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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가문의 새아가 (129)화 (129/282)

<129화>

―통…… 원활… 지 못… 상태입……!

―변…… 체가 발견…… 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루이비드가 세 번째 소굴에 다다르자 상황이 악화되어 있었다. 자르가와 아나스타샤, 검은 날개들이 착잡한 얼굴로 현장을 돌보는 중이었다.

입구는 마법으로 봉쇄해 둔 모양인지 가로막혀 있었고, 부상자들로 아우성이었다.

책임을 통감한 자르가가 공작의 등장에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각하. 상황이 안 좋아 우선 퇴각 명령을 내렸습니다.”

“일어나라. 추궁은 나중이다. 해결책부터 찾지.”

통신이 끊기는 탓에 보고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으니,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일어선 자르가가 알아낸 사실을 차례대로 고했다,

“문라켕의 변형된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일반 문라켕보다 더 강하고 빠르게 진화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낮에도 활동력이 조금씩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빌어먹을. 원인은?”

공작이 바닥에 놓은 검집 위에 양손을 짚으면서 미간을 좁혔다. 이번에는 아나스타샤가 보고했다.

“솔리아페 님이 말씀하셨던 그 소금 동굴이 원인으로 추정됩니다.”

소금에 응축된 마력 때문에 문라켕이 진화해 왔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문제는 다른 소굴에선 변이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분명 환경은 똑같을 텐데. 이상하군.’

추론한 공작이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른 놈들은 왜 변형체가 없지?”

그 말에는 그녀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외에 특이점은?”

공작의 물음에 지형을 탐색했던 척후병이 고했다.

“소금 동굴에서 세 번째 소굴까지 흐르는 지하수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그럼 그 물을 마신 놈들이 변형이 더 빨랐던 건가?”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만…….”

자르가가 대답하는데, 부상자 중 한 명이 외쳤다. 부상으로 기절했다가 치료를 받고 깨어난 기사였다.

“……저, ……각하. 동굴 안에서 이상한 불빛을 보았습니다.”

“불빛이라고? 문라켕이 불을 쓸 줄 알더냐?”

“제가 알기론 아닙니다.”

“놈은 마법이나 도구를 쓸 줄 모릅니다.”

자르가와 아나스타샤의 대답을 들은 공작이 기사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자세히 고해라.”

“예……. 그것이 제가 문라켕에게 습격당해 쓰러지는 찰나에 잠깐, 푸르스름한 빛의 덩어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곧 빛도 사라졌는데 저도 정신을 잃어서 그만.”

“푸르스름한 빛의 덩어리……? 누구 그런 빛을 본 자가 또 있나?”

공작이 다른 이들에게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적막하게 싸한 분위기가 떠돌았다.

어쩐지 불안이 엄습했다. 이대로 시간만 보내다가는 이도 저도 아니게 될 듯했다.

“……안에 변형체는 얼마나 남았나?”

“세 마리 정도로 파악됩니다.”

자르가의 답을 들은 공작이 결론을 지었다.

‘어디 얼마나 강해졌는지 볼까.’

“어두워지기 전에 끝을 내지. 아나스타샤는 남아서 현장을 엄호, 통솔하고. 마법사 하나, 검사 셋으로 최정예 전사만 나를 따라와라.”

“옛, 각하!”

명이 떨어지자마자 자르가를 비롯한 정예 기사들이 튀어나왔다.

검을 챙겨 든 공작이 외투 자락을 펄럭이며 앞장서자, 검은 날개가 그 뒤를 따랐다.

혼자 들어가도 감당할 자신은 있었으나, 그리 움직이면 부하들의 반발이 클 터였다.

최소한의 안전은 필요하니…….

“내가 신호를 주기 전까진 공격하지 마라.”

“존명.”

공작은 감히 제 부하들을 앗아 간 문라켕을 향해 핏빛 눈을 번뜩였다. 한 손에 검을 들고, 마나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검이든 마법이든, 어느 쪽이든 아끼지 않고 사용해 처리할 생각이었다.

* * *

날이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솔리아페는 입술을 꼭 깨문 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루이비드가 떠난 지 두 시간.

세 번째 소굴의 통신도 완전히 끊겨서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그동안 막사 안을 수십 바퀴도 더 돌았을 것이다.

나머지 소굴은 성공리에 토벌이 끝나 일부 귀환한 검은 날개들에게서 상황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문라켕의 변형체라고?!”

“예, 소금 동굴에서 유입된 지하수가 원인인 걸로…….”

