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1화 (21/296)

EP 5 - 사냥꾼들 (5)

끼에에에엑ㅡ!!

불타는 늑대가 소리 질렀다.

괴수의 마지막 발악에 불꽃이 사방으로 튀긴다. 커다란 불꽃이 미쳐 날뛰는 것 같다.

헬멧 쓴 사내가 오토바이에서 풀쩍 뛰어 내렸다.

“......어어.”

사내는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여도연을 부축하던 감기자에게 물었다.

“거, 브라더는 이거 몰 줄 아나?”

“아, 그, 예...?”

갑작스런 질문에 감기자가 얼을 타는 사이,

늑대가 그의 등에 발톱을 휘둘렀다.

“아, 이런 개......”

공격을 정통으로 맞았지만 점퍼만 찢어졌을 뿐, 그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사내는 신경질적으로 맥주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새끼가!”

그는 발광하는 늑대에게 맥주병을 집어던졌다. 시큼한 기름냄새와 함께 늑대가 다시금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얌마! 똑바로 못 잡아!?”

“죄송해요오ㅡ!”

그가 하늘에 삿대질하며 소리치자, 어떤 여자가 아파트 창가에 튀어나와 사과했다.

불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울치는 불꽃이 괴수를 둥글게 감싸자, 괴수는 그 안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고 타들어갔다.

사내가 오토바이를 툭 툭 건드렸다.

“...이거 몰 줄 아시냐고.”

“아! 네! 압니다!”

“아가씨 상태는 ...피 쏟는 것 봐라. 뒤에 타.”

그의 지시에 따라 감기자와 여도연이 오토바이에 올랐다. 사내가 가죽점퍼 안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내 길을 안내했다.

“두 블록 직진. 우로 한 번, 좌로 두 번. 703동 지하주차장. 오케이?”

“아, 알겠습니다.”

“아가씨는, 그. 문지기한테 7층 할매한테 데려다달라고 하면 돼.”

감기자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오토바이가 사내가 지시한 방향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젠장......”

그는 방금 공격에 찢어진 가죽점퍼를 벗어 불타는 괴물에게 던졌다. 그리고 입에 문 담배를 불에 가져다 댔다.

괴수를 땔감으로 쓴 불이다. 흐린 서울 하늘 아래 고기냄새 퍼지는 가운데, 담배연기 살짝 아파트 사이로 피어올랐다.

“......음? 아, 거기 양복.”

그제서야 사내가 나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나랑 이야기 좀 하지.”

“요즘 양복입고 다니는 사람 보기 힘든데.”

중년은 담배연기와 함께 저벅저벅 걸어왔다.

“저 늑대새끼한테 얻어맞고 안 죽는 사람은 더 드물고 말이야.”

“......제 누납니다.”

“외부인이군.”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데이비드 김춘식.”

“......예?”

“한국이름 김춘식. 미국이름 데이비드 김. 꼴리는대로 불러.”

나는 이 중년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헬멧 속에 들어있는 이목구비는 분명.

“......서양인?”

“갑자기 양놈소리를 들으니까 기분이 묘한데.”

“아, 죄송합니다.”

“사실 양놈 맞아. 주한미군이라.”

“......아, 네. 저는 한승문이라고 합니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고, 그는 내 손을 굳게 잡고 한 번 흔들었다.

그리고 작게 턱짓하고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가며 열심히 절뚝거렸다. 데이비드 김이 담배를 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세상이 좆같아졌어. 사람 덜 된 새끼들이 사람이나 쏴죽이고 말이야. 아까 걔네들 봤지?”

“......그, 트럭에 타 있던 사람들 말입니까?”

“이 주변에서 하도 깽판을 치길래, 이쪽으로 유인해서 늑대밥으로 준 거야.”

살짝 소름끼치는 소리였다. 그가 나를 돌아보며 짧게 덧붙였다.

“그 뒤로 누가 따라올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나는 그에게 물었다.

“여기가 수천 명이 살아있다는 캠프입니까?”

“캠프랄 것 까지는 없고. 아파트에 고립된 사람들끼리 교류하다보니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들었지. 대충 1200?”

“대단하군요.”

“모르고 온 건가?”

그는 어느새 담배를 전부 빨아들이고서 바닥에 던졌다. 던지는 속도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담배는 바닥에 닿으면서 으스러졌다.

“거어, 청년은 뭐하는 사람인가? 요즘 양복쟁이는 보기가 힘든데.”

“아, 그. 정치합니다.”

