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23화 (223/296)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23화

EP 34-향수병(2)

초능력자의 사회적 위치는 나라마다 천차만별이다.

중국에서는 정부의 빡센 감시를 받는 기득권층이자 위험분자들이고, 미국에서는 자경단 겸 연예인에 가까운 개인사업자다.

유럽은 아예 헌터들이 직접 지방정부(쉘터)를 운영하고, 3세계에서는 대체로 범죄형 군벌로 거듭난 상황.

그중에서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을 합친 케이스였다.

평소에는 축구선수처럼 PMC에 소속되어(그나마) 자유롭게 활동하지만, 계엄령 터지면 얄짤없이 징집된다.

그러니 헌터라는 업종은 애초에 파업이라는 게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파업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하아…….」

“아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월급쟁이가 아닌데 어떻게 파업을 하나. 개인사업자가 파업하면 그냥 셔터 내리는 거지, 그건 파업이라고 하는 게 아니다.

거기에 수십만 헌터가 동시에 파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고. 정부가 수년간 허수아비로 써먹는 헌터협회도 대규모 파업을 선동할 힘은 없다.

“그런데 헌터들이 어떻게 파업을 해?”

「그게…….」

그러나 내가 간과한 건, 밥줄이 달린 사람들에게 불가능은 없다는 사실이었다.

「헌터들이 헌터협회를 버리고 연합노조를 만들었어요…….」

* * *

정치인들의 숙적이 노조라지만, 나는 살면서 노동조합과 엮인 적이 별로 없었다.

끽해야 옛날에 국회의원 당선됐을 때 장애인 노조에서 장애인 국회의원 나왔다고 사진 찍으러 오거나, 진보당 국회의원 보좌관이던 이호정이가 술먹고 푸념할 때 종종 들었을 뿐이지.

심지어 그 무섭다는 민주노총도 나는 민주당 소속이라 목숨 걸고 싸우지는 않았다.

전교조는 가끔 뒤통수 때리는 우리 편이었고, 공무원노조는 정부의 어용노조에 가깝고…….

덕분에 나는 노조의 매운맛을 오늘 처음으로 맛보았다.

“야 이 개새끼들아!”

날계란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날아갔다. 퍼억- 하고 전경 방패에 맞고 터지는데 위력이 거의 수류탄급이다.

“……저거 방패 찌그러진 거 아니야?”

나는 매스컴이 달라붙기 전에 초동진압을 위해 파업현장으로 향했다. 초상관리부 장관에게 직보받자마자 달려갔으니 늦지는 않았다.

다만, 시위 현장에서 정신 나간 수준의 공성전이 벌어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현역 헌터 노동자들의 투쟁에 방패대오를 맞춘 전투경찰들이 혼비백산하며 도주했다.

“후퇴! 후퇴!”

“방패 올려! 올리라고!”

“아악! 아아악!”

“…….”

살다 살다 계란껍질 파편을 피해 도망치는 전투경찰들을 보다니. 날계란이 아니라 돌멩이 들었으면 비상계엄 선포할 뻔했다.

멍하니 시위현장을 지켜보고 있으니 경호원들이 내 어깨를 잡아당긴다.

“실장님, 돌아가시죠. 위험합니다.”

“이…… 뭔…….”

“곧 치안관들이 도착한다고 합니다. 잠시만 이쪽으로…….”

“아니, 여기에 치안관들까지 동원됩니까?”

치안관들이 누구인가. 대한민국 최강의 무력단체 아닌가. 검푸른 코트를 걸치고 다니는 7급 이상의 베테랑 고위헌터들.

그런데 정말로 치안관 서너 명이 도착하고 나서야 상황이 진정됐다. 그 정도로 헌터 노조의 저항은 가볍지 않았다.

여기가 부산 시내 한복판이라는 걸 고려하면 더더욱 그랬다.

다행히도 현장에 도착한 치안관들은 헌터들 멱살을 잡고 몇 대 패더니 상황을 진압했다.

그리고 그 치안관들 중에 익숙한 얼굴이 하나 보였다. 약간 지나치게 익숙한 얼굴이었다.

