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20화 (220/296)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20화

Side EP-과도기의 끝

「국민이 살해당한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이제 단호한 결단과, 철저한 규명으로 동북아의 정의를 바로 세울 때입니다…….」

양판석 대통령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야쿠자가 그간 한국인 헌터를 조직적으로 사냥했다는 명분이었으나, 실상은 야쿠자와 유착한 일본 정부를 향한 공격이었다.

당연히 일본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일본은 정식으로 야쿠자를 토벌하기 위한 국제연합군을 편성하자고 제안했다.

만약 연합군이 편성된다면 연합사령부를 차려야 한다. 연합사를 구성하게 되면 작전권을 둘러싼 잡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일본 정부는 한국군의 작전권을 가지겠다며 판을 흔들고, 한국이 거절하면 ‘침략’ 프레임을 씌워 몰아낼 수 있게 된다.

최소한, 작전권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는 동안 일본은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한국인 헌터 사냥.

야쿠자와 정부 간의 유착.

북한에서 장기를 주문한 미국 고객들의 실태.

기나긴 내전은 열도에 수많은 폭탄을 만들었다. 폭탄이 터진다면 과연 어디까지 날아갈지는 감히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

일본 정부에게 가장 간절한 건 시간이었고, 만약 일본의 주장대로 연합사령부가 구성된다면 그들은 충분히 사건을 은폐할 시간을 벌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양판석이 한발 빨랐다.

「일본 야쿠자의 최대세력, 야마구치구미(山口組)의 수장 마사히사 타카오가 국군의 폭격으로 사망했습니다. 마사히사 타카오는 장전읍 일대에서 활동하며 한국인 헌터를 살해한…….」

* * *

「국군, 야쿠자 수장 사살!」

「UN, 강력한 유감 표명, 전쟁위기 고조.」

「원옥분, 청와대에 일갈.. “전쟁하자는 거냐.”」

온 나라가 뒤집어졌다.

누구도 양판석이 본격적인 실력행사에 들어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비록 야쿠자가 1명에 의해 돌아가는 조직은 아니었지만, 최대 계파의 수장을 사살한 건 사실상 선전포고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양판석은 절대로 직접 싸우는 인간이 아니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김두식 국무총리가 모처럼 양복이 아니라 군복을 입고 공식석상에 등장했다.

한국 최고의 전쟁영웅이 군사작전에 대해 거론하니, 온갖 매스컴이 그에게 집중했다.

「이번 작전은 사실상 일본의 주도로 진행되었습니다. 국군의 전략타격지점을 일본이 지목했고, 한일 양국의 굳건한 단합이…….」

김두식 총리는 야쿠자 암살의 모든 공로를 일본에 돌렸다. 너무 비굴하지 않은 선에서, 동맹국을 치하하는 논조였다.

전 세계의 언론이 이를 보도했다. 한국과 일본의 아름다운 협력이라고 말이다.

일이 그 지경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일본은 한국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반박하지 못했다.

남의 나라 정세에 너무 무식하게 개입한 것 아니냐는 비판 정도는 때릴 수 있었지만, 야쿠자 보스가 너무 쉽게 죽어서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이번 작전이 한국의 단독작전임을 인정한다는 건, 고작 야쿠자 수령도 그동안 처단하지 못한 본인들이 바보 천치임을 인정하는 꼴이었고.

그렇다고 한국더러 왜 야쿠자 두목을 죽였다고 항의하는 건, 일본 정부가 야쿠자와 붙어먹었다고 빤히 고백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야쿠자가 한국인 헌터를 죽였다는 이유로 한국이 복수했는데, 거기에 일본 정부가 항의하는 모습도 굉장히 우스웠고 말이다.

물론,

실제로 야쿠자 보스의 위치를 지목한 건 미국이었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동북아 정세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겉으로는 점잔을 떨었지만 말이다.

마침 일본 시민군을 북한에 옮겨주며 평화 컨셉을 잡았던지라, 미국 대통령이 자애로운 어머니 이미지를 조성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랑스런 합중국의 정신은 말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적은 괴수 따위가 아닙니다. 지구상의 근본적인 정의를 해치는 모든 비상식과 부덕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는 북한이라는 국가가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 똑똑히 접한 바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신속히 대응하여 정의를 실현했고, 이는 야쿠자들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미국 대통령은 선거철 땟국물을 지우기 위한 비누로 일본을 지목했다.