솔리아페가 기사의 말을 자르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게 아닐 텐데……. 그 지하수는 과거부터 있었고, 아무리 소금이 섞여 들어가도 지하수의 양 때문에 농도가 크게 진해지지는 않았을 거야. 분명 다른 원인이…….”

그때 돌아오던 기사가 말에 웬 여자를 태우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골짜기에서 이 여자를 발견했습니다. 숨이 붙은 자는 한 명이고, 나머지 둘은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곧이어 기사들의 손에 끌려온 생존자는 동공이 공허하게 비어 버린 채, 기절한 여자였다. 솔리아페는 눈을 의심했다.

아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자유 연합 토벌대의 일원 중 한 명인 리타였다.

“마, 맙소사. 리타?! 어서 치료를!”

파아앗.

서둘러 달려온 마법사의 치유 마법이 닿자, 정신이 든 리타가 숨을 할딱였다.

“……주, 죽었어. 다 빨려서 죽……무, 문라켕이 아니라 그…… 그게 있었어!”

“그게 있다니…… 무슨 말이지? 정신 차려 봐. 리타, 나야. 나 알아보겠어?”

솔리아페가 리타를 붙잡고 흔들어 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정신을 가누기 힘들어 보였다.

게다가 창백해진 안색에 삐쩍 마른 얼굴이 마치 시체 같았다.

그때였다. 느닷없는 비명이 막사 근처에서 들려왔다.

“으아아악-!”

“뭐지? 가서 알아보도록.”

“솔리아페 님은 어서 막사로 들어가십시오.”

제 앞으로 엄호하는 기사의 말에 솔리아페가 반박했다. 자신 혼자 숨어 있을 순 없었다.

“하지만……!”

“가시지 않으면 공작님께 저희가 죽습니다.”

“알았다.”

자신을 그토록 걱정하던 루이비드였다.

‘이번엔 그의 말대로 나서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씁쓸하게 말하며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채 몇 분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사방이 적막했다.

막사에 설치된 대형 통신구로 다가선 솔리아페는 이윽고 이상한 위화감에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푸르스름한 빛 덩어리가 막사 안으로 스르륵 들어왔다. 이동이 자유로운 괴생명체.

‘막사의 결계를 뚫었어……?’

놀람과 동시에 눈이 부셔서 제대로 볼 수조차 없는 빛 덩어리가 기이한 소릴 내며 다가왔다.

우우우웅!

두통을 일으킬 듯 어지러운 소리.

“이게…… 뭐지?”

놀라서 뒷걸음질 치려 했으나 하체가 뻣뻣하게 굳었다. 기이한 붉은 빛의 고리가 그녀의 하체를 칭칭 감았다.

솔리아페는 바들바들 떨면서 검으로 손을 가져가, 어렵사리 빛 덩어리를 검으로 갈랐다.

“……!”

그러나 빛으로 이루어진 몸체는 검으로는 타격이 없었다. 이어서 붉은 빛의 고리가 서서히 올라와 상체마저 마비시키더니 이내 솔리아페의 심장을 움켜쥐기 시작했다.

“아악!”

솔리아페의 푸른 마나를 빛 덩어리가 흡수하기 시작했다.

‘아, 안 돼…… 마나가!’

그녀는 꺼져 가는 의식 속에서도 제 마나가 사라지게 되면 초래할 결과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곧이어 버티지 못하고 풀썩 쓰러졌다.

그때, 막사가 걷어지며 눈이 뒤집힌 루이비드가 빛 덩어리를 향해 주문을 외웠다.

“디스펠(Dispel)!”

상대의 마법 주문을 강제로 해제하는 주문이었다. 그제야 솔리아페의 몸을 칭칭 감았던 붉은색 고리가 사라졌다.

“솔리아페……!”

쓰러진 솔리아페를 왼팔에 안아 든 채로 공작이 주변에 실드를 곧장 다시 설계하기 시작했다.

휘오오!

새하얀 방어의 마법진이 폭발하듯 빛을 내뿜으며 두 사람을 보호하는 투명하고 단단한 막을 씌웠다.

우우우웅!

다시 빛 덩어리가 움직이며 마법을 시도했지만, 실드에 가로막혔다. 루이비드가 중얼거렸다.

‘저건 윌 오 더 위스프?’

줄여서 ‘위스프’라고도 불리는.

사념체가 강한 마력과 맞닿아 생성된 아주 희귀한 마물이었다.

