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49화 (49/296)

EP 9 -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5)

TV에서 아나운서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대본을 읽었다.

[하, 한승문 재단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동시에, 국회에서 특검법이 통과되었습니다.]

검찰과 특검이 동시에 출범했다.

정부와 국회가 협공을 가했다.

우선 검찰.

원옥분은 검찰 출신 대통령이다. 그리고 본인부터가 엘리트 검사이기도 했다. 원옥분은 기수문화와 조직 우선주의를 통해 검찰을 쥐고 있었다, 즉, 정부가 칼을 뽑은 거다.

그리고 특검.

특별검사特別檢事팀.

정치적 합의만 있으면 무소불위의 수사권한을 휘두르는 조직. 일개 조직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법률이 제정되는 조직.

[합당논란과 테러의 배후에. 한승문 의원이 있다는 주장이-]

정치권의 합의만 있다면 그 누구든 간에 죽여버릴 수 있는 무기.

국회와 정부의 정치적 합의가 있어야 뽑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칼.

[이에 정치적 선동, 테러 조작 등의 혐의를 근거로 내란죄-]

그 시퍼런 칼이 내 모가지에 드리웠다는 게 느껴진다.

국회와 정부가 나를 잡아 죽이려고 들고 있다.

“......”

드디어 끝이 보인다.

* * *

의원들이 말했다.

“VIP도 찬성하셨어요. 뱃지 뗍시다.”

“역풍 걱정은 안 하십니까?”

“그 놈이 한 짓거리만 생각하면 치가 떨립니다. 아주!”

“말씀 조금만...”

“아, 죄송합니다.”

[한승문 특검이 통과된 이후, 한승문재단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홍선아 씨는 크나큰 유감이라는 뜻을-]

지하국회 응접실, 11명의 사람들이 TV 앞에 둘러앉아 있었다.

10명은 의원이고, 1명은 대법원장이다.

“물론 지금이야 국민당 쪽에서도 반발 여론을 형성해서 밀어붙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국민당이라는 것의 실체가 뭡니까?”

의원이 열변을 토했다.

“결국 한승문이라는 놈 인기에 편승해서 뭐 좀 뜯어먹으려는 무리 아닙니까! 국민당에서 한승문을 덜어내면 껍데기밖에 없어요!”

“한승문 의원에게 지나친 형벌이 부과되면 국민적 반발심리가 일어날 겁니다. 차라리 이대로 질질 끌어서 지지율을 낮추는 게-”

“그놈이 또 무슨 짓거리를 할지 어떻게 압니까!” 의원들이 한승문을 죽이자고 말했다. 열띤 토론이었지만 결국 방식의 차이를 논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의원 자격정지 시키고! 피선거권 박탈해야 합니다!”

“역풍 분다니까요!”

“저는 괜찮다고 보는데요. 괘씸하잖아. 룰을 어긴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줄 필요가 있어요.”

“아니, 일단 특검에 들어갔다는 이유 만으로도 이미지 깎이니까. 4월 총선에서 우세를 잡기 위한 용도로 써먹는 건 어떻겠습니까?”

“아뇨. 억울한 탄압이라는 의견이 많아요. 속전속결로 결단해서 뱃지 뗍시다.”

“그래요, 지금이야 여론이 뜨겁지 몇 달만 지나 보세요. 다 까먹는다니까?”

대법원장은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의원 9명이 알아서 형량을 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법원장은 사람좋은 눈빛으로 난처하게 웃으며, 유일하게 침묵하던 의원 1명을 바라보았다.

사법연수원 동기이고,

사법파동 동지이자,

법원행정처 동료였던,

같은 판사 출신의,

양판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대법원장이 말문을 텄다.

“저어, 의원님들?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만, 형량을 산출하려면 최소한 국민 정서에 어긋나지 않는 죄목이 필요하실 텐데요.”

"테러를 조작했다지 않습니까! 원옥분 대통령께서!"

"그걸 과연 국민이 믿느냐는 다른 문제로 압니다."