정확히 말해, 미국 정부는 미국 재벌들을 조질 필요가 있었다.

당장 이전 정권의 가장 큰 걸림돌이 누구였는가? PMC와 어용언론을 위시한 재벌들이었다. 다국적기업이 헌터 사회까지 장악하니 정부도 컨트롤이 불가능했다.

비록, 정권교체 과정에서 지금 대통령이 그걸 이용했었지만, 이제 선거도 끝났는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사냥개 삶아먹는 건 정치판 전통이었다.

물론, 그간 재벌들에게 받아 처먹은 게 있었으니 직접 손을 댈 수는 없었지만, 지지율을 올리고 싶은 정치인은 언제나 방법을 찾아내는 법.

장기는 북한에서 생산되어 일본에서 유통됐다. 당연히 주문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소리고, 고객들 중에는 미국 재벌들이 꽤나 많았다.

즉, 일본에 존재하는 장기밀매 유통망이 터지면, 미국 재벌들도 유탄 맞고 날아간다.

그래서 CIA 국장은 일본의 장기밀매 유통 정보를 한국에게 흘렸고, 한국이 그 정보를 바탕으로 일본을 공격했다.

그 와중에 미국 정부가 재벌들을 감싸줘서 은혜를 입히든, 아니면 기강을 잡든, 미국 대통령은 무조건 이득을 본다.

따라서 미국은 움직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강력한 국가라도, 그 국가를 지배하는 건 지지율에 목숨 거는 정치인이었으니 말이다.

「멈추지 않는 국군 용사들이 동북아의 정의를 실현할 것입니다. 평화를 향한 국민의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합니다. 정부는 국민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합중국의 정신은 자유, 인권, 그리고 평화에 기반합니다,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는 세계의 평화에 망설임 없이 헌신할 것을 대통령의 이름으로 약속드립…….」

「중화인민공화국은 지난날 수많은 정치범들의 장기를 해외에 유통해 고관의 배를 불린 천인공노할 악덕을 저지른 바 있다. 따라서 중화연방은 열도 폭력배들에게 일말의 동정도 품지 않으며, 동북아의 화평을 위한 전심을 표해 대륙 인민의 염원을 이루고자…….」

“……”

모두가 동북아의 평화를 외치고 있었지만, 그들이 원하는 건 평화가 아닌 전쟁이었다.

동북아시아에 전운이 맴돌았다. 정치가들의 이해관계가 희생자를 지목했다.

미국 대통령은 사냥개를 삶으려 하고, 한국 대통령은 국민적 복수를 천명했으며, 중국 총통은 조용히 쿠데타의 여파를 수습하는 중이다.

일본 정부에게는 이제 2가지 선택지가 남았다.

야쿠자와의 유착이 폭로되고 비참하게 실각하여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긴급 속보입니다. 오늘 새벽, 일본 자위대가 오사카 시내에 대규모 폭격을 감행했습니다. 현재 경찰병력을 포함한 육상자위대가 관서지방으로 진격하고 있으며, 사실상 전면전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사냥개를 삶거나.

* * *

일본 정부도 사이코패스로 이루어진 집단은 아니다. 관서를 장악한 깡패들이 날뛰면, 당연히 진압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그러지를 못해서 결국 야쿠자들의 지배권을 용인했고, 그 보상으로 야쿠자들을 정치깡패로 써먹으며 정권을 유지했다.

거기서 나오는 국민 불만은 탄압으로 찍어 눌렀고 말이다.

즉,

일본 정부가 내전을 수습하지 않고, 야쿠자와의 공존을 모색한 것부터가, 야쿠자들이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는 증거였다.

「교토 일대에서 대규모 항쟁이 발발했습니다! 야쿠자들은 모든 선로를 폭파시키고, 도시에 갇힌 자위대를 상대로 총공격을……!」

게이트 사태 초기.

일본 육상자위대는 괴수들 앞에 속절없이 쓸려나갔다. 모병제의 폐해로 군 기강이 해이해진 영향도 있었으나, 애초에 섬나라라 육군이 적었고, 사태 초기에 제대로 대응한 군대는 지구상에 거의 없다시피 했다.

진짜 문제는, 수습이 안 됐다는 거였다.

수많은 패잔병들이 아포칼립스 사태에 섞여들었다. 대부분은 총기를 쥐고서 착한 일보다는 나쁜 일을 더 많이 저질렀다.

