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51화 (51/296)

EP 10 - 겨울의 끝자락 (1)

감지윤에게 물었다.

“......하늘이 파래?”

“응!”

“천 박사님은, 지금 하늘이 어떻게 보이십니까...?”

“......어둑한데요.”

나는 떨리는 손으로 감지윤의 조막만한 머리통에 손을 얹었다.

순간, 세상이 바뀌었다.

마력이 이리저리 춤추고, 주변의 흐름이 자연스레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느껴진다. 너무나도 자연스레 느껴진다.

구름낀 하늘에, 거대한 마력의 파도가 요동치고 있었다.

마치, 소용돌이처럼.

이 도시를 횝쓸어버릴 것만 같이.

* * *

“저, ㅈ, 저저, 저,”

나는 말을 더듬으며 하늘에 손가락질했다. 그 정도로 웅장하다 못해 기괴한 풍경이었다.

결국 조금씩 뒷걸음질 치다 감기자 발에 걸려 뒤쪽으로 홀랑 자빠졌다.

“응냑!”

“어이쿠!”

감기자가 나를 잡아챘다.

“어, 씨, 뒤통수 깨질 뻔했네.”

“아니,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의원님?”

방금 본 하늘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눈을 질끈 감고 정신을 다잡았다.

“저거 안 보여요?"

"예?

"아, 내 정신이야. 당연히 안 보이시겠구나......”

“......”

감기자가 탐탁찮은 눈빛으로 나를 일으켜 세웠지만, 나는 허겁지겁 핸드폰을 꺼내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의 데이터가-]

아 맞다. 한참 정치싸움하고 있을 때 누구랑 통화 못하게 정부에서 내 핸드폰 막아버렸다.

“감기자님, 핸드폰 좀 빌려주실래요?”

“예?”

“빨리요.”

핸드폰을 받아들자마자 잽싸게 번호를 입력했다. 4년동안 하늘처럼 모시고 산 사람인지라 머리가 번호를 기억하기도 전에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다.

한참동안 벨소리가 울렸다.

마른침을 삼키며 간절히 기다렸다.

아주, 다행히도.

[으음. 숨어서 전화받고 있으니 누구랑 바람피는 기분이구만.]

“양 의원님!”

[다른 의원들이랑 같이 있었어. 무슨 일인가?]

그에게 닿았다.

*

우리는 곧장 양판석의 집에 도착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양판석의 둘째딸이 땅투기한다고 재개발 예정지역에 몰래 사놓은 동두천 외곽의 아파트였고, 그걸 눈치챈 양판석이 뺏어서 살았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올라온 양일호가 천연덕스럽게 달라붙었다.

“이거 주말수당 인정 되나요?”

“퇴직금도 같이 줄게.”

“히잉......”

아무도 차를 안 가지고 온 바람에, 집에서 뒹굴거리던 양일호에게 구루마 끌고 오라고 해서 운전수로 써먹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로 7층까지 올라갔다. 우르르 몰려가 그의 집에 노크했지만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가 먼저 도착했네요. 양 의원님도 오는 길이시라니까 조금만 기다리죠.”

“아... 그러면 다시 차로?”

“아뇨.”

달칵.

꾹 꾹 꾹 꾹.

띠리링.

도어락을 따고서 태연히 손짓했다.

“누추하지만 들어오시죠.”

“......”

매번 술먹고 늘어진 영감쟁이 들쳐매고 갖다놓은 게 누군데 비밀번호를 모르겠는가. 비밀번호는 양판석 손녀 생일을 거꾸로 한 숫자였다.

일호와 감기자네 부부가 식탁에 둘러앉아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고,

감지윤이 고급진 소파에 누워 까르륵대며 자기 동생을 허공에 띄워 둥기둥기 해주는 동안,

나는 조용히 절뚝이며 배란다로 나왔다.

"......"

세상이 어둡다.

추운 겨울에 음침한 먹구름이 가득하다.

나는 아까 빌린 핸드폰으로 다시금 전화를 걸었다.

“어, 누나. 나야. 핸드폰 빌렸어. 지금 어디-”

[스, 승문이가? 야, 이, 쌔끼야. 니 몇 년 남았나!?]

부산 억양 섞인 무서운 목소리가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이모부?” [니...! 니, 씨불, 카메라 앞이라 지랄한기지? 으이?]

“누나랑 같이 있어요? 어디야!?”

[몇 년 남았냐고! 문디 썌꺄!]

“아! 어디 있어! 지금!”

이모부가 다급히 누군가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이, 지금 여가 어디고?]

[이제 막 양양고속도로 탔어요.]

[양양이랜다!]

“양양이 어딘데!”

[야, 양양이 으데고?]

[아! 씨! 강원도! 이 인간아!]

[가, 강원도랜다!]

“......하이고. 환장하겠네.”

여도연과 이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명 깎아먹었다는 소리에 일가족이 차타고 올라오는 모양이다.

나는 담담하게 권고했다.

“도로 내려가세요. 불안하니까.”

[야! 씨! 그래서 몇 년 남았냐니까!]

“아! 내려가시라고! 다시!”