스트레스로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의원 하나가 스마트폰으로 전송된 파일 하나를 체크했다.

"강력한 추가타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만."

"......"

“검찰에서 한 건 올렸습니다.”

양판석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의원이 씨익 웃으며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한승문재단 연구소에서. 생체실험 기록이 나왔답니다."

*

데이비드 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뭐야.”

홍선아가 방긋 웃었다.

“사! 표!”

“아니, 그건 아는데. 뭐 이리 많아?”

“생각보다 안 놀라시네요...?”

“대충 짐작은 했으니까.”

홍선아는 48명의 사직서를 제출했다. 꾸준히 충원된 ‘이능력용역조합’의 총원이 70명 규모라는 점에서 과반수였다.

홍선아가 말했다.

“으음...! 다들 3D 직종이라 싫어하는 것 같더라구요!”

“3D가 무슨 뜻인지는 알고?”

홍선아는 가만히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했다.

헌터들은 공무원으로 인정되었다.

수입이 노동에 비해 적었다.

한승문이 길드를 경찰청 산하 일개 국의 협력기관으로 만들어버린 탓이었다.

따라서 불만이 항상 많았다.

덕분에 홍선아가 조직의 불만세력을 장악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으음......"

홍선아는 한승문이 조금 무섭다는 생각을 하며 방긋 미소지었다. 그리고 김춘식의 질문에 대답했다.

“3D! 더럽다! 다난하다! 돈 안된다!”

“똑똑한 건지, 멍청한 건지......”

데이비드 김은 피식 웃으며 사표들을 받아들었다.

“미안하다. 선아야.”

“......넹?”

“미안하다면 미안한 줄 알아. 그냥.”

홍선아는 웃는건지 아닌건지 모를 특유의 오묘한 무표정으로, 주섬주섬 사표를 정리하는 김춘식을 바라보았다.

외팔이 데이비드 김은 한 손으로 낑낑대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 라이터를 꺼내들다 실수로 떨어뜨렸다.

“......흠.”

허공에서 불꽃이 생겨나 담뱃불을 붙였다. 홍선아는 말없이 뒤돌았다. 그리고 성큼성큼 나아갔다.

그녀는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한참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감정을 읽기 힘든 미소를 띄고. 스스로의 심정을 절제하며. 평소처럼 약간 과하게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저, 갈게요?”

“오냐.”

“안 잡아요?”

“그래도 갈 거잖냐.”

홍선아는 살풋 미소지으며 눈을 감았다.

역시. 그녀를 분노하게 만드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뿐이었다.

“......야, 이.”

“......”

“ㅆ, 씨, 씨이발새끼야...!”

홍선아는 문고리를 잡은 상태로 무너져내렸다. 그녀는 방울진 눈물을 똑 똑 흘리며 웃음지었다.

“유지원, 성재광, 김 정,”

들개. 문어. 가짜군인.

“도은아, 박재준, 정선재,”

양아치들. 본인. 들개.

“김복례, 김정규, 조정식.”

헬멧 쓴 사람. 무너지는 건물. 저격.

“박태철. 서주희. 정아름.”

비행괴수. 양아치들. 본인.

“나요. 그 사람들 왜 죽었는지 다 기억하거든요?”

그들의 시신을 불태운 사람은 홍선아였다.

“서울, 우리끼리 충분히 탈출할 수 있었는데. 아저씨가 민간인 두고 못 간다 그랬잖아요. 나는 남을 테니까 니들은 가라고.

그래서. 다들 웃으면서. 나도 남는다고. 나도 남는다고. 나도 남는다고.나도 남는다고.

그냥. 싸구려 미국영화처럼. 다들...!”

깔린 건물에서 하반신만 꺼내 태우고. 으슥한 건물에서 발가벗겨진 채 식은 시체를 닦아 태우고. 밧줄에 매달린 시체를 내려서 태우고. 살점은 다 뜯어 먹히고 뼈만 남은 시체를 기워붙여서 태우고.