“아아, 뭐, 시의원? 보좌관?”

외교가 시작됐다.

“국회의원 한승문입니다. 서울비상계엄사령부에서 왔습니다.”

*

“누굽니까?”

“귀한 손님. 아까 걔네는 어디로 갔지?”

“할매한테 치료받으러 갔는데요.”

“치료 끝나고 504호로 안내해.”

“네에.”

데이비드 김은 엄격한 목소리로 문지기에게 지시했으나, 문지기는 해맑게 웃으며 말꼬리를 늘렸다.

부하와 격의가 없는 타입이다. 나는 침착하게 질문을 던졌다.

“여기 최고 책임자이십니까?”

“대가리냐고?”

“예.”

“딱히 위계질서가 없는 그룹이기는 한데 굳이 따지자면 반쯤 그렇긴...... 아 몰라. 내가 보스야. 일단 올라가지.”

그는 나를 계단으로 안내했다. 마침 위에서 어떤 여자 하나가 내려오고 있었다.

단발머리 끝을 붉게 염색한 미인이다.

“춘식이 아재! 어, 그 분은...?”

그녀는 화들짝 놀라 내게 다가왔다.

“아, 아니, 다리...! 이걸 어쩜 좋아......!”

그녀가 어쩔 줄 모르며 요란을 떨었다. 데이비드 김이 진중하게 말을 덧붙였다.

“너 때문에 다친 거야.”

“지, 진짜요!?”

“아니.”

“야!”

그녀는 김춘식의 정강이를 힘껏 걷어찼으나,

“짜잇!”

괴상한 신음소리와 함께 발을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데이비드 김춘식이 자연스레 나를 부축하며 중얼거렸다.

“아, 계단 오르는 거 내가 도와줘도 되나?”

“그러면 저야 감사하죠.”

그가 내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집어넣었다. 나는 조심스레 계단을 한 칸 한 칸 올랐다.

“아! 반가워요. 저는 홍선아라고 합니다!”

주저앉았던 그녀가 종종거리며 뛰어와 내 손을 붙잡고 저 혼자 흔들었다. 악수 당했다.

“한승문입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한승문 씨! 몸은 좀 괜찮으세요?”

“아, 예. 덕분에...”

홍선아는 계단을 오르며 재잘대기 시작했다. 무뚝뚝해보이는 데이비드 김과는 딴판이었다.

“작전중에 저희가 주변을 못 살펴서 죄송해요. 아까 게이트 열린 거 보셨어요? 하늘이 흐려서 못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위에서 뭐가 막 쏟아지는 거임!”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질문을 계속했다.

“그나저나 혹시 이 근방에서 숨어계시던-”

데이비드 김이 대신 대답했다.

“정부 측 전령이야.”

“.....네?”

“정부에서 우리한테 보낸 사람이라고.”

“아.”

계단을 오르던 홍선아가 어색한 몸짓으로 정지했다.

“진짜요!?”

그리고 펄쩍 펄쩍 뛰었다.

“저, 정말 정부에서 오셨어요? 진짜! 진짜?”

“아, 네.”

“우리 이제 구출되는 거에요?”

“아마도요.”

“히야아!”

그녀는 몇 번 더 꺄악대더니 김춘식에게 물었다.

“춘식이 아재! 이거 다른 사람들한테 말해도 돼요!?”

“안 돼.”

“왜요!”

“이 양반 말도 들어봐야지.”

새로 온 양복쟁이가 정말 정부에서 온 게 맞나. 외부 세력 스파이는 아닌가. 등등.

아직 내가 거쳐야 할 검증들이 몇 가지 남아있었다. 그녀도 그제서야 그걸 알아챘는지, 몇 번 눈을 끔뻑이더니 배시시 미소지었다.

“일단 먹을 거 준비할게요!”

*

“이것도 좀 드셔보세요!”

“아, 네...”

“인스턴트 떡볶이에 참치마요 삼각김밥이랑 스틱치즈 비빈 건데, 암튼 맛있어요!”

홍선아는 생글생글 웃으며 내게 잡숴봐를 시전했다. 츄라이 츄라이 소리가 들려온다.

“504동 801호에 자취하던 친구가 알려준 비전 레시피인데, 암튼 존맛탱! 아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구나.”

그녀의 얼굴에서는 줄곧 빙글거리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살짝 차갑게 생긴 미인이 방실대니까 어색하기도 하다.

홍선아는 초롱초롱 눈빛을 빛내며 내게 질문했다.

