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91화 (91/296)

EP 15 - 정치판 속 엑스트라 (5)

TV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 국민당 최고위원 7인이 검찰에 동시 기소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원옥분이 검찰을 부려 부당한 개입을, 아, 그, 소, 속보입니다. 인터넷 상에서 장준석 국민당 정책위의장의 성관계 동영상이......

“오빠.”

턱, 어깨 위에 손이 올라왔다.

“정신 차려요.”

“......호정아.”

“우리가 좆된 건 아니잖아.”

이호정이 이를 악물었다.

“지금 이렇게 멍때리고 있을 때에요?!”

“......뭐 해야 하는데 그럼?”

“피해자 코스프레...!”

* * *

「일반국민 : 님들아. 저 누구 뽑아야 할까요? 평생 정치에 관심 떼고 살다가 요즘 처음으로 뉴스보는 중인데. 뭐가 뭔지 잘 모르겠음...」

「빅토리무니 : 대깨한」

「일반국민 : 네?」

「빅토리무니 : 대가리 깨지기 싫으면 한승문 선거 튀어나오라 그래」

「정공빌런 : 그래봤자 지금 헌법 못 고쳐 병신아」

「선별적힙찔이 : 국민당 혼자 씹캐리하면서 날아오르나 싶었는데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네. 솔직히 조금 마음 아프다」

「정공빌런 : 정치인 때려치고 av 남배우 데뷔한 새끼들 봤냐? 늙은이들이 좆 존나 잘 세우던데 ㅋㅋㅋㅋㅋㅋ」

「판붕이 : 김조인은 좀 억울할 만도 한 게 22년도에 부동산 거품 터뜨린 게 전부 아님? 솔직히 다들 언젠가 터질 거 알고 있었잖음. 자유시장경제 이끄는 경제인이 걍 국가를 위한 선택을 한 건데 뭐 그리 발광이신지.」

「우남정 : 우리아버지 그때자살하셨다 씨발새끼야」

「판붕이 : 욕하고 지랄이야 애비뒤진 새끼 ㅉ」

「우남정 : 개미들 쳐죽여서 살릴 나라였음 없는 게 낫다. 김조인은 진짜 돌 맞아 죽어도 싼 거다. 경제 조또 모르는 새끼들이 함부로 입털지 마라.」

「냥이노비 : 게이트.. 열리고 나서 인터넷하기가 쪼끔 무섭네요.. 쪼끔만 서로 배려했음 하는 맘이.. 힘든만큼 서로 배려하면서..^^」

「정공빌런 : 가족이 아직 안 뒤졌으니까 그딴 말이 튀어나오는 거지」

「일반국민 : 님들. 저 그래서 누구 찍어요...?」

「판붕이 : 나는 솔직히 한승문 좀 그럼. 젊은 새끼가 너무 나댐. 원통 정도면 괜찮은 대통령 아니냐? 나는 설진운한테 염산부은 것도 한승문이라고 본다.」

「냥이노비 : 미친 새끼네 이거」

「정공빌런 : ㅋㅋㅋㅋㅋㅋㅋㅋ 와 여기서 한승문을 깐다고???」

「이니샤인 : 솔직히 한승문은 응원하지만 국민당은 이번에 손절침. 떡쟁이랑 경제사범, 약쟁이만 모여있는데 어떻게 표를 줘」

「개나리반분대장 : 국민당이 애초부터 한승문 이름 팔아먹으려는 떨거지들만 모인 당이라 그럼. 약점관리 잘한 메이저들은 진즉 국회에 있었고, 덜 메이저들은 민주당이랑 공화당에 남아있었지. 국민당에 붙은 애들은 중앙정계 밀려난 마이너 퇴물들뿐이었는데 어떻게 뭐가 안 터지겠냐고」

