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93화
EP 44–개문 開門(12)
괴수가 바다와 창공을 장악한 이래,
무역은 바닷가에 거의 붙어가다시피 하는 컨테이너선이나, 수송기보다 훨씬 비싼 전투기를 호위로 붙이는 항공운송에 의존해야 했다.
어지간한 건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보다 직접 만드는 편이 싸게 먹힌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모든 국가는 자급자족하는 법을 배웠다. 배우지 못한 나라는 망했으니까.
따라서 게이트 시대 경제의 형태는 어느 정도 중세 시대처럼 변했다. 하나의 국가가 생존을 위해 자급자족을 익히고, 모든 필수적 산업이 외적을 막기 위한 성벽 안에서 기능한다.
그건 옆동네와 교류하는 것보다 옆동네를 점령하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점을 뜻한다. 저놈들이 만드는 물건과 우리가 만드는 물건이 똑같은데 굳이 무역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러니 게이트 시대는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이어질 것이니,
선빵을 맞기 전에 우리가 먼저 옆 나라에 쳐들어가 저놈들의 전쟁수행 능력을 미리미리 조져놔야 한다…….
-라는 사이비 논리가 일부 극단적인 경제학자들이나 네오콘 같은 주전론자들에게 인용되며, 국민들을 오들오들 떨게 해서 선거철에 표를 따내는 일에 쓰이곤 했지만.
막상 게이트든 전쟁이든 뭐든 옆나라가 망하면 선거고 뭐고 다 좆될 수도 있다는 뼈저린 사실을 알려준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건 베를린의 붕괴다.
[베를린 함락, 유럽의 심장부가 무너지다]
[독일 연방정부, 함부르크로 피신.]
[각지 도시를 중심으로 시민군이 산발적으로 저항 중…….]
게이트 전쟁의 최전선에서 끝까지 버티던 베를린은 해상 보급이 불가능한 내륙이며, 런던-파리 경제권과 지나치게 멀리 떨어져 있다는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원인은 다양했다. 개문 사태 직후 나토 주둔 미군을 본토로 송환하다가 대서양 바다괴수 밥으로 만들어버린 미국의 뻘짓.
그런 미군에 국방을 의존하던 독일, 사방에서 스멀스멀 고개를 치켜드는 네오나치 반군, 동유럽 평야를 휩쓸고 다니는 괴수 호드, 등등…….
베를린의 붕괴로 전 유럽은 충격에 빠졌다.
그러자 스페인의 민주주의가 몰락했다.
이베리아반도 전역을 방위하는 PMC이자, 헌터 길드인 ‘아르마다’가 허수아비 대통령으로부터 완전히 국권을 받아온 것이다.
이는 헌터들이 주도한 쿠데타가 아니라 베를린의 붕괴를 남일처럼 생각하지 않은 스페인 국민들의 요구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리하여 지난 100년 동안 세계를 이끌어온 주된 정치세력인, 서구-민주주의 세계의 정치인들은 냉엄한 진리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공포는 불안을 낳는다.
불안은 의존을 낳는다.
의존은 독재를 낳는다.
스페인의 신질서 수립은 옛 질서가 무너질수록 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의심받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정치인들이 깨닫게 해줬다.
더 이상 ‘민주국가’가 무너지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게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국제사회가 나선 이유였다.
다시 말해, 딱히 중국을 도울 이유는 없었다는 뜻이다.
* * *
동북아시아 위기는 국제적 경기 침체를 불러왔다.
이게 단지 어느 날 아시아에서 일어난 대참사였다면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겠으나,
애석하게도 이 모든 일련의 대참사는 전 세계의 투자금을 받아서 진행한 토목사업인 <만주 탈환>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만주 탈환에는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갔고, 수많은 세계적 기업들이 한 발 걸쳤으며, 정부와 민간을 가리지 않고 온갖 투자가 쏟아졌다.
그 사업이 가장 끔찍한 형태로 실패한 순간 다 같이 좆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동북아시아 위기로 인한 경제위기는 세계를 강타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주에 돈을 갖다 박은 각국 정부는 사업으로 돈을 다 날려먹고서 아내에게 원망의 눈빛을 받는 남편들이 흔히 말하듯 ‘이게 다 그 새끼 때문이라니까’를 시전했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이게 다 인공적인 게이트를 열어버린 어리석은 중국 정부의 실책 때문이었다.
물론 핵심 기술을 제공한 레드먼드 인더스트리는 미국 기업이었지만 이 시국에 미국을 욕하는 서구권 정치 지도자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이러한 국제적 정치 지형 속에서 중국은 미묘한 홀대에 시달렸다. 유엔군 사령부가 한국에 있는 건 꼭 한국전쟁 당시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정말로 중국이 멸망하도록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 서방 세계의 지도자들은 한국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중국도 간접적으로 도울 방법을 찾아냈다.
