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 - 북풍北風 (7)
피채원이 국정원을 감지하고, 감기자가 재빨리 도주를 종용하던 적.
“잠깐만요.”
“이럴 시간 없습니다! 들이닥치기 전에 빨리...!”
“아뇨, 잠시...”
피채원이 분명 국정원이 이 근처라고 했다.
즉, 우리의 존재를 포착하고 추적을 개시했다는 소리다.
절대로 도망칠 수 없다.
감기자는 다르게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말이다. 그가 다급히 외쳤다.
"시내로 갈 겁니다! 사람들 한복판에서 살인이라도 하겠습니까?"
"잡히든 말든 보험 하나 들어놉시다."
나는 감기자의 재촉을 무시하고 생체실험 증거자료에서 핵심적인 부분들만 골라 여도연에게 쥐어주었다.
“......뭐하냐, 니?”
“이거 들고 양판석 의원님한테 가.”
“뭐?”
사건이 점점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들고 있다. 일단 가장 중요한 걸 지켜야 한다.
“......나 혼자 튀라고? 미쳤냐?”
“신분당선에서 마석 많이 잡수셨지? 자동차보다 빨리 뛰는 거 아니까 알아서 잘 튀어.”
“내가 그럴 것 같냐?”
“양판석 의원님한테 이거 쥐어주면 알아서 잘 도와주겠지. 차재균 약점 잡는 꼴이라 누나가 내 옆에 붙어서 나 지켜주는 것보다 오히려 이게 더 안전해.”
“......”
“탄핵소추도 증거가 있어야 가능한 거야.”
신분당선에서 흡수한 마석이 얼마인데 알아서 잘 탈출하겠지. 그래서 나는 여도연에게 갈색 봉투를 쥐어주고 양판석에게 보냈다.
......가장 중요한 걸 지키기 위해서.
물론 홈플러스 4층에 실험체가 있을 줄은 몰랐고, 저격과 동시에 경찰로 위장한 국정원에게 잡혀갈 줄은 모르고 한 짓이었다.
* * *
아무튼 감기자 소설 베스트셀러 만들어줬다.
“본 참사는, 북한의 소행이 아닌 차재균 차관이 저지른 생체실험의 결과입니다.”
잘 팔리다 못해 불탈 것이다. 미친 불꽃이 카메라를 타고 나라를 태운다.
“군부의 차재균 세력은, 초능력자 군단을 만들기 위해 생체실험을 감행했습니다.”
온 나라가 불탄다.
이제, 동남풍을 부를 차례다.
“그리고 ‘차재균 세력’은 저에게 지금의 사태를 북한의 소행으로 선동하여 국민을 속이라고 지시했습니다.”
차재균 ‘세력’.
우선, 연환계連環計를 역으로 사용한다. 나는 차재균 옆에 붙으면 같이 잿더미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집단이라는 의미를 강조하는 건 차재균에게 붙지 말라는 경고였다.
편가르기의 시작.
프레임 조성의 정석이다.
“차재균과 그 측근들의 생체실험 중 괴수로 변한 실험체들이 탈출했고, 그로 인해 지금의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나는 차재균이 터프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차재균 세력은 초능력자 사조직을 만들기 위해, 멀쩡한 사람을 각성자로 만들어 세뇌시키려 들었습니다.
허나, 그들의 실험은 인간을 괴수로 만들 뿐이었고, 그 실험체들이 탈출한 결과가 바로 지금의 참상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가장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선택을 반복했다.
그게 이번 묘수의 핵심이다.
그는 사태 초기의 모든 주도권을 잡고, 국회, 국정원, 정부, 합참을 자기 영향력 아래 두었다.
어쩌면 이게 군인의 마인드. 상명하복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정치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 아주 위험한 짓거리였다.
부릴 수는 있어도 잡을 수는 없을 테니까.
쌍소리로 말하면 차재균은 꼰대들 비위를 맞춰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 나라는,
그들의 나라였다.
*
원래 가장 위급한 상황일수록 상대방을 이해하고 헤아리려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헤아려 보았다.
