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8 - 초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
설진운은 기본적으로 긴장을 잘 안 하는 사람이다.
긴장해서 전전긍긍하다 죽어나간 사람을 너무 많이 봐서 그 런건지, 아니면 긴장하면 안 되는 위치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아무튼 설진운은 긴장을 잘 안 한다. 설령 긴장하더라도 티를 잘 안 낸다.
“…….”
꿀꺽.
그런 설진운이 잔뜩 긴장한 채로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앞머리와 옷매무새를 다듬고서, 포커페이스로 돌아온 뒤 조심스레 노크했다.
똑, 똑, 똑.
가벼운 노크소리 세 번. 그리고 그보다 더 가벼운 대답.
“네에, 들어오세요.”
“……실례하겠습니다.”
“어어! 진운 씨!”
집무실에 들어선 설진운을 한승문이 반갑게 맞이했다.
* * *
“아이고. 벌써 몇 시냐…….”
형형한 눈빛과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유들유들한 분위기.
한승문은 항상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긴장감 없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맞이했다.
“우리 설 헌터. 늦은 시간에 불러서 미안합니다. 율무차 한잔하실래요?”
“아뇨……. 괜찮습니다.”
“그래. 그래. 밤에 단 거 먹으면 살쪄. 일단 이리 와서 앉아봐요.”
설진운의 긴장에 무색하게도 한승문은 영 긴장감 없는 분위기로 소파에 주저앉았다.
항상 그랬다. 여도연이 성질 더럽게 생겼다면, 한승문은 성질 까다롭게 생긴 사람이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별 긴장감 없이 풀어져서 지냈다. 심지어 자기 비서랑 시시한 농담 따먹기를 하는 걸 보면 실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긴장이라는 것도 아랫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승문은 어지간하면 긴장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
설진운이 그렇게 생각하며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 한승문이 부드럽게 웃으며 본론을 털어놓았다.
“그래……. 내가 우리 설 헌터를 이런 야심한 시간에 부른 이유가 뭐냐면…….”
“…….”
“쓰읍…….”
한승문이 긴장감은 없어도 우유부단한 사람은 아니다. 항상 별것 아닌 듯 별의별 것을 해내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자꾸 뜸을 들이고 있다.
설진운은 이 시점에서 뭔가 심상찮은 이야기가 튀어나올 것을 깨달았다.
“애들 좀 모아야 하겠는데.”
“……네?”
“우리 예전에, 그, 있잖습니까. 서울사태랑 유럽에서 활약했던 초특급 헌터들.”
강한 헌터는 강한 힘으로 마석을 먹어 더욱 강해지고, 약한 헌터는 약한 힘으로 괴수를 상대하기 무서워 혈전을 피한다.
그러니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들이란, 그 자체로 도시 몇 개쯤 밀어버릴 수 있는, 그리고 실제로 그런 비슷한 짓 몇 번 했던,
걸어다니는 인간병기들을 의미했다.
그리고 한승문은 그들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1세대 헌터들 집합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 * *
이유.
설진운이 가장 먼저 그에게 물어본 것이었다.
그리고 한승문은 뻘쭘하게 웃으며 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실……. 제가 이번에 UN 협력 독립기관인 초인관리기구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세계의 모든 초인들을 지원하고, 그에 관련된 조약과 규정을 만들고, 또 ‘멋진 신세대’ 작전에 참여할 모든 초인들의 작전권을 가지게 될 겁니다.”
“아…… 축하드립니다.”
“고마워요.”
한승문이 잠시 율무차를 홀짝였다.
“아직 이름은 미정이긴 한데, 아무튼, 초인관리기구는 5인으로 구성된 평의회가 이끌게 될 거예요. 물론 실무는 산하 위원장들이 맡겠지만, 굵직굵직한 의사결정은 평의회 과반수가 찬성해야 통과됩니다.”
“……그러면, 한승문 의원님은.”
“네. 평의원의 일석을 차지하게 될 것 같습니다.”
설진운이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전 세계 헌터들에 대한 규제, 그리고 각종 조약을 체결할 권리.
게다가 ‘멋진 신세대’라는 괴수들에 대한 총력전에서, UN 산하 모든 헌터들에 대한 작전권을 가지게 된다면…….
