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117화 (117/296)

EP 20 - 헌터 아카데미 (4)

피채원이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한승문이었다.

주말마다 같이 홈플러스 가는 사람도 한승문이었고, 가끔 우울증 때문에 펑펑 울기 시작하면 부르는 사람도 한승문이었으며, 하루 종일 붙어다니다시피 하는 것도 한승문이었다.

솔직히 살짝 의존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한승문이었다.

“……경호원을 늘리라고요?”

“어어. 생각 읽지 말고.”

“……가급적이면 안 읽는다니까요.”

인생 어찌저찌 굴러가다 보니 졸지에 한승문 비서 생활만 1년이 훌쩍 넘어간다.

그러나 아무리 경력이 쌓여도 이 절름발이가 도통 뭔 생각을 하고 사는지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정확히는, 알기가 싫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간식으로 초코 좀 사와라. 민트맛으로.”

간식 얘기를 하다가.

“아, 맞다. 일본 피 섞인 애들 좀 잘 지켜봐라. 알겠지?”

이런 이야기를 서슴없이 꺼내드는데. 어찌 종잡을 수 있겠는가.

물론 마음먹으면 그의 마음을 낱낱이 읽을 수 있었지만, 대개 그의 마음은 보면 볼수록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것뿐이라서 가급적이면 능력을 닫고 살았다.

이제는 그냥.

그냥 이렇게 누구 등에 업혀서 사는 삶도 나쁘지는 않았다. 괜히 나서서 뭐 하려고 들어봤자 세상은 바뀌지 않더라. 그러니 귀부터 닫는 거지.

그러나.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까지 듣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각성제 맞고 격리된 헌터들 상태는 어떤가? 10명 조금 덜 되던데. 이상변이자.”

“……평생 사람으로 살다가 반쯤 괴수가 됐으니까요. 인격은 멀쩡한데 정신상태가 조금 불안하다네요.”

“하기야 뭐 괴수 몸에 갇힌 사람 꼴이니……. 약물로 진정시킬 수는 없나? 일단 표본 조금 떼서 청송으로 보내 봐. 도 박사가 좋아하겠군. 맨날 장소장이랑 노닥거리는 것 빼고는 할 짓 없다고 징징대더니…….”

* * *

저녁에 몇 시간 빼서 헌터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한들 내 본업은 정치인이었다. 그러니 강의시간 외에는 본업에 충실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역시-

“김치-”

“기, 김치?”

찰칵-!

사진찍기였다.

그러나 나는 뤼미에르와 찍은 셀카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사진이 뭔 프랑스 모델에게 찝쩍대는 삼촌팬처럼 찍힌 것이다. 게다가 잘 봐줘야 삼촌이지 대충 보면 아저씨다.

“……흐음.”

분명 뤼미에르가 나보다 몇 살 더 많을 터였는데, 어째 사진은 거꾸로 찍혔다.

그리고 내가 정치인 특유의 어정쩡한 포즈를 취하는 동안, 뤼미에르는 누가 프랑스 사람 아니랄까 봐 모델처럼 몸을 기울이기까지 했다.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이다.

나는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피채원에게 손짓했다. 그리고 피채원은 침울하게 터덜터덜 내게 다가왔다.

“야. 채원아. 셀카에 효과 어떻게 넣냐?”

“……필터요?”

녀석은 고작 이런 일로 자신을 부르냐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뜨끔한 마음을 숨기고 녀석에게 부탁했다.

“그, 잡티랑 다크써클 좀 지우려고…….”

“……이건 보정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피채원은 가차 없이 셀카를 지우더니, 자기 핸드폰으로 우리를 찍었다.

그리고.

마법이 일어났다.

“……와, 씨, 사진에 뭔 짓을 해야 이렇게 되는 거냐?”

“그, 예전에 인스타 조금-”

“이거 그대로 선거 포스터에 갖다 박아도 되겠는데?”

나는 즉석에서 페이스북 페이지를 하나 만들어 녀석에게 건넸다.

“월급 올려줄 테니까 SNS 좀 관리해라.”

“……네?”

“아니, 홍보요정 막 그런 거 있잖아.”

사실 맨날 침울하게 어기적어기적 걸어다니는 피채원에게 취미거리를 하나 주고 싶어서 한 일이었다. SNS야말로 소통의 창구 아니겠는가.

이놈 집구석 보면 영정사진이랑 향냄새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내가 갖다놓은 가구들 말고 뭐가 바뀌는 걸 본적이 없었다.

업무든, 취미든, 일에 치여 살면 슬픔이 사라지겠지.

물론 내가 생각해도 살짝 꼰대마인드이긴 했지만, 나 본인부터가 부모님 돌아가신 이후로 공부에 매진했던 경험이 있다. 덕분에 서울에 있는 국립대 갔고 말이다. 장애인 전형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정 녀석이 힘들어 하면 업무를 다시 줄여주면 되는 문제 아니겠는가.

