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61화 (61/296)

EP 11 - 저건 우리집 미친개야 (5)

나는 어둔 밤의 산길에 양말 차림으로 서 있었다. 낙엽과 돌멩이 하나하나의 느낌이 선하다.

어둠 속 헛것이 내게 담담히 말했다.

“의원 동지의 영웅적 행보에 대하여는 익히 들은 바가 있습니다.”

달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깊은 산 속. 흐릿한 그림자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만이 그가 남자라는 것만을 짐작케 했다.

“동지는 고저-”

“내 가족들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가 답했다.

“려도연 동무와는 도망길에 어디 산자락에서 마주쳤디요.”

“......여도연 한 명만 있었습니까?”

“두 분 더 있었소.”

* * *

그를 따라 도착한 곳은 깊은 산속 낡은 펜션촌이었다.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인형人形들이 몇몇 보였다.

집단이다.

끼이익.

문을 열자 허공에 매달린 구식 전등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쾌쾌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렸고, 이후 들어온 풍경에 흠칫 놀라 몸을 떨었다.

“무, 뭐야...?”

“형이야...?”

“히익...!”

1층에 수십명의 아이들이 꽉 꽉 들어차 있었다. 문이 열리자 다들 겁먹은 것처럼 머리를 숙인다.

눈빛이 흐리다. 꼬질꼬질하고, 앙상하게 말랐다. 누구는 피가 굳은 붕대를 감고 있기도 했다.

그가 몇 번 손짓하자 아이들이 우르르 벽에 붙어 길을 만들었다.

“들어오시라요.”

흐린 불빛 사이로 그의 이목구비가 드러났다. 내가 생각하던 북한 사람이 아니다. 얼핏 봐도 곱게 자란 티가 역력했다.

녀석은 소년이었다.

“이름이 뭡니까?”

“......리철진입니다.”

리철진은 무뚝뚝하게 대답하고서 성큼성큼 건물로 걸어 들어갔다. 아이들이 그의 다리춤에 엉기자, 리철진은 일일히 머리를 몇 번 쓰다듬고서 밀어냈다.

우리는 계단을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그리고. 나는 가족들과 재회했다.

정확히는 이모와 이모부.

그들은 밧줄로 꽁꽁 묶여 있었다.

“캬아아악!”

“크륵...! 크에엨...!”

그리고 철창 속에 갇혀 있었다.

그들은 검게 물든 핏대를 세우며 내게 소리질렀다.

시꺼먼 눈동자로.

묽은 침을 뚝뚝 흘리면서.

흑산양의 종양에 감염된 채로.

*

나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한참동안 바깥 계단에서 밤바람을 맞으며 쪼그려 앉아 있었다.

차가운 숲 속의 밤공기가 헐렁한 셔츠 사이로 스며들었지만, 이미 몸이 굳어 있었기 때문에 딱히 차갑지는 않았다.

“......괜찮으십니까?”

“괜찮겠습니까?”

까칠한 대답에 리철진이 말없이 내 뒤에 서서 침묵을 지켰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연거푸 마른 세수를 거듭했다.

“......”

최악의 상황은 아니다. 살아있는 게 어디인가.

그래. 침착하자. 이 정도로 멘탈이 흔들리기에는 내가 겪은-

......

씨발.

정신 나가기 직전이다.

아무튼.

장원장이 분명 저거 정신병이라고 그랬다.

사람이 오락가락 한다고.

그래서 나는 리철진에게 말했다.

“전화 한 통만 하겠습니다.”

“......심정 이해합니다. 들어가 있갔습니다. 필요하시면 부르시라요.”

등 뒤로 나무 바닥을 걸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밤벌레 우는 소리 들려오는데, 내 귀에서는 전화벨이 이어졌다.

다행히 장원장은 이 야밤에도 내 전화를 받아주었다.

[...네, 의원님. 무슨 일이십니-]

“장원장님, 그, 광증 말입니다. 흑산양.”

침착하고 싶어도 침착할 수가 없다.

[좀비요? 네. 정확히는 역병종-]

“정신병 맞지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질문을 쏟아 부으니, 장원장도 사안의 심각성을 깨닫고 말이 빨라졌다. 역시 눈치가 참 빠른 사람이다.

[네. 정확히는 자제력을 마비시키는-]

“치료제 있습니까?”

