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 - 북풍北風 (4)
엑셀을 깊게 밟는다.
엔진이 끓어오르고,
차량 하나가 텅 빈 도로를 질주했다.
요동치는 엔진소리가 온 몸에 울린다. 기어는 5단. 살면서 이렇게까지 밟아본 적은 처음이다.
승객들이 스마트폰을 두들기며 정보수집에 나섰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오히려 살짝 침착해진 홍선아가 가장 먼저 정보를 보내왔다.
“포위망을 벗어난 시내에 괴물이 나타났대요. 동두천 광암동에 하나. 포천시 신평리 인근 야산에 하나. 그 외 다수.”
젠장. 둘 다 계엄사령부 인근이다.
“게이트가 또 열렸답니까?”
“아뇨, 그냥 어디서 튀어나와가지고 사람들 사이로 뛰어들었다는, 데요? 뭐지?”
“얼마나 죽었답니까?”
“아아, 그으, 많이 죽었다는 데도 있구, 안 죽었다는 데도 있고...?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소리도 있고...?”
“홍선아 씨 지금 어디서 검색하고 있습니까?”
“네이버 뉴스!”
“거르세요.”
“넹.”
그냥 괴수가 나왔으면 군대를 보냈지, 계엄령까지 틀 정도면 뭔가 더 있다는 소리다.
“원옥분 취임 이후 언론사는 함부로 말 못하는 신세니까 일반인들 썰 위주로 찾아보세요. 디씨, 루리웹, 에펨, 막! 예? 다들 신나서 인증샷 찍고 난리를 치고 있을 테니까!”
여도연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사람이 괴물로 변했대!”
“찌라시는 거르라니까!”
“정부 공식 발표야!”
“그러니까 거르라고!”
그게 제일 믿기 힘들다.
“이렇게 된 이상 차재균한테 간다...!”
“아, 안돼...!”
덥썩, 피채원이 내 어깨를 잡았다.
“그쪽은 안 돼요!”
* * *
사람이 괴물로 변했다. 괴물이 공격한 사람이 괴물로 변했다. 피난민들 한 가운데 괴물이 생겼다.
18명이 죽었다, 3명이 다쳤지만 사망자는 없다. 군대가 이미 진압했다.
새로운 종류의 괴수가 나타났다. 국정원의 음모다. 북한이 저지른 짓이다.
등, 등.
별별 찌라시가 다 돌고 있다.
믿을 수 있는 건 없다.
눈 감고 무언가 더듬거리듯, 대충 때려맞춰서 최선의 답을 구해야 한다.
어쩌면 차재균이 계엄령을 경기도까지 확대시키기 위해 원옥분과 딜을 튼 것일수도 있고, 뭔가 수상한 사건을 덮기 위해 윗선에서 연막탄을 터뜨린 것일 수도 있다.
항상 내가 모르는 곳에서 사건이 발생한다. 하지만 그 영향은 내게 닿는다.
그리고 그 영향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정치꾼의 수준을 판가름한다.
나는 일단 상황을 파악하기로 했다.
“의, 의원님...!”
그래서 피채원을 통해 감기자와 접선했다.
경기도 동북부 축령산 인근의 한 펜션. 피난민들이 모두 떠나간 허름한 산장에 감기자가 있었다.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 이게, 대체, 뭔...!”
“일단 들어가시죠.”
감기자는 이곳저곳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그는 불편한 거동으로 주변을 살피며 우리를 산장으로 안내했다.
태풍의 여파가 가시지 않았다. 습기 찬 목제 건물은 물비린내로 가득했다.
우리는 허름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감기자가 조명을 켰지만 워낙 낡아서 딱히 밝아지지는 않았다.
“의원님.”
“예.”
“......예전에, 압구정 생존자들을 군부가 방치하고 있다고 했었던 거, 기억하십니까?”
제기랄. 홍선아가 있는 자리에서 그런 소리를 하다니. 나는 미칠 듯이 표정관리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기자는 알 없는 안경을 벗어 눈가의 식은땀을 닦으며 말을 이어갔다.
“이미 짐작하시고 계셨겠지만, 저는 계엄사령부에 의탁하던 시절부터 군부의 뒤를 캐고 있었습니다.”
짐작 못했다.
“저는 지금껏 수많은 전쟁터를 누벼왔고, 경험상 이런, 그, 거지같은 상황에서는 군대가 거지같은 짓을 어지간하면 저지르게 되어 있거든요. 이번에도 역시 그랬습니다.”
나는 피채원의 표정을 살짝 살폈다. 충격적인 소식이었지만 녀석은 미동도 없다. 애초부터 감기자와 한 팀으로 활동한 모양이다.
아마 VIP 병실에서 같이 사는 동안 뭔가 커넥션이 있었겠지. 어쩌면 피채원이 감기자에게 먼저 접근했을 수도 있고.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이 상황은 피채원이 만들어낸 상황이다. 이 당돌한 녀석이 뭘 노리고 있을지 아직 파악 못했다.
