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48화 (248/296)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48화

EP 38-불꽃이 튀기는 국정감사(3)

신新 국회의사당은 동백섬에 있다.

즉, 부산역에서 걸어갈 만한 거리가 아니다. 우리는 부산역 인근에서 아침밥을 해결하고, 여유를 즐기며 걷기는커녕 결국 택시를 타고 국회의사당 근처에서 내려야 했다.

감기자는 나이에 맞지 않게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계속 놀렸다.

“이게 뭡니까? 그냥 다 같이 모여서 차 타고 가면 되는 걸,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 택시 타고,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돈 낭비, 시간 낭비…….”

“조용히 하세요.”

“내, 참. 사람이 권력에 익숙해지면 성격이 이상해진다더니 의원님도 예외는 아닌가 봅니다. 아니, 우리가 부산 처음 오는 것도 아니고, 게이트 터지고 거의 맨날 부산에서 살았으면서 무슨 바람이 들었길래…….”

“아, 그만하시라구요!”

* * *

“하여튼 윗사람 고집 들어주다가 아랫사람들만 고생하는 건 어딜 가나 똑같아요. 제가 그 얘기 했습니까? 옛날에 종군기자 하면서 소말리아에 있었는데, UN에서 의료진 격려한다고 높으신 분이 왔었거든요. 근데 프랑스 사람이라 그런가, 꼭 현지 음식을 먹어봐야겠다고 똥고집을 부려서 길거리에서 이상한 거 사 먹었는데 배탈 나서 쓰러진 거 있죠? 그래서 국경 없는 의사회 사람들이 의료봉사하다가 기겁해서 달려와서 그 양반 붙잡고…….”

“그 얘기 네 번 정도 들었습니다.”

국회의사당 근처라 그런지 벌써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감기자는 농담을 멈추고 정무부시장으로 돌아와 내게 말했다.

“단톡방 보니까 다들 국정감사장에 있답니다. 먼저 가서 준비할 테니까 천천히 오십쇼. 아직 시간 좀 남았으니까…….”

“네. 저는 인사 나누고 다니려면 조금 걸릴 것 같네요.”

감기자가 후다닥 떠나자마자 호시탐탐 말 걸 기회를 노리던 명망가가 다가왔다.

“시장님, 여기서 다 뵙는군요.”

“오! 서중섭 헌터. 며칠 전에 보고 또 보네요. 반가워요.”

“하, 하하, 그게, 저번에 헌터들끼리 모여서 단체 방문했던 건 저희가 무슨 압박을 드리려고 그런 건 아니라는 거 아시죠?”

“이럴 때 아니면 얼굴 못 보니까 우르르 오는거 제가 다 압니다. 동창회 비슷한 느낌으로 정치인 조지러 오는 건 당신들밖에 없어요.”

국내 기준 8등급 초상능력자. 북미-유럽 기준으로도 S랭크인 헌터 서중섭이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격계 능력자로, 국경 없는 기사회에 다니엘 웰링턴이 있다면 한국 압구정파에는 ‘전기뱀장어’ 서중섭이 있었다.

전기뱀장어는 홍선아가 붙인 별명이다.

“그나저나 서중섭 헌터도 국감에 관련이 있었나요? 최근에 APT 에이전시랑 사이커즈랑 합치면서 부사장으로 취임하셨다고 들었는데 초상관리부에서 증인으로 소환했습니까?”

“아뇨, 그게…….”

서중섭은 난처한 기색으로 얼버무렸다.

“사실 장인어른이 증인으로 출석하셔서…….”

“앗.”

그는 재벌가에 데릴사위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장인이 시원하게 한탕 해먹은 모양. 처벌받진 않겠지만 망신살이 좀 하겠군.

하여튼 내 주변 헌터가 죄다 9등급이라 조금 우습게 보이는 거지, 서중섭처럼 8등급 헌터만 되어도 재벌가에서 가족으로 포섭하려고 하는 수준이었다.

그나저나 8등급짜리 걸어 다니는 전략폭격기를 국정감사장에 사위랍시고 데리고 다니는 재벌 회장이라. 의외로 위력이 있는 것 같기도?