첫째, 국회의 관점이다.
국회의원은 살기 위해 산다. 다음 선거, 계파간 공천학살, 정권 바뀔 때마다 벌어지는 검찰의 망나니 칼춤, 등.
의원은 매 순간 생존을 위해 투쟁한다.
여기서 국회가 나를 도울 첫 번째 이유가 발생한다. ‘생존’.
차재균은 정치인들의 헛짓거리를 막기 위해 그들을 억류했다.
물론 옳은 판단이었겠지.
‘국군은 왜 아직도 서울수복 못합니까?’
‘북한에 선전포고해야 합니다!’
‘신속히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사퇴하세요!’
‘아, 그건 모르겠고! 사퇴하세요!’
카메라 앞에서 이 지랄하는 게 눈에 선하다. 사태 초반 국군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를 수 있었던 건, 정치권의 견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의 실수는 그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위협이 될만한 걸 살려두는 인종이 아니다.
이제 두 번째 이유.
국회의원은 ‘선출직 공무원’이다.
민주사회에서 이들이 강력한 이유는 자기가 하는 짓을 ‘국민’이 원해서 하는 거라고 운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민의 대리자다.
허나 지금의 국회가 과연 국민의 대리자인가?
300명 중에 12명. 심지어 원옥분도 빠지고 이제는 11명 남은 국회가?
국회는 필연적으로 국민 여론에 물타기 하는 식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즉,
여론을 움직이면 국회를 움직이는 것이다.
“저는, 차재균에 대한 탄핵소추와 해임건의안을 발의할 것을 국회에 요청합니다.”
여론에 불을 질렀다.
안 그래도 11인 국회라고 욕을 퍼먹는 마당에, 대의제代議制의 기본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회의 정당성은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다.
그래서 가장 핵심적인 탄핵소추를 처먹일 수 있는 것이다.
여도연을 통해 전달된 증거자료를 양판석이 잘 받고. 양판석이 날 배신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즉시 차재균의 군 통수권을 정지시킬 수 있다.
이게 ‘탄핵 소추’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해임 건의. 말 그대로 대통령에게 차재균 좀 짤라달라고 요청하는 거다.
이제 ‘정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정부는 사실 차재균과 밀월관계에 가까웠다. 원옥분부터가 차재균의 묵인 하에 권한대행이 된 케이스였으니까.
하지만, 정부가 차재균을 조져야 할 이유는 분명 존재했다.
왜냐.
차재균은 자신의 전략이 멍청한 기득권들의 욕심에 방해받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에, 정도 이상의 권력을 탐했다.
방어적 권력 쟁취다. 적어도 차재균이 나를 속이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문제는,
남이 보기에는 권력에 눈이 먼 거랑 큰 차이가 없었고,
정치판에서는 그게 가장 중요했다.
원옥분, 그 반쪽짜리 대통령도 분명 그에게 위협을 느낄 것이었으니까.
적절한 계기만 있다면 정부는 차재균을 조지는 데 기꺼이 협력할 것이었다.
다만, 이 생체실험에 원옥분도 뒷수습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인데.
“차재균은 원옥분 정부를 속여 본 사태를 은폐하려 들었습니다.”
그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이는 명백한 내란입니다. 국회가 발의할 해임 건의안에 대하여, 원옥분 권한대행의 신속하고 단호한 지도력을 기대하는 바입니다.”
옥분아. 제발 이 새끼 좀 짤라라.
좋아.
‘탄핵소추’로 국방부 장관대행 권한을 정지시키고.
‘해임건의’로 원옥분 권한대행에게 명분을 준다.
그리고 권한대행이 국무위원 차재균을 해임한다면, 차재균은 거의 민간인 신세로 전락한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싸움이다.
차재균은 법적 권한이 말소된 상태에서,
군대를 움직일 것이었다.
법적인 근거가 없는 지휘권 행사. 그거야말로 사조직이고 군사반란이다.
그러니. 그 미래를 대비해서,
국군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다.
