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1 - 저건 우리집 미친개야 (1)
다시금 난세亂世가 열렸다.
- 사망자가 300만이랍니다. 최소 수치가요.
- ......당분간 뉴스에서 숫자 거론하지 마세요.
늘 그렇듯.
- 국군이 충청도 방어선에서 괴수들의 남하를 저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게이트 분포선 너머, 속리산, 월악산,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절대방위선의 설계자, 제 2 작전사령부 참모장, 김두식 소장은......
- 경기도 계엄협조관 유현종 대령이 경기 북부 피난민 426만명 가량을 전선 방향으로 대피시켰습니다. 의정부를 중심으로 국군과 이능자들의 악전고투가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한승문 의원, 김춘식 조합장 등이 중상을 입은 것으로......
- 신생 PMC들이 대한민국의 수호를 위해 발족하고 있습니다. GS 아이기스, 금호용역, 청해진 등, 수많은 헌터들이 자발적으로 전선 곳곳에 뛰어들어......
- GS 아이기스가 강원도에서 대규모 항전을 시작했습니다. 홍선아 대표를 필두로 태백산맥을 불태우며 괴수를 저지하고 있는데요, 일각에서는......
나라가 위태로울수록, TV에서는 승전보가 늘어났다.
- 설진운 헌터가 남양주 일대를 파괴한 거대괴수를 사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목검 하나로 괴수를 격퇴한 설 헌터는, 놀랍게도 아직 고등학생에......
- 인천의 생존자 162명이 각성 촉진제를 주사하고 충청도까지 탈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한승문 재단의 각성 촉진제는 전국에 다량 배포된 상태이며......
- 후퇴하는 국군을 규합해 충청 방어선을 설립시킨 김두식 소장이, 대장으로 진급되어 제 2 작전사령부 사령관으로 보임되었습니다. 그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하여, 언뜻 보면.
- 한승문 의원이 오늘 새벽 5시 경,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영웅들의 시대가 온 것 같기도 했다.
* * *
나는 파주의 군병원에서 눈을 떴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약기운에 취해 몽롱하게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고 했다.
그래서 한숨 푹 자고 일어나마자마 그 대답을 들어볼 수 있었다.
“군인들에게 부탁했지만, 아직 못 찾았네.”
“예...?”
“강원도에 사람이 너무 많아.”
“이, 무슨...!”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양판석을 추궁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국군은, 충청도 남부에 방어선을 형성하고 괴수들의 남하를 저지하고 있네. 이게 무슨 뜻인지 아나?”
“......”
“충청도 이북이 고립됐다는 소리야.”
남한이 남북으로 나뉘었다. 괴수의 점령지가 남한을 가로질렀다.
“서울에서 몰려나온 괴수들이 강원도 남부에 퍼졌어. 지금 경기도 북부, 강원도 북부가 고립되었네.”
“......맙소사.”
육지의 섬이라니.
“......최대한 힘써 보겠네. 강원도에는 게이트가 지극히 적었으니 아마 무사할게야.”
그건 모르는 일이었지만,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양판석은 굳이 말을 더 보태서 나를 심란하게 만들지 않고, 묵묵히 병실에서 떠나갔다.
*
진통제에 취해 몽롱하게 시간을 보냈다.
진통제라는 게 신경을 교란시켜 고통을 둔하게 만들어주는 약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반쯤 마약에 취해 산다고 봐도 무방했다. 실제로 일부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기도 했고.
가만히 있어도 온 몸을 누군가 망치로 두드리는 기분이다. 행여 근육에 힘이라도 들어가면 더욱 그렇다.
절대 안정이란다. 그래서 그런가, 이따금 찾아와 손바닥에서 빛을 번쩍이며 내 몸을 문지르는 헌터 몇몇을 빼고는, 아무도 나와 만나지 못했다.
가끔 감지윤이랑 감기자가 병실 문 틈으로 빼꼼 고개를 들이밀고, 30초동안 울상으로 나를 구경하고 돌아가는 것 빼고는.
아무튼.
나는 산소호흡기를 달고 한참을 요양했다.
