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51화
EP 39-상실의 시대
다행히 국회를 불태운 화재 때문에 국회의원이 12명 빼고 전부 죽어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권력을 독점하는 끔찍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마침 국회 인근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고 있던 대한민국 최고의 화염술사, 홍선아 헌터협회장이 출동해 화재를 진압한 것이다.
그러나 불이 꺼지든 말든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대피했다.
그 탓에 국회의사당 2층에서 1층 사이의 계단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나가려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이건 뭐, 다리 장애인은 죽으라는 건가?”
국회의 엄숙한 권위를 표현하는 웅장하고 장엄한 계단을 보고 있으면, 마치 국회의사당 건물이 나한테 ‘히히 못 지나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물론 15살부터 의족을 끼고 살았으니 이젠 의족이 발처럼 느껴지는 경지에 이르렀지만, 계단만은 나도 어쩔 수 없다.
결국 감기자가 앞에서 길을 뚫고 이호정이 나를 부축했다.
“우리나라는 마이너리티에 대한 배려가 너무 부족해. 이렇게 계단만 만들어 놓으면 어떡하냐고. 최소한 옆에다가 경사로는 지어놔야 구루마라도 끌고 다니지…….”
“공감은 하는데 어디서 그런 말 하지 말아요.”
“표 떨어질까 봐?”
“아뇨. 서울시장이 불평했다가 건물 디자인한 사람이 일자리 잃을 수도 있으니까.”
“이건 국회의원이 법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 아니냐? 네 잘못 같은데?”
“어이가 없네. 자기도 국회의원이었으면서 그때 해결하지 왜 지금 와서 그래요?”
“생각해 보니까 나 도로교통법이랑 장애인 복지제도 바꾸려고 정치 입문했는데, 어쩌다 헌터 전문가가 됐지?”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으니까요.”
“생각해보니까 그때부터 내 인생이 꼬인 것 같애.”
“모든 사람의 인생이 꼬였죠. 어느 날 괴물들이 인간 바비큐를 만들 줄 누가 알았나.”
영차영차 거리며 계단을 내려가던 와중에. 뒤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만요! 의원님 지나가십니다!”
“야, 가만히 있어. 가만히 있으라고 좀…….”
아까 법사위에서 마력을 정통으로 얻어맞고 입에 게거품을 물었던 국회의원이 들것에 실려 내려오고 있었다.
마음이 급한 보좌관이 대감님 모시고 다니는 조선시대 가마꾼처럼 길을 뚫었고, 들것에 실린 늙은 국회의원은 침대 신세가 창피한 모양인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실례합니다! 지나갈게요! 죄송합니다!”
구급 요원과 보좌관들이 계단에서 낑낑거리며 국회의원이 실린 들것을 날랐다.
거기서 사고가 터졌다. 그들이 내려가면서 나를 툭 치고 옆으로 밀어버린 것이다.
“어어. 어. 어어?”
원래 이 정도 힘으로 툭 밀었다고 사람이 넘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왼쪽 다리가 정강이 지점에서 절단된 사람이었다.
“으아아아!”
나는 그대로 쓰러져 계단에서 굴렀다. 그리고 내 앞에 있던 사람들도 도미노처럼 우르르 쓰러졌다.
당시 국회에서 대피하던 언론인들은 대피 과정도 방송각이라면서 생방송을 찍어대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이 모습은 카메라에 담겼다.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과거는 언제나 동영상처럼 재방송된다.
꿈은 언제나 신호등에서 시작된다.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뀌는 순간 아버지는 엑셀을 밟으며 차량을 출발시킨다.
어머니는 조수석이 아니라 나와 함께 뒷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아버지와 늘 그렇듯 냉전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다지 화목한 가정은 아니었다.
가족을 버리고 도망친 반건달 외할아버지 때문에 가난을 씹으며 자란 어머니는 재산만 보고 아버지와 결혼했고, 아버지는 그걸 너무 늦게 눈치채서 배신감을 겪었다.
그 결과, 아버지는 사업 스트레스를 어머니에게 신경질을 부리며 풀었고, 어머니는 그 순간에는 당해주지만 몇 주에 걸쳐 천천히 갚아주는 사람이었다.
결국 아내에게 화를 냈다는 죄책감을 못 견딘 아버지가 화해를 건네면 잠깐의 평화기를 가지다가, 사업이 안 좋게 굴러가면 아버지가 또 성질을 냈다,
이 영원한 전쟁과 휴전의 굴레 속에서 나는 살아남기 위해 중립외교를 펼치는 영악한 아이였다. 사춘기 때 조금 방황하긴 했지만 결국 현실을 인정하고 실리를 챙기기로 한 것이다.
물론 두 사람 사이에 호감이 아예 없으셨던 건 아니었다. 특히 세월이 갈수록 부부에게 사랑이 아니라 전우애가 중요해지는 순간이 오며, 갱년기가 온 부모님은 뒤늦게 다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여전히 냉전이었다.