“차재균은 원옥분 권한대행을 거치지 않고 군 통수권을 유용했습니다. 합참, 지작사, 계엄사령부, 각 군단 모두가 고작 임명직 공무원 한 명에게 속은 것입니다.”
‘나는 한 놈만 팬다.’
면죄부 줄 테니까 눈치껏 처신해라.
검찰 기수 끝판왕 원옥분이 조직을 장악한 상태라 언론은 주둥아리 못 나불댄다.
즉, 지금 내가 하는 말이 팩트가 된다.
물론, 이후의 언론 컨트롤은 원옥분에게 넘어간다.
하지만, 원옥분은 어디까지나 선출직 공무원이고, 이 상황에서 등신이 아닌 이상 차재균을 조지는 게 낫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지지율에 묶여 사는 짐승이었으니까.
......이제, 사람이 할 짓은 다 했다.
어차피 정치판에 정해진 공식은 없고, 내가 예상한 ‘가능성 높은’ 일들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갑자기 서울에 핵폭탄이 터질 수도 있고, 게이트가 폭주해서 괴물들이 미칠 듯이 쏟아질 수도 있다.
차재균이 순식간에 부산을 함락시키고 이 나라를 먹을 수도 있고, 양판석이 처음부터 차재균과 같은 편일 수도 있겠지.
세상 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다.
나는 가능성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실행했지만, 누군가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고. 뭐. 다 그렇지. 정치니까.
나는 눈을 감고 제갈량의 글귀 하나를 떠올렸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나머지는 하늘이 정하리라.
*
온 나라에 거센 불길이 타오르고.
동남풍이 분다.
화마火魔는 강북 계엄사령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국회, 정부, 군대, 국정원.
세력의 판도가, 각자의 입장이, 국민의 여론이, 차재균의 숨통을 끊으라고 요동치고 있다.
아니,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순풍에 탈지, 역풍을 헤치고 나아갈 지는 그들의 몫이다. 누가 불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정치는 원래 불꽃같은 거다. 누가 먼저 불탈지 모른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니 이제 담담하게 결과를 기다릴 뿐이다.
끝이다.
“......이상으로,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과, 그 국민에, 무궁한 영광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라 하나를 싹 태워버릴 불씨를 붙여놓은 연설은 1분 30초 남짓이었다.
정치적 메시지는 짧을수록 뇌리에 박힌다.
나는 단상 옆으로 나가 허리를 깊게 숙였다. 한참동안 숙였다. 이는 일종의 조의弔意였다.
......피바람이 불 것이다.
헌터들이 자신을 방치한 국가에 반기를 들고, 국정원 내부에서 책임과 명예를 둘러싼 공방이 오가고.
최악의 상황에는 강북 계엄사령부와 부산 임시 합동참모본부 사이에서 내전이 터질 수도 있겠지.
허나, 승패는 이미 정해졌다.
보급의 근본은 후방인데다, 요즘이 어느 시대인데 군인이 같은 군인들에게 총을 쏘겠는가.
사실, 이미 차재균은 끝장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의를 잃은 권력자는 이미 끝난 거다.
이 싸움은 이미 내가 이겼다.
차재균은 실각할 것이고, 피가 얼마나 흐를지는 모르지만 확신없는 도덕이 승리했고, 대안없는 악덕의 숨통을 끊었다.
그리고 나 또한 곧 죽으리라.
차재균은 망설이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절뚝거리며 타고 온 차량으로 돌아갔다. 연설 중에 저격이라도 안 당한 게 어디인가.
헛웃음이 나왔다.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이어가며 시간을 떼우고, 근처 카페로 도망쳐 버팅길 수도 있었지만, 대중들 앞에서 질질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싫었다.
물론 그게 더 언론플레이 효과는 있겠지만서도, 뭐. 굳이 사람이 그렇게까지 꼼꼼할 필요가 있나. 이정도 했으면 됐지.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던 군인이 얼어붙어서 차 문을 열어주지도 않았다. 그래. 내가 조금 커다란 거 터뜨리기는 했다.
