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41화 (241/296)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41화

EP 37-북상北上(4)

베이징에서는 물비린내가 났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더미에 고인 바닷물. 뒷골목 난민들이 토하고 배설한 똥물. 으깨진 시체에서 배어 나온 핏물. 그런 물들을 감당하지 못해 역류한 하수구 물까지.

그 모든 물들이 회색 도시에 고여서 썩어가고 있었다. 도시를 가로지르던 두 사람은 폐허가 된 도시를 둘러보며 충격을 금치 못했다.

“他妈的…….”

CIA 요원은 중국인이었으므로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허망한 표정과 그 몸짓에서 욕설이었음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기사회 소속의 염동술사, 르윈 슈미트체바는 까칠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대체 언제까지 구경만 할거죠?”

“미안합니다. 고향이 이 근처라…….”

CIA 요원은 유창한 영어로 반격했다.

“아니, 그런데 슈미트체바 씨는 제가 불쌍하지도 않습니까? 칭크 놈들 고향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 이거예요? 그거 인종차별입니다.”

“……당신 미국 스파이잖아.”

“직업은 직업이고 고향은 고향입니다. 대학 다닐 때 이 근처에서 놀았단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옌위안 다닐 적에…….”

“돌겠네.”

르윈은 축축한 바닥을 피해 미세하게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허공을 걸어다니기까지 했다.

대다수의 염동술사가 어설프게 공중부양을 시도했다간 뼈가 꺾이고 살이 찢어진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단히 섬세하고 대단히 위험한 행동이었다.

그만큼 이 도시는 걸어다니기조차 버거운 지역이었다. 국경없는 기사회가 만들어지기도 전부터 뤼미에르와 함께 전 유럽을 누볐던 르윈이었지만, 물에 퉁퉁 불은 익사체가 사방에 즐비한 이 도시의 풍경과 냄새는 정신을 천천히 갉아먹는 지옥도였다.

“대체 뭘 찾길래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죠?”

“사람을 찾는다니까요.”

사방에 시체가 즐비한 도시였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게 사람이었다. 공포에 질린 눈동자들이 도시를 떠도는 두 외지인을 피해 달아났다.

경찰도, 군인도, 이미 이 저주받은 도시를 떠난지 오래다. 아시아의 중심이었던 도시가 폐허로 변하는 건 쓰나미 한 번과 고작 일주일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런 시대였다.

두 사람은 이후로도 한참이나 더 베이징을 배회했다. 약탈자들이 점령한 정부청사를 돌파하고, 인민해방군 잔당이 통제하는 국경선을 지나, 끝끝내 어느 외곽지역의 굴다리 아래에서.

그들은 물에 반쯤 처박힌 리무진을 발견했다.

“슈, 슈미트체바 씨. 저 차를 강기슭으로 올려주실 수…….”

“알겠어요.”

양복쟁이 요원과 기사회의 헌터가 중국의 총통과 만났다. 리충빈 총통의 시신에는 총상이 있었다. 미간에 뚫린 바람구멍을 보며 CIA 조사관은 허망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他妈的…….”

* * *

“제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톈진 인근 앞바다의 항공모함에서 대기하던 부검의도 별수 없었다. 늙은 의사는 장갑을 벗으며 손으로 방아쇠 당기는 모양을 흉내 냈다.

“제가 대답해 드릴 수 있는 건 뒤통수에 대고 쐈다는 것뿐입니다. 그것도 가까이에서요. 저격에 당한 건 아닐 겁니다.”

“정말로 그게 전붑니까?”

“제가 셜록 홈즈도 아닌데 시체만 보고 범인을 짐작할 수 있나요? 애초에 중국 군사 쿠데타 지도자의 사망원인 같은 건 저 같은 늙은이가 아니라 CIA 요원이나 알 법한 내용입니다만…….”

“됐고 비밀유지 각서나 쓰십쇼.”

늙은 부검의의 농담은 듣는 CIA 조사관의 속을 뒤집는 재주가 있었다. 해일을 몰고 온 괴수가 덮친 베이징 일대를 누비며 가까스로 시신을 발견했는데 이 따위 소리나 듣다니.

대체 누가 총통을 암살했지? 범인이 될만한 사람이 너무 많았다. 애초에 총통부터가 주석을 암살하고 권력을 잡은 선양군구 출신 군벌 지도자 아니었던가.

수많은 장성과 그보다 더 많은 핵탄두가 서로 눈치를 보며 발사를 기다리고 있었고, 이건 일개 요원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정보였다.

결국 요원은 국장에게 보고했고, 국장은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미국의 대통령은 이 사실이 공개된다면 아시아에서 전쟁이 터질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묻으세요.”

진실은 파쇄기에 들어갔다.

* * *

“아, 중국이고 나발이고 선거부터 이겨야 할 거 아니야!”

참다 못 한 이호정이 밥상을 뒤집을 기세로 소리쳤다. 나는 식어가는 아침밥을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밥부터 먹으면 안 될까……?”

“출마부터 결정해요. 서울시장 나갈 거죠?”

“그건 생각을 좀 해봐야겠는데.”

