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42화 (242/296)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42화

EP 37-북상北上(5)

“제주도 여론이 좀 안 좋았어요. 유재경 총리가 지금까지 너무 빡빡하게 굴어가지고…….”

천 사장이 말하는 제주도는 재계를 의미했다. 재벌들이 전부 제주도에 모여 살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다행히 천 사장은 현장에서 뛰는 스타일이었고, 그녀는 부산에 있는 본사 집무실에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사온 레쓰비를 홀짝거리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처진 눈동자가 아련한 과거를 추억하는 것처럼 보였다.

“유재경 총리가…… 지금까지 부동산으로 띄웠잖아요? 금융이 망한 게 아니라 실물경제가 망해서, 그것도 물리적으로 망해서 공황이 터진 거니까 뉴딜을 거꾸로 했단 말이에요. 다행히 우리나라 부동산은 가치가 아주 높아졌으니까, 그걸 담보로 외국에서 돈을 땡겨서…….”

“그렇게 설명하면 누가 알아듣습니까?”

“아잇! 그러면 부동산 업자들이랑 사이가 나빴다는 것만 기억해요.”

“……부동산 업자가 설마 토건재벌 말하는 겁니까?”

“그쵸, 건설사 끼고 있는 아저씨들. 원래 우리나라에서 진짜 부자들은 건설로 컸어요.”

천 사장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떻게 설명해야 내가 이해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잠깐 옆에 와보라며 나를 앉히고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조금 자존심 상했다.

“자아, 봐봐요. 자기는 적당히 해먹고 선만 지키면 놔두죠?”

“그런 편이죠. 잘 모르니까.”

“근데 유재경 총리는 안 그랬어요. 개발 호황으로 한몫 땡기려고 하니까 달려와가지고 일일이 시어머니처럼 감시를 했단 말야. 심지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알아. 얼마나 얄미워요?”

“유 총리가 생각보다 더 꼼꼼한 사람이었군요.”

“……아니죠. 아니죠. 나쁜 사람이죠.”

“정부가 기업 감시하는 게 왜 나쁩니까?”

“쓰읍!”

천 사장이 조곤조곤 설명하다 말고 심통을 내며 볼펜을 내팽개쳤다.

“이거 마인드가 안 맞는구만……! 일단 들어봐요.”

“예.”

“수출이 막히면서 원자재 가격이 올랐으니까, 당연히 부동산 가격도 올라야 하는데, 유재경 총리가 그걸 막았단 말이에요.”

“아니, 그게 막았는데도 생긴 가격이었습니까?”

“아, 아무튼. 그래서 나라 절반이 무너졌는데도 건설호황이 안 왔어요. 그래서 건설호황 예측하고 건설업에 투자한 사람들이 심통이 났죠. 80년대처럼 큰 부자 될 줄 알았는데, 작은 부자 됐으니까.”

천 사장은 볼펜을 내려놓고 설명을 마쳤다. 종이에는 개발새발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시꺼먼 잉크가 얼룩덜룩한 게 그녀의 정신상태를 표현한 것 같았다.

“자, 근데 서울을 탈환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돈잔치할 생각에 들떴는데, 어라, 당선 유력한 사람이 유재경 그놈이네? 좆같네?”

“그래서 언론으로 줘팬 겁니까?”

“줘팼다기보다는 살살 어루만졌다고 그러더라구요. 자기들 표현으로는.”

“마사지 두 번 하면 사람 잡겠네요.”

“진짜로 유재경이 출마하면 그러겠죠?”

천 사장은 얄밉게 덧붙이면서 나를 골리고 있었다. 아마 내가 또 칼부림을 하기를 원하는 거겠지. 자기는 시체에서 뭐 주워 먹고.

하지만 나는 최대한 건조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경제계를 빡세게 단속하는 유재경과 그를 견제하기 위해 언론을 움직인 재벌들.

나는 여기서 내가 할 일이 뭔지 파악했다. 분명 유재경을 수술한 인간들이 다음 타자로 누가 나올까조차 염두에 두지 않았을 리는 없을 터.

“……그러면, 그 양반들은 유재경이보다는 한승문이가 더 낫다. 그렇게 생각한 겁니까?”

“그렇죠. 저같이 마석 사업하는 사람들은 아는데, 건설하는 사람들은 잘 모르죠.”

천 사장이 슬쩍 웃으며 덧붙였다.

“아직 안 당해봐가지고.”

* * *

“박 사장, 그런데 괜찮겠어?”

“네, 회장님?”

휙, 하고 골프채를 휘두르자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골프공이 날아갔다. 사람 아닌 것들에게 땅을 빼앗긴 세상에서 골프는 정말 비싼 스포츠였다.

그리고 사치는 비싸면 비쌀수록 더 잘 팔리는 법. 골프장에 있는 대여섯 명의 사람들은 모두 자기 회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번에 유재경이 찍은 게 박 사장이람서.”

