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0 - 헌터 아카데미 (3)
네. 시간이 됐네요.
정신계 응용 수업이 끝났습니다. 이제 다들 각자 관심있는 선배 헌터들에게 찾아가서 이런저런 조언 구하시면 될 것 같은데요. 학교 곳곳에 흩어져 계시니까 나눠드린 안내서 보고 찾아가시면 되겠습니다.
여기 다들 꾸벅꾸벅 졸고 계신 거 보니까, 저한테는 별로 안 찾아올 것 같지만요. 하하하……!
그런데…….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보태자면, 저는 우리 같은 정신계 능력자들은 남에게 기댈 수도 없고, 기대서도 안 된다고 봅니다.
우리들 적성이 모두 달라서 그렇습니다. 파이로가 일렉트릭한테 수업을 들을 수야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물론 염동술사야 대충 비슷하긴 하지만, 세부적으로 갈려나가는 지점이 분명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스승을 닮아버린 제자가 스승보다 힘은 강해도 제대로 못 싸우는 경우도 왕왕 봤었죠.
결국 우리 사이오닉들의 수련은, 우리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어떻게 자신의 장점을 찾아내느냐, 어떻게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느냐의 싸움인 겁니다. 이게 가장 중요한 부분인 동시에, 절대로 남이 가르쳐 줄 수가 없는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이오닉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는 ‘교육’이 불가능한 초능력이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수행’이면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물론 우리의 가능성은 무한합니다. 한 사람이 불과 번개를 다루고, 염동술사가 치유력을 행사하는 경우 또한 분명 존재합니다.
다만, 그게 쉽지는 않을 겁니다.
* * *
“이게 느낌적인 느낌이랄까요. 총을 쏜다는 생각보다는, 레이저 포인터의 버튼을 누르는……?”
“제 이해력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한국어를 덜 배운 건지 모르겠군요.”
제주대학교의 커다란 운동장.
나는 뤼미에르에게 그녀의 능력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살짝 오묘한 상황이기는 했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러나, 교육은 영 순탄치 못했다.
“……그러면 역장이라도 먼저 알려주시죠.”
“그, 뭐시기 뭐냐. 일단 상대방의 몸에 불을 붙이는 느낌으로 마력을 덕지덕지 붙여놓은 다음에, 도망치는 쥐새끼 움켜잡는 것처럼 콱 쥐면, 역장 감옥이 생기던데요……?”
“아니 그러니까, 그 움켜잡는 느낌으로 쥐는 게 뭡니까?”
“아-니 염동력 모르십니까? 염동력?!”
유일하게 늘어나는 건 뤼미에르의 한국어 실력뿐이었다. 그녀가 신경질을 낼수록 그녀의 발음은 점차 네이티브 코리안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만 더 상세한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장관.”
“아, 예. 아무렴요.”
하다 보니까 여도연 운전 가르치는 기분이 들었다. 정수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다는 뜻이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평소에는 능력을 어떤 식으로 활용하십니까?”
“으음…….”
뤼미에르는 잠시 고민하다 자신의 능력을 나열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힐링입니다. 보호막을 치거나, 다른 헌터들의 신체능력을 강화시키는 것도 가능은 합니다.”
“그리고요?”
“음. 베를린 지하철에서 초대형 조명탄을 만들어낸 적이 있습니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거의 분리된 케이스도 살려본 적 있고요. 비록 환자의 머리가 하얗게 새어버리기는 했습니다만…….”
내가 그녀의 능력으로 사용한 기술은 2가지였다. 아스팔트를 녹인 레이저빔과, 괴한을 허공에 가둬버렸던 역장 감옥.
“일단 레이저는 빛 응용이고, 역장은 보호막을 응용한 기술 같습니다만.”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사용하셨습니까?”
“이게 설명할래도 조금…….”
애매했다.
“……다시 써보래도 못할 것 같습니다만.”
“그러면 한 번 더 해보시죠?”
“으앗……!”
덥썩, 그녀가 내 손을 잡아챘다. 그녀는 눈을 꿈뻑이며 나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눈 속에 무언가 불타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젠장. 아무래도 호구잡힌 모양이군. 이상한 데서 곤조를 부리는구만.
