마지막에 하는 법이잖아요.”

“좋아요.”

루시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서야 어떻든 상관없었다. 그동안 땀 흘렸을 막스의 노력이 이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빛을 보길 바랄 뿐이었다.

루시엘은 황후에게 다가가서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제 글을 발표하기에 앞서 황후 폐하. 마법 사용의 허가를 요청드리고 싶어요. 물론 공격 마법은 사용하지 않을게요. 글의 분위기를 살리고 싶어요.”

황성에서 모든 마법의 사용을 허락받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글을 발표하는 도중 사용하는 마법을 공격으로 오해받을 소지를 줄이기 위해서 루시엘은 황후의 허락을 미리 구하기로 했다.

황후는 물론이고 일순 다른 귀족들도 ‘마법’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가 이내 그들 가문이 벨슈타인 가문이라는 것을 상기했다.

벨슈타인은 마법에 능한 가문이었고, 가주인 공작을 비롯해 공자도 마법의 천재라고 불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분위기를 더해 주는 마법이라면 허용하겠습니다. 벨슈타인 공작과 공자 역시 벨슈타인 가문의 일원이니 말입니다.”

황후가 너그럽게 말하자 루시엘이 드레스 자락을 붙잡고 감사를 표했다.

“황후 폐하,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법은 제가 선보일 거예요.”

“공자비가 직접 마법을 한다니!”

“저렇게 어린 나이에 마법이 가능한가요? 벨슈타인의 핏줄도 아닌데.”

사람들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루시엘은 엘링턴에게 말을 건넸다.

“주변을 밝혀 볼까요?”

“예, 아가 마님.”

고개를 주억거린 엘링턴이 조심스럽게 막스의 유리 공예품을 꺼내 놓았다.

깊은 밤이 되어서 주변이 한층 어두워졌기 때문일까.

이내 루시엘은 황후가 있는 중앙 테이블까지 자박자박 걸어갔다.

꽃 모양 랜턴을 모두가 잘 볼 수 있게 테이블에 내려놓고 마치 기도하듯, 단풍잎 같은 두 손을 모았다.

마나를 모으기 위한 동작이었지만 정말 무언가를 비는 것처럼 보였다. 루시엘이 속으로 라이트 주문을 외우자 이내 꽃봉오리 모양 랜턴에 불이 탁 켜졌다.

입체적인 유리 꽃이 정말 그대로 두면 곧 피어날 듯 화사했다.

이내 꽃 랜턴의 색색으로 물든 유리를 통과해 퍼져 나간 아롱진 불빛들이 아름답고 은은하게 어둠을 밝혔다.

분홍빛이 돌았지만 한 가지 색은 아니었다. 꽃잎 하나하나의 색이 전부 조금씩 달라서 더욱 풍성하고 생동감 넘쳐 보였다.

“세상에……!”

유리 랜턴이 자아내는 근사하고 로맨틱한 광경에 황후는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오오, 저렇게 아름다운 랜턴도 있던가요?”

“무엇으로 만든 걸까요?”

함성과 함께 사람들의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클로디아와 다나, 아흰도 깜짝 놀란 눈이 되어 루시엘을 바라보았다.

페넬로페는 네까짓 게 감히, 하는 태도로 입술을 삐죽인 채 앉아 있었다.

문학 살롱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레이놀드도 루시엘을 흥미롭다는 눈으로 지켜보았다.

발루크 후작 부인만이 여전히 표정 없이 앉아 있었다.

“저기를 좀 봐요!”

“공자비가 가져온 마법 랜턴, 저런 건 처음 보는데 너무 아름답네요.”

슬슬 살롱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연회장에서 빙글빙글 춤추고, 잔을 기울이던 귀족들도 영상구에 집중했다.

그때 클로디아가 멍하니 꽃 랜턴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황후를 보며 오케스트라에게 손짓했고, 이내 잔잔한 선율이 깔렸다.

루시엘은 준비해 온 편지를 뽀시락 대면서 소매 춤에서 꺼냈다.

“저는 꽃을 주제로 저에게 편지를 썼어요. 진실만을 쓸 수 있는 이 깃펜으로요. 그러니 조금 부끄러워도 잘 들어 주세요.”

그건 진짜였다. 에바가 생일 선물로 준 깃펜으로 쓰니 정말 거짓말은 쓸 수 없었다.

루시엘의 솔직한 말에 사람들이 귀여움에 살짝 웃음을 흘렸다. 키제프가 플라이 마법을 사용해 마법 랜턴을 공중으로 띄워 둥실둥실 돌아다니게 만들었다.

꽃 랜턴이 가까이 올 때마다 사람들은 그걸 만지려고 했다.

루시엘은 심호흡을 한번 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에게 애정과 응원을 보내고 있는 키제프와 가족들의 얼굴을 보면서 눈을 한번 감았다가 떴다.

곧 글을 읽기 시작했다.

루시엘의 영롱하고 간질간질한 목소리가 음악 선율 사이로 들려왔다. 사람들이 하나둘 귀를 기울였다.

“꽃이 되고 싶었던 나에게.

기억하니? 시든 꽃처럼 말라 죽었던 지난날을.

세상의 모든 어둠이 까맣게 무덤을 만들어 가는데도 보고만 있었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지킬 수…… 없었어.

너는 그저 시든 꽃으로 죽어 갔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게 아니야.

피우지도 못한 채 죽어 간 꽃이 아니라 그저 작디작은 씨앗이었던 거야.

싹이 움트기 전 꽃을 꿈꾸면서 언젠가 활짝 피어나길 바라는, 꽃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씨앗이었던 거야.

그러니까 너는 아직 피어나지 않았어. 시간과 기회는 충분해.

물과 양분을 얻고 따스한 햇빛을 찾아서 줄기를 뻗어. 끝없이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활짝 피지 않을까.

아득한 달밤에는 다정한 어둠이 너를 보듬고 지켜 줄 테니까.

달빛 아래 어둠이 불러 주는 자장가에 잠들면 너는 꿈꾼 만큼 자라나 키를 키우고, 어느새 행복에 물들어 활짝 피어나게 될 거야.

비로소 보석보다 빛나는 꽃으로.”

낭독을 마친 루시엘이 새빨개진 얼굴이 되자, 이내 박수와 함께 함성이 들려왔고 가장 먼저 공작이 기립하더니 말했다.

“허, 우리 새아가는 당장 작가로 활동해도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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