“고기 타는 냄새가 코에 배어버렸어요.” 홍선아는 기억한다.

“고기를 못 먹겠더라!”

압구정에서 죽은 각성자는 12명이었다.

“정신과 다니면서 약도 먹고 있고요! 의사가 나보고 미친년이래! 한승문도 나보고 미친년이라고 하더라! 웃으면서 사람 태운다고!”

김춘식이 지킨 일반인은 1200명이었다.

“......헤.”

12명의 희생으로 구한 1200명.

생명의 무게를 비교하라 했을 때, 섯불리 답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숫자를 못 세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홍선아는 바보다.

“헤헤...”

그녀는 헤실헤실 웃으며 문을 열었다.

“저, 갈게요?”

“......”

“진짜 갑니다? 말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에요! 저 안 돌아올 거에요?”

김춘식이 홍선아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가지마라.”

홍선아가 방긋 웃었다.

“꺼져.”

*

온갖 증거와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한승문이 합당을 조작했다.

한승문이 테러를 조작했다.

기성 정치권의 변명으로 들리는 말이다. 애초에 그걸 노리기도 했고.

헌데.

효과적인 후속타 하나가 명치에 박혔다.

[한승문 의원의 생체실험 주도 논란이 불거진 이후, 각계각층에서 논란이 끊기지 않고 있습니다. 한 의원은 오후 2시, 처음으로 입장발표를-]

[한승문재단 연구소에서 약 200회에 달하는 생체실험 결과가 발견되었습니다. 일각에서는 기성 정치권의 모략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차재균의 ‘괴수화 약물’ 연구 결과를 한승문 의원이 손에 넣었다는 테러리스트들의 주장이 있었다는 점에서-]

“으음, 끌까요?”

“아니, 그냥 틀어놔.”

검찰이 일을 대충 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잘 숨겨놨는데 용케 찾아냈네.

[한승문 재단 산하 연구소에서, 약 200회에 달하는 생체실험 기록물이 발견-]

초능력 각성제.

차재균이 범죄자 생체실험으로 뚝딱 만들었다고는 하나, 곧장 상용화시킬 순 없지 않은가. 이호정이 말없이 바나나 우유 하나에 빨대를 꽂아 내밀었다.

“......수고하셨어요.”

“오냐.”

나는 스쳐 지나가는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창문에 내 모습이 겹쳐보이길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아 씨 흰머리...”

눈에 띄게 희끄무레한 머리카락이 보인다. 28살 치고는 완벽한 노안이었다.

“다 늙었네, 다 늙었어...”

[특별검사팀은 생체실험, 선동, 헌정질서 파괴 등, 기타 7가지 혐의로 한승문 의원을 기소했습니다.]

나라가 두 편으로 쪼개졌다.

국민들이 두 가지 가설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

국민당이 말하는 ‘영웅’.

차재균의 음모, 국회의원들의 야합, 극단 테러단체의 위협에 끝까지 맞선 한승문.

국방당이 말하는 ‘선동가’.

정권을 잡기 위해 온갖 사실을 조작하고, 테러단체를 배후에서 조종하며 생체실험을 진행한 제 2의 차재균.

국민당에게 명분과 민심이 있고, 국방당에게 증거와 언론이 있다.

민심은 아직 국민당에게 있으나, 법리와 언론이 국방당을 밀어주고 있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이런 난세에.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는 이를 위인이라 부른다.

나는 이 미친 나라에 길을 알려줄 것이다.

“하, 한승문이다!”

“한승문 의원님! 생체실험 논란이-”

“한승문! 한승문! 한승문!”

“길드는 누구 껍니까!”

차에서 내리자마자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였다. 익숙한 장소다.

일부러 그때 그 곳을 골랐다.

차재균의 생체실험을 폭로했던 적, 그때의 익숙한 회견장이 재현되어 있다.

나는 휠체어에 타고 레드카펫을 지나 단상 위로 향했다.