질문이 아니라 강박적으로 확인하듯 물었다. 생체실험 과정에서 이 역병의 존재를 알았다면, 치료제에 대해 아는 사람은 장원장밖에 없을 것이었으니까.

[의원님 혼수상태에 계실 적에 정부에 조합식 인계했습니다.]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확보한 감염자들은 지금 어디 수용시설에 가둬놓은 상태고, 치료제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예전에 만들어놓은 치료제는 있습니까?”

[연인산 지하벙커에 예방 차원으로 만들어놓은 백신 샘플이 조금 있었는데.]

“......”

[잠시...]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주먹을 쥐었다.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30인용짜리 살포형 치료제가 하나 있습니다. 혹시 몰라서 챙겼는데-]

“사랑합니다!”

[저도요.]

*

“우선, 려도연 동지는 여기에 없습니다.”

리철진이 정중한 태도로 설명을 시작했다. 살짝 군기가 들어서 그런가 보고처럼 들렸다.

“듣기로는, 가족분들이 고저 의정부 방향로다가 도망하였다고 합니다.”

강원도로 도망치지 않고 서울로 왔다?

젠장. 나 찾으러 온 거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작은 침음성을 삼켰다.

“그러다 여기 천마산에서 만났디요. 우리도 당시 남향으로 도망하고 있었던 터인지라, 당시에 사방에서 온갖 괴물들이 몰려드는 통에 힘을 합쳐 투쟁했습니다.”

천마산이라. 어디서 분명 들어봤는데.

지금은 후퇴한 예전 1군단 주둔지.

그래. 남양주다.

젠장. 남양주?

남양주?

의정부와 더불어 손꼽히는 최대 격전지였다.

서울 포위망이 첫 번째로 뚫린 탓에 서울의 온갖 괴수들이 쏟아져 나온 곳.

우리 가족들은 그곳에 휘말렸다.

그리고 리철진과 접촉했다.

“시퍼런 칼을 휘두르는 학도들도 있었고, 고저 여러 이들이 손 맞잡고 싸웠습니다. 특히 려도연 동무의 무용이 돋보였디요.”

“학도요?”

“남조선 학생 무리가 기예를 선보이며 괴수를 처단하더군요. 특히 설진운 학도의 검술이 예사롭디 않았-”

“집단 구성원은 어찌 되었습니까?”

“으음... 남조선 학도 여덟 명, 의원 동지 친지분 세 명. 그리고, 네. 많았디요. 나중에 모여든 동지들까지 합하면은 고저 기백명은 너끈했습니다.”

대규모 집단이라.

“그때, 이 역병이 퍼졌디요. 당시에 친지분들 께서도 흉사를 당하였습니다. 하여 우리 정예들만이 살아서 이 천마산으로 숨었습니다.”

“그, 좀비가. 가끔 맨정신으로 돌아올 때가 있지 않습니까?”

“하여 접근했던 동지들도 같은 꼴이 되었습니다. 사특한 수작인지 되려 무엇인지......”

의정부에서 퍼져나간 좀비가 분명했다.

리철진은 눈을 내리깔고 침통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려 동무는 좀-비가 물어도 이빨이 까부서지던 터라, 어버이 동지를 챙겨서 도망했지만, 우리네는 모두 소중한 이들을 잃었습니다.”

소년은 다시금 내 눈을 바라보았다.

“다들 역병을 고치러 떠났습니다. 서울로.”

“......여도연도요?”

“예. 당시 학도들으 말에 의하면, 서울에 두고 온 동무가 하나 있는데. 그 동무의 치료력이 가히 혁명적이었다 합니다.”

알지도 모를 치료사 하나에 목숨을 건 여정을 떠나다니. 여도연의 절박한 심정이 느껴지는 바람에 눈시울이 찡했다.

“학도들은 동무를 구하려 서울로 향하였고, 려도연 동무도 학도들을 따랐습니다.”

“떠난지 얼마나 됐습니까?”

“사흘인가 되었을 겝니다.”

3일 전이라.

“......”

나, 얘네 대충 누군지 알겠다.

서울 포위망이 최초로 붕괴된 남양주에서, 사방에서 몰려드는 괴수들을 격퇴할만한 무력을 가진 탈북자 조직.

“개성 혁명을 주도하신 분들이 어쩌다 여기까지 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성 반란군.

“......우선, 가족들을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탈북자는 민간인 통제선, 그러니까, 민통선 이북에 수용되어 있다.