그건…….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권력이었다.
그리고 그런 권력자가 자신에게 요구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저는 한국의 1세대 헌터들이 이번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
“말이 평의회지 그 지분은 동등하지 않아요. 알력다툼이 있을 겁니다. 그를 위해서는 조금 더 많은 것을 배팅해야 해요.”
배팅할 물건이 1세대 헌터들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설진운은 멍청하지 않았다.
결국 설진운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전까지는 감정을 숨기기 위해 표정을 굳혔으나, 이제는 진정으로 표정이 굳어져 버렸다.
그러나 한승문은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여상스레 말을 이어갔다.
“이런 말씀 드리기는 뭐하지만 평의회 내부 권력다툼에서 제 발언권이 강해지려면 우리나라가 그만큼 전쟁에 기여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헌터들이 협조를 조금-”
“왜죠.”
“예?”
“왜 우리가 피를 흘려야 합니까?”
한승문은 긴장감 없이 굴었고, 설진운은 긴장한 것을 숨겼다.
그러나 지금, 사무실에 싸늘한 긴장감이 내려앉았다.
설진운이 한승문에게 물었다.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는 것이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그러나 청년은 한승문에게 분명히 일갈했다.
“평의회 내부 권력다툼을 위해 한국의 1세대 헌터들을 전장으로 내모는 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입니다.”
“…….”
“혹시 제가 이해한 게 틀렸습니까?”
설진운은 줄곧 내리깔고 있던 시선을 올려 한승문을 직시했다.
한승문의 표정은 모호했다.
태연한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럴 리는 없겠지만 사뭇 긴장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가 말했다.
“평의회 내부 권력다툼에서 이기려고 헌터들을 전장으로 내몬다…….”
“…….”
“그런데 대체 왜 헌터들이 피를 흘려야 하나…….”
한승문은 설진운의 주장을 두 마디로 정리하고서, 간단하게 답했다.
“그러면 안 되는 건가?”
“…….”
다소 부정적인 충격이 설진운의 뇌리에 울렸다.
그러나 한승문은 사람 좋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하하, 그래요. 충분히 가질 만한 생각이지. 그런데 일단 끝까지 들어봐요. 나도 나름 생각이 있거든…….”
유들유들하게 웃는 것 치고는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무는 솜씨가 영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익숙하게 불을 붙이고, 잠시 헛기침한 뒤 연기를 뻐끔거리기 시작했다.
“…….”
“…….”
한승문은 한참 동안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양새였다. 무엇을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설진운은 그가 지금 상당히 솔직한 상태라는 것을 느꼈다.
조금 긴 침묵 끝에, 한승문이 허심탄회하게 말을 놓았다.
“남들이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보는데. 나는 사실 그런 사람 아닙니다.”
“…….”
“머리가 오질라게 똑똑해서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을 줄줄 꿰는 것도 아니고. 아니면 정치공학 계산기가 잘 돌아가서 말 몇 마디로 사람을 조종하고. 막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무슨 뚜렷한 신념이나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한승문이 말하는 한승문은 설진운이 아는 한승문과 아주 달랐다.
아예 정반대였다.
천재적으로 앞날을 예측하고, 배후에서 모든 정치상황을 조작하고, 꺾이지 않는 신념으로 뭉쳐 나라를 이끄는, 그런 한승문이 아니었다.
“사실 지금까지 제가 해온 일들을 보면. 그냥 발등에 불 떨어져서 어찌저찌 좋게 야부리 털다가 여기까지 온 거거든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실 필요는-”
“아니야. 아니야. 사실이 그래.”
그는 잠시 담배를 깊게 빨고, 심호흡하듯이 내뱉었다.
그 모습을 보면, 담배를 피는 모습이 여유롭게 보이기보다는, 그저 긴장을 가라앉히려고 물고 있는 모습 같았다.
그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제 처지라는 게 항상 사건을 주도적으로 풀어나가기보다는, 항상 무슨 사건에 대처하는 포지션이었다 이거예요. 그리고 지금도 그래. 미국한테 끌려다니고 있어.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
“…….”