그건 바로 <연구>다. 그게 가장 돈과 인력이 덜 드는 동시에, 아시아보다 서방 세계가 훨씬 잘하는 일이었다.
동북아시아의 인공 게이트에서 나온 검은 점액질의 괴수, 통칭 침식형 변이체, 혹은 블랙슬라임을 분석하기 위해 세계의 모든 연구자들이 달라붙었다.
세계 제일의 포션 제조사인 프랑스의 듀폰이 직접 한반도에 핵심 연구진을 보냈고, 영국 여왕은 학계를 독려하기 위해 왕립학회에 공식적인 칙령을 내렸다.
아시아도 가만히 있던 건 아니다. 일본의 이화학 연구소가 또다시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 나섰고, 한국 또한 초상산업단지의 모든 연구진이 검은 괴수를 분석하는 데 투입되었다.
청송연구소의 도 박사와 장소장도 법적으로 아슬아슬한 수위까지 연구 진행을 허락받았다.
내 손에 들린 용해제는 그런 수많은 노력이 간신히 빚어낸 첨단 괴수생물학의 정수였다.
“은은하게 빛나는군요, 마치 각성제처럼…….”
지금껏 검은 괴수를 무력화시킬 방법은 오직 두 가지였다.
파이로키네시스 능력자가 압도적인 마력을 품은 화염으로 괴수를 정화하거나, 하이드로키네시스 능력자가 직접 액체를 조작해 괴수를 소멸시켜 버리는 것.
검은 괴수에게 증발이란 개념은 통하지 않았다.
오직 소멸이라는 개념만이 유효했다.
그리고 마력으로 이루어진 괴수의 몸을 소멸시킬 정도로 강력한 화력을 지닌 화염술사와, 액체 괴수를 직접 조종하는 것을 넘어 소멸까지 가능한 수준의 염수술사는 아주 드물었다.
반면, 검은 괴수는 살아 움직이는 것들을 흡수하며 무한히 강해졌으니, 인류가 저 괴수를 완전히 없애버릴 날은 영영 오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가능성이 열렸다.
“이게……. 검은 괴수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겁니까?”
“네, 시장님.”
초상연구본부장 천화란 박사가 감동에 젖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편에서 청송연구소의 도 박사가 자기 손가락으로 실뜨기를 하며 히죽거렸다.
“그거 만드는 데 못해도 564명은 죽었을걸.”
564명. 아직도 기억이 난다. 잊을 수가 없다. 범죄자 514명, 일반인 48명, 책임자 2명.
차재균 차관이 진행한 생체실험에서 비롯된 공식적인 사상자다.
질 나쁜 농담이었다.
“이보세요, 당신……!”
이 농담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천화란 박사가 매섭게 도 박사를 노려보았다.
나는 손을 들어 제지했다.
“괜찮습니다.”
그녀가 화낼 필요가 없었다. 괴수를 녹여버릴 용해제를 만드는 데 생체실험은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과로사한 사람들, 시료를 채집하기 위해 투입되었다가 죽은 헌터들, 실험체가 탈출해 몰살당한 해외 연구소의 희생자들까지.
그들을 전부 합치면 564명은 가뿐하게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어디 그뿐인가.
내 시야는 그 시절보다 훨씬 넓어졌다. 그 탓에 지나치게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연구에 필요한 공적 자금의 투입으로 외면당한 저소득층, 그중에 생활고로 자살한 사람은 얼마나 많을 것이며, 자식 먹일 끼니를 구하지 못해 인생이 암담해진 사람은 얼마나 많을 터인가.
언젠가 괴수를 몰살할 것이라는 희망으로 전 국민을 속이며 방치한 북한 주민들, 그중에 군벌에게 끌려가 최전선에 던져진 젊은이들은 얼마나 많을 터인가.
고작 반년.
반년이라는 시간을 벌기 위해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희생시켰다.
그 모든 차선책이 단 하나의 과업을 이루기 위한 차악이었다.
열린 문 너머로 나아가, 괴수를 처단하는 것.
“이 용해액, 성능이 확실해야 할 텐데요.”
“···시장님께서 게이트 공략에 직접 참가하신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이미 여러 사람들에게 들으셨겠지만, 다시 생각해보실 의향은 정말 없으신가요? 시장님은··· 지윤이에게도 참 좋은 삼촌이니까요.”
“말마따나, 지윤이 녀석도 게이트 공략에 투입되는데 제가 빠져서야 되겠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제가 정치인이지만, 반쯤은 헌터입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전부 했다.
