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1 - 국경없는 기사회 (6)
Le Bristol Paris.
샹젤리제 거리 인근의 5성급 호텔.
호텔이라기보다 궁전이라는 표현이 어울릴법한 대저택. 30인의 헌터들은 그곳에 묵고 있었다.
“이런 데 살려면 얼마를 벌어야 할까…….”
“하루에 120이라는데.”
“……싸네?”
“옛날 물가로 120이라고.”
“시발.”
당장 파리 길거리에 노숙하는 사람들이 빽빽한 마당이니 호화롭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게다가 1000명을 위해 마련된 호텔에 머무는 건 고작 30명뿐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숙소를 줄여 달라고 말은 했으나, 프랑스 정부는 한사코 괜찮다며 호의를 베풀었다.
문제는 언론이었다.
“아, 저 새끼들 저거. 또 지랄이네…….”
휴게실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던 아저씨가 신경질적으로 리모콘을 까딱거렸다. 젊었을 때 프랑스에서 영업 좀 뛰었다던 아저씨였다.
헌터들이 주변에 몰려들어 그에게 물었다.
“왜요. 뭐라 그러는데?”
“프랑스 국민들 굶어 뒤지게 생겼는데 한국인 헌터 30명이 호텔에서 호사 부린다고 지럴이야 지럴은. 저 새키들이 기냥.”
“근데 맞잖아요.”
“쓰읍……! 설 대장 말 못 들었어? 우리는 분명 방 바꿔달라고-”
애애애애앵-!
“옴마, 씨벌 깜짝야.”
갑작스런 사이렌 소리에 헌터들이 웅성댔다. 프랑스어로 된 경고음이 들려오기 시작하자, 헌터들은 자연스레 소파 근처로 몰려들었다.
“어어! 아저씨! 이거 뭐라고 씨부리는 겁니까?”
“해석 좀 해봐요!”
“아! 다들 조용히 좀 해봐! 안 들리니까!”
프랑스에서 영업 좀 뛰었다는 아저씨가 닥쳐보라며 소리치는 와중, 창가에 멍하니 서 있던 여자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괴수 나왔답니다.”
“뭐야. 박 팀장도 불어 배웠어?”
박 팀장은 말없이 창문 너머를 삿대질했다.
헌터들이 하나둘 창가로 모여들었다.
“…….”
“…….”
하늘에
푸른 구멍이 뚫려 있었다.
* * *
여도연. 28세.
이 전직 플라이급 종합격투기 선수는 상당히 치열한 인생을 산 사람이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상당히 금욕적으로 살았다 봐도 무방했다.
그녀는 항상 무언가에 짓눌려 살았다.
헬스부터 식단관리, 동생에 대한 열등감, 자신에 대한 압박감, 어머니의 극단적인 반대, 별별 개좆같은 인간군상들까지.
보통 스트레스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술을 퍼마시겠는가, 치킨을 뜯어먹겠는가. 주둥이에 함부로 이것저것 못 집어넣는 그녀가 그나마 스트레스를 해소하던 곳은 바로 영화관이었다.
물론 돈없는 이류 격투가가 턱 턱 CGV 들락날락 거리지는 못했고, 어르신들 사이에 낑겨서 동네 시립도서관 4층에서 틀어주는 무료영화나 보고는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베스트 무비는
[미드나잇 인 파리]
였다.
웬 프랑스 사람이 1920년대로 돌아가 당대의 유명 예술인들을 만나는 내용이다.
근현대 서양예술문학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아낸 작품이라며 이러이런 상 저러저런 상을 받은 바 있다.
비록 한승문에게 매번 고졸 자퇴생 빡대가리라고 놀림받는 그녀였지만, 그녀는 충분히 이 영화를 좋아했다.
물론 그녀가 근현대 서양예술문학에 대한 관심과 소양이 풍부한 건 아니었다. 그건 서울에 있는 국립대 나온 한승문도 모르는 거다.
그렇다면 왜 영화가 그녀의 뇌리에 새겨졌는가?
영화 속 프랑스가 졸라 예뻤다.
사람이 무언가를 좋아하는 데 고상한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지 않겠는가. 여도연은 이 영화를 보며 항상 내면의 무언가를 충족시켰다.
‘햐- 씨팔. 나도 막 이런 영화 보고 다니면서 SNS에다 마카롱 찍어서 올리고 스타벅스에서 프라뿌치노에 샷 추가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뭐. 대충 이런 느낌이다.