[차 막혀서 못 간다! 씨불거! 그래서 몇 년-]

“아! 사람 수명이 뭐 딱딱 떨어지나!”

[야! 임마!]

“원래 수명이 얼마 남았는지도 몰라! 그냥 세포분열 횟수 소모되서 빨리 늙는 거야. 이거 뭐가 뭔지 아무도 모른다니까요?”

[......그래서. 우쨌는데.]

“예상이 대충 10년이라는 거지, 더 살 수도 있고, 덜 살 수도 있고. 그냥. 대충 그 언저리랍니다.”

전화기 너머로 잠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인상을 찌푸리고 뚱하게 기다리고 있으니, 맥빠진 이모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이고, 씨이뻘. 느그 이모 기절했다야.]

“그냥 빠꾸해서 돌아가요. 좀. 제발.”

[......만나서, 그, 뭐냐. 아구찜이나 묵자. 맨날 가던 데.]

“거기 서울 한복판이라 못 갑니다.”

[아, 맞다.]

뜬금없이 통화가 끊겼다. 이제 용건 다 봤다 이거지.

이모부는 항상 통화를 요상한 타이밍에 끊어버려서 가족들의 지탄을 받곤 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소한 습관 하나하나만 떠올려도 웃음이 나오는 이들이었다.

잠시 무표정으로 어둑한 세상을 바라보았다.

“......후우.”

잘 한건지 모르겠다. 착잡한 마음에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뒤적거리고 있으니.

“아저씨...”

꾸욱. 어느새 베란다에 나온 감지윤이 내 바짓단을 잡아당겼다.

“화내지 마......”

“어어, 화낸 거 아니야. 그냥 이야기한거야.”

“어이구우...” 감지윤이 못 미덥다는 듯 표정을 찌푸렸다. 으음. 어린애 말투랑 표정에서 애매하게 노티가 난다.

“엄마도 맨날 그 소리 하더라......”

“으, 으음. 어른들이 그렇지 뭐.”

“지윤이가 이해해 줄게......”

“......오냐.”

나는 감지윤의 등을 토닥여 베란다에서 내보냈다.

그리고 다시금 난간에 몸을 기대며, 살짝 어색하게 담배를 물었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콜록! 케흑!”

눈맵다.

“킁...! 쿨럭...!”

드르륵, 뒤쪽에서 베란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담배도 못 피는 사람이 왜 물고 있습니까?”

“아, 감, 기자님. 콜록!”

감기자가 베란다로 나와 핀잔을 줬다.

“담배 하지 마세요. 몸에 안 좋습니다.”

“......아니, 뭐, 오래 살지도 못할 거.”

“어허, 못 쓸 말씀이시네.”

감기자가 익숙하게 불을 붙이고 연기를 내뿜었다.

“후우...... 의원님은 커서 이런 거 하지 마십쇼.”

장난스런 웃음에 곁들인 농담이었지만, 농으로만 볼 수는 없는 말이었다.

아마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세상 못 볼 꼬라지 가장 많이 본 게 감기자일 것이다. 이 아저씨는 그런 거 찾아다니는 게 업이었으니까.

“......애기 취급 해주시니 감사하네요.”

“20대면 아직 애죠. 뭐.”

감기자가 낄낄거리다 문득 휘둥그레 눈을 떴다.

“근데 남의 집에서 이래도 되는 겁니까? 그것도 4선의원...?”

“이미 불 붙여놓고서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은데요.”

감기자가 멋쩍게 웃었다. 나는 베란다에 있는 낚시의자를 가리키며 시큰둥하게 답했다.

“양 의원님 여기 혼자 사시거든요?”

“예.”

“맨날 여기 의자에 앉아서 저 세워두시고 담배피우면서 훈계하시는 게 취미셨어요. 같이 동두천 시내 야경 들여다보면서......”

감기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양 의원님도 말벗이 필요하셨던 겁니까?”

“아뇨, 여기 베란다가 흡연실이다 이거죠.”

나는 피식 웃었다.

“베란다에서 담배피는 게 낭만이라고. 그래서 8층에 입주민 안 들였다고 하셨어요.”

“......8층도 양 의원님 껍니까?”

“여기 양 의원님 아파트라니까요.”

“우와아......”

이 아파트는 양판석 소유 건물이었다. 1층부터 8층까지. 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감기자와 시간을 보냈다.

“20세기 초중반에 호남에서 대농장한 집안이라...”

“아하......”

*

15분 뒤, 양판석이 도착했다.

“명줄도 얼마 안 남은 것들이 뭘 그리 발악을 하는지... 회식하자는 거 간신히 뿌리치고 왔네.”

정치생명 얼마 안 남은 의원들이, 다 같이 모여서 긴급회의 하자는 거 뿌리치고 왔다는 소리였다.

“감사합니다.”

양판석은 쓰게 미소지으며 구두를 벗고 집에 들어왔다.

“청출어람이라고, 결국 자네가 날 이렇게 보내버리는구만.”

“어차피 둘 다 명줄 얼마 안 남지 않았습니까.”

“같이 죽을 날 기다리는 처지지, 뭐.”

