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 - 북풍北風 (6)
선 위를 걷고 있다.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 * *
경북 북부 교도소. 통칭 청송 교도소는 대한민국 최악의 범죄자 소굴이다. 사형 선고자는 구치소에 수감되니, 무기징역 선고자들이 거진 전부 몰려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차재균이 내게 건넨 실험체 명단은 인간 쓰레기 명단이었다. 연쇄살인, 존속살인, 유아강간.
“선별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제가 한 건 아니지만.”
나는 말없이 한참동안 차재균을 바라보았다. 차재균은 사무적으로 목숨을 세었다.
“내사 결과, 강력 범죄자 514명이 실험체로 사용되었고, 탈옥수 14명을 제외한 전원이 이미 사살되었습니다.”
조금 빠른 어조,
무덤덤한 표정,
정중한 말투,
어렴풋이 느껴지는 사무적인 미소까지.
“민간인 희생자는 17명.”
내가 항상 보던 차재균의 모습이었다.
“실험체 충원 과정에서 징집된 민간인 6명이 전원 사살되었고, 탈옥수 제압 과정에서 마력 인자에 오염된 민간인 11명이 괴수화 직전에 사살되었습니다.”
“......괴수화요?”
“돌연변이 각성자 중 하나가 감염성을 드러냈습니다. 포자 형식으로 주변인을 괴수로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사살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끔찍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지만, 특별히 달라진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본 실험의 실무자는 국가정보원 대테러 보안국 정준석 국장입니다. 기밀 유지를 위한 민간인 강제징용을 이유로 총살됐습니다.”
그냥, 이게 원래 차재균이라는 사람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던 차재균 차관이었다.
분노하거나, 실망할 거리도 못 된다.
원래 이게 차재균이라는 사람이었다.
그저.
“제가 악당으로 보이십니까?”
내가 이 사람을 멋대로 재단하고 있었던 것 뿐이다. 나는 차재균을 몰랐다.
“범죄자 징집 과정에서 민간인 6명이 희생되어 정준석 국장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실험체 처분 과정에서 발생한 소요 사태로 연구원과 민간인을 포함해 42명이 죽었고, 계엄령이 선포되었습니다. 이제 국정원장 김도환이 오늘 저녁에 자살할 겁니다. 공식적으로는요.”
나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차재균이 내게 말했다.
“공석이 된 국정원장에 원옥분 권한대행이 추천한 인사를 임명하는 것으로 이번 사건은 일단락될 겁니다. 앞으론 국정원을 원옥분과 함께 나눠 써야 하겠군요.”
차재균이 태연하게 물었다.
“제가 꼬리를 자르는 걸로 보이십니까?”
“아닙니까?”
“믿으실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적어도 어제 저녁 8시 경 긴급 보고를 듣기 전까지 말입니다.”
정치를 하다 보면 가장 힘들 때가 이런 때다.
뭐가 개소리고 뭐가 참말인지 모르겠다.
차재균은 어느새 서류 몇 개를 집어 들더니 안경을 기울이며 그것들을 검토하고 있었다.
“하나, 대한민국 최악의 흉악범들을 상대로 인체실험을 실시해라.
둘, 이제 실험이 성공했으니 흉악범들을 처리해라.”
“......”
“두 가지를 지시한 것 빼고는 관여한 바가 없습니다. 거기에만 매달리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게다가 일선 실무진에서 생긴 문제를 제가 하루종일 들여다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어차피 그쪽에서도 잘못을 숨기기 위해 제게 보고하지도 않았고요.”
“......”
“아, 책임을 피하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원망하실 것이라면 하셔도 좋습니다. 게다가 증거 인멸을 위해 괴수화된 민간인에 대한 사살 명령을 내린 건 저니까요. 이미 정치권에도 상당한 대가를 지불했고, 지불할 예정이기도 합니다.”
“......”
“못 믿으시는 눈치군요. 누차 말씀드리지만 저는 일선에 간섭할만큼 여유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차재균이 하루 일과를 이야기하듯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아니,
그는 정말로 하루 일과를 내게 태연하게 이야기했다.
“비행괴수 때문에 기존 구출 방침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또, 화기가 통하지 않는 괴수들이 종종 등장해서 골치가 아프기도 하지요.
어떤 괴수는 소총 한 방에 죽일 수 있고, 어떤 괴수는 자주포 다섯 문이 달라붙어 포격해도 쓰러지지 않으니까요.”