공교로운 상황을 서로 어색하게 웃어넘기고 신변잡기나 공유하며 국회로 가고 있으니, 또 아는 얼굴이 다가왔다.

그것도 너무 잘 아는 얼굴인 홍선아 협회장이었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해요?”

“오! 홍캡!”

홍선아를 본 서중섭의 얼굴에서 가면이 한 꺼풀 벗겨졌다. 같은 압구정파 식구다 이거지?

서중섭이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자 홍선아도 피식 웃으며 서중섭의 팔을 툭 쳤다.

“캡? 말 같지도 않은…….”

“선아는 영원한 우리 캡틴이지. 며칠 전에는 인사도 제대로 못 했네. 요즘은 잘 지내?”

“그냥 사는 게 전부 심심해요. 그나저나 오빠는 재벌집에 장가가고 얼굴이 확 폈네요?”

“얘네는 나만 보면 재벌가래. 야, 나 연애결혼했어.”

“그걸 누가 믿어…….”

“믿기 싫음 말든가.”

나도 슬쩍 끼어들어 말을 보탰다.

“선아 씨도 국감 출석해요?”

“네. 아직까진 헌터협회장이니까요. 내일 출석이긴 한데 와서 분위기나 보고 있죠.”

“이건 뭐, 줄빠따 맞으려고 순번표 뽑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요!”

서중섭이 내 눈치를 슬쩍 보고 농담을 얹었다.

“변호사협회장은 안 와도 되는데 헌터협회장은 와야 한다? 이거 정치인들이 주도하는 헌터 차별이에요.”

“맞아요!”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가 정치인은 맞지만 사실상 헌터 패거리 안에 속해 있는 덕에 분위기는 줄곧 화기애애했다. 사골처럼 우려먹는 신분당선 대탈출과 서울 게이트 폭주 사건도 당연히 대화에서 빠지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수다 삼매경에 빠져 쭉 걸어간 끝에 동백섬 신新 국회의사당에 도착했다.

부산 해안가에 자리 잡아 해양괴수로부터 부산을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랜드마크.

하지만 국회 출입 기자들에겐 부산 수호의 의지고 나발이고, 바닷바람에 시달리게 만드는 최악의 국회의사당이었다.

“한승문 시장이다!”

“야, 카메라 챙겨.”

“에이씨, 컵라면에 방금 물 따랐는데…….”

국회 입구에서 대기하던 기자들은 반쯤 거지꼴로 내게 달려왔다. 아는 얼굴도 몇 명 섞여 있어서 조금 측은했다.

가장 나이가 많은 기자가 푹 잠긴 목소리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바닷바람을 정통으로 맞고 있었는지 머리가 봉두난발이었다.

“시장님, 안녕하세요.”

“완전히 파김치가 다 되셨네.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다 일인데요.”

“빨리하고 끝내죠.”

갑자기 기자들의 구부정한 허리가 펴지고, 푹 잠긴 목소리가 뉴스에 나올 법한 그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바뀌었다.

그리고 갑자기 방금 막 처음 봤다는 듯이 다시 인사를 해왔다.

“안녕하십니까! 한승문 서울시장님, KBC 박근출입니다.”

“반갑습니다.”

“강서구 재개발이 재검토된다는 소식에 많은 시민들이 아쉬움을 표하고 있습니다만…….”

“많은 기대를 모은 사업이 지체되어 참으로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무산된 것이 아니라 정책적인 재검토 과정에 있기 때문에, 조만간 새로운 형태의 도시계획 사업을 선보일 수 있을 듯합니다. 시정부를 믿고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생각보다 서울 탈환이 지체되는 모습에 많은 수도권 난민들이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개문 사태로 대한민국이 서울을 상실한 순간부터 국민들의 마음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렸습니다. 저 또한 정치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아픔을 느낍니다. 그러나 무너진 서울을 재건하는 것은 굉장히 고되고 위험한 작업입니다. 잔해를 치우고 건물을 올리는 건설 노동자분들부터, 게이트를 폐문하고 산적한 괴수들을 사냥하는 헌터분들까지. 서울 탈환에 헌신하는 모두가 도시의 폐허에서 언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는 괴수의 위협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서울 탈환의 모토는 ‘속전속결’이 아니라 ‘우보만리’입니다. 우직한 황소처럼 천천히,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묵직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조금 시일이 지체되더라도 어떤 부실공사나 안전사고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기성 정치인처럼 사자성어 운운하면서 당연한 소리를 멋있게 하니까 기자들 표정이 안 좋다. 서비스 타임을 줘야겠다.

