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19화 (219/296)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19화

EP 33-범죄와의 전쟁(3)

이유정.

일본에 거주하던 한국인 유학생이자, 하필이면 유학 중에 게이트가 열려 귀국하지 못한 불운의 주인공.

테크니션 계열의 A 랭크 염동술사이자, 일본 내전의 한 축을 이루던 ‘시민군’의 핵심 간부.

동시에 그녀는 제주도 테러의 유력한 용의자에다, 일본인 거주구역에서 4명을 살해하고 체포된 현행범이기도 했다.

“제주도 테러의 용의자라면 저와는 이미 구면이시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때 제 비서가 개머리판으로 맞아서 뇌진탕에 걸렸는데…….”

“…….”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그녀는 대인전에 특화된 헌터였다. 괴수보다 사람을 더 많이 상대했다는 뜻이다. 일본이 내전 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덕분에 치안관들마저도 이유정을 체포하지 못하며 고전했고, 그녀는 결국 대통령 경호처에서 파견된 양판석의 심복에게 제압되었다.

차 팀장이라고 통칭되는 베테랑 헌터는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서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정의 초상능력이 일시적으로 봉인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이제 평범한 20대 초반의 유학생이다. 나는 편한 마음으로 그녀에게 질문했다.

“일단 이것부터 물어보죠. 왜 죽였습니까?”

“…….”

“사망한 4명 모두 시민군 소속으로 입국한 일본인 아닙니까? 멀쩡한 야밤에 사람 4명을 이유도 없이 죽이지는 않았을 거 아닙니까.”

마른 체구.

푸석한 피부.

새치가 섞인 단발머리.

그리고 정신병자에 가까워 보이는 다크써클.

이유정은 베테랑 노병이라기보다는 전쟁 피해자에 가까운 몰골이었다. 지금도 그녀의 마른 어깨는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경호처 요원들의 눈치를 보며 한참이나 벌벌 떨다가, 이내 눈을 질끈 감고서 진술을 시작했다.

“제, 제가 죽인 사람들은, 일본 정부에서 보낸 사람들이었어요.”

복잡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 툭 건드렸다.

“흐음.”

일본 시민군은 지난 몇 년간 내전의 중심에 있었고, 일본 정부는 그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그래서 시민군 사이에 자객을 섞었다. 이유정은 그 자객들을 처리하다 들켜서 검거됐다.

왜 그랬을까.

외국으로 알려져서는 안 될 비밀이 있는 걸까? 그렇다면 그 비밀이 북한의 장기밀매, 그리고 한국인 헌터 사냥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왜 일본에서 입막음 안 하고 한국에서 사건을 일으켰지? 주일미군이 관여된 문제라 수작질을 못 했나? 일본에서 죽으면 수상하니까 한국에게 덮어씌우려고 했나?

섣부른 단정은 독이 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하나 확실한 건,

위협은, 제거해야 한다는 거였다.

* * *

모든 것의 시작은 북한이었다.

북한은 게이트 사태로 멸망할 위기에 처했다. 중국이 북쪽에서 괴수들을 밀어냈고, 남쪽에서는 대한민국이 호시탐탐 흡수통일의 기회를 노렸다.

그 혼란을 틈타, 인민무력상 리용수가 북한의 정권을 잡았다. 원옥분 대통령 권한대행과 야합하여 김씨 정권을 축출한 것이다.

리용수는 (북한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답게) 듬직한 군인이라기보다는 천재적인 기회주의자에 가까웠고, 그는 멸망 직전의 북한을 되살리는 대신, 북한을 남한에 팔아먹는 것을 선택했다.

실제로 북한을 남한에 수월하게 넘기기 위해 2차 한국전쟁을 일으킨다는 ‘백호 작전’이라는 계획도 한때 존재했었다.

그러니, 리용수가 장기밀매에 손을 댄 것도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안전을 위해서든, 국방을 위해서든, 돈이 필요했으니까.

마침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다친 시대였다. 그리고 가족이 다친 사람은 장기밀매에 손을 댄다.

리용수는 바로 그 수요폭등을 노렸다.

그리고 이유정이의 말에 따르면, 더해서 CIA 국장이 최근에 제공해줬던 정보에 따르면,

그 장기들이 중간에서 유통되는 장소가 일본이었다.

“대부분의 장기는 북한에서 공수됐어요. 보통은 야쿠자들이 구호단체로 위장해서 북한에 들어갔는데…….”

“야쿠자들이 북한에 들어갔다고요? 항공유도 부족한 세상에 야쿠자가 무슨 능력으로 비행기를 운용합니까?”