개인의 도덕성이나 일본 자위대의 부실함이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망했을 때 개인이 미치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오히려, 일본 정부의 정상적인 대응이 사태를 악화시켰다.

일본 정부는 살인, 강간, 약탈을 저지른 모든 패잔병들을 사형으로 다스렸고, 이는 자위대 패잔병들이 도쿄가 아니라 오사카로 향한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폐쇄적이고 위계질서를 중시하며 철저한 소속감을 무기로 삼은 집단은, 이제 자위대가 아니라 야쿠자로 불린다.

“이 개새끼들 싹 다 담가 버려!”

“신풍조 투입해! 헬기부터 요격한다!”

“공습! 자위대 공습이다! 피해!”

도시가 광기에 휩싸였다.

야쿠자 조직원이 89식 소총의 방아쇠를 당기고서 전방을 좌우로 긁었다.

교토 야마구치구미, 스미요시카이에서 차출된 최정예 헌터들이 전장에 투입됐고,

조직 보스들은 지하실에 숨어 무전기로 작전을 지시했다.

“뒈져! 뒈져! 이 새끼들아!”

“발포를 허가한다! 전원 사살하라!”

“야쿠자들이 왜 탱크를 몰고 있는 거야!”

자위대 일등육사가 89식 소총의 방아쇠를 당기고 전방에 총탄을 흩뿌렸다.

경시청 특수급습부대 소속 초상능력자들이 전장에 투입됐고,

자위대와 경시청 간부들은 도쿄에 남아 무전으로 작전을 지시했다.

-투두두두!

-콰광!

폭발음과 격발음이 세상을 피로 물들였다.

-쿠르르릉!

건물이 무너지며 사람을 덮쳤고, 자택에 숨어 있던 일가족은 콘크리트에 매몰됐다. 병사들은 그 잔해더미 위에서 총격전을 벌였다.

그러나 병사들은 총성과 피륙 사이에서 이성을 잃지 않았다. 생존본능이 이성을 붙잡았고, 오히려 양심을 거세시켰다.

철컥, 철컥. 총알 장전하는 소리가 울린다.

전장은 광기에 휩싸이지 않았다. 개개인이 각자 합리적인 판단을 거듭하며,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 모습은 서로가 똑같았다.

자위대는 야쿠자의 시체에서 소총에 맞는 총알을 구할 수 있었고, 야쿠자는 자위대의 시체에서 익숙한 소총을 노획할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향한 욕설을 이해할 수 있었고, 때로는 짧은 대화를 거듭하며 생존을 위한 투쟁을 이어갔다.

비슷한 총성이 내내 이어졌다. 전몰자의 단말마는 같은 언어로 울려 퍼졌다.

일본 내전(內戰)이었다.

* * *

일본 내전은 정부군의 승리로 끝났다.

교토 전투의 승리 이후, 자위대는 신속히 관서 지방을 휩쓸었고, 야쿠자에게 고통받던 국민들을 해방시켰다. 주일미군과 한국군의 공습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갑자기 늘어난 국토를 감당하지 못했다. 곳곳에서 괴수들이 방어선을 뚫고 들어와 사람을 해쳤고, 괴수로 인한 피해가 내전으로 인한 피해를 가볍게 상회했다.

결국, 국경 없는 기사회가 일본에 대대적인 구호활동을 개시했다. 한국이 이를 지원했다.

대규모 괴수토벌로 생산된 막대한 양의 마석은 유통거리 문제로 거의 전부 한국에 헐값으로 넘어갔다.

그 과정에서, 일본에서 자행된 장기밀매 사업은 은폐되었다.

동시에 일본 정부에서 한국인 헌터들의 장기를 수입해 각성제 연구를 진행했던 사실도 은폐되었다. 연구 결과는 한국에게 인계됐고, 한국은 미국, 중국, EU에 제한적인 연구 성과를 공유했다.

결국 미국 재벌들은 보신에 성공했다. 다만 대기업들이 정치권의 규제를 받아들임에 따라, 미국판 군산분리법이 제한적으로 통과되어 정부가 기업의 목줄을 쥐었다.

그리고 한국은 일본에서 대거 유통받은 마석으로 세계 최초 경제회복에 성공했다.

완전한, 경제회복이었다.

Side EP-과도기의 끝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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