어쨌든 그녀가 ‘샹젤리제’ 거리에 대해 남다른 낭만과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녀가 간식 좀 사오겠다는 르윈과 설진운의 뒤를 졸졸 따라 나간 건 바로 그 이유였다.
세 헌터는 그렇게 샹젤리제 거리를 걸었다.
프랑스 정부 통역사의 안내를 받으며 말이다.
그리고 샹젤리제는 보기 좋게 여도연의 기대를 배신했다.
“…….”
내심 예상했다만. 역시 샹젤리제는 비참했다.
팔다리 두어 개쯤 잘린 노숙자, 그 앞을 지나가는 군인들, 뒷골목 쓰레기통 옆에 텐트를 친 일가족, 거리 한편에서 소리치는 시위대까지.
거리를 매운 프랑스어는 각자의 각박함을 풀어냈고, 여도연은 결국 착잡한 심정을 표정에 드러냈다.
“……그리 근사한 풍경은 아니죠?”
르윈은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통역사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샹젤리제의 옛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었으니 말이다.
“……제주도랑은 많이 다를 거예요.”
“아, 그, 그게 아니라-”
“괜찮아요. 사실이니까.”
여도연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고, 르윈은 그제야 자신이 저도 모르게 자격지심을 드러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여느 17세가 그렇듯, 그녀는 순간 사과해야 할지, 말을 돌려야 할지 헤매다가, 결국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그때 설진운이 끼어들어 화제를 전환했다.
“그나저나 저 시위대는 왜 영정사진을 들고 있습니까?”
“……아. 리즈레 의원 신봉자들이에요. 헌터들 신상정보를 국가에서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인데, 헌터한테 살해당했다나 뭐라나.”
“아.”
“덕분에 각성자가 아니꼬운 사람들이 가장 먼저 운운하는 게 리즈레 의원이 되어버렸죠. 리즈레즘이라는 용어도 있답니다.”
르윈은 신랄하게 비아냥대고서 더 운운하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여도연이 앞장서 걸어가는 소녀에게 질문했다.
“……그러면 저 사람들은 헌터가 싫다는 사람들인가?”
“네.”
“유럽은 헌터가 도시를 운영한다고 들었는데.”
주먹이 두렵진 않느냐는 질문이었다.
“흐음. 확실히 대부분의 쉘터가 길드의 손에 운영되죠. 지방도시에서 리즈레즘 운운했다간 좋은 꼴 못 보는 것도 맞고요. 하지만 파리는 아니에요.”
르윈은 모처럼 재미있는 주제가 나온 모양인지, 살짝 미소 지으며 새침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EU 공동군. 그러니까, 연합정부가 운영하는 유일한 쉘터가 파리에요. 대륙에서 가장 물자가 풍부한 곳이죠. 덕분에 가장 민간인이 많은 곳이기도 하고.”
“그러니 헌터를 까도 문제가 없다?”
“그렇죠.”
최대한 아까의 미묘한 분위기를 환기換氣시키려던 설진운이 말을 보탰다.
“그만큼 헌터들도 많지 않습니까?”
“글쎄요. 헌터를 숫자로 세는 게 의미가 있나요? 게이트 클로저급 헌터들은 대부분 지방도시에서 길드장을 하거나 간부를 해먹죠. 사실상 중세 귀족과 다름없는 생활을 할 거예요. 죽기도 많이 죽지만.”
르윈의 입에서 피식 실소가 새어 나왔다.
“그러니 공무원 노릇 해먹는 헌터들은 옛날 세상을 그리워하거나, 차마 지방으로 가서 치열하게 살 용기가 없거나, 어중간한 애국심을 가진 치들밖에 없지요.”
소녀의 웃음은 분명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전부 본인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그녀는 스위스 헌터협회 대표였다. 물론 얼굴마담 이상의 역할은 아니었다. 실무는 연방평의회 각료를 겸하는 부협회장이 맡는다.
그녀의 역할은 모병광고나 공익광고 따위에 예쁘장한 얼굴을 들이밀거나, 정부가 시키는 곳에 가서 괴수를 잡고 사람을 구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이게 그녀가 원하는 삶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강요되는 삶도 아니었다.
당장 원한다면 그녀는 스위스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EU 한정)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욕은 좀 먹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르윈을 움직이는가.
“…….”
찌꺼기다.
찬란하고 순수한 것들의 찌꺼기. 이제는 소녀의 마음속에서 빛바래 버린 것들에 대한 미련. 오직 그 뿐이다.