근육이 터져나가고, 뼈가 으스러지고, 혈관이 터지고, 관절이 꺾였단다.
“사실, 헌터들의 응급조치가 아니었다면 이미···”
의사는 매일 아침 내게 찾아와서 내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설명해줬다. 몇 달 정도 입원해야 한다고 그랬다. 수술도 몇 번 더 받아야 하고.
“···!?”
포션먹고 이틀만에 나았다.
정확히는, 거동이 가능해졌다. 내가 침상에서 일어나 앉을 때 의사가 입모양으로 욕하는 걸 봤다. 왜 욕하느냐고 물어봤더니 퇴직금 받을 날이 얼마 안 남은 것 같다고 그랬다.
솔직히 그럴 것 같았다.
아무튼.
거동이 가능해지자마자 데이비드 김을 찾아갔다. 그도 나와 비슷한 처지로 환자복을 입고 골골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데이비드 김, 몸은 좀 괜찮습니까?”
“너보단 나을걸?”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한데, 혹시, 헌터들 중에, 사람 잘 찾는 사람 있습니까?”
데이비드 김은 말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말을 덧붙였다.
“......부탁드립니다. 가족들이 강원도에서 실종 상태입니다.”
“따라와.”
데이비드 김은 나를 업고 병원을 탈출했다.
*
“후우......”
무너진 도시에 담배연기가 피어올랐다. 환자복 차림의 데이비드 김이 뻐끔뻐끔 연기를 내뿜었다. 간호사들이 보면 기겁할 짓거리였다.
“......여기는 왜 데려오신 겁니까?”
“숨 좀 돌려야지.” 아직 알려주기 싫다는 소리였다.
나는 묵묵히 무너진 건물 잔해에 앉아 데이비드 김을 지켜보았다. 잔해더미에 앉으니 아래에 뭔가 푹신하길래 옆쪽 잔해로 옮겨 앉았다.
“내가, 그으, 이라크에서. 조금 많이 죽였단 말이야.”
데이비드 김은 뻐끔뻐끔 연기를 내뿜으며 내게 주절거렸다.
“짬 차고, 공부 잘해서, 계급이 높긴 했는데. 썩 훌륭한 분대장은 아니었지.”
“......”
“적보다 아군을 더 많이 죽였을 거야. 아마.”
그는 한참동안 내게 설교했다.
달변은 아니었다. 살짝 알코올 냄새가 났다.
“안주머니에 폭탄 들어있는 줄 알고 쏴죽였는데 아무것도 안 들어 있었다던가. 친하게 지낸 현지인이 하나 있었는데, 저녁만찬 식탁 아래에 폭탄이 묻혀 있었다던가. Um... 대충 분위기 알지? 거지같은 초이스.”
“지금이랑 비슷하네요.”
“그래. 잘못된 선택을 자주했지. 그만큼 내 밑에 있던 얼굴이 자주...... 아, 이 이야기는 그만 하지. 내가 너무 추하군.”
데이비드 김이 빨개진 귀를 만지작거리며 헛기침했다. 중간중간에 영어로 된 욕을 섞긴 했지만, 영어하던 짬이 남아서 대충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큼... 이렇게 무게잡고 이야기하는 이유가 뭐냐면. 그래. 좀 지루하겠지. 그냥 참고 들어봐.”
“듣고 있습니다. 잘.”
“그래. 그때 대통령이 조지 부시였어. 수만 명이 죽어나가는데. 항공모함에 전투기타고 내리더라고. 그것도 조종사 복장으로. 그리고 종전선언을 했어. 미군이 승리했다고.”
“으음......”
“......그 새끼 지지율 올리자고 몇 명이 죽어나간 거야? 아니, 씨발. 설령 그게 옳은 전쟁이었다 해도 대통령이 그 지랄을 하면 안 되는 거야.”
데이비드 김은 담배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담배가 터지며 모래먼지가 튀어 올랐다.
“개같은 짓거리인 걸 모두가 알아. 그게 정치적인 쇼맨십인 걸 다 안다고. 그런데 왜 그랬을까?”