“서울 탈환은 재개발 사업이 아닙니다! 서울 탈환은 실질적인 전투와 사상자가 발생하는 전쟁입니다! 건설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이유로 현장 인력에게 무리한 전진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원칙대로 가겠습니다.”

조금 센 멘트를 던지니까 기자들 표정이 좋아졌다. 기사 제목이 벌써 눈에 보인다. [한승문 시장 파격 발언……. “아파트 지으려다 사람 죽는다.”]

여기서 몇 마디 더 하려다가 살짝 눈치를 보고 인터뷰를 짤랐다.

“이쯤 할까요?”

“아……! 조금만 더 해주시지요.”

“오늘 국감 있어요. 저도 이제 들어가야죠.”

인터뷰가 끝나니까 조금 경력 있어 보이는 기자가 넉살 좋게 말을 건네왔다.

“이야, 편집점 완전히 예술로 잡으십니다. 이거 방송하셔도 될 것 같은데.”

“방송이요? 뉴스는 자주 나오죠.”

“오늘 화면 되게 잘 뽑혔습니다. 나중에 저희 데스크에도 한 번 나와주시죠?”

“그럼요. 언제든지요. 이제 가볼게요. 다들 수고하십시오.”

“예, 들어가십시오.”

내가 기자들에게서 벗어나 국회로 들어가자 눈치껏 빠져 있던 홍선아와 서중섭이 다가왔다. 서중섭은 상당히 재밌는 구경을 했다는 표정이었다.

“조금 신기하네요. 분위기가 조금 더 딱딱할 것 같았는데.”

“자주 보는 얼굴들인데 어떡해요. 헌터판도 그렇잖아요?”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긴 하죠.”

“이게 우리나라 땅이 좁아서 그래요. 가수들도 그래. 미국은 래퍼들끼리도 디스하고서는 평생 안 보잖아요. 근데 우린 다음 날 뮤직뱅크에서 봐야 한단 말이야. 그런데 정치판은 오죽하겠어요? 맨날 국회에서 보는데?”

우리는 국회 로비에서 작별인사를 나눴다. 홍선아가 손목시계를 보며 투덜댄다.

“저는 초상관리위원회라 그런지 제 앞 순서가 너무 많네요. 초상관리부, 초인지원청, 초상연구본부. 하여튼 초상관리부 만든 사람이 자기 파이 챙기겠다고 부하들을 너무 많이 만들어놓는 바람에. 칫.”

“아, 미안합니다. 예?”

홍선아와 내가 티격대자 서중섭이 당황하며 끼어들어 화제를 돌렸다.

“저는 이만 정무위원회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국감장에 서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장인어른을 모셔야 해서요.”

난 그 이야기를 듣고 서중섭의 장인어른이 무슨 범죄를 저질렀는지 유추할 수 있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국무총리 국정감사를 담당하고, 국무총리 휘하에는 금융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존재했다.

즉, 금융범죄를 저질렀거나 인수합병에서 개수작을 부린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대답했다.

“그래요. 정치인들이 카메라 앞에서 너무 못되게 굴 수도 있는데, 감정이 실린 게 아니라 그냥 액션이니까 너무 이입하지 마세요. 물론 우리 서중섭 헌터 장인어른께서 이미 조언해 주셨겠지만…….”

“아닙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시장님께선 어느 곳으로 가시는지……?”

문득, 이제부터 전쟁터에 들어간다는 실감이 났다. 나는 얼굴에 정치인의 갑옷인 미소를 깔았다.