“……누나가 왜 여기서 나와?”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신고받고 출동했는데.”

“……누가 벌써 신고했어?”

“그러면 부산 시내에서 이 지랄이 났는데 신고가 안 들어오겠냐?”

“아이고…….”

젠장. 망했군.

근처 도로 통제하고 방송국에 사람 보내서 단속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SNS로 퍼지는 찌라시는 못 막을 것 같았다. 당연히 후속보도는 이어질 테고 말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헌터들이 9시 뉴스 나와서 앵커한테 하소연하는 그림은 막아내야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시위현장에 진입했다.

격양된 헌터들의 반발은 즉각적이었다.

“한승문이다!”

“헌터 탄압 반대한다! 서울탈환 철회하라!”

“식물협회 폐쇄하라! 식물협회 폐쇄하라!”

“이 헌터 부스러기 같은 놈아! 하위 헌터한테 세금이 웬 말이냐!”

“헌터 계급제 폐지! 사람한테 등급이 왠 말이냐! 우리는 가공육이 아니다!”

쓰읍.

욕먹는 건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지만, 덕분에 이번 집회의 이데올로기가 대략적으로 보인다.

이상한 소리도 섞여 있긴 했지만, 의외로 아픈 곳을 찌르는 주장도 상당했다.

어쩌면 이게 다 내가 자초한 업보일 수도 있겠으나…….

“…….흐음.”

시기가 너무 교묘했다.

왜 하필 서울탈환 논쟁으로 온 나라가 불바다가 된 시점에 사고가 터지는가. 그것도 선거철 막판. 정부가 반송장이 된 마당에.

상식적인 노조는 레임덕 정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선주자 캠프에 합류했으면 모를까. 그래. 어쩌면 이게 그 발판일 수도 있겠군.

내 동물적인 감각은 이번 파업이 단순한 노동투쟁이 아니라는 점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언론플레이로 이들을 귀족노조로 만들기보다는, 직접 현장에서 노조 머리통들과 화해의 인증샷을 찍기 위해 즉각 출동했다.

일단 불은 끄고 보는 것이다. 방화범은 나중에 찾더라도.

다행히 시위 시작하자마자 정부 윗선이 방문하니 시위 주동자들이 달려 나왔다.

“한…… 승문 비서실장님 아니십니까?”

노조 간부들은 꽤나 얼떨떨한 기색이었다.

하긴, 언론에 며칠 정도 징징대야 겨우 정부간담회 잡을 줄 알았는데, 시위 시작하자마자 비서실장이 오니까 어이가 없긴 하겠지.

나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악수를 건네며 간부진의 면면을 살폈다.

“안녕하십니까. 한승문입니다…….”

헌터 계급제에 반대하는 노조였지만, 노조 간부들은 전부 고위 헌터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고위 헌터 명단을 외우고 사는 사람이다. 내가 심사했으니까.

평소에 펜트하우스에서 짜파게티에 채끝살 넣어 먹는 인간들이 빨간 띠 두르고 노동자 셔츠 입은 게 조금 재미있긴 했지만, 나는 최대한 진정성 있는 개별 멘트를 던졌다.

“김정선 헌터 아니십니까? 망양리 방어전에서 큰일 해주신 분인데, 이렇게 만나서 참으로 유감입니다.”

“아, 예…….”

“아이고, 이규리 헌터. 제주도 호텔에서 한 번 뵀었는데. 혹시 몸은 안 다치셨습니까?”

“네, 넵…….”

“허허, 다행입니다.”

나는 작게 눈짓해서 기자들을 불렀다. 물론 청와대 대변인이 용돈으로 관리하는 똘똘한 친구들이었다.

큼. 목소리를 가다듬고 최대한 불쌍하게 웃었다. 지금 몰골이 워낙 수척해서 그림은 괜찮게 나올 것 같다.

“우선, 상황 설명은 듣지 못했지만, 우리 헌터들이 이렇게 불만을 가지게 된 것 자체에 대해 참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로 달려왔으니, 상호 간에 유익한 대화와 소통으로 풀어나가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다.

기자들은 이미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대충 소수 헌터들이 시위를 벌였는데 한승문이 출동해서 ‘소통’했다는 내용이었다.