그냥 그렇게 생각해서 한 일이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몇 장의 사진과 함께 ‘장관님 레이저 쏘신다‘라는 글귀가 올라온 건 약 41분 뒤의 일이었다.

* * *

이후로도 우리는 하루 종일 헌터들의 교육현장을 순방했다. 종종 덕담과 조언도 좀 건네고 말이다.

그 과정에서 온갖 기인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자! 자! 총 반동이라는 게 엄-청 세거든요? 살짝 무게중심만 조절하면 회피기동까지 가능해요! 특히 대형종은 조준이랄 것도 별로 없으니까. 그냥 돌격소총 양손으로 쥐고 빙빙 돌면-”

괴수랑 싸울 때는 굳이 피하는 게 아니라, 양손으로 총 쏘면서 반동으로 움직이면 된다는 여중생부터,

“각성한 이후로 입맛이 변했다는 분들이 계십니다. 후각이 예민해져서 그렇습니다. 탐색꾼의 자질이 있으신 거죠. 저는 사태 초기부터 압구정 캠프에서 정찰조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제 쓸모의 4할 이상이 후각이었지요. 나중에는 청각이나, 땅의 울림, 기감까지 사용해야 하지만, 정찰의 기본은 후각입니다. 우리는 마치 취객 소주병 피하는 달동네 개새끼와 같은 육감으로-”

“질문 있습니다! 조 교관님!”

“……뭡니까?”

오늘도 어김없이 피딱지 말라붙은 교복을 입고 다니는 조조장과,

“가장 중요한 건 쪽수다. 구석에 몰아놓고 여럿이서 줘패라.”

“유튜브에선 괴수 입으로 들어가서 두개골 까부수고 나오시던데요.”

“한 번 따라해봐. 어떻게 되나 보게.”

친절하게 어린 소년병들을 가르치는 여도연까지.

수많은 헌터들이 신입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생각보다 아주 흥미로웠다. 때로는 내가 깜짝 놀랄 정도로 말이다.

핸드폰 후레시로 비행괴수 유인하는 방법이라던지, 발자국 찌꺼기로 불에 잘 타는 괴수 구분하는 법이라던지, 두 발로 걷는 거대괴수 전봇대로 자빠뜨리는 방법이라던지.

그리고 그런 꿀팁들은 내가 이름도 잘 모르는 헌터들에게서 튀어나왔다. 오히려 이름 있는 헌터들보다 무명 헌터들의 기술이 출중한 것 같기도 했다.

부족한 파워를 기술로 커버하려는 노력이었을까. 나는 그들을 교사로 채용해서 교육인력으로 써먹는 방안까지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가장 인기 많은 헌터는 따로 있었다.

“검이 자신의 몸이라고 생각하셔야 합니-”

“What the f……!”

“身劍一體……!?”

설진운이다.

녀석이 말을 끝낼 때마다 온갖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뒤따랐다.

“……크흠! 그, 그리고. 팔에 혈관이 흐른다는 느낌으로, 마력을 흘려보내시면-”

“Wow……!”

“Sword Master…….”

설진운은 독보적으로 많은 사람들 가운데 둘러싸여서, 부끄러움에 새빨개진 얼굴로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녀석의 말이 끝날 때마다 귀에 통역기를 꼽은 외국인들은 온갖 추임새를 넣으며 감탄했다. 그 웅성거림이 어디 연예인이라도 왔나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건 설진운이 하늘로 검기를 사출했을 무렵, 정점에 달했다.

“우와아아아-!”

무려 기립박수가 터져나온 것이었다.

설진운의 검기는 이미 외신에까지 보도된 절기絶技였다. 강력하고, 효율적이며, 멋있지 않은가.

외교부에서 이때닷! 하고 유튜브에 풀어버린 서울 방어전 당시의 편집영상도 설진운의 인기에 단단히 한 몫 했다.

당연히 수업이 끝나자마자, 온갖 기자들이 설진운에게 달려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설진운 씨!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검기의 노하우를 간략하게나마-”

“최근 동대문파로 분류되는 파벌의-”

그리고,

정치인은 때를 놓치지 않는 법이다.

“아이고-.”

나는 절묘한 타이밍에 대가리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설진운의 등허리에 손을 올리며 카메라에 사이좋은 투샷을 만들어냈다.

“에…… 우선, 우리 설진운 헌터 같은 인재가 대한민국의 든든한 축이 되어 주었다는 점에 항상 고맙고, 또, 든든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자들의 마이크를 가져오는 건 3류다.

기자들이 인터뷰를 요청하는 건 2류다.

일단 입을 열면 기자가 찾아오는 게 1류다.