“저는 행정안전위원회로 갑니다.”

* * *

지방자치단체는 엄연한 선출권력으로 어느 정부 부처의 소관기관이 아니다.

그러나 지방자치에 관한 업무를 행정안전부가 담당하므로, 관행적으로 국회 행안위원회가 지자체 국정감사를 담당한다.

이건 고리타분하고 사문화된 이야기가 아니다.

쉽게 말해, 행정안전부가 지방자치단체의 상전 노릇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므로, 이는 국정감사장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감사 대상자가 개겨도 된다는 뜻이다.

“존경하는 의원님, 저는 그 말씀에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이게 국정감사장에 선 사람의 태도입니까! 제가 20년간 국정감사하면서 이렇게 뻔뻔하고 오만한 태도는 처음입니다! 처음!”

국정감사는 기본적으로 국민에게 ‘선출된’ 권력이 대통령에게 ‘임명된’ 권력을 감독하는 것이니, 국정감사장에 선 사람들은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국회의원에게 설설 기어야 한다.

괜히 국정감사장에서 국회의원이 소리 지르는데 공무원들이 당하기만 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지자체장은 국회의원과 마찬가지로 투표로 뽑힌 선출직이다.

그래서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는 감사 대상자가 국회의원에게 개기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마치 나처럼.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이렇게 증거가 있는데 사실이 아니라뇨!”

“국무조정실의 감찰 결과보다 일개 시민단체의 조사 결과가 더 신빙성이 있다는 논지는 제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가불기다.

이 논리를 파훼하려면 국무조정실을 공격해야 하는데, 여당인 국방당 국회의원들은 정부를 공격할 수 없다.

내가 이겼다. 나는 속으로만 사악하게 씨익 웃었다.

아니나 다를까, 핵심 근거를 잃어버린 국회의원은 이를 악물고 헛소리를 하며 자기 발언시간을 전부 허비하고 말았다.

국방당의 질의가 끝났으니 국민당의 질의 차례다.

그리고 나는 국민당의 창당인이다.

“국민당 국회의원 장형석입니다. 질의 시작하기 전에 국정감사 준비하느라 고생하신 한승문 시장님과 서울시 공직자 여러분들께 수고하셨다는 말씀 먼저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국민당 국회의원 모두가 나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국민당에서 정치하면서 한승문 이름 석 자 안 팔아먹은 사람은 없었다.

국민당의 국정감사는 대충 이랬다.

‘이거 좀 이상한데 니가 잘못한 거야?’

‘아뇨.’

‘그래. 앞으로도 잘 하자.’

국방당의 야유가 있었지만 국민당 의원들은 뻔뻔하게 철판을 깔고 나를 위한 휴식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그때, 국방당 쪽에서 팔짱을 낀 국회의원 하다가 못마땅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마이크에 잡히지 않을 정도의 작은 혼잣말이었다.

“아주, 상전을 모시네. 상전을 모셔…….”

이건, 나를 위한 휴식 시간을 벌어주려던 국민당 국회의원들에게 아주 좋은 기회였다.

안행위 국민당 간사를 맡은 노련한 3선 의원이 총대를 매고 분연히 떨쳐 일어났다.

“당신 지금 뭐라 그랬어!”

“뭐요?”

“방금 뭐라 그랬냔 말이야!”

“이, 뭔…….”

상전을 모신다고 중얼거렸던 국방당 의원은 마침 국방당 간사였다. 그는 어이가 없었는지 잠깐 얼을 탔지만, 곧장 반격에 나섰다.

“그럼 이게 국정감사야! 서울시장 칭찬하기 대회지!”

“잘한 건 잘했다 그래야지! 그럼 트집만 잡아?! 당신이 야당해 그럼!”

“어디서 당신이래!”

“그럼 당신이라 그러지 뭐라고 그래!”

“창피한 줄 알아! 국감장에서 뭐 하는…….”

“당신이나 챙피한 줄 알아! 남의 발언 시간에 끼어들고 말이야!”