감기자가 가방을 뒤적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사실, 기자들 네트워크 사이에서 암암리에 알려져 있는 블랙이 몇 명 있습니다. 극소수이긴 합니다만......”
감기자가 말한 ‘블랙’이란 국가정보원 소속 요원일 것이었다.
국정원에는 블랙 요원과 화이트 요원이 있다.
화이트 요원은 신분이 공개되어 있는 요원이고, 블랙은 말 그대로 비밀요원이다.
죽어도 실종 처리되는 그런 종류 말이다. 영화에도 자주 나오고.
“맨날 보안구역, 통제구역, 여행금지구역 나돌아다니다보면 우연찮게 마주치는 한국인들이 꼭 있습니다.
나중에 기자들끼리 맞춰보면 생긴 건 비슷한데 이름만 다르고, 꼭 우리한테 달라붙어서 은근히 이것저것 물어보는, 뭐, 네. 그런 사람들이요.”
“일단 감기자님이 국정원 비밀요원도 알아볼 수 있는 분이라는 건 잘 알겠습니다.”
“아, 네. 아무튼 공항 붙박이들, 아니. 연예부 녀석들한테 들었는데, 블랙 대부분이 요즘 귀국했답니다. 나머지는 귀국했는데 우리가 못 찾은 거겠지요.”
“아니, 무슨, 기자가 정보요원을 찾아요?”
“제가 늘상 하는 일이 외국 요원들 미행하는 겁니다. 정부군이든, 반군이든.
의외로 한국 애들이 좀 더 미숙해요. 아,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닌데...!”
감기자는 이 와중에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커다란 가방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이 아저씨는 가면 갈수록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나는 침음성을 흘리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러면, 국정원 블랙들이 뭔 짓을 했다는 겁니까?”
아까부터 주섬주섬 가방을 뒤적거리던 감기자가 갈색 서류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그걸 내게 건넸다.
“국정원에서 생체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
“‘B-10나’ 케이스. 살을 째고 마석을 팔뚝에 집어넣은 모습입니다.”
나는 그가 건넨 사진을 한 장 받아들었다.
엎드려 있는 시체. 보통보다 곱절은 큰 팔뚝에 파란 바위가 곳곳에 박혀있다. 새파란 혈관에서 피가 흐른다.
“‘C-02다’. 마석 가루를 혓바닥에 뿌린 모습입니다.”
턱이 세로로 갈라진 얼굴. 입에서 길죽한 혓바닥이 배꼽까지 나와 있다. 혓바닥은 채찍으로 써도 될 만큼 위협적이다. 이마에는 총알이 박힌 흔적이 있다.
“D-05다‘. 들개 괴수의 마석을 섭취한 모습입니다.”
온 몸에 털이 난 사람. 주둥이가 늑대처럼 튀어나왔다. 입가의 살가죽이 찢어져 근육이 보인다. 뾰족한 이빨이 입술을 너덜너덜하게 만들며 튀어나왔다.
“‘E-03가’ 케이스. 마석을 갈아 해파리 유전자와 결합시킨 액체를 팔뚝에 주사한 모습입니다.”
양쪽 손의 손가락을 따라 팔이 찢어졌다. 해파리의 촉수처럼 퍼졌다. 다섯 가닥의 촉수가 팔을 대신하고 있다. 촉수는 발목까지 닿을 정도로 길다.
나는 사진을 테이블 위에 거꾸로 덮었다,
그리고 치밀어오르는 구역질을 참으며 말을 씹어뱉었다.
“이, 미친......”
“비각성자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마석을 쑤셔 넣어서 강제로 각성자 비스무리하게 만드는 실험입니다.
연인산 도립공원 지하 벙커를 실험실로 쓰고 있었습니다. 마석을 인간의 몸속에 어떤 식으로 집어넣느냐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더군요.”
연인산 도립공원이라. 나는 침음성을 내뱉었다.
“......계엄사령부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군요.”
“의원님.”
알 없는 안경 너머, 감기자의 눈빛이 어둑한 방 안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을 시작했다.
“제가 천생이 문과라, 소설 쓰는 걸 참 좋아합니다.”
“.......”
“어찌 한 번 들어보시렵니까?”
침묵으로 수락을 대신했다.
감기자가 안경을 벗어 가슴 주머니에 끼웠다.
“이야기는, 국정원을 장악한 차재균 차관이 초능력자 특수부대를 창설하려 한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국가에 가장 충성스런 인물들을 초능력자로 부리고 싶었지요. 그게 누구겠습니까?”
“......블랙.”
“그렇지요. 블랙 요원들. 차재균 입장에서는 그들이 초능력자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 초능력자는 없었습니다. 각성자라는 게 막 튀어나오는 종류는 아니니까요.”
......소설이 예전에 차재균과 나누었던 대화와 비슷하다.
‘믿을만한 사람이 초능력자인지 테스트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중 초능력자는 없었다.’
차재균의 한탄에 내가 여기서 제시한 대안이 바로 ‘재단’이었다. 고아원을 만들고, 어린 아이들 중 각성자를 골라 양육하라는 것.