그제서야 정신 차린 노조 간부들이 내게 요구사항이나 건의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겸허히 듣겠다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언론에는 자세히 나가지 않을 말들이었다. 아마도.

“서울탈환을 하면 국내 헌터 업계는 몰살입니다. 단순한 반 토막이 아닙니다! 이미 헌터들이 넘쳐서 외국으로 보내는 마당에, 국내 사냥터를 없애버리면 업종이 망하는 겁니다!”

정치인들 서울 탈환하겠다고 설레발치는 거 전부 다 선거용 개뻥이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으니 그냥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헌터 랭킹제 시스템이 너무 부당합니다. 헌터들 의견이 반영되기는 한 겁니까? 사실상 정부가 랭킹과 등급이라는 목줄을 쥐고서, 헌터와 사업체들을 협박하고 있습니다! 대체 랭킹제, 등급제, 실적제가 왜 공존하는 겁니까!”

사실 그러려고 만든 시스템이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으니 그냥 조용히 있었다.

“헌터 협회는 대체 왜 있는 겁니까?! 헌터들 등급 찍어주는 것 말고는 역할이 없습니다! 대기업 PMC가 부당하게 정산비율을 조정해도, 정부에서 하루아침에 세금을 2배로 늘려도, 협회는 아무 말도 못하고……!”

헌터놈들이 자꾸 괴수 안 잡고 꿀만 빠니까 세금 좀 올렸다고 대답하면 한 대 맞을 것 같아서 그냥 조용히 있었다.

그리고 결국, 내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대한민국이 사상 초유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전시행정 체제를 유지하다보니 자세한 측면에 신경을 못 쓴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가 좀 바빴으니까 이해해 줘라.

“양판석 정부가 마무리되는 지금. 대한민국이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니만큼. 향후 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자세한 건 다음 대통령한테 말하렴.

* * *

그날 저녁.

나는 뉴스를 시청하며 내 정치노동의 성과를 확인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아나운서가 입을 여는 것을 지켜본다.

「……오늘 오후, 부산 시청역 일대에서 헌터들의 집회가 열렸습니다. 헌터들은 협회 발언권 확대와 노동환경 개선을 강조했습니다.」

「……한때 치안관이 투입되며 시위가 격화될 조짐이 보였으나, 한승문 대통령 비서실장이 집회 현장에 방문하면서, 도로통제는 대략 4시간 만에 해제됐습니다.」

「네. 다음 뉴스입니다. 경상북도 주왕산에서 소형 괴수가…….」

하아. 뉴스를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도 헌터들이 서울탈환을 반대했다는 건 보도되지 않았다.

게다가 노조 간부들이 데스크에 나와 5분짜리 인터뷰를 가지는 대참사도 어떻게든 막아냈고, 30초짜리 단신으로 유야무야시켰다.

자칫 잘못하면…….

「속보 : 대규모 헌터 파업. 국방비상」

「식물협회가 된 헌터협회. 그 진상은?」

「헌터 연합노조. “서울탈환 반대.”」

따위의 무시무시한 뉴스가 나돌 뻔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사실 정부가 욕먹는 건 그렇다 쳐도. 헌터들이 서울탈환 반대한다고 파업한 게 이슈가 되면 온 나라가 전쟁터가 되는 거였다.

특히, 피난민들과 헌터들 간의 전면전이 벌어지는 건 기정사실이다.

그리고 피난민과 헌터들은 주류 여론이 가장 꺼리는 집단이었다.

우선, 피난민들은 괴수를 만난 후유증으로 소총을 숨기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아포칼립스의 생존자 출신이라 사람을 믿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사회에 곧잘 적응하지 못했고, 신수광이 패거리가 난민들 표 얻어먹겠다고 과거 재산보전 주장하는 바람에 남부 국민들에게 미운털이 제대로 박혔다.

경상도, 전라도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기들 세금으로 수도권 난민들 재산을 복원해 줄 필요성을 못 느꼈으니 말이다.