“비행기는 고객들이 지원해 준 걸로 알아요. 해외에서 장기를 구매할 정도면 굉장한 재력가들이고, 장기밀매에 손을 댈 상황이면 돈이 문제가 아닐 테니까…….”

하긴, 대한민국에서 북한산 장기를 구매한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이 위급한 재벌, 그리고 고위공직자들이었다.

그리고 장기라는 게 마트에서 파는 물건도 아니고. 꼼꼼한 주문이 필요한 상……. 품이었으니. 소수 특권층의 주문제작으로 유지되는 시장이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면 시장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겠군요. 하지만 돈은 천문학적으로 오갔겠고요.”

“그래서 비밀이 유지됐죠. 야쿠자들의 폐쇄적인 조직사회에서 극히 일부만 손대고 있는 작업이었으니…….”

“그렇군요.”

힐긋, 주변을 돌아보니 국정원의 속기사가 이유정의 진술을 받아 적는다. 녹음기에도 빨간 불이 들어온 건 당연했다.

한편, 나는 지극히 당연한 의문을 꺼냈다.

“그런데 이유정 씨는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이유정의 초췌한 안색이 허옇게 물들었다.

* * *

“야쿠자들이 일본인들도 가끔 잡아가고 그랬답니다. 중간에 땜빵이 나면 현지에서 조달하고 그랬다는군요. 누가 언제 죽었는지 확인이 불가능한 세상이니…….”

“허어…….”

“그리고 일본 정부와 야쿠자가 공생 관계라는 첩보도 있습니다. 정확히는 일본 정부가 화친을 요청해서, 야쿠자들을 정치깡패로 써먹는다는군요. ‘외부의 적’ 전략이라고 봅니다.”

“그 정도면 미국도 이미 알고 있었겠군.”

“그렇겠죠. 제 생각에는 북한-일본으로 이어지는 장기밀매 루트 끝에 미국 갑부들이 고객으로 존재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 시국에 그럴 능력이 되는 게 그쪽뿐이긴 하지. 미국 대통령도 선거 치르려면 그쪽에게 용돈 받아야 하는 인간이니 건드릴 수도 없고…….”

“그런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최근에 CIA 국장이 제게 장기밀매 유통지가 일본이라는 정보를 흘린 것도, 한국이 일본을 대신 처리해줬으면 좋겠다는 의도로 해석 가능합니다.”

“선거도 끝났으니 졸부들 기강을 잡겠다? 그것도 아귀가 맞는구만 그래…….”

“그렇다고 미국 장단에 놀아다는 것도 국력 낭비겠죠. 이상입니다.”

보고를 마치니 속이 살짝 울렁거렸다.

이런 일을 피채원에게 시키지 않아서 다행이다.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선은 지켰지만, 인간 세상의 가장 밑바닥을 접한 기분은 썩 좋지 못했다.

내 보고를 들은 양판석도 대충 비슷한 심정인 것 같다. 그는 눈에 띄게 수척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수고했네. 그간 고생 많았어.”

“감사합니다.”

“살다 보니 별 지랄 맞은 일을 다 겪는군…….”

양판석의 욕설은 참 오랜만에 듣는 것이었다. 그는 10년은 늙은 얼굴로 담배를 꼬나물었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심심찮게 험한 소리도 하던 양반이 대통령 됐다고 점잖게 굴더니, 모처럼 특유의 냉소적인 말투가 툭 튀어나온다.

“미친 것들이 설치는 것을 보니. 확실히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모양이야.”

“…….”

“그러면…… 제주도 테러는 어떻게 된 거지?”

“그건 시민군 차원에서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저지른 일이었다고 합니다. 사망자가 없는 이유도 문제를 크게 만들기 싫어서였다고 하더군요.”

“쓸 만한 꼬투리를 잡았군.”

“그것 때문에 한국 정부에게도 섣불리 협조를 요청하지 못한 게 아닌가.”

“으응. 그것보다는 우리가 그동안 그쪽의 구호 요청을 무시해서 그럴 거야.”

“예?”

“허허. 우리 살기도 벅찬데 남의 나라 반군까지 도와줄 여력은 없지 않나? 괜히 일본이랑 전쟁 하자는 것도 아니고…….”

“예?”

“자세한 건 신경 쓸 필요 없고. 아무튼.”

양판석은 까끌까끌한 수염을 매만지더니 담배를 껐다. 몇 모금 피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뭉개버리더니, 갑자기 히죽 미소 지었다.

“그래서. 장기밀매 시장에 한국인 헌터를 공급했던 놈들이 누군지는 아직 모른다는 건가?”