“안전벨트 맸니?”
“응.”
오늘은 가족 모두가 친할머니 댁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나와 친할머니의 생일이 같아서 보통 생일잔치를 같이했다.
그러나 친할머니는 당연히 가난했던 어머니를 싫어했고, 그걸 겉으로 드러내며 구박하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착하니까 널 우리 집안에 들인 것’이라는 태도를 견지하셨다.
그래서 어머니가 내가 섭섭할 수도 있다는 핑계를 대며 앞으로 생일잔치 따로 하자고 주장했다가 아버지와 대판 싸운 참이었다.
“…….”
“…….”
차 안에서는 한 마디도 오가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보기에 심하게 싸운 건 아니라서, 한 이틀 정도면 상황이 개선될 전망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해줄 갈비찜 생각이나 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그러나 우리가 탄 차량이 할머니 댁에 도착하는 일은 영영 없었다.
어떤 아이가 도로로 뛰어들었다.
아버지는 그 아이를 피해 핸들을 틀었다.
우리 차량은 중앙선을 넘었고, 이내 달려오던 트럭이 우리를 덮친다.
악몽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계속 이어진다.
유리창이 깨지고, 범퍼가 으스러지고, 나를 이 세상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혼이 일그러진 육신에서 떠나갔다.
불행히도, 나는 기절하지 못했다. 고통과 혼란에 정신이 나가 엉엉 울며 아스팔트로 기어나가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어느새 구급차가 도착했다. 구급대원은 나를 들것에 올려 앰뷸런스에 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다. 왼쪽 다리도 정강이 밑이 사라졌다.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
가장 먼저 나를 찾아온 건 횟집 문을 닫고 달려온 나의 이모부 여도식. 그는 훗날 나의 아버지가 되어준 선량한 사람이었지만, 그때는 나의 인척姻戚에 불과했다.
그 덕에 이모부는 잠깐 울고서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최대한 침착하게 의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사태를 정리했다.
그다음에 찾아온 건 나의 이모 변소정이었다. 대형 로펌 변호사인 그녀는 공부에 가망이 없는 친딸 여도연 대신, 내 성적을 수시로 확인하며 대리만족을 하는 기이한 친척이었다.
조금 인간미가 없는 사람이었지만 이모에게 우리 어머니는 아주 각별했다. 끔찍한 가난 속에서 이모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희생 덕분이었으니까.
특히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이모는 어머니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했다. 가족을 버리고 도망친 외할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소녀가장을 자처하며 동생을 키웠으니까.
따라서 우리 이모에게 내 어머니는 자매이고, 아버지이고, 친구이고, 은인이었다.
그런 사람을 어느 날 갑자기 잃어버린 이모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녀는 미친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면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다리를 확인하더니 그 자리에서 쓰러져 오열했다.
이모부가 달려들어 부축했지만, 이모는 결국 혼절할 때까지 비명을 지르며 통곡했다.
나는 병실 침대에서 진통제에 취한 채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평소 안 그러던 사람이 저러고 있으니까 현실 같지가 않았다.
그 덕에 나는 잠깐 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일이 이 지경이 된 원인을 찾아봤다.
실내화 가방을 빙빙 돌리며 도로에 뛰어든 꼬맹이 생각이 났다.
우리 부모님의 사인은 교통사고가 아니라 무단횡단이었다.
무단횡단? 나도 자주 한다. 우리 어머니도 자주 했다. 그래서 헛웃음이 나더라.
“법이라는 게 씨발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그렇게 혼잣말을 할 때쯤이면 꿈에서 깬다.
이번에도 그랬다.
* * *
낮선 천장이다.
정신을 차리니 병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얘! 정신이 드니?”
“…….이모?”
“몸은 괜찮아? 어디 이상한 덴 없고?!”
방금 꿈속에서 오열하던 이모가 머리맡에 있었다. 새치만 조금 늘어났지 얼굴은 젊었을 때 그대로다.
역시 외할머니를 꼬시고 도망친 외할아버지도 그렇고,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잘나가는 사업가인 아버지를 데리고 결혼에 골인한 어머니도 그렇고, 역시 우리 가문 사람들은 참 미인이었다.
“승문아. 빨리 대답 좀 해봐. 응? 괜찮은 거 맞아? 어?!”
“잠깐 요단강 건너가서 엄마 아빠 만나고 왔어요.”
“무슨 그딴 농담을……! 내가 미쳐 정말!”
이모가 내 팔뚝을 찰싹찰싹 때리는 와중, 옆에 있던 이모부가 사람 좋게 웃었다.
“아이고, 우리 서울시장님 옥체가 무탈하시니 정말 다행입니다.”
“물…… 물 좀 줘요.”
“당연히 제가 갖다 드려야죠. 여기 물 대령했습니다.”
이모부는 두꺼운 근육질의 팔뚝으로 아주 공손하게 생수를 내밀었다. 나는 그걸 보고 피식 웃었다.
