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5 - 사냥꾼들 (4)
우리는 말없이 2층 창가 언저리에 둘러앉아, 창문으로 보이는 흉악한 광경을 감상했다.
하늘에 기괴한 것들이 날아다니고, 헬기들이 이리저리 미사일을 날리며 도주한다.
흐린 구름 사이로 이따금 폭발음이 들려온다. 말할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다. 주머니 속 군번줄 두 개가 너무나도 무겁다.
대기를 가르는 먹먹한 굉음을 맞으며, 우리는 묵묵히 창문 밖을 하염없이 바라볼 따름이었다.
* * *
여도연이 옥상 괴물 몸속에서 꺼낸 마석을 흡수하고서 손목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부스러기보단 멀쩡한 보석이 효과가 좋네.”
“...그래?”
“탄약통 여섯 개 비워보니까 슬슬 감이 와.”
여도연이 어디서 주워온 머그컵을 만지작거리더니 사과 으깨듯 부숴버렸다. 그리고 유리가루를 바닥에 털었다.
감기자가 가볍게 미소지으며 감탄했다.
“오, 그거 장난 아닌데요?”
“아......! 가, 감사합니다.”
여도연은 살짝 어색하게 대답했다.
나한테만 어디 밥그릇 뺏긴 멍뭉이처럼 구는 거지, 애가 근본적으로 숫기가 없어서 남들이랑은 말을 잘 못한다.
감기자는 여도연이 험악한 눈빛으로 말을 더듬자, 어떻게든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칭찬을 날렸다.
“어디 대회나가면 다 우승하시겠어요?”
잘하는 짓이었다.
“감사합니다.”
여도연은 작게 웃더니 입을 다물었다. 감기자는 여도연의 눈빛을 보더니 피곤하다며 소파에 늘어져 눈을 감았다.
그녀는 묵묵히 창문 밖을 쳐다보았다. 흐린 하늘 사이로 이따금 불빛이 번쩍이고 굉음이 울렸다.
그때 창가에 비친 여도연의 표정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으나 어쩐지 울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극성 캥거루맘 때문에 담배피고 다니던 시절.
지나가던 동네 할아버지한테 제대로 잡히고.
할배가 운영하던 복싱장에서 살다시피 하다가.
학업이냐 운동이냐로 엄마랑 대판 싸우고서.
가출하고 우리 집 쳐들어와서 내 침대 뺏고.
아마추어 대회에서 이빨도 깨졌지만.
스승이었던 복싱장 할배의 죽음으로 각성하고서.
기어코 가출 중에 전국대회 우승한 다음.
트로피 들고 집에 돌아가서 임플란트 박고.
나는 아직도 이 영화를 찍은 사람이 18살 여고생이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여도연은 그런 사람이었다.
적어도 노력이라는 걸 해봤고, 인생에 황금기 하나 정도는 만들었으며, 결코 타협하지 않고 영화 한 편 찍은 사람이다.
뒷이야기는 조금 암울했지만.
“후우......”
몸과 마음이 피곤해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너무 비인간적으로 굴어서 그런가.
그도 아니면 호랑이 아가리 면전이라 그런가.
유독 가족 생각이 많이 난다.
이모는 친딸보다 나를 더 좋아했다.
내가 공부를 더 잘해서였다. 정확히는 친자식에게 가진 기대를 나에게 풀었다. 내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이전부터.
유복한 집에서 엘리트 코스만 밟고 올라온 사람이라, 배울 만큼 배웠으면서 그런 구석이 살짝 답답한 사람이었다.
정작 본인도 생선가게하시던 이모부랑 결혼한 거 보면 완전 냉혈한은 아니드만. 참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여도연은 어릴 적부터 승문이 반만큼만 하라는 말을 귀에 달고 살았다. 그런데 그녀는 한 번도 그걸로 내게 화낸 적이 없다.
스트레스 풀려고 중학생 때 담배를 피워서 문제지. 할배 죽은 다음 끊었으니까 됐다. 아무튼.
나는 묵묵히 여러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두 개의 군번줄을 매만졌다.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무겁다. 그래도 머리는 차가워야 한다.
