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6 - 핵폭탄급 대사건 (4)
장마가 끝나고 태풍이 찾아왔다.
불타는 빌딩이 그나마 사그라든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강북의 모습이 슬프다. 거리를 떠도는 난민들, 이따금 들려오는 포성. 사람으로 가득 찬 도시가 점점 죽어가고 있다.
전투기 하나가 파공음을 쏟아내며 지나가고, 화약 내음과 함께 저어 멀리 계엄사령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암울한 전쟁터에 빗방울이 쏟아진다. 군인이 씌워주는 우산 아래로 내릴 무렵, 나는 굳은 표정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녹음기 하나 안주머니에 품고서.
* * *
양복쟁이 국방부 차관.
정치에 익숙한 군인.
스마트한 기업 임원처럼 생긴 터프가이.
재미없고 단조로운 전략가.
침착한 승부사.
시간에 쫓기며 사는 사람.
빠르고 단조로운 말투.
내가 본 차재균이란 인간은 대충 이러했다.
뭐하는 놈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는 소리다. 이것도 나름 성격이라면 성격이다.
허나, 나는 그의 성격을 알지언정, 알맹이를 알지 못했다.
새로운 군부의 독재자인가. 혹은 구국의 영웅인가.
양판석의 녹음파일을 확인한 차재균이 속을 알 수 없는 무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상당히, 흥미롭군요.”
“이미 알고 계시던 내용 아니셨습니까?”
그는 언제나와 같이 빠르고 담담하게 지껄였다.
“국정원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맺고는 있지만, 국회에 간섭하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해석 : 오홍홍 몰라용
이거 참 깜찍하게 구는군. 차재균은 눈을 끔뻑거리며 내게 자신의 연기력을 자랑했다.
“원옥분 의원을 권한대행으로 추대하겠다는 겁니까?”
“네, 그렇지요.”
“허면, 이걸 제게 가져오신 저의가...?”
해석 : 내가 의원들 호텔에 가두고, 권한대행 후보자들 강제로 사퇴시키고, 국회 근처에 국정원까지 풀어놓기는 했는데, 아무튼 나는 모르는 일이야.
나는 일부러 율무차를 길게 들이켰다.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1. 군부 차재균. 쎄다.
2. 국회 원옥분. 정통성이 있다.
3. 양판석. 너구리.
늘 그렇듯, 결단은 빨랐다.
원옥분을 지지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양판석의 밀명을 받아 차재균과 손을 잡는다.
탁, 텅 빈 종이컵을 강하게 내려놓았다.
“차관님은 정치가이십니까 군인이십니까?”
“......”
“의원들을 감금한 사이 군대를 장악하고, 권한대행 후보자를 사퇴시키고, 국회에 국정원을 풀어놓고, 이건 군인이 할 짓이 아닙니다. 확실히 말씀해주십시오.”
그는 별 일 아니라는 듯 평이한 어조로 되물었다.
“그건 왜 여쭈시는 겁니까?”
“전쟁이 아니라 정치를 하실 거라면, 기꺼이 함께할 마음이 있어서 여쭈는 겁니다! 헌데 이리 모호한 태도를 견지하시면 어떡합니까?”
해석 : 권력을 잡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나는 배를 까고 꼬리를 흔들었다.
어차피 국가 정상화가 되면 자연스레 군인들 힘이 빠지게 되어 있다. 나중에 삶아먹을 수 있는 사냥개라면 지금 목줄을 풀어도 상관이 없다.
차재균이 말했다.
“저보고 군인이냐고 물으셨습니까?"
"......"
"저는 한 번도 군인으로서의 본분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오묘한 말이다.
“제가 의원들을 가두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누구 하나 죽을 때마다 탄핵을 운운하며 기자들 앞에서 예능을 찍고 있었을 테고,
장관들을 사퇴시키지 않았더라면 총 한 번 안 잡아본 권한대행이 군권을 쥐었겠지요.”