“아, 그게 아니고요. 그냥 종종 만나는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다가 말이 나와서요. 심려 끼쳐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저희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는데…….”

“아니, 뭐. 사과받으려는 건 아니구.”

“하하.”

제주도에 있는 재벌들이 무슨 비밀조직을 만들어서 유재경을 보내 버리기 위해 집단행동에 나선 건 아니었다. 유재경을 공격한 건 서귀포에 사는 몇 명이 전부였다. 그 몇 명이서 대한민국 언론의 절반 이상을 움직인 것이다.

재벌이 센 게 아니라 언론이 약해진 거였다. 특히 펜대 잘못 놀렸다간 정말로 골로 갈 수도 있는 시국에는 더더욱 그랬다. 경제 위기는 언론사에게도 똑같이 들이닥쳤고, 광고주의 권한은 날이 갈수록 강력해졌다.

그래서 사실 유재경을 공격하라 지시한 재벌들이나, 심지어 유재경을 직접 공격한 언론들도, 유재경이 이렇게 치명상을 입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생각보다 효과가 좋더라고요.”

“옛날에는 이게 일상이었어. 자네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언론사 사주들이 우리한테 술잔 받는 시절이었다구.”

“어어, 우리 애엄마도 사주 집안이잖아.”

“그래? 어디였더라?”

“아니 자네들은 왜 골프장에서 족보를 따지고 있어?”

나이 먹은 재벌들 사이에서 농지거리가 오가는 동안, 그나마 젊은 사람들은 골프장을 돌아다니며 정치 이야기를 했다.

“아니, 근데 뒷감당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뭐, 뒷감당이라고 할 게 있습니까? 사실 자승자박이라고 봐야죠. 정치인이 입을 조심했어야지…….”

“그래도 이태영 장관이 우리한테 참 잘하던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 하마평 오르자마자 이렇게 된 게 나는 좀 그래요.”

“에헤이. 줄을 잘 섰어야죠. 왜 하필 유재경이한테 가서는.”

“아, 유 총리 그 양반이 그렇게 가는 거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럴 거면 신문 안 팔고 그냥 들고 있는 거였는데…….”

“원래 팔고 나면 떨어진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나저나 걔네들도 원통한테 얻어맞은 멍자국이 남았는지, 경고 좀 해달라니까 마음 독하게 먹고 때리대요.”

“원 대통령한테 맞은 걸 왜 유 총리한테 풀죠? 머리가 나쁜가?”

“피아식별 못 하고 똥 뿌리는 심보도 있고. 아니면 둘이 사이 나쁜 거 알고서 대통령이 커버 쳐 줄 걸로 믿고 맘 놓고 때린 것도 있겠죠.”

그때 구석에 있던 한 남자가 피식 웃었다. 마석사업에 발 담군 집안 막내아들이었다.

박 사장이 겉으로만 웃으며 말했다.

“뭐,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아뇨, 좋은 일은 아니고요.”

“근데 왜요?”

그는 피식 웃었던 게 박 사장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최대한 침착하게 기싸움을 이어갔다.

“여우 쫓아내고 호랑이 데려온 격 아닙니까?”

* * *

“서울은 싹 다 국유지로 간다.”

“그래도 괜찮나요?”

“지금 제주도에서 유재경 때린 거 전부 다 수집해 놔. 그때 가서 터뜨릴 거야.”

“그러면 부동산 공약은 어떻게 발표하시려고요.”

“그런 건 대충 얼버무려도 돼. 어차피 사람들은 공약 안 봐.”

피채원의 눈빛이 공허해졌다. 입도 살짝 벌어졌다. 내가 왜 이런 거 밑에서 일을 하나 싶은 표정이었다. 분명 일부러 저러는 거다.

어쨌건 나는 시장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정했다.

폐허가 된 서울을 배경으로 감동적인 출마선언도 이미 끝마쳤다. 홍선아를 시켜서 저어 멀리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도록 연출까지 했다.

유재경 총리는 ‘술자리서 하마평 논한 것일 뿐, 출마 생각 없다’며 눈물을 머금고 철판을 깔았지만, 내가 그를 찾아가자 정말로 눈시울이 축축해지며 복수를 부탁했다.

당연히 양판석 정부 시절을 추억하는 강성 지지자들은 기뻐했지만, 저 새끼 저거 질리지도 않고 또 기어 나왔다고 대경실색하는 사람들도 있는 법.

나는 첫 번째 여론조사 결과를 받아들고서 웃을 수만은 없었다.

“의원님, 의뢰하신 조사 결과 나왔습니다. 유재경 총리가 불출마 선언을 안 해서 문항이 조금 꼬이긴 했네요.”

유재경 총리가 후보군에 있는 걸 감안하더라도 나는 여론조사 상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국민당의 피난민 대표의 지지율이 만만찮았던 것이다.

