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52화
EP 39-상실의 시대(2)
정치인에게 경조사는 남다른 의미다.
내가 민주당 양판석 의원의 수행비서였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과장 좀 보태서 그 영감님 스케줄의 절반이 경조사였다.
지역구가 광주니까 시장군수는 물론이고 향토 기업인 경조사까지 전부 챙겼고, 민주당 의원들 경조사도 물론 챙겨야 했다.
당연히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서 밥만 퍼먹고 오는 건 아니다.
이 기회에 옆자리에 있는 산업은행장이랑 안면도 트고, 장례식장 구석에서 원내대표 선거에 대해 쑥덕거리고……. 그런 식이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어지간하면 경조사를 챙긴다. 아니, 경조사를 집요하게 쫓아다닌다. 면상에 철판 깔고 모르는 사람 결혼식도 찾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서울시장이 입원했다?
병문안 안 가면 바보다.
* * *
“돌겠네.”
병원 복도가 시꺼먼 양복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저 많은 사람을 하나하나 만나줘야 한다니 벌써 눈앞이 깜깜하다.
시간도 너무 늦었고, 몸 상태도 안 좋다. 맘 같아선 저 사람들을 그냥 돌려보내고 싶었지만 그러면 정치인 실격이다.
나는 이모와 이모부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문객들을 하나하나 불러들여 인사를 나눴다. 과장 좀 보태서 내가 정치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은 전부 온 것 같다.
“시장님,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국회에서 사고를 당하셨다는 소식에 제주도에서 바로 올라왔습니다.”
“비록 우리가 속한 정당은 다르지만 국가의 동량인 한승문 시장이 다쳤다니까 마음이 편치 않네요. 빨리 나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시장님께서는 이미 나라의 소중한 자산이십니다. 헌터 길드 하나를 전담으로 고용하셔서 개인 경호로 사용하시는 게 어떨지…….”
초인지원청장은 물론이고 심지어 국방당 당대표까지 잠깐 얼굴을 비췄다. 양판석 정권의 전직 장관들도 찾아왔다.
하필이면 국회 근처라 국민당 국회의원들은 거의 전부 몰려왔는데, 이호정이 교통정리를 하지 않았다면 국회의원만 50명 넘게 만나야 했을 것이다.
다행히 국민당 지도부와 간단하게 사진만 찍고 끝났다.
정계의 거물들만 온 게 아니다. 생판 초면인 초인지원청 공안관리국 경제범죄수사과장도 부끄러움을 감내하고 찾아와서 얼굴을 비췄다.
대체 왜 오는 건가 싶은 사람들까지 찾아오는 이유는, 내게 ‘나라는 사람이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걸 알아 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정치인의 경조사란 이런 의미였다.
나는 그런 관행에 따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병문안을 온 사람들을 친절하게 맞이했다. 선거 유세할 때 쓰라고 사진도 찍어줬다.
내가 예의를 지켰으니 다른 명망가들도 예의를 지켰다. 별다른 용건 없이 깔끔하게 얼굴도장만 찍고 떠난 것이다.
물론 모두가 매너를 지킨 건 아니고 총선에 지원 유세를 와 달라던가, 자기랑 사업을 해보자며 자근거리는 놈팽이들도 있긴 했다. 그들은 원하는 걸 얻지 못할 것이다.
이제 마지막 문객들만 남았다. 일부러 마지막까지 기다린 사람들이다.
바로 국회에서 불난 와중에 한정식집에서 밥 먹고 빙수까지 후루룹 퍼먹으러 갔던 서울시 간부들이었다.
“아이고! 시장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제가 아는 병원으로 모시겠습니다! 일단 건강검진부터……!”
“저희가 끝까지 곁을 지켰어야 했는데……! 정말 면목 없습니다!”
검은 양복을 입은 관료들이 단체로 침대를 둘러싸고 허리를 낭창낭창 굽히며 읍소했다.
‘시장님의 옥체를 지키지 못한 소신들을 죽여주시옵소서’라고 말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물론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나한테 정말 충성을 바치는 건 아니었고, 내가 삐지면 직장생활이 아주 더러워지기 때문에 이러는 거였다.
물론 나한테 잘 보이면 국민당 국회의원으로 영전할 수 있기도 했고 말이다. 이는 제1 행정부시장으로 증명할 수 있다.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그냥 깁스만 좀 하면 된다고 그러네요. 그래도 여러분은 미리 나가 있었다는 걸 알고서 제 마음이 그나마 편했습니다.”
“아닙니다! 한정식이고 뭐고 예약한 게 아깝다고 밥 먹으러 가는 게 아니라, 저희들이 내내 시장님 옆을 지켰어야 도리에 맞는 거였습니다. 저희가 제대로 보필하지 못해서 시장님께서 이렇게 다치셨는데 어떻게……!”