애국심이나 공명심이라는 게 샘솟던 시절도 분명 있었으나, 이제는 그 잔재만 조금씩 불태우며 연료를 삼는 것이다.
자신은 감성으로 사는가 관성으로 사는가.
한창 때의 사춘기 소녀는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몰락한 샹젤리제를 걸었다.
세상이.
삶이.
어쩌다 이리 되었을까.
그리고 세상이 건넨 대답은 간단했다.
[……경고합니다! 8구에 인스턴트 게이트 4개가 동시 개문되었습니다! 현 시각을 기점으로 비상계엄을-]
지극히 폭력적인 사이렌 소리가 말했다.
그딴 생각할 시간에 괴수나 처잡으라고.
* * *
상인들은 가게 문을 닫아야 할지 가게를 버리고 도망쳐야 할지 몰라 셔터를 붙잡고 전전긍긍했고,
군인들은 총부리를 치들었지만 방향이 일정하지 못했으며, 사람들은 어디론가 도망쳤지만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도주했다.
혼란이었다.
샹젤리제 거리에 혼란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혼란의 주범은 머지않아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쿠우우우웅-!
거인巨人이었다.
그 발걸음은 거리를 깨부수고, 사람을 으깨고, 세상을 뒤흔들었다. 사람의 단말마 따위는 괴수의 발걸음 소리에 파묻혀 들리지도 않았다.
카드드득-!
괴수의 거대한 손이 건물을 가볍게 긁어내자. 모래성 무너지듯 깎여나간 건물 잔해더미에서 핏물과 비명이 새어나왔다.
비참한 이들로 가득했던 샹젤리제 거리는, 순식간에 아까의 그 모습이 사무치게 그리워질 정도로 처참하게 변해버렸다.
회색 거인은 마지막까지 버둥거리던 사람의 상반신을 뜯어먹고선 하반신을 던져 버렸다.
철푸덕-!
여도연의 발치에 방금 전까지 발버둥치던 하반신이 날아들었다. 검은 양복바지에 핏방울이 튀겼다.
“……하.”
여도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눈알 여섯 개 달린 회색 거인은 자기 허리보다 굵은 주먹을 가지고 있었다. 근섬유가 들여다보이는 팔뚝은 그보다 훨씬 컸다.
확실히, 상반신이 하반신보다 3배는 컸다.
“저 새끼는 벌크업을 웃통으로만 했나.”
설진운이 무덤덤하게 맞장구쳤다.
“어깨깡패네요.”
5층짜리 건물만 한 놈이 거리를 어슬렁거리니 저절로 그 커다란 상체가 건물에 부딪히며 인명을 살상했다.
놈은 고릴라처럼 네 발로 걸으며 거리를 뛰어다니는 사람을 으깼고, 때때로 두 발로 일어나 옥상 위의 사람을 잡아채 으적거렸다.
“하체는 영 부실한데?”
“글쎄요. 상체로만 걸어다닐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두 한국인은 퍽 여유롭게 대화를 이어갔고, 직업정신 투철한 통역사 덕분에, 르윈은 그들에게 화를 낼 수 있었다.
“지금 보고만 있을 땝니까!?”
르윈이 이를 악물고 손을 뻗었다. 유럽에서 손꼽히는 염동술사가 분노하는 순간이었다.
하얀 머리카락이 거칠게 휘날리고, 주변에 날아든 건물 파편이 두둥실 떠올랐다.
그러나.
“스톱.”
여도연이 그 손목을 잡아챘다.
허공에 떠다니던 콘크리트 파편들이 투욱 툭 떨어졌다.
“대형종 함부로 자극했다가 미쳐 날뛰면 좆되는 거 몰라서 그래?”
“그러면 구경만 할 겁니까!?”
“구경이 아니라 관찰! 이 새끼야!”
대형종과의 싸움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 정확히는, 화려해서는 안 된다. 영화처럼 화려한 전투 따위는 피해를 늘리는 지름길일 뿐이다.
주인공과 괴수의 싸움에서 무너진 건물에도. 사람은 존재할 테니 말이다.
“짧게 끝내야 돼……!”
여도연은 섣불리 덤벼들기보다는 괴수를 관찰하는 것을 택했다. 차갑게 내려앉은 날카로운 시선이 흉측한 거인을 위아래로 훑었다.
놈은 이 순간에도 사람을 으적이고 있었지만, 훌륭한 사냥꾼은 사냥할 때를 아는 법.
전투는 최대한 간결해야 한다. 괴수의 약점을 파악하고, 한 번에 파고들어야 한다.