“......”
“재미있는 게 뭔지 아십니까? 자주포 다섯 문의 포격을 견뎠던 괴수가, 소방차로 물을 끼얹으니까 녹아내렸습니다. 이래서 야전 지휘관들이 죽어나가는 겁니다. 기존의 전쟁과는 완벽하게 다르니 말입니다.”
“......”
“가끔 32m짜리 거대괴수가 나오기도 하고, 2cm짜리 살인벌레 떼가 피난민들을 덮치기도 하고. 비행괴수가 전투헬기와 함께 자폭하고, 바다괴수가 부산 앞바다에 나타나기도 하고.
아무리 잡고 또 잡아도 줄어들지를 않고. 기껏 게이트 앞까지 전선을 밀어놔도 정작 게이트를 닫아버릴 방법이 없으니 소모전을 끝낼 방법이 없고.”
차재균이 두 손가락을 내밀었다.
.
“탄약과 기름.”
그리고 소름끼치는 예언을 전했다.
“둘 중 하나라도 떨어지는 순간 대한민국은 패망합니다.”
“......”
“지속 가능한 전투가 필요합니다. 지속 가능한 싸움 방식이. 우리 한승문 의원님도 이미 아시지 않습니까?”
나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헌터.”
“그렇지요. 우리는 최대한 많은 헌터들을 전장에 투입해야 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헌터들로만 괴수를 잡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인체실험을 감행하셨던 겁니까? 헌터들을 충원하려고?”
차재균은 무미건조한 눈빛을 내게 보냈다.
“성범죄자, 연쇄살인범, 존속살인자. 썩 도려내기 힘든 살점은 아니었습니다. 비록 실무진들 사이에서 유감스러운 일이 발생하긴 했습니다만, 그건 감내해야 하는 일이겠지요. 제가.”
“......위선자 흉내라도 내시는 겁니까?”
“방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보다 더한 애국자가 없을 거라고.
저는 권력과 명예에 치우치지 않고, 효율적인 방식을 ‘객관적으로’ 구상할 수 있는 유일한 권력자고.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게 대한민국이 연명할 수 있는 방안이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따져 물었다.
“더 많은 괴수를 죽이는 방안이 아니라요?”
그는 태연히 대답했다.
“둘 사이에 차이점이 있습니까?”
“아뇨.”
“역시 영민하십니다.”
차재균은 다시금 서류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전략적 목표의 달성을 위해 흉악범 514명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무고한 희생자 48명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그 책임을 지고 2명이 죽었습니다.”
그는 사무적으로 미소지으며 여기서 뭐가 더 필요하냐는 듯 만년필을 든 손으로 허공에 손짓했다.
“564명의 죽음.”
“......”
“이제 제가 더 설명할 사항이 있습니까?”
없었고,
듣기도 싫었다.
*
멸망이 예정된 나라에 유일한 해답이 존재한다.
해답을 찾기 위해 썩은 살점을 도려냈다. 멀쩡한 피도 조금 흘렀다. 정확하게는 48명 정도.
갈림길 위에 서 있다.
붉은 한강 위를 걷거나, 신분당선의 통로를 헤치거나.
나는 그 앞에서 하염없이 갈등했다. 그리고 차마 그 길을 가기 싫어 도망치려 했다.
“......일단, 해야 할 일을 해야겠지요. 사태부터 수습하고 봅시다.”
“원옥분 권한대행이 이미 수습해주셨습니다.”
허나 물러설 곳은 없었다.
“이 사태는 북한 측의 테러로 규정될 겁니다.”
“...북한에서 그걸 용납하겠습니까?”
아무리 우리가 공습을 통해 괴수들을 막아준다 해도, 정치라는 것에는 선이 있는 법이었다.
보통 다들 그 선을 지키는 편이었다.
“새로운 북한 정권이 그걸 용납할 겁니다.”
가끔은 부수기도 하고.
“북한 내부에서도 말이 많은 모양입니다. 강제 징집, 방어선 구축 포기, 민간인 생존구역 핵폭격, 낙진 피해, 등.”
차재균이 한 손엔 펜을, 한 손엔 율무차를 든 채로 심드렁하게 말했다.
“사실 나라가 혼란스러우니까 권력 생각이 난 것이겠지요. 북한 국무위원회 인민무력상 리용수가 국무위원장이 숨어있는 벙커 좌표를 우리에게 줬습니다.”
“......”
