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0 - 헌터 아카데미 (1)
커다란 공항 유리벽 너머로 세상을 보았다.
비가 내렸다.
세상은 변한 듯 하면서도 변하지 않았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추적추적 내리는 장맛비를 보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곤 하는 것이다.
“장관님?”
“아아. 가지요.”
“네. 13분 뒤 도착입니다. 일정이 밀려 죄송하다는 말도 함께였습니다.”
“날씨 때문인 것을 뭐......”
한국은 매년 그렇듯 장마철이 다가왔다. 이맘때의 흐린 하늘은 여전히 같은 모습을 지키고 있었다. 단지 그 아래에 사는 것들이 조금 바뀌었을 뿐.
협찬받은 고급 지팡이를 짚고 일어난다. 제주공항 벤치에 앉아있던 나는 보좌관이 씌워주는 우산 아래를 걸으며 활주로로 나갔다.
손목시계를 보니 새벽 5시 즈음 되었다. 원래는 어제 저녁에 도착했어야 하는 비행기였지만, 날씨 문제로 이제서야 도착하게 되었다.
활주로에는 나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비행기를 기다리려 모여 있었다. 첫 줄에 있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차관급 이상의 예우를 받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첫 번째 줄에서도 가장 가운데에 섰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새벽비 부슬부슬 내려오는데.
저어 멀리 유럽에서 온 손님들이 희뿌연 물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 *
르윈 슈미트체바.
18세의 알프스 소녀. 정확히는 스탄스 역 건너편의 치즈집 딸내미다. 그리고 스위스를 대표하는 헌터이기도 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사태 초기부터 활동한 어리고 예쁜 염동력자였던지라, 스위스 정부가 모병광고 간판모델로 써먹어서 그런 탓도 있었지만, 노아 뤼미에르의 최측근이라는 사실이 그녀가 스위스를 대표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노아 뤼미에르라는 이름은 유럽에서 그런 의미였다.
희망.
그리고 르윈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뤼미에르를 질투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희망을 만들고서 그 뒤에 숨은 위정자들에 대한 불만일 따름이다.
“왜 우리가 정치까지 해야 하죠?”
이건 비합리적이라고. 르윈은 창가에 붙어 바다를 내려다보던 뤼미에르에게 따져물었다.
“루미에 언니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외교관들 멀쩡히 냅두고 왜 우리가 돌아다녀야 하지? 괴수 잡을 시간도 모자란데?”
뤼미에르가 답했다.
“외교관들에게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아니. 그건 알죠.”
EU 외교관들에게 정치를 맡기면 어떤 끔찍한 결과가 나올지는 뻔했다. 초능력자들의 육편으로 만들어진 벽 뒤에 숨어사는 쥐새끼들의 배만 불리는 결과가 나오겠지.
결국 유럽 헌터의 이권은 스스로가 챙겨야 했고, 결국 헌터가 외교와 정치를 하는 꼴이 되었다.
그리고 르윈은 그게 귀찮은 건 아니었다.
“이럴 시간에 사람 구했으면 몇 명이 살았겠냐고요.”
사태의 원인은 뻔했다.
“정치하는 양반들은 왜 우리를 안 도와주는 거지...?”
“헌터가 각 도시의 정권을 잡았으니까요.”
“......그래도!”
중앙정부가 무너지고 헌터가 도시를 지키게 되며 정치인들의 자리를 뺏었고, 위기를 느낀 정치인들이 헌터를 배격하는 것 뿐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각자가 각자의 사정에 충실할 따름이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이해관계에서 선악은 중요치 않다.
“......그래도.”
그러니 스위스의 여린 소녀는, 그저 선악의 구분이 없어진 세상이 안타까울 따름인 것이다.
이에 뤼미에르는 측은히 미소지으며 아직 어린 아이를 손짓으로 불렀다.
“르윈? 한국은 처음이죠?”
“......”
“이리 와 보세요.”
르윈은 주인에게 가는 강아지처럼 뤼미에르에게로 향했다. 뤼미에르는 르윈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창가에 앉혔다.
창문을 들여다보던 르윈의 삐죽 튀어나온 입술 사이로 투정이 새어나왔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도착할 때가 됐는데......”
뤼미에르가 기대해도 좋다는 듯 미소지었다.
“내가 한국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가 이거거든요.”
그때.
어두운 새벽하늘의 먹구름이 걷혔다.
그리고
“......아.”
르윈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넋을 놓았다.