양판석은 가볍고 능숙하게 집 안의 모든 인물들과 한 번씩 악수를 나눈 뒤, 태연스럽게 소파에 지친 몸을 뉘였다.

“다 정리된 마당에 정치판 이야기는 아닐테고......”

“제가 지금 장관들 라인이 전부 끊겨서 그러는데. 요즘 서울 포위망에 이상 없답니까?”

“자네가 그치들 싹 다 식물인간 만들어놓고 뭐라는 겐가? 국방부 장관이고 계엄사령관이고 눈치 보여서 사령부도 못 드나들고 있네. 다 권한대행 측근들로 박아놔서리......”

“그러면 일선에서 무슨 일 났는지 파악할 방법은 없습니까?”

“자네는 친한 군인 없나?”

“저승에 많습니다.”

“곧 만나긴 하겠구만.”

“차라리 둘 중 누가 먼저 갈 지 내기를 할까요...?"

심통맞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양판석이 허허실실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밉살맞아서 그랬네. 그래. 장난은 그만하고.”

양판석이 평소처럼 슬며시 웃었다.

“......뭐어, 심각한 거 하나 터진 것 같은데.”

“하늘에 마력이 엄청 커다란 규모로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의정부 교정본부 상공에요. 엄청. 엄청. 커다랗게요.”

“그러면 진즉 길드에서 행안부에 말을 했을 터인데?”

“지윤이만 볼 수 있는 겁니다.”

“하긴, 감지윤이가 초능력자 치고 조금 특출난 기미는 있었지.”

흐음. 양판석이 침음성을 내며 턱을 매만졌다.

“사람들 대피시키자는 소리 아닌가?”

“소용돌이라니. 비주얼이 조금 그렇지 않습니까. 마력이 한 점으로 뭉치고 있어요.”

“게이트의 전조라는 겐가?”

“어쩌면 그냥 고기압 저기압처럼 자연현상일 수도 있겠죠. 당장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만 해도 위성사진으로 보면 소용돌이 모양 아닙니까.”

“설마 설마 하고 있는 상황인 거구만.”

“그렇죠.”

“애매한데......”

굳이 말로 꺼내지 않았지만 우리는 사태의 정치적 심각성을 알아챘다. 내가 ‘뭔진 모르겠는데 의정부에 게이트가 열릴 수도 있고 안 열릴 수도 있어요!’라고 말한다면, 당장 경기도 북부에 밀집된 수백만 피난민들이 대피해야 한다.

증인은 단 두명.

꼬맹이와 정치인.

정치인이 꼬맹이에게 책임을 덮어씌우고 공포정치 무드를 만들려고 한다는 비난은 당연했고, 안 그래도 거짓말 프레임 때문에 고생하는데 수백만 단위 사기꾼이 될 수도 있었다.

양판석이 핵심을 짚었다.

“욕 먹는 게 무서워서 이러는 건 아닐 거고.”

“안 도와줄 것 같아서요.”

"그렇겠지."

피난민 대피 과정에는 공권력의 도움이 필요하다.

물론 내가 SNS에다 ‘의정부에 게이트 열린다!’라고 말하면 수백만이 우르르 몰려서 도망칠 것이다.

문제는 관중들이 경기장 빠져나갈 때 압사사고 일어나는 것처럼, 도로망이 마비되고 온갖 교통사고가 빗발칠 거다. 공포 때문에 경제도 휘청거리고.

그래서 대규모 대피는 경찰과 군대가 주도해야 하는데.

“제가 말하면 정부가 도와주겠습니까?”

“그래서 날 불렀군.”

“사태가 시급합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양 의원님이 수고를-”

“아아, 그래. 이 마당에 뭘 망설이겠나. 인근 사단장들 움직이겠네. 혹시 게이트 안 열리면 자네가 방패 좀 서줘."

“감사합니다, 의원님.”

“나랏일인데, 무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이상사태 확인하고 1시간 47분만에 초동대처가 끝났다.

“후우...!”

이정도면 참정치인 아닌가 싶어 뿌듯한 마음에 미소 지으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양판석은 저 멀리 부엌에서 넥타이를 매듭지으며 감기자네 가족들에게 저녁을 권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모였는데 저녁이나 들고 가지?”

“아, 그래도 될까요...?”

“나도 예전에 자네들 집에서 밥 얻어먹었잖나. 신년선물로 들어온 한우가 많은데 나는 이빨 아파서 잘 못먹어. 자네들이 해치우고 가게나.”

“감사히 먹겠습니다!”

“근데 나는 우리 한승문 의원님께서 명령하신 게 있어서 이만 나가봐야하네. 꼴이 우습군. 고기는 저어, 한 의원님보고 구우라 그러게. 잘 구워. 쟤가.”

“아! 왜 접니까!”

"자네 뱃지 달았다고 사람이 게을러졌어. 에잉. 초심을 잃어가지고...”

나는 피식 웃으며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마침 전화가 왔다. 여도연이다.

“어어, 누나.”

[씨발...! 씨발...!]

등골이 오싹해졌다.

[하늘에서 괴수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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