“그런데 끌려다니는 것도 목줄 잡혀서 끌려다니는 게 있고. 같이 손잡고서 끌려다니는 게 있잖아. 그러니까 저는 최대한 지금 흐름에서 잘 풀어가고 싶은 거예요. 무슨 권력에 대한 야망을 가지고 헌터들을 불구덩이에 처박겠다는 게 아니라.”
결국 이게 다 자기를 위한 게 아니라, 조국과 민족을 위한 거라는 소리였다.
언뜻 정치인의 전형적인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었으나, 한승문의 모든 행적이 그의 발언에 신빙성을 실어줬다.
설진운은 한층 침착한 마음가짐으로 그의 말을 청취했다.
“그래. 진운 씨. 지금 국제적으로 괴수를 때려잡자는 이 흐름이, 세계평화가 명분이라 거절할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그리고 우리나라는 이 흐름에 앞장서야 하는 위치야.”
“…….”
“그러니까 일단 우리나라 헌터들이 참전을 해야 해. 이게 정치적인 문제가 얽혀 있어서 조금 복잡해요.”
“그 정치적인 문제가 뭡니까?”
“미국이 이 지랄을 하는 게 세계평화 때문이 아니라 다음 대선 이길라고 이러는 거야. 그러려면 미군이 많이 죽으면 안 돼. 그래서 외국인들 보고 죽으라고 UN총회 열고, 국제기구 만들고, 이 난리를 치는 거지…….”
“……복잡하네요.”
세계평화를 위한 전쟁을 일으키고서는, 자국인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외국인에게 피해를 돌리다니.
정치역학이라는 게 다 그렇지만, 이것도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고 기이한 논리였다.
그리고 한승문이 말했다.
“내가 할 짓도 이거랑 똑같아. 나는 한국인이 흘릴 피를 외국인에게 돌릴 겁니다.”
“……네?”
“수많은 헌터들이 전쟁에 참여할 거고. 우리가 그 작전권을 가지게 될 거고. 그 작전권을 더 많이 가져가려면 전쟁에서 공훈이 있어야 한단 말이에요. 그렇겠죠?”
“……네. 그렇죠.”
“우리는 아예 최정예 전력을 데려와서 별다른 피해 없이 전장을 싹 밀어버리면. 내가 평의회에서 가지는 발언권이 강력해지겠죠. 그렇죠?”
“……네.”
“그러면 만약 무슨 돌발사태가 터져서. 누군가 큰 피를 흘릴 상황이 된다면. 내가 지금까지의 활약을 핑계로 다른 사람을 불구덩이로 밀어버릴 수가 있겠죠? 그죠?”
“…….”
“그러면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이 이번 전쟁의 최고 기여자로서 각종 혜택을 누리고. 거기에 피해도 최대한 줄어드는 그림이 나오는 거 아닙니까.”
설진운이 물었다. 한승문이 답했다.
“……강한 헌터들을 데려갈수록, 너희들은 강하니까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그러지 않을까요?”
“약한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겠죠. 그런데 이 세상은 강자가 약자 편을 들어주는 곳이 아닙니다.”
“…….”
“여기까지 이야기했으니까 솔직히 다 털어놓을게요. 저번에 장전읍 보니까 동대문파가 사람을 잘 썰더라고. 비록 살아남으려고 익힌 재주이긴 하다만, 그걸 대한민국과 국민들을 위해 사용할 생각이 있습니까?”
“아뇨, 아뇨, 지금 저희들한테 살인을 시키시겠다는-”
“싸움을 시키는 거랑 싸움을 잘하는 헌터를 데리고 있는 건, 핵폭탄을 들고 있는 거랑, 핵폭탄을 쏘는 것만큼이나 다릅니다. 그런데 효과는 대충 비슷하죠. 남이 못 건드려요.”
“…….”
설진운은, 방금 전, 순간이나마 한승문이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 알겠다고 생각한 것을 후회했다.
어느새 방 안에는 담배연기가 자욱했고.
뿌연 연기 속에 숨은 정치인의 모습은 마치 그림자와도 같았다.
“그러니까……. 나는 가급적이면 우리가 흘려야 할 피를 남에게 떠넘길 겁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우리 진운 씨 협조가 필요하고요.”
“…….”
“일단 홍선아 협회장 좀 데려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