그래도 이왕 호구 잡힌 김에 뭔가 제대로 보여줄 생각으로 나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누구 잡을 일도 없으니 이번에는 최대한 살살.
그리고 느낌적인 느낌으로-
치이익-!
섬광이 바닥을 긋고 지나갔다. 검게 그을린 잔디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자, 보셨죠?”
“…….”
“해보세요. 참 쉽습니다.”
불만스런 표정의 뤼미에르는 입을 삐죽 내밀고서 나처럼 손을 뻗었다. 그녀는 허공에 팔을 몇 번 휘둘렀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허공에 팔을 휘저으며 내게 따져 물었다.
“대체 어떻게 하라는-”
콰아아아아아앙-!!!
“끄아ㅎ응앜!”
“꺄악-!”
* * *
“괴수전의 기본은 쪽수입니다. 구석에 몰아넣고 쪽수로 줘패면 됩니다.”
“질문 있습니다!”
“뭡니까?”
“여도연 헌터님은 유튜브에 보니까 괴수 입으로 들어가서 두개골 까부수고 나오시던데, 그런 몸놀림은 어떻게 키우는 겁니까?”
“입으로 들어간 게 아니라 멍때리다 잡아먹힌 겁니다.”
“그래도 배우고 싶습니다!”
“그럼 일단 먹혀 보시죠. 어떻게 되나 보게.”
“흐엥…….”
띠리리리-!
띠리리리-!
“……전화 좀 받겠습니다.”
어디 으슥한 건물 뒤편에서 헌터들을 가르치던 여도연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동생놈이다.
만약 평소였다면 맥주 사오라는 소리였겠으니 가볍게 전화를 무시해겠겠지만, 지금 이놈은 대한민국 장관이었다.
“……여보세요?”
-야!
한승문의 급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도연의 험악한 표정이 한층 더 험악하게 변했다.
“……뭐야?”
-운동장! 운동장! 빨리-
전화가 끊어졌고, 여도연은 그 순간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도착했을 때.
“방금 그거 어떻게 하신 겁니까?!”
“니- 강-샤이 쉬- 젠-마 주오 댜-오 뎨?!”
“커망테- 아베-즈- 비오-스 페-이트 사?!”
한승문은 경호원, 헌터, 뤼미에르 등, 온갖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 * *
보통 뤼미에르와 내가 이동할 때는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린다.
둘 다 자기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이었고, 특히 뤼미에르는 압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었기 때문에, 싸인,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는 것 때문이었다.
그리고 뤼미에르가 큼지막한 레이저로 운동장을 지져버렸을 당시, 운동장은 실습하러 나온 헌터들과 지망생들로 넘쳐났다.
덕분에 녹아버린 바닥을 다시 얼리고, 수미터짜리 크레이터를 메우는 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근처에 널린 게 초능력자들이었으니까.
게다가 경호원들이 우리를 일반 헌터들로부터 살짝 격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친 사람도 없었고 말이다.
그러나 문제의 발단은, 쭈욱 우리를 구경하던 헌터 하나의 질문에 내가 답해줬던 것이었다.
“자, 장관님! 실례지만 질문 하나만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아, 네. 말씀하시죠.”
“다, 다름이 아니라…….”
그는 녹아내린 운동장을 얼리던 빙결술사였다.
“저는 그, 허공에서 고드름을 던지거나, 얼음덩어리를 만들어 던지는 것 말고는 활용이 어려운데…….”
“네, 네.”
“물론 대충 가능할 것 같은 기술들은 많지만, 제가 맨 처음 능력을 각성했을 때가 총알이 떨어졌을 때 얼음을 날려버린 것이었던지라, 아무래도 다른 능력을 쓰기가…….”
나는 뤼미에르의 보호막과 레이저를 쓰던 감각으로, 그에게 얼음 방패와 냉동빔을 알려주었다.
겸사겸사 감지윤의 염동력을 사용하던 경험에 빗대어, 고드름을 곡선으로 날리는 법도 가르쳐 주고 말이다.
그리고.
그 행동이 헌터들의 눈을 뒤집어버린 원흉이었다.
“하, 한번만 시간 좀 내주십시오! 장관님!”
“Ministre! please sir!”
“师傅! 师傅!”
경호원들이 고기방패가 되고, 뤼미에르가 몰려드는 사람들을 막으려 보호막까지 사용했지만, 헌터들은 디스펠까지 쓰며 내게 달려들었다.