거꾸로, 헌터들은 오히려 일반사회에서 벗어나 자신들을 귀족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대한민국을 구해낸 1세대 헌터들의 활약도 몇 년 지나니까 묻히기 시작했다. 헌터들이 본격적인 기득권에 합류하면서 일반인들도 헌터를 못마땅하게 본다.

사실, 사람이 자기보다 못사는 사람을 우습게 여기고, 자기보다 잘사는 사람을 질투하는 건 본능에 가깝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당연히 편견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일반화의 오류일지언정, 정치인은 누구보다 일반화된 데이터를 봐야 한다. 일반인을 위해 일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분열을 막아낸 오늘의 성과는 나름 긍정적이었다.

마침, 타이밍 좋게 전화가 걸려왔다. 당연히 그쪽에서도 뉴스를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어어. 승문이…….」

양판석 대통령이었다. 다소 지치긴 했어도 기분 좋은 목소리였다.

「오늘 욕 봤다면서.」

“하하. 욕이라뇨. 민원 좀 들었습니다.”

「수고했네. 말년에 일 꼬이면 여러모로 곤란할 뻔했어.」

언제나 그렇듯, 공치사는 그리 길지 않았다. 더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었으니까.

양판석이 대뜸 질문했다.

「그냥 시위는 아니지?」

“수뇌부 면면을 보니 대선캠프 합류에 관심이 있는 몇몇 고위 헌터들이 나선 모양입니다. 사회활동 열심히 하던 양반들이네요.”

「정치질하고 싶어서 정부 욕하고 야당 들어가겠다? 그게 전부인가?」

“아니요. 시위 참가자 명단 확보해서 조사했습니다.”

「빨라서 좋군.」

“헌터 협회가 완전히 식물은 아니라서요.”

의외로 이번 파업의 규모는 상당했다. 헌터가 사냥터에만 나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고 살생을 직업으로 삼는 건 쉬운 일이 아니고, 실제로 하위헌터들이 쉬운 사냥터만 전전해서 정부에서 칼질을 한 적도 있다.

그리고 어떤 헌터들은, 헌팅을 하지 않고 민간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토목공사에 투입되는 건설용역, 동사무소 경비원, PMC 사무원, 택배 배달부, 중공업 노동자……. 현역으로 뛰는 친구들이 아니라 이쪽 계열이 더 많았습니다.”

「……그런가?」

“오늘 시위에 참석한 건 극히 일부고. 연합노조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의 숫자가 상당합니다. 어쩌면 정부 차원에서 대응책을 강구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으음.」

요약하면,

정치지망생을 꿈꾸는 요망한 고위 헌터들이, 선거철에 발맞춰 서민 헌터들을 선동해서 대규모 파업을 주도했다는 거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양판석이 대답했다.

「이상한데.」

“그렇습니다. 비현역 헌터들은 사냥터와 거리가 멉니다. 서울 게이트가 닫히든 말든 상관이 없어요. 그런데 노조 수뇌부는 고집스럽게 서울 탈환을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확실히…… 데모하는 이유가 너무 허술하군. 잘못하면 맞아 죽는데 말이야. 나 때는-」

“아니, 그것까진 아니고요…….”

일단,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정부가 모르고 있던 게 이상했고, 갑자기 부산 시내 한복판에서 헌터들이 깽판을 부린 것도 상식적인 짓거리가 아니었다.

게다가 ‘서울탈환’에 대한 논쟁이 1천만 피난민을 중심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지금.

기득권으로 인식되는 헌터들이 서울탈환을 거세게 반대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게 뻔하지 않은가.

국론이 분열된다.

아무리 봐도. 선거철 장난질 치고는 지나치게 선을 넘었다.

“현역 헌터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서울탈환 반대를 외쳤고, 그 와중에 파업은 파업대로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 비현역 초상능력자들까지 동원했습니다.”

「…….」

“일단 언론 보도는 막았지만, 예정대로 파업이 진행되면 문제가 커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게 되면 정부가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겠죠. 고작 임기 87일 남은 정부가 말입니다. 당연히 주도권은 헌터들에게 넘어가겠고, 협상이 틀어지면 온갖 비난은 당연히…….”

「……체계적이군.」

“누군가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