그게 여도연의 지론이다.
주먹질이든 칼질이든 감성이 아니라 이성으로 하는 것이다.
당연히 설진운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그들은 퍽 여유롭게 대화를 이어갔다. 적어도 보기에는 말이다.
“아까 하반신은 안 된다 그랬지?”
“네. 상반신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에요.”
“그러면 팔을 잘라야 하나?”
“글쎄요. 어깨가 워낙 두꺼워서.”
“모가지는 견적 나오냐?”
“……저기 가로등 밟고 점프하면 닿을 것 같은데.”
설진운은 굴러다니던 장우산 하나를 들어 툭 툭 매만졌다. 소년은 우산의 질감과 무게, 그리고 그립감을 재단했다.
“……적당하네.”
설진운이 우산을 앞으로 치켜든 순간,
푸른 검기가 날카롭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소년이 간만에 미소 지었다.
“……몸 좀 대주실래요?”
* * *
“이 새낀 뇌가 근육인가…….”
여도연을 무도武道의 길로 데려오고 수제자로 삼아 가르친 동네 복싱장 할배가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있다.
‘싸움의 절반은 눈깔로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할배가 홍콩 무협영화에서 주워들은 게 좀 있나 보다 싶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주옥珠玉같은 명언이라는 것을 체감하고는 했다.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더욱 그랬다.
여도연은 거인의 발치에서 놈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지금까지 확인한 정보들을 되새겼다.
이 회색 거인의 육중한 주먹과 느릿한 몸짓을 보고 있으면, 게임에 나오는 전형적인 탱커가 떠올랐으나. 방금 도망치던 사람 낚아채던 순간을 보면 이 새낀 절대로 느린 놈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주 빡대가리도 아니었다. 건물 속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서, 창문마다 손가락을 쿡 쿡 찌르며 즐거워하곤 했으니까.
아마 감성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가학심이라던가. 아마도.
그리고 눈깔이 여섯 개라 그런가 시야도 꽤 넓었다. 당장 여섯 눈알 중 하나가 발치에 있는 여도연을 응시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흐음.”
그러니 아마 녀석이 여도연의 접근을 허용한 건, 지금 옥상에서 도망치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즉. 여도연이 자신에게 별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서, 자신이 즐기던 유희遊戱를 계속하는 것이다.
“이 새끼가 사람을 아주 개좆으로 보네…….”
여도연의 행동은 간단했다.
퍼억-!
그녀는 거인의 정강이에 주먹을 내질렀다. 회색 피부가 깨져나가고, 그 속에 숨어 있던 붉은 근육에서 피가 솟구쳤다.
거인의 반사신경은 놀라웠다.
그녀가 거인의 정강이를 공격한 동시에, 거인의 주먹이 순식간에 그녀를 내려쳤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속도였다.
쿠우우우웅-!
충격파가 원형으로 퍼져나가며 보도블록이 파괴되었다.
그러나 여도연은 파괴되지 않았다.
그녀는 한 손을 들어 거인의 주먹을 견뎌내었다.
거인은 결국 날카로운 못에 주먹질을 한 바와 다름없이, 세 손가락 중 가운데 손가락이 덜렁덜렁 절단되었다.
그리고 상처를 비집고 기어 나온 건, 붉은 피로 흠뻑 젖은 여도연이었다.
그녀는 곧장 거인의 얼굴을 향해 점프했다.
그러나 거인에게는 반대쪽 손이 남아 있었다.
“크아악-!”
거인은 여도연을 잡아챘다. 그녀의 호리호리한 몸이 거인의 손에 붙잡혔다.
“이……! 뇌근육 새끼……!”
거인이 그녀에게 여섯 눈알을 부릅뜨고서, 커다란 입을 벌렸다.
여도연은 거인의 흉측한 아가리를 들여다보며 지독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언뜻 한승문이 연상되는 악랄한 미소였다.
“크흐흐……!”
그래. 이게 가장 중요했다.
맘 같아서야 이리저리 날뛰며 때려잡고 싶었으나, 굳이 이렇게 잡혀준 이유는 딱 하나였다.
여도연은 거인의 여섯 시선을 한 곳에 모았다.
거인이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살기를 눈치채고 고개를 돌렸을 땐,
르윈이 하늘에서 집어던진 설진운의 푸른 검기劍氣가 눈앞에서 요동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근손실이다, 이 새끼야……!”
여섯 개의 눈꺼풀이 한 차례 껌뻑였다.
시간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푸른 섬광閃光이 거인의 목을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