그 언젠가 잃어버려 이제는 생각도 나지 않는 광경이, 이제는 뼈에 사무치게 그리운 그 모습이, 그녀의 눈앞에 펼쳐졌다.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거대한 빌딩들이 현란한 빛을 내뿜었고, 그 틈새로 수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빛의 강을 이루어 흘러갔다.
이제는 잃어버린 그 찬란한 문명이, 고작 1년도 안 되어 기억 속에서조차 희미해진 그 모습이,
희뿌연 물안개 속 빛의 도시가,
비로소 어린 헌터 앞에 그리운 옛 모습을 드러냈다.
수평선 너머로 떠오르기 시작한 여명이 도시를 축복하듯 슬며시 내리쬐었다.
*
“어께-이! 끌리아드 투 랜딩! 센타라인 진입!”
“오라-이! 오라-이!”
안내봉을 든 공항 직원들이 익숙한 전문용어를 사용하며 비행기를 주차했다. 그리고,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군인들이 대열을 갖추어 비행기 앞에 사열했다.
각성제를 투여할 예비 헌터 500명과, 기자나 호위를 비롯한 기타 인원 100명 정도가 한국에 찾아왔다.
우리는 이번 방문을 준 국빈방문으로 대접하기로 했다. 대한민국이 갖출 수 있는 가장 큰 예우다.
예포도 21발이나 쏘고, 오찬 때 문화공연도 하고, 매뉴얼에 적힌 정부인사들이 다 나가서 맞아주기까지 한다. 원래는 대통령도 나간다.
다만, 저쪽에 선거로 당선된 권력자가 없다 보니 양판석은 지하벙커에서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그것만 빼면 국빈방문과 다를 게 없었다.
물론 이게 쓸데없는 예식은 아니었다.
일단, 내가 국무총리를 제치고 한국 대표로 나온 것으로 한국의 실력자가 누구인지 매듭짓는 것은 기본이고, 성대한 문화행사를 보여주며 대한민국이 아직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로 건재한 나라라는 것을 세계에 과시하는 것도 겸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보통 예포 21발은 국가원수급에 대한 의전으로 통용되는데. 즉, 대한민국은 노아 뤼미에르를 국가원수급 인물로 생각한다는 것을 공표하는 것이다.
그러면 EU 내부에서 노아 뤼미에르의 위치를 견고하게 다져줄 수 있겠지. EU 고위층이야 살짝 아니꼽게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유럽사람 대우해주는 건데 뭐라고 따지겠는가.
이처럼 외교란 참으로 머리 아픈 것이었다.
물론.
돌아오는 게 있으니까 이렇게 하는 거다.
비행기 문이 열리고,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아 뤼미에르는 군복을 연상시키는 멋들어진 군청색 코트를 차려입고 있었다. 실제로 훈장까지 달려 있었으니 군복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한 쪽으로 세련되게 쓸어내린 금발머리가 군복을 드레스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은은하게 후광을 내뿜던 그녀는 활짝 웃으며 내게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Ministre Han!”
“반갑습니다. 뤼미에르 집행관.”
우리는 카메라 셔터 소리를 배경으로 정겹게 악수를 나눴다. 추적추적 새벽비가 내리기는 했지만 우산 없이 걸어 다녀도 될 정도로 옅은 이슬비였기에 큰 지장은 없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뤼미에르의 머릿결이 내 뺨을 스쳤다.
쪽 - !
비쥬Baiser.
볼키스라고도 하는 서구식 인사법이다. 마침 프랑스가 원조이기도 했다.
그녀는 내 뺨에 자기 볼을 맞대고서 작게 소리를 내더니, 반대쪽 뺨에도 볼을 맞추었다.
쪽.
귓가에 짧게 소리가 울려퍼졌다.
직접 닿는 키스는 아니고 소리만 내는 인사였다.
한국인 정서로는 살짝 오묘한 문화였지만 뭐 어떤가. 옛날에 문재인이랑 김정은도 했는데. 물론 그쪽은 소리는 안 냈다만.
아무튼 이것도 서로 합의하고 하는 인사였다. 갑자기 들이대면 성추행이니까. 그러니 나는 그녀가 내게 볼키스를 할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C'est un plaisir pour moi. Ministre."
아무래도 살짝 당황스러운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
원래는 청와대 영빈관으로 가야 정상이었으나 지금 그리로 가면 대통령이 아니라 괴수들이랑 식사를 해야 했다.
그렇다고 코드네임 청와대로 가면 지하 200M 벙커에서 식사를 해야 하고, 위치노출 때문에 이 사람들한테 왕복으로 안대를 씌워야 했다. 기자들은 기본적으로 출입금지였고 말이다.