천천히 머리 속으로 우선순위를 다잡았다. 그리고 잠시 붙였던 눈을 떴다.
나는 내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을 했다.
“미안.”
“......응?”
잠들기 직전이었던 여도연이 눈을 떴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괜히 고집부리면서 목숨걸고 야바위짓해서 미-”
- 딱 !
여도연이 내 입술에 손가락을 튕겼다.
“이제 막 잘라니까 쓸데없는 소리를......”
나는 금방 고개를 떨구며 자는 척을 시작한 여도연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감상은 끝났다. 다시 정치인으로 돌아올 시간이다.
그래. 일단 살고 봐야지.
이게 다 살자고 하는 짓인데.
*
야근에 익숙했던 나는 자발적으로 불침번을 서며 4시간동안 이들을 재웠다. 밖이 조금 잠잠해지자 우리는 토의를 시작했다.
주제. 우리는 어떻게 어디로 튀어야 하는가.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말을 이어갔다.
“올림픽대로를 따라 한강변에 대형 아파트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그으......”
“현대아파트요? 신사동이랑 붙어있고.”
“예. 거기. 땅값 장난 아닌 곳. 압구정 사람들은 대부분 거기 삽니다. 인구밀도가 높아서 선거운동 필수코스였어요.”
대규모 주거단지다. 말 그대로 그곳에는 아파트 수십 개가 몰려있다. 심지어 압구정 초중고도 아파트 사이에 붙어있다.
아파트는 참 좋은 벙커가 된다.
대형 괴수는 들어오지도 못했으며,
소형 괴수는 입구에서 차단이 가능했고,
어지간한 괴수는 현관문 선에서 막는다.
물론 ‘어지간하지 않은’ 괴수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게 아파트라는 점이 가장 큰 메리트였다.
결정적으로, 같은 블록에 현대백화점이 존재했다.
“아마 그곳이 거점일 겁니다. 수천명의 물자를 구할만한 곳이 거기뿐이에요.”
감기자가 잽싸게 추측을 덧붙였다.
“그렇다면 괴수에게 대항할 역량이 있는 곳이겠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게이트가 서울 중심부에 쫙 퍼져있는데 압구정에 수천명이 살아있다? 괴수에게서 자기방어는 가능한 조직이라는 거다.
이미 우리가 그곳으로 향해야 한다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감기자가 천천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게이트가 열린 직후라 주변에 괴물들이 많습니다. 여기서 조금 기다리시는 건......?”
“차라리 괴수 몇 마리 더 잡아서 도연이 좀 키우고 가는 것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손잡으면 능력 같이-”
부르릉
“이거 저만 들었습니까?”
“......엔진.”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여도연이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열었다. 반대편 길목에서 사람 십수명 정도가 다급히 트럭에 오르고 있었다.
모두 소총으로 무장한 사복 차림이다.
무장한 민간인. 생존자. 압구정 캠프.
판단은 빨랐다. 토론 취소다.
“......지금?”
쫓아가야 한다. 우리는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우리는 황급히 밖으로 기어나왔다. 물론 쫓아가겠다는 심보로만 기어나온 건 아니었다.
“같이 가면 괴수들이 둘 중 하나만 쫓아오겠지요...!”
“그게 우리가 아니기를 빕니다.”
여도연이 가볍게 창문을 부숴 차문을 열었다. 그리고 옆으로 다가온 들개 한 마리의 대갈통을 발차기로 날려버렸다.
감기자가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거는동안, 나는 들개 시체에서 튀어나온 마석을 여도연에게 던졌다.
그녀는 날파리 쫓듯 작은 보석을 터치했고, 그건 곧장 빛이 되어 그녀에게 흡수되었다.
부르릉. 엔진 소리와 함께 감기자가 소리쳤다.
“타세요!”
나는 뒷좌석에 미리 타있던 여도연의 손을 잡고 차량 안으로 쏙 들어갔다.
“니는 벨트 매지 말고 누나 손이나 잡고 있어라.”
“박력 미쳤네.”
“올림픽대로 탑니까!?”
감기자가 엑셀을 밟으며 다급히 물었다. 나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거긴 자동차로 도로가 가득 찼을 겁니다. 주민센터 방향으로 가지요. 길은 제가 압니다.”