“이거 말고 더 좋은 생수 없어요? 나 연예인들 먹는 생수 말고 안 먹는데.”
“주는 대로 처묵어라. 물에 끕이 어딨노.”
“흐흐…….”
철없는 인간 두 명이 낄낄거리고 있으니까 언제나 그렇듯 이모만 뿔이 났다.
“이 상황에 웃음이 나와?”
“계단에서 구를 수도 있지 왜 이렇게 잔걱정이 많아요. 정말 괜찮으니까 진정하세요.”
“계단에서 굴렀다고 기절을 하니까 그렇지!”
“계단에서 굴렀는데 기절만 했으니까 다행 아닐까요?”
이모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의자에 풀썩 쓰러졌다. 아마 이 집안 정상인은 자기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나는 이모부에게 물어봤다.
“여기가 어디죠?”
“어디긴 어디겠노. 병원이지.”
“정말 도움 되는 대답이네요.”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그래도 서울시장이라고 호텔 같은 1인실에 들어와 있었다.
마침 병실 문이 열리고 하얀 가운을 걸친 의사 선생님이 들어왔다.
“환자분, 깨어나셨습니까?”
의사는 살짝 긴장한 기색으로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며 내 상태를 확인하더니 몸 상태를 알려줬다.
기절했던 이유는 가벼운 뇌진탕. 자세한 검진이 필요하지만 아마도 후유증은 없을 것.
무릎이랑 팔꿈치가 까졌지만 다행히 상처가 깊진 않음. 그리고 혈당이 많이 높다.
“그리고 혹시 오른쪽 발목…… 안 아프십니까?”
“안 아팠는데 의사 선생님 말씀 듣고 나니까 아프네요.”
“많은 분들이 그러시죠. 2도 염좌입니다. 수술은 안 하셔도 되지만 당분간 깁스를 하셔야 될 거에요.”
이런…… 왼쪽 다리가 없는 나에게 오른쪽 다리 부상은 곧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한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휠체어 신세는 익숙하지만 정계에 입문한 뒤로는 의족으로만 걸어 다녔다. 항상 당당하게 다녀야 했으니까.
의사는 내게 서류와 펜을 내밀었다.
“여기 입원동의서에 싸인 부탁드립니다.”
“예…….”
“그리고 여기도…… 연락처 적어 주시고요.”
“예…….”
“그리고 여기 수첩에는…… ‘다혜야, 헌터 아카데미 합격 기원할게’라고 적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다혜 씨가 누구죠?”
“제 동생입니다.”
“그렇군요.”
나는 입원동의서와 기타 서류에 싸인을 마치고 펜을 돌려줬다.
의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병실을 나가려다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 제가 부천 사람입니다. 개문 직후에 가족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피신했죠.”
“아. 그러셨군요. 정말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아뇨. 그렇게 고생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한 번도 괴수와 마주친 적이 없으니까요. 기껏해야 지평선 끄트머리에서 점처럼 보이는 비행체만 딱 한 번 봤습니다.”
“…….”
“그런데 시장님께서는 그때 직접 싸우시면서 피난민들이 대피할 시간을 벌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그러면 저와 제 가족은 시장님께 목숨을 빚진 게 됩니다. 그래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감동을 깨기는 싫지만, 이 말에는 어폐가 있었다. 개문 직후에 나는 계엄사령부와 지하국회 사이에서 간이나 보면서 발발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도 마찬가지다. 나는 조국과 민족을 구하고 국민의 생명을 위해 투쟁한 호국열사가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생존을 위해 싸웠다.
감사를 받아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
압구정파의 든든한 리더였던 데이비드 김을 비롯한 수많은 헌터들, 군인들, 용기 있는 시민들, 의료진들, 국정원 요원들, 심지어 생체실험을 자행한 차재균 계엄사령관조차 이 감사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러니 누군가는 상주의 완장을 차고 수많은 전몰자를 대신해서 이 인사를 받을 의무가 있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게이트 사태를 막기 위해 몸을 던진 모든 사람들이……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다면 그분들이 했던 일에 가치가 있었다고 확신할 겁니다.”
내가 의례적으로 겸양이나 떨면서 몸을 사리는 게 아니라, 정말 진지하게 눈을 마주치며 화답하자 의사는 오히려 황망한 듯했다.
흔한 일이다. 나는 금세 헤실거리는 표정을 지으며 분위기를 풀었다. 의사가 머쓱하게 웃으며 병실을 나섰다.
“아……. 제가 너무 개인적인 욕심으로 환자분 휴식을 너무 오래 방해한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저한테도 위로가 됐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저번 서울시장 전국선거 때…….”
“뽑아주셨구나?”
“크흠……. 하여간 앞으로도 응원하겠습니다. 쾌유하십시오.”
“예, 감사합니다. 선생님.”
조금 민망한 분위기에서 인사를 마치고 의사는 병실에서 떠나갔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이모와 이모부는 나를 묘한 얼굴로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