그래서 선택한 곳은 롯데호텔 제주였다.
5성급 호텔이다.
세련되고 화려하게 세팅된 연회장에서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을 정도의 가수들이 공연을 끝마치고, 대충 그럴듯한 연설도 끝나고 난 이후.
수많은 테이블에 헌터들과 예비 헌터들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모든 테이블마다 기깔난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800명이 넘어가는 대인원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상당한 비용이 지출되는 일이었지만, 남 앞에 보여주는 것이었으니 돈을 아낄 때가 아니었다.
미국 언론에서도 찾아왔으니까.
아무튼.
이 곳에 앉아있는 건 외국인들 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테이블마다 적어도 두 명 이상의 한국인이 있었다. 한 명은 통역사고, 한 명은 한국인 헌터다.
압구정파와 동대문파의 최정예 헌터들이 외국 헌터들과 처음으로 교류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유사시 대응병력 역할도 겸하긴 했지만 그럴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식사 분위기를 보니까 대충 감이 온다.
내 옆에 앉은 뤼미에르가 고개를 푹 숙였다.
“......부끄럽네요.”
“괜찮습니다. 그런 말씀 마십쇼.”
“아니, 저, 저 양반들이 진짜......”
“맛있게 먹으면 좋죠 뭐. 하하!”
헌터, 라는 게 기본적으로 험한 양반들이긴 하다. 목숨 걸고 일하는 직종이 대부분 그렇다. 군인, 광부, 중공업 노동자, 등.
그런 사람들이 1년 동안 전투식량만 먹고 살았으니 제대로 된 식사가 얼마나 그리웠을까. 대부분의 헌터들이 허겁지겁 식사에 열중했다.
그리고 사람이 배부르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당연지사. 식사가 끝난 이후의 분위기는 아주 정겨웠다.
특히, 유럽에서 호위로 온 초인들과 한국 초인들 간의 테이블이 아주 활기찼다. 대체로 유리잔 몇 개가 둥둥 떠다닐 정도로 말이다.
통역사들 혀가 아플 정도로 대화는 활기차게 이어졌다.
어떤 아저씨가 자기 팔뚝을 들이밀며 외국인에게 말했다. 약주를 좀 했는지 얼굴이 불콰하게 취한 상태였다.
“내가 그, 이따만한 괴수 모가지를 후려친 적이 있는데, 팔뚝이 움푹 들어가지 뭡니까?”
“의외로 대형종 뼈가 약하더군요. 재생력이 강해서 문제지.”
“근데 그, 시벌, 비행괴수들은. 아. 그쪽도 막 박쥐 비슷합니까?”
“그런 놈도 있고 아닌 놈도 있죠. 우리 공중팀은 대충 4가지 형태로 구분하는데......”
천화란 박사와 외국 학자들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쪽은 다 영어를 썼다.
“매번 목소리로만 들었는데 이렇게 미인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별 말씀을요. 미하일 박사님 맞으시죠? 마분자 파형 연구는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아, 펜타곤에서 전해 받은 뮤테이션 이론을 기초로 응용한 것뿐입니다. 그러니 결국 천 박사님이 만든 이론에서 출발한 것이지요. 미국 친구들도 참 오고 싶다고 말하던데......”
이외에도 여도연이 누구랑 팔씨름하다 테이블을 깨먹어서 나한테 정강이가 차이기도 했고, 서로의 소년병들을 보며 씁쓸한 웃음이 오가는 일도 있었지만, 가장 주목받는 곳은 따로 있었다.
“우와아우-!”
“인크 레-더블!”
“왓 더...!”
휘파람 소리 섞인 환호성이 어디선가 들려왔다. 심지어 근처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몰려들어 구경하기까지 했다.
테이블을 돌며 결혼식장 하객 맞이하듯 인사를 나누던 나는 깜짝 놀라 그곳을 돌아보았다.
인파에 둘러싸인 설진운이 연회장 천장까지 닿을 정도의 검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부끄러워서 귀까지 빨개진 설진운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녀석의 손에는 포크가 들려 있었다.
“......”
포크로 검기를 뿜어내는 것을 보니 나조차도 살짝 얼이 빠질 정도였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결국 검기에 손가락과 휴지를 갖다 대며 놀던 헌터들은 호텔 직원의 간곡한 부탁에 이리저리 흩어졌다.
물론 헌터들이 흥분해서 어울리기 시작할수록 뤼미에르의 표정은 물가에 애 내놓은 엄마처럼 전전긍긍 썩어 들어가긴 했지만.