일반 무기로는 타격을 입힐 수 없고, 마법 무기나 마법으로 처치가 가능했다. 더군다나 이놈은 크기를 보았을 때 무척 강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토벌이 아니더라도 그냥 두어서는 안 될 위험한 마물이었다. 게다가 솔리아페를 해치려고 했던 놈이었다.

루이비드가 나지막이 주문을 외우자, 들고 있던 검 위에 푸른 냉기가 서렸다.

얼음 마법이 입혀진 칼날이 그대로 위스프의 몸체를 꿰뚫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검에 힘을 덜면 밀려날 듯 강한 방어막이 깔려 있었다.

도대체 어떤 사념이기에 이렇게 비대하게 커진 것인지. 루이비드는 일그러진 얼굴로 계속 검을 밀어 넣었다.

더! 더!

스칵!

스스스.

그러자 이윽고 커다란 빛이 점점 사그라들며 산산조각으로 깨졌다.

―살려 줘, 아악! 누가 도와줘!

―반드시 죽일 거야!

소름 끼치는 비명이 셀 수 없이 들려왔다. 이놈은 아마도 그동안 문라켕에게 당한 인간들의 사념이 뭉쳐 생긴 모양이었다.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작은 빛무리들 사이로 루이비드의 피부에 마나가 와 닿았다.

이내 그것이 위습이 그동안 흡수한 사람들의 마나라는 걸 깨달았다.

‘그 사념체가 도리어 사람을 해치게 되었다니 모순적이군.’

그러고 보니 아까 한 기사가 목격한 푸른 빛이 위스프였던 모양이었다. 루이비드가 대형 통신구를 보며 추측했다.

‘위스프는 통신구나 사람의 마력에 반응해 여기까지 이동한 것인가?’

위스프가 소멸하자 루이비드는 재빨리 솔리아페를 안아 든 채, 막사를 벗어났다. 사방에는 기절한 이들이 깔려 있었다.

다행히 마나를 모조리 빨려 죽은 자는 없는 모양이었다.

이내 자르가와 아나스타샤를 비롯해서 문라켕을 토벌하고 돌아온 기사들이 귀환했다.

루이비드가 세 번째 소굴의 변형체를 처리하는 도중, 그의 결혼반지가 붉은색으로 깜빡였다.

솔리아페의 신변에 위험이 생겼다는 신호였다. 그 덕에 그는 곧장 솔리아페를 구하러 올 수 있었다.

“각하! 토벌은 어렵지 않게 마무리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자르가 역시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엉망이 된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상황 설명은 나중에. 나는 솔리아페와 먼저 성으로 귀환할 테니, 두 사람은 병참을 정리하고 남은 검은 날개를 이끌고 귀환하도록.”

“예!”

* * *

“아가 마님! 아가 마님!”

숨을 몰아쉬면서 정신없이 달려온 로즈가 소식을 전했다.

“주인님과 마님께서 토벌에서 귀환하셨다고 해요! 그런데, 마님께서…… 흑.”

“어머님께서 왜?”

“마물에게 마나를 빼앗기고 정신을 잃으셨대요. 다행히 주인님께서 곧장 구출하셨지만,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다고.”

“뭐, 마나를……? 말도 안 돼.”

루시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다가 다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며칠간 내내 불안하던 것이 현실이 되었다.

마나리스는 마나가 메말라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다. 마나를 빼앗겨 기절까지 했다니, 자칫하면 그녀가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이대로 있을 수 없어.’

“우선 어머님을 뵈어야겠어.”

루시엘은 곧장 솔리아페의 침실로 찾아갔다. 나가던 주치의와 마주친 루시엘은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어, 어머님의 상태는 어떠신가요?”

그는 가망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최근까지 무척 안정적이셨는데 마물에게 마나를 과도하게 빼앗기신 모양입니다. 체내에 남아 있던 마나가 얼마 없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마나리스 병세가 악화되었나요?”

주치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고 계시군요. 맞습니다. 그동안은 마님의 부탁으로 입을 닫고 있었습니다만…….”

“혹시 다른 분께 말씀을 하셨나요?”

루시엘이 조심스레 물었다.

“아, 안 그래도 그것이 고민이었습니다만, 이제는 말씀드려야 합니다. 남은 가족들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자, 잠깐만요. 그건…… 제게 맡겨 주시겠어요?”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길어야 며칠 남짓일지 모릅니다.”

“네…… 알겠어요.”

루시엘은 무거운 마음으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공작과 이벨린, 키제프가 침울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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