내가 발언을 시작하자마자 모든 기자들이 자연스레 마이크를 옮겼고, 나를 잘 모르는 외신들도 눈치껏 붐마이크를 옮겼다.

“그리고 뤼미에르 집행관님, 리충빈 부주석, 홍선아 협회장님께도 이 자리를 빌려, 초상관리부 장관으로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슬픔 절반, 비장함 절반 정도를 섞은 표정을 얼굴 가죽에 깔고, 침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이 평화로운 대한민국이 우리 설진운 헌터를 비롯한 수많은 선열과 영웅들 덕분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9시 뉴스 메인에 띄울 대사를 하나 쳤다.

“……지금의 헌터 아카데미가, 바로 대한민국이 그들을 기억하는 법이다. 라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부디 국민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리겠습니다.”

* * *

“아니 어찌 그리 예쁜 말만 골라서 해?”

“아이고, 보셨습니까?”

“봤다마다!”

양판석은 돋보기안경을 끼고 히죽거리며 내게 아이패드를 내밀었다. 네이버 뉴스 메인에 내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달려 있었다.

“내 마침 자네가 인터뷰 때깔 곱게 뽑아놨길래, 이 이사장한테 전화해서 그림 좀 붙이라고 부탁했지.”

“이런 게 궁하셨습니까?”

“4대 전략사업 추진하는 중인데. 영 반응이 신통치 않아서, 원…….”

4대 전략사업이라.

초상혁명과 더불어 양판석의 주요 공약이었다.

국토부 국가재건사업.

농축산부 식량자급사업.

해수부 영해방위사업.

보건부 국민의료사업.

전부 다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집, 밥, 안전, 건강.

“……뭐가 문제입니까?”

“다! 그냥! 다!”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는 모양이네…….”

울화가 치밀었는지 양판석은 테이블을 꽁 꽁 두드리며 신세한탄을 이어갔다. 지하 200미터 벙커의 밀실이라 다행이었지, 뉴스 나오면 이미지 좀 깨질만한 모습이었다.

“건물 좀 짓겠다니까 자기 동네 먼저 지어달라고 피켓 들고 튀어나오고, 쌀값 동결시키는 대신 의식주 챙겨주겠다니까 왜 한몫 못 잡게 하냐고 피켓 들고 튀어나오고, 간신히 주요 항만들만 겨우 방어하고 있는데 갑자기 괴수 나와서 사고 치면 유가족들이 피켓 들고 튀어나오고, 괴수 때매 다친 사람 무상의료 서비스한다니까 의사 약사들이 나보고 빨갱이라고 피켘……!”

콜록! 콜록! 쿠어어얽!

기침소리인지 가래 토하는 소리인지 당최 모를 괴성을 쏟아낸 양판석이, 크리넥스를 몇 장 뽑아 입 주변을 닦아냈다.

나는 측은한 눈빛으로 그의 등을 두드렸다.

“혈압이 위험한 나이 아닙니까……? 조심하시죠…….”

“60줄이면 정치인은 전성기야 이 사람아. ……콜록!”

“생리학적으로는 아닙니다.”

“그래. 젊어서 참 좋겠군.”

쓰읍……!

이건 좀 맥이는 멘트인데.

살짝 아리송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니 양판석이 느물거리며 넘어갔다.

“후우……. 사실 핌피 한다고 기어 나온 양반들은 물대포 쏘면 되고, 쌀값 동결이야 행정대집행으로 밀어붙이면 되는 문제고. 괴수 유가족들이야 찾아가서 계란 맞고 좀 울면 해결이 되는데…….”

“전국민 무상의료는 좀 무리수였지요?”

양판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옥분 밟겠다고 무리를 좀 한 것 같네.”

“하기야 의사들이 배째라 그래서 진짜 째버리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니까요?”

“그렇지.”

“그래서 저는 왜 부르셨습니까?”

“방법 있나?”

“예?”

“방법 있냐고.”

“아니, 방법이 뭐 그리 누르면 튀어나오는-”

“그래서. 없어?”

“……그건 또 아니죠.”

* * *

“금순 씨?”

헌터 아카데미 교육생 2,000명 중 절반은 아카데미 끝나자마자 유럽으로 파견될 2세대 헌터들이었다. 그리고 그중 300명가량이 GS 방위대행사 소속이다.

그러니 헌터 아카데미 근처에서 천금순을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는 제주도 GS 호텔 최상층 펜트하우스로 그녀를 찾아갔다. 아마 인수합병으로 뺏은 건물일 거다 이게.

“계세요……?”

집 안은 온갖 옷가지와 명품백이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고, 바닥엔 포스트잇 덕지덕지 붙은 서류가 굴러다녔으며, 무엇보다 독한 담배연기로 가득했다.