그리고 천마산은 경기도 동북부의 군립공원이다. 북한 쪽 전선이 지금껏 한 차례도 뚫린 적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들의 존재는 분명 이질적이었다.

천천히 생각해보자.

어떻게 왔을까.

아마 리철진의 순간이동으로 소수정예가 국군의 감시망을 뚫고 남하南下했겠지. 당연한 소리다.

그러면 왜 왔을까.

이들은 국군에게서 도망친 것이다.

왜 국군에게서 도망쳤을까.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군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즉, 원옥분과 리용수 사이의 밀약에 대해 안다.

“······”

그러니,

개성 반란군은 나조차 알지 못했던 정치권과 밀접한 연관이 있거나, 우리 국군에 캥기는 게 있다는 추측이 가능했다.

물론 아직 정보가 부족하다.

어떻게 할까. 잘 모르겠다.

정치인은 보통 그럴 때 웃는다,

“제가 은혜를 모르는 인간은 아닙니다.”

“어, 어인 말씀이신지...?”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겠습니까?”

상대방의 패를 까야지.

리철진은 잠시 멍하니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웃음과 당황 사이에 침묵이 있었다.

“......”

“......”

그리고 이 새끼들, 썩 믿을만한 인종은 아닌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게 보통.

지하에 좀비가 있는데, 1층에 애들을 채워두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누구한테 보여주려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으, 의원님...!”

마침 리철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감격스런 표정으로 내 손을 붙잡았다.

“아, 아이들...! 아이들만은 제발 살려주십시오...!”

충분히 예상했던 소리였다.

*

개성 반란군 측에 인계받은 이모와 이모부를 병원에 집어넣었다. 간신히 산소마스크 씌우고 치료중이란다.

원리를 들어보니 뭔, 신경독을 해독하는 거랑 비슷해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하더라.

덕분에 천화란 박사님이 만삭의 몸으로 소매를 걷어부쳤다. 아직 의식을 되찾지는 못했지만 치료는 순조롭다.

덕분에 이제 잠을 푹 잔다. 약도 끊었고.

여도연이야 걱정되긴 하다만은 걔가 어디가서 맞아 죽을 스펙은 아니지 않은가. 나 없는동안 새로 사귄 친구들이랑 같이 다니고 있다니 비교적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리철진이 설악산에 꼬맹이 45명을 순간이동시켰고, 나는 양일호를 갈아 고아원 하나를 뚝딱 만들어서 아이들을 수용했다.

“......탈북 꼬맹이 45명을 받아들이겠다라.”

“예.”

그렇게 자연스럽게 원옥분에게 불려갔다.

“......어디서 났나?”

“허공에 뿅 하고 나타나던데요. 한번에 두 명씩.”

나는 개성 반란군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였다.

원옥분은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대충 보니까 알만큼 아는 것 같던데요.”

“민통선 위쪽 탈북자 수용소. 다음주에 반환하기로 한 거요?”

“그랬습니까?”

원옥분은 두리뭉술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류를 탁 하고 내려놓았다.

“뭐어. 국보법 위반으로 잡혀갈 생각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이 놈들을 빼돌렸는지는 지금은 묻지 않겠어요.”

“네.”

“누누이 말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이유인데......”

원옥분이 칼자국을 매만지며 이를 갈았다.

“왜 그랬어?”

“알면서 그러지 마십쇼.”

나는 깍지낀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상식적으로 10만 명을 죽이라고 갖다 바치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허면?”

“저는 원옥분 의원님이 그렇게...”

용감한.

“무자비한 사람은 아니라고 봅니다.”

나는 잠시 율무차로 목을 축였다.

원옥분이 피식 웃었다.

“왜 그랬냐고 물었는데.”

“아니, 아이들이야 말로 국가의 미래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국익을 위한 선택이라도 그렇지.”

“나도 나름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네. 자네는 모르는 그 타협이라는 게 얼마나 오갔는지 아나?”

“10만 명 죽여서 체제 안정시키겠다고 그럽디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

“저도 그놈들이 10만명 그거 알고있는 눈치라 많이 놀랐습니다. 단순 민중봉기가 아니라 권력투쟁으로 추측하고 있어요.”

"그래. 그쪽도 나름대로-"

“근데, 제가 데려온 45명의 꼬맹이 중에, 김일성의 증손녀가 있다는 건 모르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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