니들이 하도 지랄할 게 뻔해서 일단 조졌다는 소리였다. 그는 피곤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초당 1.4명이 죽고 있습니다. 괴수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제가 내린 명령 때문에 죽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쿵, 그가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지금 주한 미국대사를 구하기 위해 특수부대를 보냈습니다. 미국 눈치가 보여서 자국민도 아닌 사람을 구하기 위해 특수부대를 할당한 겁니다.”
그는 옆에 있는 서류를 집어 이쪽으로 보였다.
“허나, 이게 알려지면 이런 작전은 앞으로 못 쓸 겁니다. 그러면 앞으로 주한미군과의 협력에 차질이 생길 것이고, 그래서 여기 언론사에 엠바고도 안 걸고 그냥 입을 꼬매 버렸습니다.”
그는 서류를 내려놓고 내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허나, 한의원님이 바깥에 나가 이를 공포하신다면 낭패를 빚겠지요.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 입을 막겠지요.”
“협박을 하든, 매수를 하든, 한의원님의 입을 막을 겁니다. 허면, 이건 전략입니까 정치입니까?”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나는 옅게 미소지으며 귀를 열었고, 차재균은 건조하게 말을 이었다.
“전쟁론이라는 책을 아십니까?"
"클라우제비츠요?"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워낙 영민하신 분이니 제게 공감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장관 감금이고, 권한대행 사퇴고,
그가 한 '정치질'이 모두 전쟁의 연장선이라는 이야기였다.
차재균은 내게 확인받듯 질문했다.
“의원님은 제가 장군으로 보이십니까 정치가로 보이십니까?”
정치와 전쟁이 다르지 않다. 나는 순수하게 괴수를 잡기 위해 정치질을 했다. 차재균은 그렇게 말했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허면 차관님은 권력에 관심이 없으신 겁니까?”
“지금 그 누구보다 권력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접니다.”
그는 서류에 다시 열중하며 입으로만 내게 말을 이어갔다.
“총 한 번 안 잡아본 권한대행이 헛짓거리를 할까봐. 표에 눈이 먼 정치꾼들이 군사행동에 간섭할까봐. 저는 이 순간에도 그들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차관님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괴수의 말살.”
“제가 한 손 보태도 되겠습니까?”
“그래서 부른 겁니다.”
대화가 물 흐르듯 이어졌다. 이미 서로의 의중을 확인한 상태다.
그나저나 ‘불렀다’ 라.
그래. 국회 근처에 국정원을 티나게 풀어놓은 건 역시 나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내가 이 정도의 파워를 가지고 있으니 나한테 합류하라고.
그가 드디어 내게 본색을 드러냈다.
"우리는 죽여도 죽여도 줄어들지 않는 적을 상대로 무한한 소모전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게이트를 닫을 방법도 없어요. 보다 더 '효율적인' 방식이 필요합니다."
내가 이미 ‘길드’라는 무력집단을 지니게 된 이상, 그는 애초부터 나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신분당선 탈출작전 때 한 발 늦은 지원군을 파견했던 게 나를 죽이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미 '길드'를 장악한 상태고, 그는 이제 나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차재균의 결단이 이어졌다.
“1급 기밀인가와 더불어, 관련분야 군정권을 드리겠습니다. 구체적 사항은 서류를 참고하시지요.”
젠장. 화끈하게 나오는군. 군인도 아닌 사람에게 국방부 창고를 열어줬다. 나는 살짝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잡아들었다.
“일종의 대민협력 차원에서 군무원들을 사용하셔도 됩니다. 최대한 ‘괴수피해복구재단’을 활성화시켜 주십시오.”
“허면, 길드가 경기도 남부에서 기동 타격대 역할을 수행하면 되겠습니까?”
“헬기, 의료품, 자금, 등. 필요하다면 일부 작전통제권까지 넘길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국민과 국가의 안전을 지켜주십시오.”
군 통수권자의 달콤한 제안이 들어왔다.
“......또, 국회 내부에서 정치적 쟁점에 관한 논쟁이 과열될 때, 가급적이면 국방부의 작전 시행에 차질이 없도록 우려해주셨으면 합니다.”
쌍놈새끼들이 군대 좀 못 건드리게 하랍신다. 나는 대충 12초 정도 고민하는 척을 하고서, 진중한 목소리로 엄숙히 입을 열었다.