“......통하니까 그랬겠죠.”
“그렇지.”
데이비드 김이 내게 삿대질했다.
“군인 하나가 불평해도 정치꾼이 쇼 한번 하면 세상은 문제없이 돌아가.”
“......”
“그러니까, 착하게 좀 살아.”
데이비드 김이 말했다.
“가족들 좀 찾아달라고 하기 전에, 같이 싸운 헌터 녀석들 무사하냐고 한 번만 물어보라고.”
“......”
“김한빛이도 죽었고, 박주철이도 죽었고, 주호정이도 죽었다는 말을, 내가 먼저 꺼내기가 어렵잖아.”
“......”
“네가 세운 작전 수행하다가 죽은 거야.”
“......”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비드 김은 파란 눈동자로 나를 담담히 바라보았다.
“......물론, 작전은 아주 훌륭했어.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 살았고, 애초에 우리도 몇 명 죽어나갈 걸 알고 싸웠던 거고. but, 그, 뭐냐. 후우......”
데이비드 김이 고개를 추욱 떨궜다.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정신병 걸린 강아지처럼 다리를 건들거렸다.
그러나 힘없이 바닥에 쪼그려 주저앉았다.
“......그냥, 좀. 챙기라고. 사람을.”
잠시 정적이 있었다.
무너진 도시의 한 가운데, 건물 사이로는 피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그의 부탁에 답했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그가 일그러진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데, 그걸 알겠다고?”
“예.”
“참, 나. 웃기는 새끼......”
데이비드 김은 실실 웃었다.
“그래. 작전 끝나면 누구 죽었는지 좀. 그래. 으음...... 욕만 하려고 부른 건 아니었는데.”
“......”
“내가 세운 작전 때문에 누가 죽어나간다는 거, 무슨 느낌인지 살짝 알거든. 근데. 후우......”
역시 달변은 아니었다. 그는 서툴게 말을 이어갔다.
“위로라도 해주고 싶기도 했는데. 위로가 안 되는 걸 뻔히 알면서 그러는 것도 좀 그렇네.”
“마음은 잘 받았습니다.”
“뭘, 따로 불러내서 욕하는데 감사할 것까지야.”
그가 툭 내뱉었다.
"냄새도 잘 맡고, 귀도 좋은 애들이 있어. 정찰조 애들."
"......"
"양 의원한테 전해듣고, 이미 두 명 정도 보내놨으니까. 으음. 그래. 소식 들어오면 바로 알려주지."
"......감사합니다. 정말."
데이비드 김이 반사적으로 담배를 꺼내려다 담뱃값이 텅 빈 것을 알고서, 손을 어색하게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종교는 있나?”
“아뇨.”
“나는 Inactive Christian인데, 그걸 한국어로, 으음... 아! 그래. 나이롱 신자.”
“한국어 너무 잘하시는데요.”
“그거 칭찬 아니야.”
“압니다.”
데이비드 김은 소탈하게 웃었다. 그리고 처연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서 김비서가 죽었다고 그러더라고.”
“......김한빛 씨 말입니까?”
“으음. 네 팬.”
데이비드 김이 웃었다.
“기도 좀 하고 갈건데. 기다려줄 수 있나?”
그 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기도했다.
남을 위해 죽은 이들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란다고.
그리고 어떤 씹새끼가 게이트 열었는지는 몰라도,
만나면 죽여버리겠다고.
*
2월이 끝났다. 3월이다.
그리고 4월에 총선과 대선이 있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이 선출된다. 정치인들이 팔딱팔딱 움직이기 시작했다.
[청중엽 제주지사가 전경련을 대상으로 모금한 기금을 난민기구에 전달했습니다.]
나는 새우깡을 으적이며 TV를 시청했다. 참고로 저건, 나는 제주도에 사는 재벌들을 부려먹는 차갑고 스트롱한 남자지만 내 국민들에게는 따뜻하다는 뜻이었다.
“다들 영리하게 노네.”
“우정환 서울부시장이 대놓고 선거운동해서 가버렸잖아요.”