“정말 정부에서 오신 건가요?”

“네. 경기도 북부의 계엄사령부에서 왔습니다.”

“다행이다......! 어떤 소식인가요! 구출?”

화염술사를 포섭하고 언론에 얼굴도장 박으러 온 것이였으나, 그건 절대로 말할 수 없는 이유였다.

강석호를 구출하고 고립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러 왔다고 말할 예정이었으나, 그 또한 지금은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말없이 미소지었다. 외줄타기하는 기분이다. 정신 빠짝 차려야지.

“아, 이건 조금 있다가 말해주신다고 했지......”

우리는 커다란 가정집에 단 둘이 앉아 치즈참치마요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김춘식이 간부들을 부르는 동안 대기하라고 한 까닭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데이비드 씨가 간부들을 불러온다고 하셨는데, 조직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 겁니까?”

“으움?”

떡볶이를 오물거리던 홍선아가 흔쾌히 대답했다.

“으음. 사냥팀장님들, 각 아파트 부녀회장님들, 경비아저씨, 의사 할머니, 백화점 매니저님. 뭐어, 여러 사람 계세요!”

구체적인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허나, 전투, 물자, 의료, 운영까지. 조직은 상당히 다원적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어쩌면 조잡스러운 거거나.

“그렇습니까?”

“근데 핵심은 역시 사냥팀이죠! 식량 조달이든, 인명 구조든, 다 각성자들이 맡아서 하거든요.”

“각성자라고 부릅니까?”

“네. 애초에 여기가 춘식이 아저씨가 이 근처 괴물들 다 때려잡고서 만든 조직이에요. 참고로 아저씨가 1팀장, 저는 2팀장입니다!”

대충 감이 잡힌다.

수평적인 조직이나 실질적인 수장은 데이비드 김. 눈앞의 홍선아라는 인물도 2팀장이라는 실권자였다.

나는 치즈참치마요떡볶이를 흥미롭게 지켜보며 한 입 떠먹었다. 아주 맛있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물과 불로 조리된 식품. 수도와 가스가 끊긴 지금에선 극도의 사치품일 수밖에 없었다.

“이거 어떻게 만드신 겁니까?”

“예?”

“되게 맛있네요. 수도랑 가스도 끊긴 마당에 입이 호강할 줄은 몰랐습니다.”

홍선아는 역시 흔쾌히 대답했다.

“물은 생수로 쓰죠! 패트병에 담긴 걸루다가 주워오면 의외로 꽤 많아요. 물론 간신히 버티는 정도지, 씻고 이까지 닦을 정도는 아니긴 하다만......”

그녀는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머리카락이 살짝 반질반질했다.

“그리고 불이야 뭐어, 이얍!”

홍선아의 손끝에서 촛불이 피어올랐다. 그녀가 방긋 미소지으며 불덩이를 내밀었다.

“짜잔!”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화염술사.”

“에이, 그렇게 거창하게 불러주실 필요는 없고요.”

나는 곧바로 목표를 설정했다.

“아뇨, TV에서 뵀습니다. 정말 인상적이더군요.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홍선아 씨.”

“왜 이러세요! 부담스럽게! ......헤헤.”

그녀는 쑥스럽다는 듯 히죽이며 떡볶이를 하나 집어먹었다. 나는 아이돌을 만난 팬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으, 건물만한 불기둥은 정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괴수를 일거에 쓸어버리는 모습이 정말...!”

“에이. 그렇게는 힘들죠!”

가까스로 입꼬리가 내려가려는 걸 막아냈다. 홍선아가 조곤조곤 설명했다.

“보통은 아까처럼 기름칠한 다음에 작은 불덩이들을 쏴요. 그게 더 효율적이라.”

데이비드 김이 맥주병으로 괴수를 맞힌 다음, 아파트 창가에서 작은 불덩이가 날아왔었다.

홍선아는 가슴을 펴고 의기양양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아! 저도 딱히 대단한 사람은-”

삑. 도어락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데이비드 김이 집으로 들어왔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였다.

나는 화염술사 건은 잠시 마음에 묻어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맞이했다.

“형님.......?”

“......석호야!”

나는 절뚝이며 달려가 석호에게 매달렸다.

“석호야.....!”

“혀, 형님이 여긴 왜, 왜 여기에......”

“내가 널 두고가면 안 되는 거였는데...!”

“아, 아니. 형님이. 대체...!”

“미안하다 석호야....!”

옥구슬 같은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나 좀 살려줘라 이놈아!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