나는 나를 수없이 깎아냈고, 이제 이 자리에 온전한 정치가로서 자리했다.

환상을 보지 않는다. 나는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을 알고, 그를 행한다.

약속된 몰락을 막기 위해,

이미 굳어버린 위정자들과, 혼란에 빠진 민중을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서서히 미쳐가는 이 나라에 희망을 주러 왔다.

“......안녕하십니까.”

나는 이제 내 입과 마이크 사이의 적절한 거리감을 알고, 어떻게 시선처리를 해야 카메라에 신뢰감있는 사람으로 보일지 안다.

이에 익숙한 인사말을 건넨다.

“국회의원 한승문입니다.”

비장함을 보여주기 위한 4초의 목례.  기대감을 고조시키기 위한 3초의 침묵.

“저는, 목숨을 걸고 차재균 씨의 계획을 저지했지만,

차재균주의자들의 테러를 배후에서 조작했으며,

그들에게 납치되어 총까지 맞았습니다.”

가벼운 역설.

지지자들에게 여유를 보인다.

“또한, 젊고, 유망하고,

미래가 보장된 정치인이었지만,

기성 정치권의 야합을 조작해서,

그걸 또 폭로했습니다.”

나는 명백히 미친놈처럼 정치를 했다.

즉, 내 정치에는 개연성이 없다.

“이걸 믿으십니까?”

믿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제가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까?”

물론 특검과 검찰에서는 굉장히 객관적이고 타당한 증거를 내밀었다. 이런저런 서류나, 관계자들의 증언, 등등.

하지만.

“특검과 검찰이 내민 증거들은. 대부분 조작된 내용입니다.”

사람은 원래 믿고 싶은 걸 믿는 생물이었다.

“그 증거들이 저를 법정에 세우고. 감옥에 세울 수는 있을 겁니다.”

증거와 신뢰는 관계가 없다.

“하지만, 진실과 정의는 변하지 않음을 믿습니다!”

정치적 신뢰는 명분과 민심이 결정한다.

“이 자리에서 모든 걸, 명백히, 밝히겠습니다.”

비로소 모든 퍼즐이 하나씩 맞춰진다.

“저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유착 관계를 밝혔습니다.”

정치권을 분열시켜 상호견제를 도모하고. 사회 지도층을 다시금 일하게 만든다.

정치인이 서로 싸워야 나라가 발전한다.

“저는, 차재균이라는 독재자에 맞서 싸웠고, 아직도 그 잔당과 싸우고 있습니다.”

가상의 적을 만들어 국민을 혼란시키고, 그 공포를 고스란히 지지율로 맞바꿔서.

“특검의 주장은 명백한 음해공작입니다.”

기성 정치권의 공격을 유도한다.

“단, 하나. 사실인 점이 있습니다. 저는 약 200회에 달하는 생체실험을 시행했습니다.”

결국, 그 공격을 부숴버리면서.

“저는 생체실험을 통해 '괴수화 약물'을 '각성 촉진제'로 만들고. 부작용을 완화시켰습니다.”

정부를 개박살내어,

검찰과 언론을 해방시킨다.

그렇게.

“실험체는 오직 저 뿐이었습니다. 저는 제 초능력을 응용해 200회에 달하는 생체실험을 수행했습니다." 기성 정치권의 유착을 완전히 끊어낸다.

"그 대가로 제게 남은 수명은 10년입니다.”

삼권분립三權分立의 부활.

그리고,

“이제, 더 이상 과거를 논하지 않겠습니다. 미래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제게 쏟아지는 음해공작에 대해 부연하는 대신,

이 자리에서,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대한민국이 무엇인지 밝히겠습니다.”

어지러운 세상에 명백한 방향을 제시하여,

난세亂世를 끝낸다.

삼십육계三十六計 제 34계

고육계苦肉計

: 제 몸을 해쳐 목적을 달성한다

천하삼분지계 天下三分之計

: 세력을 삼분하여 상호견제를 도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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