이호정과 양일호는 아침 댓바람에 쳐들어와서 집을 점령했다. 양일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호통은 멈출 줄을 몰랐다.

“이대로 난민촌 애들이 서울시장 따먹게 둘 거예요? 증명도 안 되는 옛날 재산 보전해준다고 세금 퍼주면 우린 뭐 먹고 살아?!”

“거, 우리끼리 있다 쳐도 따먹는다니 그게 무슨 무례한 소리야. 국민들께서 현명하게 선택하시겠지.”

양일호가 태평하게 덧붙였다.

“이 상황에서도 녹취록 걱정하는 건 옛날이랑 똑같네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유재경은 녹취록 때문에 갔다.

정확히는 서울부시장으로 누구누구를 임명하겠다는 소리를 술자리에서 흘렸다는 찌라시가 돈 것이다. 그리고 그건 얼마 안 가 뉴스로 확인됐다.

시작은 ‘이태영 전 외교장관, 서울부시장 하마평’ 정도의 나이브한 기사였지만, 점차 ‘유재경 총리의 은밀한 섀도우캐비닛’ 따위의 악성루머로 변하기 시작됐다.

그렇게 언론의 매타작이 시작됐다.

「청중엽 “유재경 벌써 당선됐나?”」

「유재경 총리, 술자리 인사 ‘파문’」

「선거도 전에 당선된 것처럼··· 유 총리의 설레발.」

사실 정말로 집권만 바라보며 앞만 보고 달리는 게 아닌 이상, 선거 끝나기 전에 어느 자리에 누구를 앉힐까 정도는 미리 생각해 두는 게 정상이었다.

그러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원활한 행정인계를 위해 인재풀을 구상 중’이라며 너스레를 떨면 후보가 준비성이 있는 거였고, 술자리에서 ‘야, 니가 서울부시장 해라’라고 지랄을 하면 후보가 싸가지가 없는 거였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유재경은 전자에 속했지만 애석하게도 언론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현재 공개된 녹취록만 보면 ‘그러면 부시장은 이태영 장관이···’ 정도가 전부였지만, 유재경은 이미 전방위적인 폭격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문제보다 눈앞에 있는 이호정이 더 중요했다. 나는 씩씩거리며 나를 노려보는 그녀를 달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너무 피난민들 미워하지 마라. 진짜로 세금 갖다가 재산보전을 해주겠어? 주민등록번호 시스템도 빵꾸 나서 복구를 못 하고 있는데, 수도권 피난민들이 그 옛날 재산을 어떻게 증명할 건데? 저쪽도 최소한의 현실감각이 있으면 그런 소리는 못 하지.”

“지들도 그걸 모르겠어요? 알면서 저러니까 내가 이러는 거예요. 돈 없어서 못 해준다 그러면 또 나가서 데모하고 그러겠지. 자기네가 대통령 될 때까지 야지나 놓을 거라니까?”

“……너 신수광계 애들한테 엄청 시달리는구나…….”

수도권 피난민을 대표하던 정치인, 신수광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아갔지만, 그 인간이 남기고 간 친구들은 아직도 국민당에서 금뱃지를 달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서울시장을 먹어야겠다고 발악하는 세력도 그쪽이었다. 이호정은 국민당의 전직 원내대표로서 깊은 우려를 표했다.

“그쪽 계열에서 서울시장 나오면 국민당이 완전히 넘어갈 거예요. 사실 이제야 우리가 당 모양을 갖추고 색깔이 생기고 있는데, 이렇게 피난민 정당이 되어버리면 안 되는 거잖아…….”

그녀가 말하는 ‘색깔’이란 정당의 이념이었다.

사실 국민당에게는 당색이나 이념이랄 게 없었다. 애초에 원옥분 권한대행이 싫은 사람들이 어거지로 모인 조직이 아니었던가.

거기에 양판석이 연립정부라는 묘수를 끼얹자, 국민당은 완전히 무력화되어 지난 정권 내내 이렇다 할 당론도 없이 지지부진 헛돌았다. 이념은 정당의 영혼이었으니까.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국민당에게도 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충청도의 수도권 피난민. 제주도의 초상산업 재벌들. 그리고 강원도의 헌터 사회까지…….

국민당을 이루는 이들 모두가 게이트 사태로 새로이 생겨난 계층이었다. 반면 국방당은 경상도 공화당과 전라도 민주당의 합당으로 생긴 곳이었고 말이다.

따라서 국민당은 옛날처럼 반대만을 위한 반대를 외치는 반기득권 정당이 아니라, 신산업 도입을 통한 한국발전을 꿈꾸는 개혁정당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시대정신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발생한 게 아니라, 국민당 당대표 청중엽과 원내대표 이호정이 가까스로 구성한 이념이었다.

어쩌면 진보당에 몸담았던 이호정의 무의식이 발현됐거나, 아니면 영양가가 떨어진 피난민 세력을 손절하려는 청중엽의 모략일 수도 있겠지만, 거기까지는 내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가까스로 이호정과 양일호를 집에서 내보냈다. 그러나 식어버린 아침밥을 입에 대기도 전에 새로운 방문객이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 장관님.”