남은 건 하늘에 달렸다.
* * *
하늘에서 내려다본 선양은 검은 물감을 뒤집어쓴 서울 같았다.
지평선의 끝자락과 반대편 끝자락까지 펼쳐진 거대한 대도시는, 저곳이 한때 수많은 이들의 삶의 터전이었음을 믿지 못할 정도로 이계의 물결에 침식되어 있었다.
구름 위에서 내려다보면 개미처럼 작아 보이는 자동차들이 저마다의 사정을 품고 달리고 있어야 할 도로에는 지하의 개미굴처럼 괴수들이 득실거리고 있었고.
이 땅에 살아간 모든 사람들의 삶과 노력으로 자라난 빽빽한 빌딩의 숲은, 검은색 덩쿨에 침식된 나무처럼 서서히 썩어가고 있었다.
괴수에게 침식된 이 도시의 풍경은 설진운으로 하여금 과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무너진 도시와 잃어버린 사람들, 소년의 기억 속에 묻힌 상실감은 괴수를 향한 분노가 되어 스멀스멀 새어 나왔다.
그때, 설진운의 어깨에 하얀 손이 올라왔다.
“함부로 살기를 흘리지 마라. 네 나쁜 버릇이다…….”
낮게 내리깐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홍선아가 우스울 정도로 진지한 얼굴로 설진운을 노려보고 있었다.
설진운이 당황한 기색을 애써 숨기며 물었다.
“……그건 어디서 주워들은 농담인가요?”
“얘는 젊은 애가 인터넷도 안 하나 봐!”
“인터넷이구나.”
“피…….”
홍선아는 ‘채원……’이라고 중얼거리며 수송기 벽에 달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몇 달 만에 제대로 모습을 본 홍선아는 눈에 띌 정도로 살이 빠져 있었다.
현존하는 모든 헌터들 중 검은 괴수를 상대로 가장 유리한 상성을 지닌 헌터는 그 능력에 걸맞는 과로에 시달렸다.
물론 그녀의 영웅적인 헌신 덕분에 수많은 사람이 구원받았지만, 설진운은 그녀 또한 영웅이 아니라 사람임을 알았다.
엇비슷한 기대감을 지고 사는 사람으로서.
“괜찮아요?”
“뭐가?”
“이번에도 가장 먼저 들어가셔야 할 텐데.”
“용해제인지 용해액인지 나왔다며? 그거 니가 온몸에 치덕치덕 바른 다음에 게이트로 뛰어들면 되는 거 아니야?”
“뭐……. 급하면 그렇게 하라는 이야기도 아주 없지는 않았죠.”
“누나가 옛날에 호주에서 네 내장은 한 번 구경한 적이 있는데, 우리 진운이 알몸까지는 딱히 보고 싶지 않구나…….”
“성희롱이에요…….”
항상 몰려다니는 국경없는 기사회의 정예 멤버들이 홍선아와 설진운에게 다가왔다.
헌터용 전신 수트와 장창을 장비한 그윈 슈미트체바가 사교적인 말투로 물었다.
“두 분,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게이트 내부에서 비상시에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과연…… 한국을 대표하는 헌터답게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시는군요.”
그들의 짧은 대화는 기장의 안내방송으로 인해 이어지지 못했다.
미군 7함대 소속의 베테랑 조종사가 선양 게이트에 도달했음을 여러 언어로 알렸다.
삼삼오오 모여 농담이나 나누던 고위 헌터들의 눈빛에 살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그 살기는 정신에서 비롯된 힘이고, 정신의 영역이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인 바, 머리카락이나 물건 따위가 흔들리기도 했다.
다니엘 웰링턴이 낙하산 가방을 팔랑거리며 각국의 헌터들에게 물었다.
“여기! 낙하산 필요한 사람 있나?”
“씨발, 눌러 왔어? 페러글라이딩이나 하게?”
“그렇지! 씨발! 이래야 싸울 맛이 나지!”
다니엘 웰링턴이 몇몇 혈기 넘치는 헌터들과 의기투합하며 전의를 고취시키는 동안, 노아 뤼미에르는 망원경으로 지상을 살피며 침음성을 흘리고 있었다.
감지윤의 손을 잡은 한승문이 그녀의 옆으로 다가왔다.
“문제 있습니까?”
“아닙니다, 장관.”
뤼미에르가 망원경을 품속에 집어넣으며 싸늘하게 내뱉은 말은, 마침내 그 순간이 다가왔음을 시사하고 있었다.
“작전은 계획대로 진행합니다.”