"나도 그 양반이 그렇게 갈 줄은 몰랐지......"
이호정이 심드렁하게 덧붙였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근데 저거 선거운동인 거 누가 모르나.”
“알면서 다 속아주는 거죠 뭐.”
“통하니까 저러겠지?”
"정석이니까요."
이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양일호가 과자를 으적이며 말했다.
“......국민당 당대표는 사실상 저사람 아닌가요?”
“그렇겠지? 제주도 정치인이 워낙 기반이 탄탄해야지.”
“형은 원내대표고?”
“조만간 자기가 비대위원장 해먹고, 나 원내대표로 정식 발표하겠다고 그랬어.”
“대통령 출마하려고 저러나?”
“그러니까 나한테 하루에 세 번씩 전화하지 않겠니?”
우리는 병실에 앉아 세상의 이모저모를 관찰했다. 의사당 구석에서 컵라면 먹으면서 이빨까던 시절 입담이 슬슬 살아나기 시작했다.
뉴스 코너가 바뀔 때마다 대화 주제도 휙휙 바뀌었다.
[4월 합동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가운데, 난국을 해쳐나갈 대선 잠룡들이 물망에 오르고 있습니다. 헌데, 피선거권이 없는 한승문 의원이 18%라는......]
“이번 선거 누가 이길 것 같냐?”
“베스트 포지션은 오빠가 대통령 나가는건데. 안 나갈 거죠?”
“어어. 솔직히 좀 지쳤다. 잘할 자신도 없고. 국회에 남지 뭐.”
선거철 점쟁이 문어 이호정이 분석을 덧붙였다. 선거 결과 4번 연속으로 때려맞춘 전적이 있어서 그런가 저절로 귀가 열렸다.
“하긴, 대통령 나이제한이 40세라서. 출마하려면 헌법 고쳐야 하는데 그러면서 지지율 많이 떨어질 거에요. 저는 충청도 방어선 김두식 사령관이 될 것 같긴 한데. 그만큼 무난한 사람이 없잖아. 원래 사람이 자기 집 지켜주는 사람을 믿는다니까요.”
“김두식 사령관이 데이비드 김 엉클인 거 아냐?”
“...!? 진짜!?”
[헌터, 감지윤 양이 산을 들어내 한강 상류를 매웠습니다. 이에 하류에서 튀어나오던 수륙괴수들의 위협이 줄어들 것으로......]
“어머머, 저거 봐. CG인줄.”
“지윤이 장난 아니지?”
“대박이다 진짜......”
“어제 저녁에 전화했는데. 아침에는 강원도에서 싸우고, 저녁에는 제주도에서 싸우고, 야식은 경기도에서 먹는다고 하더라.”
“아이고...... 고생하네.”
[프랑스가 파리를 지켜냈습니다. 유럽의 특성상 사방에서 각개전투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뤼미에르라는 사람 참 대단하네요.”
“그, 프랑스?”
“한 방에 수만명을 회복시켰다 그러잖아요. 에펠탑 위에서.”
“내 생각에는 언론에서 살짝 MSG 친 거야. 요즘 그런 영웅이 핫하잖아.”
양일호가 넋놓고 중얼거렸다.
“예쁘더라......”
이호정이 말했다.
“야.”
“죄송.”
[...오늘 중부 지방의 이상기후가 가라앉았습니다. 따뜻한 봄 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뉴스 속보입니다!]
“......”
“......”
“......” [중국에서 감지윤 헌터의 파견을 요청했습니다!]
“......”
[오늘 오후 2시 30분 경,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리충빈 상장이 동해안에 위치한 56기 가량의 원전을 지켜내는 방어작전에 한국 측 초인들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해석 : 감지윤 보내라
[회견 도중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언급되었-]
해석 : 원전 하나 터졌을 때 뭔 지랄났는지 잘 알지?
[전인류적 재앙에 맞서 동북아시아의 화평과 공존을 추구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해석 : 원전 56개 터지는 거 보고 싶어?
[-공동작전군의 편성을 제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