“그만하세요.”
“네…….”
최근 국회의원 출마 약속을 받고 충성심 맥스를 찍은 제1 행정부시장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이래 봬도 저 각성잡니다. 정말 괜찮으니까 오늘은 이만 호텔로 돌아들 가시죠. 그나저나 저 말고 다친 사람은 없습니까?”
“국방당 강미자 의원이 빠져나오다가 넘어져서 꼬리뼈에 금이 갔다고 들었습니다만, 그 외에 크게 다친 사람은 없습니다.”
“다행이네요. 제가 넘어지면서 앞에 분들을 밀쳤는데…….”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저희가 조사했습니다. 시장님이 넘어지실 때 무릎 까진 것 이상으로 다친 분은 없습니다. 오히려 국민당 박희갑 의원님께서 시장님께 사과를 드린다는 말씀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박희갑 의원이요? 누구셨지?”
“시장님을 밀친 구급대원이 들것으로 옮기고 있던 분입니다.”
“아, 구급대원이 밀었구나. 다행이네요. 보좌관이 밀었으면 직장생활 많이 힘들어졌을 텐데.”
회심의 농담이었지만 서울시 간부들은 이걸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어휴. 빨리 호텔로 돌아들 가십쇼. 국정감사가 이대로 끝날지, 아니면 재개될지 아직 모르잖습니까? 국민들께서도 많이 놀라셨을 테니까, 돌발행동 삼가고 자중하면서 조용히 대기합시다. 부탁드릴게요.”
“예, 시장님. 편히 쉬십시오.”
서울시 간부들은 들어왔을 때처럼 우르르 사라졌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덜렁 남은 건 피채원 한 명뿐이었다.
이제는 양복 차림이 익숙해진 피채원이 무뚝뚝하게 읊조렸다.
“저도 갈까요.”
“수행비서가 어딜 도망치려고 그래? 나 때는 모시는 영감님이 편찮으시면 퇴근은 생각도 못 했어.”
“저도 그렇게 할까요.”
“농담이고 이리 와 봐.”
피채원은 서류 가방을 손님용 소파에 툭 내려놓고 자기도 앉았다. 팔다리가 흐느적거리는 모습이 많이 힘들어 보인다.
“에쿠…….”
피채원은 시루떡처럼 소파에 늘어졌다. 녀석의 동태눈이 맥없이 허공을 응시한다. 입은 살짝 벌어져서 침이 새어 나올 것 같다.
얘가 왜 이렇게 맛이 갔지?
“배고파서요.”
“오늘 뭐 안 먹었어?”
“국회에서 불났다는 소식 듣자마자 비상 문자 돌리고 근처에서 대기했어요. 테러 아니면 게이트 사태인 줄 알았죠. 요즘에는 언제 어디서 게이트 열릴지 모른다고 그러셨잖아요.”
“합리적인 추측이네. 사실은 헌터 국회의원들끼리 야지 놓다가 마력 폭주해서 불똥 튄 거였는데 말이야.”
“……그거 진짜예요? 진실을 숨기려고 만들어낸 가짜 뉴스 아니었나요.”
“실화야.”
“아.”
피채원은 그 말에 뿅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냉엄한 현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모양이다.
“야. 호텔 가서 자.”
“이제 못 움직여요…….”
“그렇다고 병실 소파에서 자게? 여기 1인실이야. 이제 민증도 나왔는데 행동거지 조심해야지.”
“같은 방에서 잤다고 스캔들이니 뭐니 떠드는 사람들은 배가 부른 사람들이에요……. 괴수한테 쫓겨다니면서 쪽잠 자봤으면 그런 사소한 걸로 못 떠들걸요. 그리고 저는 그런 사람들 이야기 듣는 것도 이제 지쳤어요…….”
으음. 워낙 평소 감정표현도 드물고 말이 없어서 다들 잘 모르지만, 피채원은 개문 사태의 최심부에서 하루 동안 생존에 성공한 소녀였다.
그 24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조차 모른다. 부모님의 죽음을 목도한 이후, 혼자 아파트 옥상까지 도착했다는 것밖에.
하지만 그 24시간은 피채원이라는 인간을 영원히 일반인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남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 따위는 부차적인 문제다.
그녀는 가족이 괴수에게 잡아 먹히는 모습을 보았다. 저주받은 이능은 부모님의 심정까지 느끼게 만들었다. 피채원은 아직도 그때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사실. 이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군인 시체에서 주운 K2 소총을 국가에 반납하지 않고 보관하고 있는 사람들. 보존음식이 가득 찬 배낭을 항상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 믿을 만한 사람들과 작은 공동체를 구성하고 매일 번갈아 불침번을 서는 사람들.