감기자는 백미러에 비친 소형 괴수들을 보고 식겁하며 힘껏 엑셀을 밟았다. 나는 차분히 중얼거리며 네비게이터 역할을 시작했다.
“여기서 영동타지 말고 좌회전.”
“CCTV 없으니까 중앙선 넘어도 되겠지요?”
“누가 국회의원한테 딱지를 뗍니까.”
“하!”
여도연이 앞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앞에!”
덜컹 !
으지직 !
뭘 밟았다. 차가 거칠게 흔들렸고, 우리는 차 시트에서 잠시 허공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어이쿠!”
“아프리카보단 도로 사정이 낫네요.”
재난영화에 나오는 으스러진 도로였지만, 감기자는 여유롭게 장애물들 사이로 속도를 내며 달렸다.
그는 살짝 백미러를 훔쳐봤다. 그걸 본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흉측하게 생긴 개새끼들이 무리지어 우리를 쫓아오고 있었다.
감기자가 씨익 미소지었다.
“뭐어, 뒤에서 뭐가 쫓아오긴 합니다만, 운전하다 총 맞을 걱정만 없으면 그나마 괜찮은 겁니다.”
“대체 어떤 삶을 사신 겁니까?”
감기자는 목 오른쪽에 있는 길쭉한 흉터를 손가락으로 스윽 그었다.
“이거 운전하다 총알 스쳐서 생긴 겁니다.”
“아, 예. 여기 신한은행 사거리에서 우회전이요응으아악!”
쾅! 차 앞으로 개시끼 한 마리가 뛰어들었다. 앞유리에 금이 갔다.
감기자가 퍽 치고 나가긴 했지만, 들개놈 얼굴에 눈알 4개만 덜 달려있었어도 내가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니는 임마 치대지 말고 누나 손이나 잡고 있어.”
반박하고 싶었지만 뒤쪽으로 따라오는 들개들이 대여섯마리가 넘어가는 걸 확인한 바람에, 마른침을 삼키며 여도연의 손을 꼬옥 잡았다.
거친 드리프트로 코너를 돈 감기자가 말했다.
“아, 예! 주거단지 진입!"
차량이 압구정 2동 대규모 주거단지에 진입했다.
압구정 아파트 단지. 아파트 공화국의 상징이었던 이곳은 피륙으로 칠해진 유령도시가 되었다. 곳곳에 사람이었던 것들이 널려있다.
“제발, 여기 있어야 하는데......!”
내 중얼거림에 감기자가 불안한 기색으로 말을 덧붙였다.
“여긴 사람들은 많아도 거점으로 쓸만한 곳은 아닙니다. 백화점 쪽으로 가볼까요?”
“여기서 신사동까지 가려면-”
“어어! 앞에! 앞!”
여도연이 다급히 가리킨 곳에는, 아까 봤던 생존자들의 트럭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타이어 갈리는 소리와 함께 감기자가 즉각 후진을 시작했다.
ㅡ! ㅡㅡ!!
흉악한 울음소리.
무겁고, 울린다.
끔찍한 그로울링과 함께 아파트 코너에서 괴수가 등장했다.
늑대.
늑대 비슷하게 생긴 개과 짐승이다.
문제는 목 중간에 기형 안면부가 하나 더 달려있었고, 툭 튀어나온 송곳니 사이로 검은 혓바닥이 질질 흘러내렸다.
검게 빛나는 눈. 화상입은 것 같은 피부. 반쯤 녹은 얼굴. 기형적으로 꺾인 다리관절, 군데군데 튀어나온 뼈. 회색 털.
늑대 키가 아파트 3층에 닿는다면, 길이는 대체 얼마나 크겠는가.
순간적으로 얼어버릴 정도로 끔찍한 생물이었다. 녀석은 서서히 목을 울리며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ㅡ!!!
끔찍한 포효가 들려왔다.
놈의 아가리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영화관 맨 앞줄에서 보는 공포영화와도 같다.
본능적인 두려움이 치밀었다.
몸이 굳는다.
녀석은 고양이가 쥐를 잡듯 가볍게 뛰어올라 생존자들의 차량을 뭉개버렸다. 으스러진 차량 틈으로 누군가의 팔이 애절히 튀어나와 있다.