「일반국민 : 그러면 원옥분 찍으면 됨...? 근디 한승문이 그저껜가 국방 말아먹은 사람 원옥분이라고 하지 않았남...?」

「엑윽보수 : 한승문 씨발 존나 머리좋네. 일부러 최고회의 열어서 혼자 몇시간째 앉아있는 거 봐라. 당에서 자기만 멀쩡하다고 시위하는 거 아니냐?」

「dornrghrjf : 미리 20대 서울 출신 서울 소재 대학생이란 걸 밝힌다. 일부 무지한 좌파주의 학생분들이랑 전라도분들아 제발 차재균이 허수아비 이딴 소리 하지 마라 원옥분이 진짜 답이다. 지금껏 다들 좌파 무서워서 욕만했지 진짜로 빨갱이 때려잡은 대통령이 있었나? 다들 똘추같이 눈치보며 애국흉내만 내고 다녓다. 민족의 숙원인 북핵문제 처리하고 김씨세력 멸족시킨 진정한 애국자가 원옥분이다 이게 나라다. 괜히 권력에 눈멀어 남 흉만 보고다니는 좌승문이 뽑았다간 다시 나라가 좌파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안녕하살법 : 야 나 50대인데. 내 양로원 동년배들 다 한승문 좋아한다」

「아조피아 : 민트초코 맛있어양」

「정석관 : 한승문이 노력은 가상하다만 사람뵈는 눈이없어 화를 입었구나. 찝찝한 마음으로 1번을 찍겠다만 본인 부덕의 소치이니 원망치 말도록 하여라」

「안녕하살법 : 양당합당 때 개떼처럼 모인 것들인데 뭔 한승문 안목 타령임.」

「산나비 : 애석하게도 우리나라는 정치인들이 나서서 뭘 어떻게 잘해보려고 바꾸는 나라가 아닙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요. 그리고 원옥분이든 한승문이든 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원옥분은 권력을 위해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독재자고, 한승문은 국민을 교묘하게 선동해서 수권하려는 기회주의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명한 선택은 변화를 지양하는 것이겠지요. 한승문이 집권해도 정책 추진력이 마비된 지금에는 원옥분이 유일한 답안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애초에 청중엽 지사같은 섬사람은 대권에 도전하면 안 됐습니다. 저는 제주도민을 차별하지 않지만 4천만 국민은 제주도 출신을 차별할 게 분명하니까요.」

「엑윽보수 : 한승문 껌딱지 양판석 기어나오려고 각재는 거 안 보이냐? 병신들이 전라도 정권 들어서는 꼴 봐야 호다닥 정신 차리놐ㅋㅋㅋ」

「명란비빔후룹짭 : 원옥분 실력행사 지대로 했네 ㅎㄷㄷ 국민당 지도부 원큐에 보내버리냐」

「선별적힙찔이 : 이번 총선 존나 애매한게. 한승문 때문에 원옥분 찍기는 좀 그런데, 그렇다고 딱히 원옥분 말고는 찍을 사람이 없음. 63빌딩 뷔페갔는데 조랭이 떡국만 있는 기분이다.」

「강남좌퍄 : 난 그래서 선거 안할라고」

「일반국민 : 아니 시@발롬들아 그래서 누구 뽑으라는 거야」

*

원내대표 직권으로 국민당 비상회의를 개최했다. 이제 나와 김조인을 포함한 최고위원 8명이 모여야 한다.

그리고 기자들을 불러모은 지 6시간이 지났다.

“......”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묵묵히 자리에 앉아 다른 이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시계를 보니 6시간이 지났고, 최고회의장 좌석 8개 중 7개는 여전히 비어 있다.

내가 한숨을 내쉴 때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며 인터넷 기사를 갱신시켰다.

나는 조심스레 원옥분의 공작질을 되내었다.

원옥분이 캐비닛을 열자 김조인을 포함한 국민당 최고위원 7명이 갈려나갔다.

정확한 스나이핑이었다.

섹스테이프, 뇌물수수 녹취록, 자녀 마약 은폐, 살인교사 혐의로 5명이 갈려나갔다.