“어어…… 장 의원님 아니십니까?”

방문객은 국민당의 장 아무개 의원이었다. 얼굴만 아는 사이에 가까웠지만 그는 낑낑거리며 휠체어를 끌고 와서 대뜸 내게 고개를 숙였다.

“한승문 장관님, 출마하셔야 합니다.”

“허허. 너무 갑작스럽네요.”

장 의원은 양다리가 없는 상이헌터 출신으로, 내가 옛날에 공천해서 뱃지를 달아준 국회의원이었다. 압구정파 원년멤버라 홍선아에게 아저씨 소리를 듣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정치권으로 데려오긴 했지만 너무 오래 방치하는 바람에, 이 양반 이름이 장규섭이었는지 장기섭이었는지 헷갈려서 그냥 장 의원이라고 대충 뭉갤 정도로 친분이 없었다.

사실 소위 ‘한승문계’로 분류되는 대부분의 국회의원이 나와 친분이 없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국회를 막후에서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말이다.

솔직히 몇십 명의 계보원들을 관리하며 비선실세로 분탕질을 칠 수야 있었겠지만, 만약 내가 그랬다면 진즉에 독재를 혐오하는 양판석에게 처단당했을 거라는 생존본능의 경고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국회에서 손을 떼고 정부 일에 열중했고, 국회에 있는 사람들도 한승문이가 자기네를 방치했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거였다.

그런데도 장 의원이 직접 휠체어를 끌고 우리집까지 왔다는 건, 친분도 없는 사람한테 고개숙일 정도로 급하다는 소리였다.

“한승문 장관님, 정중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 선거에 나서주십시오. 난민들이 정말로 서울에 있는 게이트 전부 닫아버리면 당장 길거리에 나앉을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난민 대표가 게이트를 전부 닫겠답니까?”

“서울은 물론이고 한반도에서 게이트를 전부 닫아버리겠답니다. 헌터들은 외국으로 보내고 마석은 수입하자는데 말이 됩니까? 카타스트로피 때문에 국민들이 상처받은 상황이니까 이게 통하는 거지, 진짜로 그렇게 되면 저희는 숫자도 적고 힘도 없어서 못 막습니다.”

“허어.”

“저희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장관님뿐입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간신히 그를 달래서 돌려보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날백수였는데 국회의원들의 아이돌이 되니까 기분이 영 싱숭생숭했다.

그렇게 오전에 이호정이 찾아왔고 오후에 장 의원이 찾아왔다. 국민당 의원들에게 하루를 모두 빼앗기자, 저녁에는 국방당 의원이 나를 찾아왔다.

“……간경수 검사님?”

“이젠 의원입니다. 허헛. 오랜만이네요.”

간경수 검사는 대검찰청 이능수사부의 전직 부장이자, 국방당 국회의원이었고, 양판석의 사위였으며, 나를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준 사람이었다.

내가 통영에서 출마했을 시절에 양판석의 지령을 받고 상대 후보를 수술한 게 간검사였다. 초상관리부 시절에도 치안관 제도를 만들면서 검찰과 적극 협력했으니 인연이 각별했다.

그러나 인연과는 별개로 개인적 친분은 거의 없었는데, 내가 인맥 관리를 안 했던 게 첫 번째 이유고, 그쪽에서도 정치권과 거리를 뒀던 게 두 번째 이유다.

그는 국회의원이 아니라 양판석의 사위로서 내게 접근했다.

“이번에 처남이 정치 해보겠다고 난리를 처대가지고서는 분위기가 말도 아니에요. 당도 초상집이고, 집안도 초상집이니 줄초상이라고 해야 하나…… 참…….”

“아, 양정석 씨요.”

“예. 예. 금마가 예부터 장남이랍시고 오죽 꺼드럭댔었는데. 이번에는 집안이 아니라 바깥에서도 난리를 치는 바람에, 국방당 안에 우리 사람들이 처지가 좀 곤란해졌습니다.”

양정석은 국방당 내부에 있는 양판석계 의원 일부를 데리고 탈당러시를 시도했었다. 물론 매타작을 맞고 침몰하기는 했지만, 가만히 있던 양판석계 사람들도 위험하게 됐다고 한다.

따라서 정치권에 한 명이라도 구심점이 더 필요하며, 내가 출마해서 서울시장이 됐을 시 적극 협조할 테니 좋게좋게 지내자는 소리였다.

결국 출마하라는 말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나는 창가에서 야경을 구경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계산기를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어딘가 답답한 부분이 있었다.

“…….”

뭔가 수상하다.

나는 유재경 총리에게 가해진 비정상적인 언론포화와 그리고 끊임없이 나를 찾아오는 정치권 인사들의 방문이 우연이 아니라는 점을 직감했다.

물론 유력주자가 휘청거리고 있으니 2번 타자가 주목받는 건 당연했지만, 온갖 지랄을 다 겪어온 나의 동물적인 감각은 이 아사리판 속에 뭔가가 더 있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유재경을 가장 미워할 만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천 사장님. 지금 어디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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