바로 수도권 피난민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진 않다. 삶의 모습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운 좋게 불행을 겪지 않았을 것이고, 누군가는 평소처럼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영혼의 일부가 항상 과거에 갇혀 있을 것이다.
나처럼. 그리고 피채원처럼.
“시장님…….”
“응?”
“저 지금 너무 지쳐서 능력 못 끄는데…… 제 생각 안 하시면 안 돼요?”
“미안.”
피채원을 생각하지 말자. 피채원을 생각하지 말자. 하지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가 생각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소파에 널브러진 피채원이 중얼거렸다.
“코끼리…….”
“코끼리 생각도 하면 안 돼?”
“코끼리 고기는 맛있을까요?”
“너 진짜 배고프구나…….”
마침 서울시 간부들을 호텔로 데려다준 감 기자가 복귀했다.
“저 왔습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넥타이를 풀어 던지고 피채원이 누운 소파 건너편에 앉았다.
“채 부지사가 자꾸 따라오려고 하길래 떼어놓느라 고생했어요. 그 인간은 시장님 옆에 붙어 다니는 걸 일종의 특권으로 생각하더라고요. 사실 뭐 콩고물 떨어지는 것도 없이 수발이나 드는 건데 말이야. 그런데 채원이 너는 왜 이렇게 퍼져 있어?”
“아저씨…… 배고파요…….”
“야식으로 피자라도 시켜 먹을까? 아저씨가 살게. 딸이 돈을 엄청 많이 벌거든.”
피채원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저씨가 지윤이 카드 쓸 때마다 문자 날아가는 거……. 지윤이가 그거 보고 맨날 아저씨 욕해요…….”
“그러면 우리 한의원님한테 사달라고 그러자. 괜찮죠? 의원님?”
나는 흔쾌히 허락했다.
“예. 뭐. 빚이 16억이긴 한데 피자 시키시려면 시키세요.”
“친구가 재벌집 막내따님이면서 왜 그래요.”
오래된 고사는 만들어진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게 현실에서 적용되는 경우는 은근히 드물다.
하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호랑이가 제 말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으응. 우리 자기가 빚이 16억이었구나.”
“엇.”
“갚아줄까요?”
GS 그룹 총수 천금순 사장이 늦게나마 병문안을 찾아왔다.
* * *
[오늘 오후, 동백섬 국회의사당에서 일어난 화재로 국정감사가 중단되고, 국회의원을 비롯해 수천 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다행히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국회의사당 건물은 심한 손상을 입어 철거될 것으로 보입니다. 박근출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박근출 기자?]
[국정감사가 진행되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무부 장관의 특수활동비 사용을 두고 여야가 강경 대치하는 가운데, 국방당 심성훈 의원과 국민당 김태영 의원이 거친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자료화면/법제사법위원회]
[야! 심성훈! 조용히 해!]
[너나 조용히 해! 너 몇 살이야?! 이런 되먹지 못한 버르장머리를 봤나.]
[당신이나 예의 지켜!]
[극에 치달은 대치 끝에 여야가 몸싸움을 벌이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사상 초유의 초상능력자 국회의원들의 충돌은 예기치 못한 화재로 이어졌습니다.]
[서중섭/APT 사이커즈 부사장]
[심 의원이 호통을 치니까 번개가 쳤고, 거기서 번갯불이 튀면서 불이 났죠. 그걸 마력 폭주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본인 의지가 아니었던 겁니다…….]
[가벼운 불씨가 커다란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 마력으로 만들어진 불꽃은 국회의 소방설비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천화란/초상연구본부장]
[마력은 자연법칙에서 벗어난 힘이에요. 이번 국회의사당 화재에서 불이 꺼지지 않은 이유는 사실 명확히 밝힐 수 없어요. 마력 자체가 아직 분석되지 않았으니까요. 마력이 산소를 대신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 불꽃이 우리가 아는 불꽃이 아니라 별개의 마력 현상일 수도 있는…]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시작된 화재는 자칫하면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는데요. 다행히 한국을 대표하는 파이로키네시스인 홍선아 헌터협회장이 화재를 진압했습니다.]
[홍선아/헌터협회장]
[국회 쪽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도망쳐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국회에 또 게이트가 열렸나 싶어서 밥 먹다가 달려갔죠. 그런데 불이 났더라구요. 근데 불은 또 제 전문이잖아요? 손가락을 이렇게 딱 튕겨서…….]
[하지만 대피 과정은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혼란에 빠진 사람들이 국회 로비로 빠져나가면서 여러 사건사고가 있었는데요, 그중 가장 충격적인 건 계단에서 실족한 한승문 서울시장의 의식불명이었습니다.]