“그게…….”

그때, 무언가 이상한 압박감이 들어서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양판석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말투였다. 애초에 양판석이 목소리를 내리까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는 항상 가급적이면 여유를 유지했고, 아무리 심각한 상황이라도 사무적인 태도를 지키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잘한 비리에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비리나 야합도 정치인의 업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들키면 범죄이긴 해도 말이다.

그러나,

그가 용납하지 못하는 게 하나 있었다.

“왜 대답이 없어? 한국인 헌터만 사냥해서 장기 털어가던 놈들은, 못 찾았냐고.”

“그, 그렇습니다.”

“으응. 그런가?”

양판석의 삼촌은 삼청교육대에 끌려갔고, 그의 어머니는 피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쥐어뜯었다.

20살의 양판석은 그래서 화염병을 들었다. 비록 정계에서 운동권을 배신하긴 했지만, 양판석에게는 적어도 최소한의 선이 존재했다.

아무리 권력이 타락해도,

사람은 죽이면 안 된다.

“쯧…….”

“…….”

양판석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한참을 침묵했다. 별로 카리스마 있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나는 무언가 기묘한 압박감에 짓눌려 입을 열지 못했다.

그는 잠시 머리를 긁적이다가, 턱을 괸 손을 바꾸기도 했고, 킁, 소리를 내며 코를 훌쩍이더니, 결국 슬며시 미소지으며 내게 손짓했다.

“으응. 이만 가보게.”

“……예?”

“맨날 자네더러 사람도 못 쓰고 혼자서 멍청하게 정치한다고 구박했는데, 지금 보니까 내가 얼빠진 놈이었군그래.”

“아, 아니, 그게 무슨 말씀…….”

“이제부턴 내가 알아서 하지. 조금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아무래도 직접 손을 써야겠어.”

“……일본에 선전포고라도 하시려는 겁니까?”

양판석은 사람 좋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선전포고는 해야지.”

“…….”

“일본은 아니지만.”

* * *

이틀 뒤,

중국 언론 환구시보(环球时报)에서 ‘일본 정부와 야쿠자의 공생관계’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사실상 중국 정부의 비공식적 입장이었고, 모두가 그렇게 받아들였다.

「일본내전 일각에서 오월동주의 형세가 포착됐다. 폭력배의 농간에 일본정부가 백기를 든 것이다. 일본당국은 반군 점령지의 통치권을 일부 인정하는 행동을……」

「이는 지연전술로 일본내전을 고착시켜 ‘신세대작전’으로 동북아 패권을 노린 미국의 부덕이다. 국제사회도 응당 대륙 민의의 염원을 존중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믿으며, 중국은……」

교묘한 논조였다.

중국이 미국을 깠으니 딱히 논란될 거리는 없었지만, 일본 정부와 야쿠자 사이의 유착의혹은 다소 신선한 관점이었다.

일본은 무대응으로 일관하려고 했으나, 갑자기 (혹은 인위적으로) 미국 언론에서 이를 주목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즉각 대응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결연하게, 국내 폭도들로부터 국민의 목숨과 평화로운 삶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현재의 안보환경은, 옛 전쟁을 포함하더라도 가장 심각하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을 지키겠습니다. 또한, 종래의 연상선상에서 벗어나 폭도들을 향한 공세적 위치로의 전환을 약속드리며, 국제사회의 협조와 연대를 당부드립니다……」

일본 정부와 야쿠자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메시지였다.

애초에 워낙 허황된 이야기라 여론은 중국을 비웃는 분위기였지만, 동북아시아 물밑에서는 싸늘한 공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그때, 한국이 폭탄을 터뜨렸다.

「장전읍 사태에 일본 야쿠자들이 관여되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북한 정부에서 제공한 장기를 해외로 유통……」

「또한, 대한민국 영토에 침입하여 헌터들을 조직적으로 살해한 뒤, 장기를 해외로 판매한 것도 일본의 야쿠자들이라는 정황이……」

한국 정부는, 한국인 헌터 살해에 대한 모든 혐의를 일본 야쿠자들에게 덮어 씌웠다.

딱히 증거는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발표해버린 이상, 이제는 증거 따위가 중요한 시점이 아니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더 이상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비상식적인 폭력집단의 존재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국제사회의 질서를 바로 세우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단호한 정의가 실현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일본을 도와 열도에 산적한 폭력배들을 소탕하기 위해……」

양판석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일본을 향한 선전포고는 절대로 아니었다.

아마도, 그럴 것이었다.

EP 33-범죄와의 전쟁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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