정확히는 지나가던 헌터 하나가 뤼미에르를 비웃으며 디스펠을 쓰고 도망쳤다.
뤼미에르는 디스펠을 쓴 헌터와 알던 사이였는지 ‘저 빌어먹을 영국 좆대가리 새끼!’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방금 막 배운 역장으로 사람들을 제압했고, 경호원들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던지라 온갖 방법으로 군중을 막아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결국 여도연이 와서 사람들을 양파 껍질 까듯이 하나하나 떼어내고 난 다음에서야 나는 완전히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나를 붙잡는 이가 하나 있었다.
“저어, 장관님?”
“후으으……! 허억……! 예, 무슨 일이십니까? 차관님?”
“다름이 아니라…….”
한승문 특강이 개설된 건 그날 오후 5시였다.
* * *
제주대학교 인근의 한 호텔방. 침대는 두 개가 있었고, 나는 그중 하나에 철푸덕 쓰러졌다.
보송보송한 베개에 얼굴을 문대며 이불을 돌돌 감고 있으니, 누군가 내 뒤통수를 퍼억 후려쳤다.
“야. 인기쟁이.”
“아. 씨…….”
여도연이었다.
“아까 저녁에 인기 많더라?”
이제 막 씻고 나왔는지 녀석의 중단발에선 물방울이 뚝 뚝 떨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토끼 모양 잠옷과, 토끼 무늬 수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나는 그 요상한 모습을 보고 눈쌀을 찌푸렸다.
“아, 왜 내꺼 입냐…….”
“니꺼 내꺼가 어딨냐?”
“니 입고 나면 냄새난-”
꾸욱-!
“갸아악……!”
여도연은 손가락으로 내 척추를 꾸욱 눌렀다. 근육이 뭉쳐 있어서 그런가 입에서 신음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끄허어으엉엌……!”
“……아니, 비명도 왜 이리 아저씨 같아졌어.”
“닥쳐…….”
“흐음……. 많이 피곤하냐?”
“몸도 힘들고, 머리도 복잡하고…….”
여도연은 잠시 고민하더니, 방긋 웃으며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원래 근육통에는 이게 약인데.”
길쭉한 캔맥주였다.
그것도 국산.
“아이씨……. 방금까지 공산당 당조서기랑 고량주 빨았는데…….”
“좋은 거 먹었겠네. 그래서 안 먹을 거야?”
“누가 안 먹는데!?”
당장 따라!
* * *
-예, 부주석. 한 장관은 일단 헌터 아카데미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식사 자리에서 몇 번 떠봤건만, 별다른 반응은 없었습니다.
“아아. 그래. 조금만 더 수고하지.”
뚝.
전화기가 꺼지고, 리충빈이 사람 좋게 웃으며 모니터 속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는군요.”
모니터의 검은 화면 속에서 호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거 참 다행이군! 리 부주석. 그렇다면 계획은 일정대로 진행할 거요.
“사석에서는 대사령이라 불러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선양군구 시절의 흥취가 노구에서 가시질 않아서, 원…….”
-OK, General. Anyway!
모니터의 검은 화면 속에선 영어가 흘러나왔다.
-방위 시스템의 구축이 끝났으니, 이제 더 준비할 것도 없겠군. 당신은 준비됐나?
“준비야 옛적에 끝났습니다.”
-아니, 마음의 준비 말이오.
“그러니까 말입니다.”
리충빈의 목소리에서 짙은 감정이 배어나왔다.
그건 살기殺氣였다.
“묵힐수록 참되는 것이 천하에 두 가지 있을진대. 하나는 명주名酒고 하나는 마음입니다.”
-……하하! 거 오싹하구만!
“36년을 벼려낸 것이니 안심하셔도 좋을 겝니다.”
-……허. 좋아.
어두운 화면 속에서 유쾌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Let's get the show on the road, General.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의 부주석이자, 전직 선양군구의 군구대사령은, 무려 영어로 된 답변을 돌려주었다.
“……I expect to have good business.”
썩 좋은 발음은 아니었으나, 이 노회한 정치장교의 목소리는, 검은 화면 너머의 인물을 소름끼치게 만들기 충분했다.
“……Mr, presid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