감기자는 급박한 드리프트로 순식간에 유턴하고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우리를 쫓아오던 작은 개들도 늑대에게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지축을 울리는 발걸음이 들린다. 우리를 쫓아오고 있다.
“씨이팔...!”
뒤를 확인하던 여도연이 거칠게 욕설을 내뱉으며 내 손을 꽉 붙잡았다.
쿵. 쿵. 쿵. 괴수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이미 감기자는 엑셀을 가장 깊게 밟고 있다.
“따라잡힌다...!”
여도연의 말과 동시에
괴수의 발걸음이 멈췄다.
정확히는, 괴수가 우리를 잡으려 몸을 던졌다.
쾅! 여도연이 발차기로 뒷문을 부쉈다.
그리고 나를 껴안고 밖으로 몸을 던졌다.
콰지직ㅡ!
차량 뒷부분이 으스러지고, 나는 여도연의 품에 안긴 채 아스팔트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끼이이익-! 자동차 헛바퀴 도는 소리가 들린다. 괴수의 길쭉한 팔이 자동차 뒷 창문을 깨고 들어가 있다.
괴수의 발톱이 후크처럼 차량에 걸렸다. 미칠 듯이 돌아가던 차량 바퀴가 아스팔트에 부딪히며 째질듯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괴수는 간신히 차량을 붙잡고 누워있었으나, 괴수의 길쭉한 목에 달린 얼굴이 우리를 보고 히죽 웃었다.
퉤엣. 무언가 날아온다. 여도연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나를 껴안은 상태로 힘껏 굴렀다.
치익-!
우리가 있던 바닥이 연기를 내뿜으며 녹아내렸다. 나는 그녀의 손을 붙잡은 상태로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기자가 차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괴수를 향해 발포했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모양인지, 괴수가 얼굴을 가리고 살짝 물러섰다.
허나, 괴수가 감기자에게 앞발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발톱이 감기자의 배에
- 푸욱 !
여도연이 달려가 감기자를 몸으로 감쌌다.
등에 길쭉한 상처가 생겼다. 하얀 셔츠가 찢어지고, 금방 온 몸이 피로 물들었다.
“흐아아아악ㅡ!”
생전 처음 들어보는 여도연의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괴수의 흉성이 점차 커지며, 괴수는 다시금 그들을 직시하며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여기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사령부에서 초능력자 전체를 장악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나는, 정작 혼자서 능력도 못 쓰는 장애인에 불과했다.
아주, 지독한 무력감을 느낀다.
- 탕 !
그리고 나는 안주머니에 있던 권총으로 괴수의 얼굴을 맞추었다.
눈을 맞추지는 못했지만, 생에 처음으로 쏴 본 것 치고는 잘 맞춘 것 같다.
반동이 생각보다 너무 큰 나머지 흠칫했지만, 나는 담담하게 괴수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누이가 제발 1초라도 더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간절하게 총을 겨누고 괴수에게 절뚝이며 다가갔다.
괴수가 뒤로 물러서 태세를 정비했다. 그리고 나를 직시하며 앞발을 들었다.
부아아아앙!
저 멀리서 오토바이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접근했다.
누군가 폭주족처럼 한 손으로 하늘을 향해 소총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조준했다.
타다다당! 탕! 타당!
총성이 사방에 울린다. 헬멧을 쓴 운전자가 한 손으로 소총을 연사하기 시작했다.
탄창 하나를 비우자마자 그는 소총을 버리고, 허리춤에 달린 맥주병 하나를 괴수에게 던졌다.
쨍그랑! 괴수의 얼굴이 축축하게 젖었다.
직후에 아파트 창문에서 작은 불덩이가 날아왔다.
ㅡ! ㅡㅡ!!
세상이 뒤집히는 소리에 나는 귀를 붙잡고 자리에 쓰러졌다. 얼굴에 불이 붙은 괴수가 발광하며 사방을 부수기 시작했다.
오토바이가 멈췄다.
가죽점퍼의 사나이가 헬멧 쉴드를 까고 담배를 물었다.
“쒸이, 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