기자들이 쫓아왔지만 나는 쓰게 웃으며 침묵했다. 그제서야 군인들이 허둥지둥 기자들을 쫓아냈다.
피곤하다.
나는 눈을 감고 가죽 시트에 몸을 기댔다.
차량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이 차량이 어디 으슥한 절벽으로 향해서 내가 실종처리 될 수도 있었지만, 막상 이 상황이 되니 썩 무섭지는 않았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뒷좌석이었지만 나는 습관적으로 안전벨트를 매었다. 안전벨트 덕분에 살아남은 적이 있으니 꼭 매게 되더라.
나는 잽싸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었다.
어쩌면 내가 차재균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이게 된 건 아닐까.
사람의 양심이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지켜내야 하는 물건일까.
누나는 무사할까.
내일 양판석이랑 낚시 가기로 했었는데 못 가게 됐네.
지구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걸까.
탕수육은 부어서 먹어야 제맛인데 누나는 왜 그걸 모를까. 맛알못.
독재의 기준이 무엇인가.
머리에 총알이 박히면 무슨 기분일까.
무고한 이의 핏값으로 연명하는 국가는 존재할 가치가 있을까.
내가 지나치게 도덕적으로 깔끔을 떠는 걸까.
점심 못 먹었네. 배고프다.
나는 그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감내’하기가 두려운 건 아닐까.
나는 한참동안 울적하게 창가를 바라보며 잡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문득, 이 차가 계엄 사령부로 향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았다.
정말 어디 으슥한 야산에 묻힐 운명인가.
나는 시무룩하게 운전수에게 물었다.
이상하다. 운전수가 한 명 뿐이네. 뒤에서 목이라도 졸라볼까.
“.....저기요, 우리 계엄사령부 가는 거 아닌 것-”.
흐음. 나는 말을 멈추고 인상을 팍 찌푸렸다.
운전병이 핸들을 오른손으로만 잡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교통사고 생존자인 것도 있고,
국회의원 모시고 다니는 운전기사였던 것도 있고.
이 와중에 혓바닥 간수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 것도 있고.
아무튼 난 운전방식에 살짝 결벽증적인 면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말했다.
“이런 말 하긴 뭐한데 운전은 양손으로 하시는 게 어떨까요.”
“왼손이 없는데 어쩌라고?”
“아, 죄송합, ....니다?”
운전병은 외팔이였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였다.
“Hi?”
한국이름 김춘식. 영어이름 데이비드 김. 생긴 건 양놈, 말하는 건 상놈. 길드장.
데이비드 김은 백미러로 나를 바라보며 씨익 미소지었다.
나는 얼빵한 얼굴로 그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데이비드 김은 한참동안 낄낄대더니, 나를 돌아보며 하나 남은 눈을 휘둥그레 기울였다.
“Boo!"
*
“......미치겠네 진짜!”
“마지막 잎새라도 보고 있었어? 방금 그 처연한 표정은 뭐야?”
“아흐으...!”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차마 주체할 수가 없어서, 나는 이상한 얼굴로 간신히 미소지었다.
“와, 씨...! 진짜, 대체, 어떻게...?”
“선아 녀석 주머니에 스피커폰이 들어있었지. 너랑 만날 때부터.”
“......뭐요?”
“갑자기 선아를 비밀스러운 데 써먹겠다고 데려가지 않았나? 세상이 워낙 흉흉해야지. 선아에게 시킬 일이 무엇인지정도만 알고 싶었어.”
이거 봐라.
"그거 도청-“
“뭐어, 덕분에 선아 녀석 잡혀가기 직전까지 그쪽 상황은 대충 파악하고 있었고. 그 후 연락은 두절됐지만 우리도 눈치껏 대처를 한 거야. Got it?”
“......덕분에 살았군요. 감사합니다.”
데이비드 김은 계엄 사령부 쪽이 아니라 강원도 쪽으로 차를 몰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는 동해가 보이는 해안절벽에 도착했다.
차량 두 대와 군인 하나가 서 있다.