“......갑작스레 막중한 역할을 맡겨주시니 감사하면서도 뭇내 부담스럽습니다. 힘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콜.
*
자세한 업무협약을 나누고 차관실을 나서는 길에 문득 뒤돌아 물었다.
“원옥분 의원이 권한대행을 맡는다는데, 썩 놀랍지는 않으신 모양입니다.”
해석 : 옥분이가 대통령될 거 알고 있었지?
의원들 잡아두고 있던 놈이 법무부 장관 풀어주는 것부터가 이상했다.
그러고 보면 원옥분은 야당 장관이다.
애초에 공화당 색깔이 옅은 사람이라 민주당 정부에서 협치 차원으로 앉혀놓은 사람이다. 진짜로 공화당 빠순이를 장관시켜놓으면 엿되니까.
그러니, 원옥분의 성향을 따지자면 결국 중립이다.
중립이라는 게 뭐냐. 타협을 잘한다는 소리다.
그러니.
“......썩 말이 통하는 분이시더군요.”
차재균과 원옥분이 진작에 손을 잡았다는 가정도, 썩 무리없는 추측이었다.
나는 피식 웃고서 차관실을 나섰다.
이게 참 웃기다.
겉으로는 우리끼리 뭉쳐서 으쌰으쌰하자고 난리를 치는데, 결국 따지고보면 물 밑에 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복마전伏魔殿
이게 이 바닥의 민낯이었다.
아군과 적의 구분이 없다. 배 속에 구렁이 수백마리 넣어놓은 너구리 새끼들이 각자 낄낄대며 악수를 나눈다.
눈치 없는 새끼만 가끔 물먹고 뒈진 다음, 다른 이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결국 양판석의 말이 옳다.
원칙이 없는 게 원칙이다.
적을 만들지 않는 게 좋다.
적이 생겼으면 바로 없애야 한다.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절름발이 하나가 미소지으며 어두운 복도 속으로 사라졌다.
*
초인종을 누르려 손을 뻗었다.
벌컥! 손가락에 벨에 닿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응냑!”
“......안녕하세요.”
“어, 어어? 피채원 학생!”
이상하다. 왜 천화란네 집에 피채원이 있을까.
녀석은 무표정으로 문을 열어놓고 안으로 돌아갔다. 천화란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어머! 한의원님!”
“아이고오! 오랜만입니다 천소장님!”
나는 보따리 하나를 먼저 들이밀었다.
“키위에 들어있는 엽산이 임산부한테 그리 좋답니다!”
“어머어머, 이게 뭐에요...!”
천화란은 나긋나긋하게 웃으며 보따리를 받아들었다. 슬슬 배가 불러온 게 보인다.
“그래서 한우를 사왔습니다!”
“어서들어오세요의원님!”
임산부고 뭐고 고기가 최고였다.
안에 있던 감기자와 감지윤이 빼꼼 모습을 드러냈다. 감기자는 갓난쟁이 아들을 둥기둥기 안고 있었다.
“어어! 한의원님! 어서오십쇼!”
“한우다! 한우!”
감지윤이 해맑게 염력으로 한우만 들고 거실로 도망쳤고, 감기자와 나는 현관에서 인사를 나눴다.
천화란은 연구소 딸린 대학병원 하나를 통째로 쓰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의 숙소는 VIP용 병실이다.
“이야아, 말이 vip용 병실이지, 이정도면 5성급 호텔 아닙니까?”
“재벌 회장들이나 쓰는 병실이니까요. 저희도 처음 들어왔을 때 많이 놀랐습니다. 아! 일단 들어오시죠.”
나는 힘겹게 의족에서 구두를 빼내며 물었다.
“그나저나 피채원 학생도 같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어차피 옆 병실을 내어주긴 했습니다만.”
“헤헤. 그냥 채원이도 저희랑 같이 살기로 했습니다.”
감지윤은 어느새 피채원의 얼굴에 코알라처럼 매달려 있었다. 염력이 있기에 가능한 기술이다.