“콜록……!”

나는 담배연기에 기침하며 거실 안쪽으로 향했다.

“……누구세요?”

“어어, 천 사장님.”

“아……. 자기 왔어요?”

그녀는 하얀 목욕가운 차림으로 담배를 꼬나물고서, 노트북 앞에 폐인처럼 쪼그려 앉아 있었다. 재떨이엔 수북하게 산이 쌓였다.

눈도 시뻘겋게 충혈되는 바람에, 토끼 눈을 보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며칠 밤은 너끈히 샌 것 같은 모양새다.

가히 충격적인 비주얼에 이건 뭐하는 짓거리인가 싶었지만, 나는 자연스레 방긋 웃으며 피자를 들이밀었다.

“하하, 도미노 스테이크 피자 조금 사왔-”

“치우세요…….”

“쓰읍……!”

이 양반이 국세청 공무원이랑 뜨개질 하고 싶나.

살짝 불쾌했지만 천금순은 곧장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거 먹으면 또 일해야 하잖아요……!”

“원래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하는 거라지 않습니까?”

“동갑한테 그런 소리 듣기 싫어요…….”

“건강 챙기고 싶으시면 담배부터 좀 끊으시죠.”

“크응…… 독일 포션이 폐에 좋더라구…….”

천금순은 시덥잖은 소리를 중얼거리며 터덜터덜 일어나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따라 왔다.

솔의눈? 내가 태어나서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음료수였다.

“……음! 맛있는데요?”

“일부로 맛없는 거 내왔는데요.”

“괜찮네. 더 줘봐요.”

천금순은 징그럽다는 표정으로 내게 음료수를 따랐다. 그녀는 맥아리 없이 중얼거렸다.

“……예. 그래서 무슨 일로……?”

“다름이 아니라 헌터 등급제 있지 않습니까.”

“아, 네…….”

“어디까지 진행됐습니까?”

천금순은 다크써클 짙은 얼굴에 마른세수를 하며 힘없이 설명을 이어갔다.

“그으……. 공무원 비슷하게 1등급부터 9등급까지 잡아놓긴 했는데요.”

“으음.”

“1등급이 제일 낮고, 9등급이 가장 높아요. 규격 외의 헌터가 나타나면 10등급이 생기겠죠?”

“아, 그러면 기준은 어떻게 잡으셨습니까?”

“그거 때문에 며칠 동안 밤을 새고 있는 거죠.”

천금순은 신세한탄을 시작했다.

“마침 헌터 아카데미 시즌이라 유럽, 중국 쪽 연구진들한테 연구자료 받아서 헌터의 강력함을 측정할 기준을 짜고 있는 중이에요. 체내 마력을 개량하는 법도 중국에서 이미 개발했던데요? 아마 위험종자 헌터들 관리하려고 그런 것 같긴 한데…….”

“흐음.”

“1등급부터 9등급까지 어떤 기준을 둘지, 어떤 등급에 어떤 혜택을 줄지, 비율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지, 능력 강하고 경험없는 헌터가 고등급을 받아도 되는지. 뭐. 자세하게 파고들면 끝도 없겠지만, 이제 그나마 가닥이-”

“실적제로 하죠.”

천금순의 몸이 굳었다.

그녀는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 내게 물었다. 평소처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네?”

“실적제로 하자고요. 모든 헌터가 1등급에서 시작하고. 정부의뢰나 경호업무, 몬스터 사냥 경험이 쌓일수록 등급이 올라가는 방식으로요.”

“네?”

“그리고 특히 의료 계열 헌터들같은 경우 말입니다만. 국가 보건소에서 봉사할수록 가산점을 주는 건 어떻겠습니까?”

“네?”

“VIP 지시입니다.”

같은 말만 반복하던 천금순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는지, 순식간에 업무용 미소를 띄며 나를 만류하기 시작했다.

“아, 아하하하……! 장관님 말씀도 상당히 괜찮네요! 그러면 그 부분 일부 반영하는 걸로-”

“아, 네. 감사합니다.”

“네?”

나는 홀가분하게 옷자락을 툭 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책상 앞에다가 방금 그녀가 치우라던 도미노 스테이크 피자를 올려두고서 말이다.

“그러면 헌터 협회 천금순 대표이사님? 가급적이면 실적제 중심으로 개편안 준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히 치유 계열 헌터들 같은 경우는, 국가 보건소에서 봉사하면 가산점 주는 걸로 꼭 정해주시고요.”

“아, 아니, 그, 장관님?”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 그, 피자 먹을 테니까! 자기야! 우리 조금만-”

“피자 맛있게 드십쇼.”

미련 없이 뒤돌아 펜트하우스를 나오는 길에, 뒤에서 ‘야 이 양아치 새끼야-’라는 환청을 들은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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