* * *
선양게이트는 개문 사태 직후에 열린 거대한 원형 게이트로, 푸른 마력으로 빛나는 저 통로 너머는 채산성이 높아 이미 여러 길드에서 소유권을 입찰할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그 인근에는 검은 게이트가 있었다.
인간이 열어버린 최초의 게이트,
선양 제2게이트.
이미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경제적 피해를 발생시킨 것으로 추산되는 저 검은 통로가, 이 모든 사태의 근원지였다.
헌터들을 실은 수송기가 아직도 검은 비를 쏟아내는 게이트 바로 위를 지나가던 그 순간.
“가자-!”
수송기 문이 열리며 한 소녀가 뛰어내렸다.
나는 그 소녀의 손을 잡고 함께 뛰어내렸다.
붉은 한강 위를 함께 유영하던 시절처럼.
“지윤아! 빨리…….!”
“일단 크게 한 방!”
감지윤의 손아귀에서 한 개인이 가져서는 안 되는 힘이 모여들었다. 나는 이 소녀와 감각을 공유할 때마다, 이 압도적인 권능을 체감하며 이 소녀가 인류 최강의 초상능력자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직감한다.
거대한 마력이 선양의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 어떤 기교도 없는, 정직한 밀어내기.
순수한 척력斥力이 선양 제2게이트 인근의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
쿠구구구-!
대지진이 일어난 것 같은 굉음이 지나간 뒤, 남은 것이라고는 원형으로 밀려난 구름과 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깔끔하게 정리된 지상.
그리고 그사이에 떠 있는 게이트뿐이다.
“때가 왔습니다! 전부 뛰어내리세요!”
뤼미에르의 지령에 맞춰 수많은 헌터들이 수송기에서 뛰어내렸다. 나는 감지윤이 숨을 돌리는 동안, 그 헌터들을 모조리 붙잡아 지상에 무사히 착지시켰다.
지상에 떨어진 헌터들은 얼음과 흙으로 벽을 세우며 순식간에 요새를 만들었다. 헌터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게이트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였으니까.
게이트를 직접 공략하는 공격대가 차원문 저편에서 싸우는 동안, 남은 헌터들은 이곳에서 검은 괴수들의 접근을 차단하며 그들의 귀환을 기다릴 예정이었다.
지상에서, 주둔지 방어를 담당하는 설진운은 오직 이 순간을 위해 특수 제작된 장검에 용해제를 바르며 홍선아의 행운을 빌었다.
“……무사히 돌아오세요.”
홍선아는 말 대신 표정으로 이에 대답하고서 곧장 하늘로 날아올랐다. 작전이 시작된 이상, 1초라도 허투루 낭비하면 안 됐으니까.
노아 뤼미에르가 푸른 불꽃이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는 홍선아를 확인하고서 목청을 높여 지상의 헌터들을 진두지휘하기 시작했다.
“홍선아 헌터가 게이트 너머에 화염 폭풍을 일으키면 쥬히와 다니엘, 그리고 르윈이 진입해 그녀를 돕습니다! 나는 1분 뒤에 선발대가 신호를 보내면 2차 공격대를 이끌고 게이트에 진입하겠어요!”
“알겠습니다.”
“만약 저 너머에 우리가 상대할 수 없는 공포가 도사리고 있거나, 홍선아 헌터가 크게 다치면 곧장 귀환하십시오. 후퇴는 실패가 아니라 작전의 일부일 뿐이니까요. 아시겠습니까?”
“명심하겠습니다. 대장.”
“그리고 만약 2차 공격대가 진입한 뒤 1분이 지나서까지 아무런 신호가 도착하지 않는다면…… 3차 공격대는 투입을 보류하고 구조대가 투입됩니다. 그리고 3차 공격대는 구조대마저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현장을 지키며 이틀간 대기하십시오.”
그 뒤의 이야기는 굳이 입에 담지 않았다. 전력을 보존하기 위해 동료를 버리고 후퇴하는 일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참담한 이야기였으니까.
노아 뤼미에르는 침착하게 시계를 확인하며 작전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기를 기도했다.
지금, 누군가를 향해 기도하는 사람은 뤼미에르 혼자만이 아니었다.
신에게, 대통령에게, 그리고 헌터들에게. 수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이 부디 이 고통을 끝내달라고 부르짖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기도가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가장 처음으로 게이트를 넘어가기로 했던 홍선아가 다시 지상에 내려온 것이다.
“안…… 넘어가지는데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게이트 너머로 나아갈 수가 없어요. 벽에 막힌 것처럼…….”
헌터들이 게이트 너머로 진입할 수가 없다는 것.
그것은 대한민국이 영원한 소모전을 겪어야 한다는 사형선고였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