앞이 보이지 않아 버둥거리는 피채원의 모습에서, 에일리언 유충에 잠식당한 사람이 연상되긴 했지만, 친하게 지낸다면 퍽 다행이었다.
피채원이 깜짝 놀라 감지윤을 떼어내었다. 감지윤은 이야앙 거리며 무중력 상태로 밀려나갔고, 피채원은 무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
나는 어수룩하게 미소 지었다. 착한 아저씨 코스프레다.
“!”
애가 홱 돌아 방으로 들어갔다.
......뭐지.
*
Korean Native Cattle.
Han-Woo.
韓牛.
우리는 이를 한우라고 부른다.
붉다 못해 선홍색으로 윤기나는 살점 사이로 새하얀 마블링이 아리따운 자태를 뽐낸다.
나는 그 반들거리는 살점을 집어, 불판 위에 천천히 내려놓았다.
치이이익ㅡ!
끔찍하게 매력적인 소리와 함께, 강한 고기향이 코끝을 휘어잡았다.
“어차피 마나를 다룰 수 있는 게 저 뿐이라 연구를 혼자해야 하더군요. 그나마 지윤이가 제가 못하는 부분을 도와주곤 했어요.”
소고기는 오래 구우면 안 된다. 육즙이 빠져나오기 전에 핏기 가시지 않은 살점을 입에 넣는다.
“마나 재배합으로 어떤 원소를 만들 수 있는지, 생체 세포까지도 연성할 수 있는지. 실제 물질과의 차이점은 있는지. 등등.”
어금니와 어금니 사이로 짙은 육즙이 배어나온다. 입 안에 산뜻한 육향肉香이 감미롭게 퍼졌다.
“글쎄 성분이랑 분자구조만 알아도 마나로 감기약을 만들 수 있더라고요. 그러면 실결합이 불가능한 분자조합으로 새로운 약품을 창조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요?”
초원이다.
혓바닥 위에 황소가 뛰놀고 있다. 한 입 오물거릴 때마다 살아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만드는 맛이다.
“어쩌면 생체 자연회복력을 극단적으로 가속시키는 약품이 나올지도 모르죠. 의원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맛있네요.”
“네?”
“예?”
“풉...!”
천화란과 내가 마주보며 얼빵한 표정을 짓자, 감기자가 밥풀 몇 개를 뿜고서 지껄였다.
“아니, 여보. 그거 나니까 들어주는 거지. 다른 사람들은 이해 못한다니까?”
“!”
천화란이 주먹을 꽉 쥐었다. 입술도 꽉 깨물었다.
“자기는 이과라 우리 문과들 심정 이해 못하는데. 우리는 막, 막, 그런 이야기 듣다보면 정신이 나가요! 재미가 없어!”
울컥! 천화란의 어깨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하자, 나는 신속히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향했다.
탁, 천화란이 수저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야. 문과놈아.
어, 어어?
반말?
여, 여보. 왜그래...?
내가 니보다 세 살이나 많아 임마!
부엌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흠칫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천화란이 감기자보다 세 살이나 많을 줄이야.
어떻게 그 나이에 그 얼굴이...? 나는 애써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냈다. 그리고 재빨리 안방으로 도망쳤다.
“얍.”
“크아아악!”
천장에 붙어있던 감지윤이 내 얼굴에 달라붙었다. 깜짝 놀랐다.
“갸아아아아악!”
나는 중심을 잃고 바닥에 넘어졌다. 물론 감지윤이 염력으로 받아준 덕분에 다치지는 않았다.
“......”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들고있던 피채원이 바닥에 엎어진 나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감지윤이 피채원 옆에 가서 찰싹 달라붙었다.
그들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마침 자리 하나가 남길래 나도 거기 앉았다.
“피채원 학생은 잘 지냈어요?”
“......”
소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격이 원래 조용한가. 아니면 상처받은 나머지 말이 없어진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애써 웃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내가 후견인 해준다고 그랬는데 자주 찾아오지도 못했네요. 미안합니다.”
“......”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살짝 맹한 표정이다. 넋이 나간 사람 같다고 해야 하나.
어쩌면 능력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조심스레 접근해야겠군.