그리고, 김조인은 몇 년 전에 부동산 거품 터뜨린 거 까발려져서 전국민의 암살위협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대한민국 집값을 안정시키긴 했지만 주택보유자들의 재산을 개박살낸 주범이었기 때문이다. 자살한 사람도 꽤 되는 걸로 기억한다.

죄목은 제각각이었지만, 결론은 같았다.

다들 앞으로 이 나라에서 정치하기는 그른 거다.

그리고 이게 누구 짓인지는 어떠한 공식발표 없이도 전국민이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원옥분은 이번 무력시위를 통해 자신의 힘을 증명했다. 거기에 참 약삭빠르게도 나는 표적으로 삼지 않았다. 즉, 국민들의 반발까지 최소화시켰다.

그 노인네는 팔다리만 끊어버린 것이었다.

“후우......”

이러한 판국에 내가 최고회의를 소집했다 한들 누가 미쳤다고 여기 오겠는가. 낯짝이 있으면 기어나올 수가 없으리라.

수없이 기다렸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외롭게 홀로앉아 카메라 플래시를 견뎌야 했다.

"......후우."

계획대로였다.

내가 이 자리에 앉아있는 건. 이렇게 된 이상 김조인 계파를 이 당에서 싹 들어내기 위함이었으니까.

사실상 그들의 정치생명이 끝난 지금, 나는 최대한 피해자 포지션을 유지해야 했다. 실제로도 물론 그랬지만 더더욱 나는 피해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철저하게 배신당하고 처량하게 내팽개쳐진 모습으로, 나는 무려 8시간동안 텅 빈 의자들 사이에서 앉아 있었다.

“......”

일종의 정치쇼다.

8시간동안 부동자세로 앉아 있었다. 안 올 거 알면서도 쭈욱 앉아 있었다.

사실 정치적 퍼포먼스야 대한민국의 유구한 전통이긴 하다. 옛날부터 툭하면 멍석깔고 통촉하여주시옵소서 드립을 치는 게 우리나라 정치인들 습관 아니었는가.

가볍게는 큰절부터 무겁게는 단식까지.

누구는 사죄 퍼포먼스로 3보1배를 하고, 누구는 주민투표 캐삭빵을 걸며 무릎을 꿇고, 누구는 딸에게 사과하며 샤우팅을 긁는 게 우리나라 정치판이었다.

왜 정치인들이 이런 우스운 짓거리를 반복할까.

잘만 쓰면 먹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무리 방송에서 국민당 최고위원들 섹스테이프와 범죄이력을 분석하며 난리 부르스를 춘다 해도, 아나운서들은 심심찮게 ‘한편 지금까지 한승문 의원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라는 멘트로 국민들에게 한승문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주지시켰다.

물론.

내가 피해자 코스프레 하나만 노리고 이러는 거는 아니었다.

이번에 소집한 최고회의에서, 내가 기다리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제주도지사.

양판석의 지시를 받은 또 다른 조력자.

청중엽.

*

“정치를 참 본능적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정말 안 알려주신 거 맞습니까?”

[글쎄 말 안했다니까.]

“그런데 어떻게 멍석까지 예쁘게 깔아주지요? 하하!”

에쿠스 뒷좌석에 앉은 청중엽은 전화기에 대고 호탕하게 웃어보였다. 지지자들이 좋아하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참 눈치도 좋아요. 하하!”

[왜 이리 웃음이 헤픈가? 앓던 이라도 빠진 것 같군.]

“좀 오래된 썩은니가 하나..,”

그게 김조인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둘 중 아무도 없었다.

말주변도 말주변이었지만, 청중엽이 양판석의 계획에 동조했던 근본적인 이유가 이것이기 때문이었다.

김조인 축출. 이를 통한 국민당 차기 당권 장악.

원옥분의 무차별적인 칼부림에서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이는 제주도라는 지역의 정치적 특성에서 기인했다.