국회 개싸움을 수십 번 넘게 관람했던 전직 보좌관으로서, 이 싸움에는 살짝 감정이 담긴 것 같아서 의아했다.

정무부시장 자격으로 내 옆에 앉아 있던 감기자가 귓속말로 살짝 귀띔해 줬다.

“둘이 원래부터 사이가 별로였대요. 저도 이번에 준비하면서 알았습니다.”

“국감 때문에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 쌓인 게 있는 거죠?”

“젊은 시절부터 같이 활동했는데 한 명이 전향했어요.”

으음. 그런 사연이 있었고만. 적이 된 동지라. 하여튼 정치판에 별별 일이 다 있다.

국민당 간사인 3선 의원의 열연 덕에 국정감사의 대상인 서울시 간부들은 본의 아니게 가장 앞줄에 줄줄이 앉아서 두 국회의원의 싸움을 구경하는 처지가 됐다.

나도 짤막한 휴식을 만끽했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서울시 인사들 멘탈은 회복되고, 그들을 공격해야 할 국방당 의원들의 멘탈은 깎여나간다.

이런 형세를 눈치챈 국방당 국회의원들이 두 간사의 싸움을 중재하고 다시 국민당의 질의가 이어졌다.

물론 국민당의 형식적인 질의는 내 얼굴에 금칠이나 해주는 휴식 시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국방당 의원들은 조금이라도 투덜거렸다간 눈을 부릅뜨고 있는 국민당 3선 의원이 또 깽판 칠까 봐 뭐라고 말을 못 했다.

“……예. 이것으로 질의 마치겠습니다. 성실하게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이지모드 국정감사가 끝나자, 다시 국방당의 턴이 돌아오며 하드모드 국정감사가 시작되었다.

아까 당한 게 있는 만큼 공세의 수위가 높아질 터였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나선 국방당 국회의원은 나와도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름은……. 생각이 안 나지만, 예전에 내가 대통령 비서실장을 하면서 국회를 돌아다닐 때, 나랑 커피도 한 번 먹었다.

그런데 오늘은 마음을 독하게 먹고 나온 모양이었다.

“국방당 김혜민입니다. 우리 한승문 시장님…… 국회에 오랜만에 오셨네요? 그죠?”

40대 후반의 재선의원이 서울시장에게 건네는 인사말 치고는 간당간당했지만, 내가 너무 젊은 게 죄였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싸가지 없다는 소리 듣기 싫으면 웃으면서 받아야지. 뭐 어쩌겠는가.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서울시장 당선되시고 첫 국정감사시죠? 이번에 준비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서울시 간부 분들도 그렇고요.”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보내주신 자료에는 문제가 많아 보여요.”

아이고.

그녀는 통계자료를 팔랑거리며 시동을 걸었다. 그 이후부터는 숫자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숫자 이야기는 이렇게 결론이 났다.

“시정이 완전히 엉망입니다!”

“존경하는 김혜민 의원님. 대답할 시간을 주십시오.”

“질문 아직 안 끝났습니다. ppt 좀 띄워 주세요.”

피피티까지 만들어왔어? 내가 대통령 비서실장일 때는 커피도 같이 먹어놓고. 배신자…….

속으로 투덜거리던 나는 피피티에 나온 ‘광진구’란 단어를 보고 흠칫했다.

물론 겉으로 티 내진 않았다. 공격은 점점 매섭게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S 방위대행사에 광진구 수렵위탁사업을 맡긴 건 특혜라는 거죠!”

팩트였다.

“어느 순간 정상적으로 들어가야 할 벌점 3점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공공개발 여론이 높았는데도 민간사업자한테 시공권이 넘어갔어요! 그때 수렵사업권도 같이 갔고요! 이거 문제 있습니다!”

팩트였다.