새로 선출된 난민 대표의 이름은 김목윤. 대한예수교 장로회 목사 출신이고, 특이하게도 초상능력자였다.

“그렇게 대단한 각성자는 아닌 것 같은데요. 미등록 헌터라니까.”

“미등록이면 능력이 아주 약하거나, 아니면 뭔가 캥기는 게 있는 거겠지. 목사라니까 혹시 언령 계열 아닐까? 사람들을 막 꼬셔가지고…….”

“귀가 좋대요. 이미 확인했어요. 그렇게 특이한 약점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요.”

“그, 그랬구나.”

피채원이 그렇다면 그런 거였다. 그리고 내가 따로 조사한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목윤이라는 사람의 인생은 평탄함 그 자체였다.

게이트가 열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국민당보다 난민조직 내부의 권력관계가 우선시되는 그쪽 특성상, 김목윤 목사도 난민운동의 거두 중 하나였다.

김목윤 목사는 고양시 덕양구에서 교회학교를 담당하던 젊은 전도사였는데, 사태 초기에 아이들을 데리고 북한산을 넘어 군부대까지 대피하는 데 성공하자, 장로회에서 언론플레이 용으로 목사를 달아주며 매스컴에 태운 인물이었다.

그리고 교계 인지도를 바탕으로 난민운동에 투신. 그러나 신수광 일파와 별 접점이 없어 중진에 올라서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지금은 그게 강점이 되어 전국난민협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애들을 데리고 북한산을 넘은 인물인 만큼 40대 초반으로 젊은 편이었고, 진중한 외모와 다르게 근육도 좀 있는 편이었다.

“좋아. 행정경험 부족으로 조지면 되겠군.”

“왜 정정당당하게 승부할 생각을 안 하시는 거죠.”

“상대가 좀 세잖아. 그리고 애들 데리고 잘 도망쳤다니까 나조차도 호감이 가는걸.”

“청력 계열 헌터라니까 그걸 잘 활용했겠죠.”

피채원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녀에게 초상능력은 축복이 아니었다. 사태 초기, 부모님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산 채로 잡아 먹히는 부모님의 심정을 느껴 버렸던 것이다.

언제였는지 모를 어느 날 새벽에 피채원이 흐느끼며 말하길, 고통과 두려움이 절반이었고, 사랑과 걱정이 절반이었다고 한다. 수 년간 성실하게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악몽을 극복했지만, 상처는 사라져도 흉터는 남는 법. 나도 수십 년간 교통사고의 악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으니 그 심정 잘 알았다.

나는 화제를 돌렸다.

“이기기는 이길 것 같다만, 득표율 차이가 적으면 좀 그런데…….”

“1표 차이라도 이기면 되는 거 아닌가요.”

“채원아. 몇 표 차이로 이겼느냐에 따라 공무원들 눈치를 봐야 할 수도 있단다. 잘못하면 원옥분 대통령한테 말려서 허수아비가 될 수도 있어.”

나는 기호 3번이었다.

즉, 무소속이다. 유재경이 나를 지지하며 국방당 후보직을 사임하려면 내가 무소속이어야 했다. 국민당이었으면 적과 야합하는 그림이 되니까.

따라서 김목윤 목사는 국민당 경선을 프리패스하고 선거에 나올 것이었는데, 이 점을 우려한 이호정이 내게 조언했다.

“그냥 국민당 경선에 나오시죠? 룰 살짝 건드리면 바로 보내는 건데…….”

“난민들 성격 몰라서 그러냐?”

“밟으면 밟을수록 세지는 건 드라마 속 일이죠. 현실은 더러워요.”

“정치신인 가산점, 경선 룰, 국민경선 비용, 중앙당 선관위원장, 권당투표 비율, 경선 불복…….”

“아아! 알았어요! 알겠으니까 그만해!”

듣기만 해도 머리 아파지는 문제를 거론해서 이호정을 물리치자, 이번에는 헌터들이 들이닥쳤다.

“장관님!”

“어, 예.”

그래. 국내 헌터들은 사건 터지면 나부터 조지러 오는 루틴이 있었다. 따라서 이놈들이 우르르 들이닥쳤다는 건 사건이 터졌다는 소리다.

뭐, 선거사무소에 헌터들이 반쯤 상주해서 쿠크다스나 까먹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녀석들은 문짝을 반쯤 부수다시피 하면서 달려왔다.

가장 앞에는 조정식 치안관과 여다솔 치안관보가 있었는데, 나이 어린 친구들이라 그런지 표정이 참 다채로웠다.

나는 반쯤 해탈해서 질문했다. 조정식이 대표로 빠릿빠릿하게 대답했다.

“뭔 일입니까?”

“기사회장님이 총에 맞았습니다.”

“아…… 뤼미에르가요?”

“예, 생명에 지장은 없다지만 빨리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중국에서···”

그 뒷말은 들리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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