“아무튼 전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중앙정계 오랜만에 나오니까 참 재밌네요.”

[그래. 재벌들한테 맛난 거 얻어먹고 다닌다며?]

“다 이제 우리 도민들 아니겠습니까?”

제주도는 다소 폐쇄적인 정치지형을 가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도지사의 권한이 강력하다. 기초단체장을 선거로 뽑지 않고 제주도지사가 임명한다는 점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자치경찰에 대한 통제권 또한 대통령령에 준할만큼 강력했다.

그리고 청중엽은 7년차 도지사였고, 게이트 사태 이후로도 제주도 지역정가를 전경련을 끌어들여 완벽하게 장악한 인물이었다.

즉. 원옥분이 국민당을 잡아 조지려면, 기반이 단단한 청중엽보다는, 김조인 계파를 찍어내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소리였다.

또, 검찰 내부에 있는 양판석의 사람들이 비밀리에 이 은밀한 공작을 수행하기도 했다.

물론 아주 긴밀하고, 어렵고, 교묘한 수작질이었으나,

“모쪼록 일이 잘 마무리돼서 다행입니다.”

그들은 기어코 김조인을 축출하고, 원옥분의 힘을 소모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래. 자네는 이제 빠지게.]

“어허, 섭하게... 우리 사이에 이러시깁니까?”

[제주도에서 마당이나 가꾸지. 중앙정계는 내가 마무리할테니.]

“자신감 뿜뿜 넘치는 게 벌써부터 각하라고 불러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청중엽은 웃음 속에 칼을 담았다. 양판석은 까칠한 목소리로 응대했다.

[마무리나 잘하고 나오게.]

“예. 알겠습니다! 하하!”

청중엽이 느물거렸다.

“그런데 정말로 한승문이한테 아무 말도 안하신 거 맞습니까?”

[알면 다치는데 왜 말하나?]

“꿍짝이 좀 잘 맞는 것 같아서요.”

청중엽은 한승문이 깔아놓은 기자회견장으로 들어갔다.

*

청중엽이란 사람은 누구인가.

인기좋은 미중년 제주도지사.

그는 원래부터 중국통으로 유명했다. 6년 전에 공산당 서기랑 대면협상으로 경협을 끌어낸 일도 있었다. 중국의 외교적 폐쇄성을 고려했을 때 지자체단위 경제협력을 이끌어낸 건 대단한 업적이라 할 수 있을만한 것이었다.

중국어에도 능통하고, 외교적 명망도 있다.

문제는, 이번에 그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는 것이었다.

원옥분 측의 주장에 따르면, 그가 중국에 국가기밀을 팔았다고 한다.

이는 그의 출신성분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였다.

대한민국에 청靑씨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진주 강씨, 풍양 조씨, 김해 김씨처럼, 대한민국에 본관을 가진 청씨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청중엽 지사의 본관은 어디인가?

중국이었다.

청중엽 지사의 할아버지가 제주도에 사는 중국인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원옥분은 청중엽 지사의 ‘꽌시’를 공개했다.

그의 외교적인 명망이, 혈연에서 이어진 인맥이었던 것이다.

제주도 내부 중국인 사회를 장악하고, 어선들 몰아내고, 서기랑 담판지어 백화점을 짓고, 그게 전부 전직 공산당 간부였던 할아버지의 인맥이었다는 것이었다.

그 오밀조밀하게 얽힌 인맥은, 청중엽의 할아버지를 통해 공산당 서기처, 최고인민대표회의, 재벌, 심지어 삼합회 폭력마약조직까지 닿아 있었다.

그리고.

청중엽 지사는, 예전에 중국이 원전을 들이밀며 우리를 협박했을 때, 우리가 북한을 시켜 대신 패악질을 부리게 했다는 사실을 유출시킨 혐의로 기소되었다.

근데.

“제가! 제 조부님을 호적에서 파야 하겠습니까?!”

이걸 이렇게 빠져나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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