감기자가 말을 이었다.
“헌데, 서울 내부의 생존자들을 관찰한 결과, 각성자의 비율이 이상하리만치 높았던 겁니다. 여기서 차재균은 확신하게 되죠.
게이트와 초능력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게이트 근처에서 활동하는 사람, 마력에 자주 노출된 사람이 각성할 확률이 높다고.”
이 또한 차재균과 나누었던 이야기였다. 심지어 서울 내부의 생존자 집단을 구출하지 않고 있었던 것까지 말이다.
“그래서 차재균은 서울 내부 생존자들을 방관합니다. 일종의 실험용 생쥐처럼 쓴 거죠. 게이트 근처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어떻게 각성하는지 알기 위해서요.”
“그건 너무 무리한 추측 아닙니까?”
“소설에 증거가 필요합니까?”
“......그도 그렇군요.”
이 정도 와꾸의 소설이면 증거 따위 필요없다. 인터넷에 잘 풀리기만 해도 나라가 뒤집어지리라.
증거는 냄새 맡고 들러붙을 촉새들이 알아서 잘 찾아낼테니 말이다. 언론이든, 검찰이든.
감기자는 손가락 사이로 펜을 돌리며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줄줄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마력과 각성의 상관관계를 알고서, 초능력자 특수부대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대충 그 즈음에 저명한 생물학자들이 연인산 도립공원으로 불려갔습니다. 그리고 청송교도소가 텅 비었습니다.”
“......흉악범 대상으로 인체실험을 했다?”
“충성스러운 블랙 요원들에게 마석을 곧장 박아버릴 수는 없으니까요.”
감기자는 슬며시 사진 두 장을 내게 들이밀었다.
“이건 부산일보 친구에게 받은 겁니다. 지난 28일 새벽 3시 청송 진보면에서 찍힌 컨테이너 트럭.
그리고 이건 계엄사령부 인근 보급기지에 동일 차량이 들어오는 모습입니다. 이후로 수많은 차량이 연인산으로 향하더군요.”
“......”
“이때 압구정 사건이 발생합니다.”
“잠깐.”
나는 잠시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끊었다.
“그러면, 대체 언제부터 생체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겁니까?”
대답은 간결했다.
“'C-03다‘가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
“3번째 실험 3번째 시도의 3번째 실험체라는 뜻입니다.”
“......”
“‘F-01다’까지 있었습니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감기자가 곧장 설명을 이어갔다.
“나중에 알아보기론, 우리가 압구정에 고립됐을 당시 지자체와 여론을 선동해 의원님을 표적으로 삼았던 게 차재균이었다고 합니다.”
정치권의 힘이 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겠지. 국회의원들을 억류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강남역에서 지원군이 거의 없었던 것도 노림수였을까. 재단을 꿀꺽하려고?
감기자가 말을 잇는 바람에 생각이 끊겼다.
“하지만, 의원님은 새로운 영웅이 되셨고. 그와 동시에 양판석 의원님이 차재균을 협박해서 10인의 국회의원을 해방시켰습니다.”
“......뭐요?”
“그때 한승문 의원님이 언론에다가, 차재균이 압구정을 방치하고 있었다고 말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걸 빌미로 양판석 의원님이 차재균에게 협박을......”
이건 처음 듣는 소린데.
“......어, 으음. 당시 제가 양판석 의원님 대신 언론과 접촉한 브로커 역할을 맡았었습니다. 계엄사령부 인근 언론은 모두 장악당한 상황이라서......”
“12인 국회가 출범한 이유가, 양판석 의원님의 뒷공작 덕분이었다는 겁니까?”
“모르고 계셨습니까?”
나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멍한 눈으로 감기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당황스런 눈치로 말을 이어갔다.
“일단 이 부분은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지요. 중요한 건, 차재균이 이 시점에서 연구를 성공시켰다는 겁니다.”
“......허어.”
“부작용은 조금 있지만, 멀쩡한 사람을 그나마 나은 확률로 각성시킬 수 있는 약물이 개발되었습니다.”
허면, 이제 증거를 인멸할 차례였다.
“......실험체들을 전부 죽였겠군요.”
“여기서 그가 간과했던 사실이 있습니다.”
감기자는 다시 안경을 썼다. 냉철한 눈빛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누구나 죽기 직전엔 발악한다는 거죠.”
떼죽음 당하기 직전의 야매 각성자들이 단체로 폭주해서 풀려났다는 소리다.
그래서 계엄령이 선포된 것이었고.
나는 담담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지금,
차재균이 초능력자 특수부대 가지고 싶어해서.
국정원이 괴수 가지고 생체실험을 하는 바람에,
아주 강력하고, 불안정하고, 흉악한 동시에,
‘지성이 있는’
괴수들이 풀렸다는 거 아닙니까?”
소름끼치는 침묵이 이어졌다.
감기자는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제 소설은 좀 괜찮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이거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
“......어어, 음. 잘 팔릴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