아무튼 능력은 능력이고 후원은 후원이다. 나는 그녀를 위해 준비한 선물 하나를 꺼내들었다.
“초콜릿 좋아해요?”
“......아.”
피채원은 멍한 눈빛으로 내가 내민 선물상자를 바라보았다. 초콜릿 싫어하나.
먹기 싫으면, 먹게 만들어야지.
“이거 뻬레로 로쉐. 맛있는 건데......”
"......"
“30개에 치킨 한 마리 가격인데......”
“......”
“이거 힘들게 구해온 건데..... 안 먹을 거에요?”
피채원은 종잡을 수 없는 무표정으로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뭔가 눈빛이 묘하다.
공장 사장한테 떨이로 사온 거 들킨 건가. 그래. 미래시未來視 정도면 간파했을 수도 있다.
“......”
피채원이 문득 손을 뻗어 초콜릿 하나를 집어갔다. 그리고 까서 입에 넣었다.
“나두! 나두!”
피채원은 앙탈부리는 감지윤에게도 초콜릿 하나를 넣어주었다. 그리고 말없이 내게 고개를 꾸벅였다.
흐음. 아리송하다. 성격을 종잡을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차재균 하나로 족한데 말이다.
나는 뭔가 어색하게 입을 닫고 TV로 시선을 돌렸다. 의원들이 ‘괴수대응특별위원회’의 출범을 알리고 있었다.
- 지하국회에 있던 국회의원들이 ‘괴수대응특별위원회’의 설치를 공표했습니다. 북한의 침공을 의심해 신변을 숨기고 있었으나, 적의 정체가 지성체가 아님을 알고 세상에 나온 것으로 보여 집니다.
- .....이에 괴수대응 특별위원회의 설치를 공표합니다. 게이트, 초능력, 괴수, 등. 우리가 지금껏 겪지 못한 개념들에 대해 신속히 조치할 수 있도록-
- 일각에서는 12인 국회가 초법적 권한을 남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습니다만, 괴대특위 측에서는 빠른 사회 정상화를 목표로 노력하겠다는 발표를 내놓았습니다. 이상 KBS 뉴스 9......
괴대특위가 설치되었다. 물론 갑자기 법조개혁이네 뭐네 하면서 법안을 뜯어고치지는 않겠지.
우리가 지하에서 했던 말들이 한꺼번에 이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300명짜리 국회와 12명짜리 국회는 무게가 다른 법이니까.
아마 여론의 입맛에 맞게 살살 언론플레이를 하며 은근슬쩍 법안 개정이 진행될 것이다. 멍청한 양반들은 아니니 눈치껏 하겠지.
그나저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닌데.
피채원이랑 어떻게 친해질 수 있느냐가 문제다.
스물일곱이나 먹고 열일곱 살짜리 여자애한테 찐따를 붙기도 그렇고. 뭔가 듬직한 후견인으로서 자연스럽게 존경받을 수 있을만한 방법이 없을까.
피채원이 알고있는 정보가 술술 나오게 말이다.
선물공세를 하기에는 효과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무엇보다 내가 돈이 없다.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것 뿐인데, 그래도 인간적으로다가 커뮤니케이션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아, 맞다.
“등은 이제 좀 괜찮아요?”
피채원이 나 대신 화염을 뒤집어 썼었다. 아무리 속물이라도 감사인사는 전해야겠지.
“......네. 지윤이네 어머니가 도와주셔서...”
“다행이네요. 아무튼 그때는 정말 고마웠어요. 이렇게 말로만 할 게 아니라, 내가 부산에서 밥이라도 한 끼 사줘야하는 건데......”
강북과 아래쪽 지방을 이어주는 도로는 군부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수천만명이 다 아래로 내려가고 싶어하는 상황이라 도로가 난리도 아니다.
꾹. 꾹. 잠시 상념에 빠져있자 피채원이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무슨 일이에요?”
“아, 저기......”
- 소, 소, 속보입니다!
아나운서가 거하게 방송사고를 쳤다. 참, 나.
앵커면 좀 점잖게-
- 백두산에 핵폭탄이 터졌습니다!
EP 6
핵폭탄급 대사건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