“북한 괴수들을 공습하러 갈 전폭기들은, 벙커버스터를 싣고 갈 겁니다.”
차재균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후 벌어질 일들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테러에 분노하며 국무위원장을 처단하여 국가적 위신을 세우고.
인민무력상은 남조선의 시해에 격분하는 동시에 권력의 공백을 차지한다.
그리고 양국이 서로를 향해 적대적 프로파간다를 계속하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각자의 정치적 안정을 되찾는다.
차재균은 수백명의 죄인과 수십명의 희생자의 핏값으로 대한민국에 산소호흡기를 달고, 나머지는 알아서 정치적 이득을 챙긴다.
“......”
내가 할 일은 없었다.
무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차재균의 평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승문 의원님을 적대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
“우리는 상당히 건설적인 공생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하고 있고, 무엇보다, 제가 가장 원하는 것을 손에 쥐고 있으시니 말입니다.”
초능력자를 말하는 거였다.
“굳이 뺏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뺏을 수도 없고요.”
내가 달고 있는 금뱃지가 어느 때보다 든든한 방패였다. 양판석을 필두로 한 11인 국회가 나를 지켜주고 있으니 말이다.
“케이크를 떼어 드리겠습니다.”
“......”
“테러가 북한의 소행이라고. 기자회견에서 밝혀 주셨으면 합니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 사무적으로 미소지으며 내게 말했다.
“정치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니가 좋아하는 관종짓 실컷 시켜줄테니까.
공범이 되라는 소리였다.
*
차재균은 감기자와 내가 지니고 있던 모든 증거를 압수했다.
심지어 넥타이 핀으로 위장하고 있던 내 녹음기 까지도.
감기자는 애초부터 이걸 밝힐 수 없는 입장이었다. 천화란과 감지윤이 계엄사령부 인근 대학병원 연구소에서 거주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정체를 숨기다가 나를 통해 폭로하려 들었지만, 글쎄.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렸다.
홍선아는 억류되었다. 압구정을 지키던 친구의 죽음에 분노하고 있다면, 구출을 방치하고 있던 차재균 또한 간접적 살인자였으니까.
그리고 기자회견 당일이 되었다.
군부에서 마련한 차량을 타고, 군무원이 작성한 대본을 들고, 군인들과 함께 회견장으로 향했다.
손발에 줄이 달려있는 것 같다. 마리오네트가 이런 기분일까.
나는 간절히 여도연을 머리속으로 되새기며 차에서 내렸다.
수많은 카메라 불빛이 쏟아졌다. 이제는 언뜻 익숙하기도 하다.
저 멀리 있는 단상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붉은 카펫 위를 걸었,
아니.
여기가 시상식장도 아니고 무슨 레드카펫이지. 나는 어리둥절하게 바닥을 내려보았다.
카펫 따위는 없었다.
그저, 내 착각일 뿐이다.
나는 지금 붉은 한강 위에 서 있었다.
발목까지 핏물이 출렁인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붉은 손이 내 발목을 잡는다. 나는 그들을 뿌리치며 걸어간다.
기자들이 질문을 건네온다.
죽음에 관한 질문이다. 왜 죽었나, 얼마나 죽었나, 누가 죽었나, 어떻게 죽었나, 안 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모든 질문이 대충 맥락은 비슷했다. 카메라 렌즈에 피어오른 검은 눈동자에서 노란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지팡이를 짚고 절뚝이며 단상을 향해 나아갔다.
양판석이 내 귀에 속삭인다. 감내하라고. 이게 정치인이 응당 맡아야 할 몫이라고.
그렇게 붉은 한강을 헤치고 나아가,
나는 마침내,
피투성이로 단상 위에 올랐다.
한참동안 좌중을 돌아보고.
마이크를 잡는다.
“......안녕하십니까, 국민 여러분.
국회의원 한승문입니다.”
침통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우선, 이번 습격에 유명을 달리하신 11명의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작은 묵념. 이제는 익숙하게 눈물을 글썽인다.
“저는, 이번 사태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번의 괴수화 사태는......”
그리고 수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북한의, 생물학 테러......”
내가 서 있는 거미줄에 엮인 모든 것들.
내가 안배한 보험과, 내가 모르는 심리들.
물론, 언제나 그렇듯, 판단은 빨랐고,
“......저는 본 사태가 북한의 테러,”
정치판에 주사위가 던져졌다.
“라고 국민을 선동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