“헌터 길드, 그러니까 민간군사기업에 수렵사업권이라는 개념을 만들어서 나눠준 건, 쉽게 말해 재개발을 해야 하니까 이 지역은 당신 회사가 책임지고 괴수를 전부 빠르게 없애라는 거에요! 그런데 GS그룹이 건설사업권이랑 수렵사업권을 전부 가져가니까, 닫으라는 게이트는 안 닫고 마석만 챙기면서 돈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건 좀 억울하다. 헌터들이 개수작부리는 게 왜 내 탓이란 말인가! 나도 그러지 말라고 맨날 쪼는데 내 말을 안 들어 처먹는다고!

“이건 합리적으로 봤을 때 한승문 시장이 광진구 사업 전체를 GS 그룹에 헌납했다고 봐야 합니다!”

오랜만에 팩트로 맞으니까 어질어질하다.

하지만 나도 억울한 부분이 있다.

물론 GS 방위대행사에 들어가는 벌점 3점을 까준 건 맞지만, 거꾸로 말하면 고작 3점 때문에 탈락한 아쉬운 케이스 아닌가?

그리고 지금까지 GS 그룹 총수 천금순 사장에게 받아먹은 국민당 선거 자금이 얼마인데 어떻게 입을 씻겠는가.

돈도 없는 서민인 내가 당 하나를 통째로 차리려면 후원금이 필요했다. 그걸 내 주머니에 넣으면 범죄지만, 선거에 쓰면 관행이다.

그리고 GS 그룹은 GS 아이기스라는 세계 최대 헌팅디바이스 회사의 주인이라서 서울 탈환에 사용되는 무기를 대고 있었다. 값싸게.

게다가 모든 중소길드의 복잡한 지분관계를 타고 올라가면 결국 ‘3대 길드’가 나오는데 GS 방위대행사는 삼성 수렵대행사와 LG 헌터스의 따뜻한 양보와 배려를 받는 편이다.

왜냐면 삼성 사이오닉이랑 LG 이노베이션은 GS 그룹이 마석에너지 사업에 발가락이라도 담그려는 낌새가 보이면 대가리를 깨버리려고 들기 때문이다.

(특히 LG는 범LG 계열에서 분리된 GS의 이름을 금순이가 뺏어갔기 때문에 괘씸죄까지 걸려 있다.)

즉, 마석에너지 산업에서는 삼성 사이오닉과 LG 이노베이션의 독점적 지위 확보를 위해 GS가 입구컷 당하지만,

한편으론 민간군사기업(헌터길드) 분야의 삼성 수렵대행사와 LG 헌터스가 GS 방위대행사의 편의를 봐주는 기묘한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물론 천금순 사장 본인은 술만 먹으면 ‘나쁜 놈들이 맛있는 건 지들만 먹고 나한텐 뼈다귀만 던져준다’고 잉잉 울지만, 내가 보기에는 게이트 사태의 혼란을 틈타 인수합병으로 개판을 쳤던 자기 업보였다. 동네 깡패처럼 굴었으니까 왕따를 당하지.

나는 이런 미묘한 균형이 나름 괜찮다고 생각해서 초상관리부 장관을 하던 시절에도 굳이 건들지 않았다.

그래. 어쩌면 이런 협치와 견제의 묘리야말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헌터 업계의 숨은 저력이 아닐까?

그런 미묘하고 아름다운 문화를 알지 못하는 우매한 국회의원의 선입견이 참으로 안타까웠지만, 나는 성실한 서울시장답게 최대한 정석적으로 답변했다.

“위탁된 사업이기 때문에 제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잘…….”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청문회는 기억상실이 정석이다.

“제가 모든 선정과정을 일일이 심사할 순 없다 보니 확실하게 답변드리지 못하는 점에 대해서는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정 원칙상 특혜와 일감 몰아주기는 있을 수 없습니다.”

“말이 되는 말씀을 하세요, 시장님! 이렇게 증거가 있는데!”

“기존에 제가 받은 보고서상으로는 문제가 없었고, 이렇게 갑작스레 확인한 사항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않고서 제가 명확히 답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어휴, 그렇게 뻔뻔하게 잡아떼시니 정말 할 말이 없네요! 정말 실망입니다! 서울시장이 그렇게 무책임해도 되는 겁니까!”