“......참. 내.”
오랜만에 자연스런 미소가 지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현충원 헌화와 대국민 질의, 장성 간 교류와 기술시범까지. 빼곡한 일정으로 가득 찬 하루가 끝나고.
수평선 너머로 해가 저물었다.
제주도의 밤이다.
해변도로를 따라 가로등이 줄지어 선을 그려냈다.
뤼미에르와 나는 그 빛줄기를 따라 걷고 있었다.
저어 멀리서부터 갈매기들이 둥지로 돌아오고 있었고, 기뢰선들은 서서히 어두운 수평선을 거닐었다,
뤼미에르는 문득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에서 수려한 한국어가 튀어나왔다.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글쎄요. 내일 중국 손님들 오면 똑같은 짓거리. 아니, 잠깐.”
깜짝이야.
“......한국말은 언제 배우셨습니까?”
“글쎄요. 비행기에서 틈틈히?”
그녀는 살풋 눈웃음치고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각성제를 맞을 사람들, 전부 다 헌터입니다."
"......예?"
"초인은 아니긴 합니다만."
"......아."
뤼미에르는 나긋히 설명을 이어갔다.
"사태 초기부터 활동한 비각성 헌터들. 총칼로 괴수를 잡는 사람들. 마석이 돈이 안 되던 시절부터 괴수랑 싸우던 사람들. 우리는 자경단이라고 부르는 이들입니다."
"......훌륭하신 분들이군요. 사람을 지키려고 싸우시던 분들 아닙니까?"
"네. 제가 목숨을 빚진 분들도 몇몇 계시죠. 그만큼 고생하신 분들이니만큼, 다들 한국을 좋아하게 될 겁니다. 아마."
그녀가 몽롱한 눈빛으로 손을 들었다.
“......가장 그리운 게 이거였습니다.”
그녀의 손가락은 노오란 가로등을 가리키고 있었다.
“밤이 되면 세상이 껌껌해지고. 어둠 속에서 괴수들의 울음소리만 들렸죠.”
“......”
“사회가 붕괴했다는 게 가장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어둠 속에서 공포에 떨며 눈을 감을 때.”
뤼미에르는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슬픈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저는 그게 익숙하더군요.”
그녀의 쓴웃음이 눈에 들어왔다.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아프리카를 떠돌던 시절. 저어 멀리서 들리는 총성을 들으며 흙바닥에 몸을 뉘일 때. 그때랑 별반 다를 바 없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렇습니까?”
“하나 다른 건. 흙바닥이 아니라 평소 살던 맨션에서 그 기분을 느껴야 했다는 거죠. 그리고 그게 가장 무서웠습니다. 그러니까......"
그녀는 잠시 고민했다.
"......일상이 무너지고 사회가 와해되는 게 어쩌면 괴수보다 더 무서웠을지도 모르겠군요.”
“어째 저보다 한국어를 더 잘하시는 것 같습니다.”
“노력한 보람이 있군요. 사실 경어 구분하기 어려워서 존대어만 통째로 외웠습니다."
"암기 잘하십니까?"
"흐음! 저도 나름 의사니까요."
짧게 사담을 나누고서. 뤼미에르는 슬며시 미소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어쨌든 다들 한국을 좋아할 겁니다. 항상 옛날 생각이 나는 곳이라......”
“......유럽 상황이 어느 정도길래 그러십니까?”
“적어도 가로등까지 킬 정도로 여유롭지는 않지요. 가장 안전한 파리도 말입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주제를 넘겼다.
“아무튼 이번 국제군 편성으로 다들 좋아하고 있습니다. 오버워치가 된 기분이라나? 저보고 메르시라고 하더군요?”
“그게 뭡니까?”
“......오버워치 모르십니까? 한국인이?”
“글쎄요. 시계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녀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때.
“어...!”
뤼미에르가 내 멱살을 잡아챘다.
그녀는 나를 거칠게 끌어당겼다.
그리고-
“Bordel...!"
나를 몸으로 감싼 뤼미에르가 커다랗게 손을 내젓자, 빛으로 된 역장이 우리를 감싸안았다.
마력이 요동쳤고, 뤼미에르의 후광은 눈부시게 번쩍이기 시작했다.
광휘를 두른 그녀가 거칠게 소리쳤다.
“Who's There!"
나는 눈을 깜빡였다.
불과 몇 미터 앞 가로등 아래에.
어느새 사람 하나가 묵묵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