[이호정/국민당 원내대표]
[한승문 서울시장은 현재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가벼운 뇌진탕으로 보이나, 평소 과로와 스트레스가 겹쳐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사고의 원인은 한승문 시장을 밀친 구급대원이 아니라, 지체장애인을 위한 통로를 마련하지 않은 우리 한국 사회의 배려심 부족에 있습니다. 국민당 지도부는 현재 누군가에 대한 규탄성명을 내려는 의지가 없습니다. 법사위 화재를 유발한 ‘국방당’ 심성훈 의원도 용서합니다. 국민 여러분께 부족한 모습을 보여드려 정말 송구스럽고…….]
[국회는 안전을 위해 국정감사를 잠시 중단하기로 했고, 다행히 동백섬 국회의사당은 곧 철거 수순을 밟을 예정이지만 화재로 붕괴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국회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에 금이 갔을지는, 다가오는 총선을 통해 밝혀질 전망입니다. KBC 박근출이었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국경 없는 기사회의 총재, 노아 뤼미에르 EU 집행위원장이…….]
“휴우…….”
나는 뉴스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보호자용 침대에 다리를 꼬고 앉은 천 사장이 의아한 기색으로 물었다.
“왜요……?”
“사실 계단에서 자빠지는 게 카메라에 찍혔거든요. 뉴스에 나올 줄 알았는데 방송국 분들이 그래도 의리가 있네요.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에 사장님들이랑 자주 만난 덕을 여기서 보는 모양입니다.”
“으응…….”
하얀 비즈니스 양복을 차려 입은 천 사장은 토핑이 옷에 떨어지는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으며 피자를 우물거렸다.
그녀가 나긋한 목소리로 감 기자와 피채원에게 권했다.
“몇 판 더 시킬까요? 피자 오랜만에 먹으니까 나도 맛있네…….”
“아유! 괜찮습니다. 회장님.”
“아냐. 아냐. 병원에 피자 싹 돌리죠,. 지금쯤 야간 당직서는 직원들은 우리 병실 피자 냄새 맡고서 지들만 입이냐고 투덜거리고 있을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감 기자와 천 사장은 나의 좌청룡 우백호였으므로 당연히 안면이 있었다. 아! 오스트레일리아 외국인 헌터들을 등쳐먹고 외화 조달하던 추억이여…….
“그런데.”
갑자기 천금순이 길쭉길쭉한 손가락으로 감 기자를 척 가리켰다.
그녀의 손톱에는 보석으로 장식된 붙임손톱이 붙어 있었다.
“나는 천 회장이 아니라 천 사장이에요. 왜냐면 회장이라는 호칭은 쪼끔…… 노티 나니까.”
나는 아직도 ‘천사’장이 자기 호칭으로 엔젤 드립을 치던 시절을 트라우마처럼 기억한다.
“왜 호칭에 대한 사연을 들을 때마다 이유가 바뀌는 거죠?”
“그걸 설명하는 것부터가 섹시하지 않네요…….”
“그리고 감 기자님은 저한테 큰형님 같은 분입니다. 삿대질하면서 후까시 잡지 마십쇼.”
“그건 알고 있어요……. 우리 자기에 대한 건 한참 전에 뒷조사를 끝냈으니까.”
감 기자가 흠칫 놀라며 천 사장과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자기?”
천 사장이 해명했다.
“나는 우리집 뽀삐도 자기라고 불러요. 경호팀장이랑 비서실장도 자기라고 부르구요. 한 의원님이랑 저는 깔끔한 정경유착 관계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대체 어떻게 해야 정경유착을 깔끔하게 하죠.”
“그걸 설명하는 것부터가…… 됐어요.”
천 사장은 하얀 양복 안주머니에서 보라색 손수건을 꺼내 입을 닦았다.
나는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그녀의 블링블링한 손톱에 대해 물어봤다.
“손톱에 붙인 보석, 그거 다이소에서 샀죠?”
“우리 자기가 이제 좀 나에 대해 아네요…….”
“약간 또라이 같은 거 알죠?”
“나는 또라이가 아니에요. 세상 사람들이 나를 못 따라오는 거죠. 진짜 또라이는 H씨라고 한국에서 정치하고 있어요. 분명히 헌터 사회 장악하자마자 쿠데타 일으킬 줄 알고서 테마주 투자했는데 조용히 살더라고요. 개잡주 됐어요.”
어쩐지 국민당 창당할 때 수상할 정도로 많이 퍼주더라 싶었다.
어쨌든 바쁜 사람이 병문안 와준 건 고마우니까 인사라도 해야 했다.
“야행성 인간이 이 시간에 병문안을 온 거면……. 거의 눈 뜨고 일어나자마자 온 거죠?”
“원래는 모닝헛개차 마실 시간이에요.”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냉장고에 박카스 있으니까 박스째로 가져가셔도 돼요.”
“피채원 독심술사 맞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