“확실하게 답변드리지 못해 정말 송구스럽습니다만, 차후에 충분한 조사를 거쳐서 의원님께 답변을 드려도 되는 것을 허락해 주시면-”

“됐습니다! 이런 불성실한 답변을 보면 한승문 시장님이 국정감사와 국회를 평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아주 잘-! 알겠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내 도덕성에 흠집을 내려는 전략은 잘 알겠다. 근데 사람들은 자세한 내용은 잘 안 본다.

지금 카메라에 잡히는 건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소리 지르며 서울시장을 겁박하는 스테레오타입의 (다시 말해 무례한) 국회의원과, 최대한 공손하게 대답하는 서울시장일 뿐이다.

이건 이미지 메이킹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팩트체크 싸움으로 넘어가는 건 언론에게 달려 있다. 뉴스에서 이 사건을 드라이브하면서 이슈를 몰아가야 한다. 그런데 재벌 관련한 건수를 언론이 물까? 내가 보기엔 아니다. 나는 그 판단을 믿고 뭉갰다.

내가 흔들리지 않고 공격을 버티고 있으니 국정감사장 내부의 분위기가 점점 싸늘해졌다. 국방당 의원들 눈빛에서도 ‘야, 쟤 스톱시켜야 되는 거 아니냐?’라는 눈치가 오갔다.

하지만 한발 늦었다. 국민당 쪽에서 먼저 고성이 치고 나왔다.

“지금 이게 뭐 하는 태도예요?!”

일전에 국방당 간사와 일대일 결투를 벌인 승부사(3선)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삿대질을 하며 사자후를 내질렀다.

“서울시장을 상대로 질의하는데 기본적인 예의범절은 갖춰야지! 한승문 시장이 당신 부하직원이에요?!”

“아니, 피감기관 책임자에게 질의하는데-”

“당신이 대통령이야?! 선거로 뽑힌 사람을 무슨 아랫사람 취급하고 있어!”

“제가 언제-”

“한승문 시장이 젊다고 만만하게 보는 거 아뇨! 당신도 40대면서 나이 많다고 설치기는.”

“에.”

폭풍처럼 작렬한 3선 의원의 막말에, 재선의원의 여린 마음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났다.

내게 질의하던 국회의원이 충격받아 말을 잇지 못하고 멍을 때리자, 아까 똑같은 수법으로 당했던 국방당 간사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리벤지 매치를 신청했다.

“뭐?! 설쳐? 이게 지금 신성한 국회에서 무슨!”

우리 편 파이터가 잠깐 멈칫거렸다. 자기가 생각해도 ‘설치다’라는 발언은 너무 나갔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잽싸게 논쟁에서 벗어나 상임위원장에게 제지를 요청했다.

존댓말로.

“위원장님! 서울시장에 대한 무차별적 인신공격을 제지해 주십시오!”

“예?”

“제지해 주십시오!”

재판을 보는 판사처럼 조용히 구경하다가 끌려 들어온 상임위원장이 당황하자 상대편 의원이 몰아붙였다.

“당신이나 처신 똑바로 해! 국정감사장에서 이게 무슨 행패야!”

“뭐?! 당신? 나이도 어린 게!”

나이 공격에 상대편 의원이 멈칫거렸다. 실제로 나이 차이가 조금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공격을 이어갔다.

“그러면 당신이라고 그러지! 뭐라고 그래!”

“뭘 잘했다고 소리를 질러!”

“소리는 당신이 먼저 질렀지! 소리 지르면 다야?!”

“뭐 이 자식아?!”

이쯤 되자 내게 질의하던 국회의원이 잠깐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던 제정신을 찾아왔다.

아슬아슬한 발언 시간을 확인한 그녀는 다급한 목소리로 상임위원장에게 소리쳤다.

“위원장님! 질의 계속하겠습니다!”

그러나 상임위원장은 이 개판에서 빨리 도망치고 싶은 모양이다.

“잠시 국정감사를 정회하도록 하겠습니다!”

청아하게 울려퍼지는 의사봉 소리. 땅.땅.땅.

이제 점심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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