잔뜩 긴장한 몸이 풀리는 바람에, 차에서 내리며 살짝 휘청거렸다. 오늘따라 바닷바람이 참 달다.
휘우! 데이비드 김이 여유롭게 담뱃불을 붙이며 휘파람을 불어 나를 불렀다.
“죽다 살아난 기분은 어때?”
막 대답하려던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원한테 말하는 본새 좀 봐라. 당장 불 안 꺼?”
잘 차려입은 투스타가 김춘식이 물고있던 담배를 낚아채 바닥에 내던졌다.
데이비드 김은 불만스럽게 눈썹을 들썩이며 그를 내게 소개시켰다.
“아아, 이쪽은, 그, 으음. Uncle이 영어로 뭐더라?”
“엉클.”
“이쪽은 김두식 소장님. 우리 아버지 동생.”
김춘식의 삼촌 김두식은 무덤덤하게 내게 다가와 경례를 올려붙였다.
“충성, 제 2 작전사령부 참모장 김두식 소장입니다. 반갑습니다, 한승문 의원님.”
말투는 무미건조했으나 차재균보다는 사람같았다. 다만, 표정만 따지면 차재균보다 더 건조했다.
자꾸 차재균이 떠올라서 살짝 꺼림칙했다.
아무튼 제 2 작전사령부라. 충청도 이남의 국군을 관할하는 곳이었다.
군복 정모를 벗자 깔끔한 대머리가 드러났다. 어중간한 대머리인 양판석과는 다르게, 완벽한 대머리였다.
모자를 가슴께에 든 김두식 소장은 무표정으로 내게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점잖게 말했다.
“저 놈이 외국 물을 많이 먹어서 싸가지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데이비드 씨 덕분에 목숨을 두 번이나 건졌는데요.”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면 감사합니다. 따라오시죠. 우선 안전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는 나를 부축하며 준비되어 있던 차량으로 안내했다.
끼익, 콰지직!
데이비드 김이 타고 왔던 차를 절벽으로 집어 던졌다. 한 손으로.
풍덩! 차량은 저어 멀리까지 날아가서 바다 속에 빠졌다. 물기둥이 높게 튀었다.
미간에 골이 파인 김두식이 탁 탁 바지에 손을 터는 데이비드 김을 보며 혀를 찼다.
“저것도 세금으로 만든 거다 이놈아.”
“글쎄요. 내 나라 세금은 아닌데.”
“이래서 양놈은...”
“워!”
김두식은 내가 탑승하기 편하도록 문을 열어주기까지 했다.
그는 ‘정중하게’ 내가 탈 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타시죠.”
트렁크였다.
“......”
껌뻑. 껌뻑. 김두식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농담인가 진담인가 헷갈린다.
한참동안 멍한 정신으로 그를 쳐다봤다.
데이비드 김이 피식 웃으며 옆 차 트렁크를 열었다.
벌컥.
“호앵!”
홍선아가 들어있다.
나는 말없이 트렁크에 올랐다.
*
트렁크에 들어있으면 심심할 거라고 김두식이 건네준 핸드폰으로, 아재들이 하는 농장 키우기 게임을 네 시간 정도 하고 있으니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 똑.
흐읍! 검문인가 싶어 숨을 참고 입을 막았다.
트렁크 문이 열렸다.
“......나오시죠.”
“아, 네....”
김두식이 무표정으로 나를 끄집어냈다.
어디 휴게소다. 나는 찌뿌둥한 몸과 정신을 일깨우려 고개를 흔들었다.
김두식 소장이 진중하게 말했다.
“좋은 소식 하나랑 좋은 소식 하나가 있는데. 뭐부터 들으시겠습니까?”
“어어, 네? 아, 그으, 좋은 소식...?”
“계급장으로 밀어붙여서 검문 싹 다 통과했습니다. 당나라 군대인 게 이럴 때 참 좋군요.”
왜 내 주변에 있는 중년은 다 이상한 사람들일까.
“......다른 좋은 소식은요?”
“차재균이 자살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