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짤뚱한 다리가 대롱대롱 움직였다.
난 발을 달랑거리며 의자 아래를 바라보았다.
발이 닿지 않는다.
땅바닥이 닿기는커녕, 내 키로는 못 내려갈 높이였다.
아, 물론 이 의자는 평범한 의자로써 아무런 문제도 없다.
‘내가 애기일 뿐이지!’
둥그런 눈을 끔뻑거리며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인 단풍잎 같은 손을 보았다.
네 살 애기답게 아주 오동통하고 뽀얗다.
그런 두 손으로 소중히 들고 온 주머니를 꼭 쥐고 슬쩍 위를 올려다보았다.
‘히익!’
그러곤 재빨리 눈을 내렸다.
얼마나 빨리 내렸는지 내 통통한 볼살이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둥둥 흔들리는 듯했다.
내가 이러는 이유는 앞에 앉아 있는 남자 때문이었다.
저 잘생긴, 아주 무서운 표정의 미남자.
신이 백금을 아주 얇게 뽑아 한없이 정성 들여 만든 것 같은 새하얀 은발.
단정하지만 날카로운 이목구비에 서늘한 눈매.
완벽한 조형을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외모임에도 까칠함이 느껴지는 탓에 더욱 차갑고 무섭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힐끔거리며 보게 될 정도의 미남이었다.
다시 슬그머니 고개를 올리자 겨울바람처럼 냉혹한 남자의 짙은 붉은 눈이 날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낮게 울리는 목소리도 아주 (무섭고) 멋진 이 사람은 바로 슬라데이체 대공가의 주인.
슬라데이체 대공이었다.
소설 속 내로라하는 문제들은 이 가문과 연관이 있을 정도의 최종 보스.
“내가 다시 한번 찾아오면 죽인다고 했던 것 같은데.”
“히끅-”
결국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퉁퉁한 볼이 떨리며 딸꾹질이 나왔다.
흐잉…….
방금 날 보는 대공의 붉은 눈에 이채가 돈 것 같았다.
‘어린아이한테 죽이니, 마니 라니, 이 냉혹한 자야!’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작은 손바닥을 옷에 대충 문지르며 답했다.
“대, 대곤밈(대공님).”
남자가 여유롭게 팔짱을 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내 눈엔 그 모습이 어디 한 번 더 지껄여 보라는 의미로 보였다.
정말 무섭다.
‘후- 후-’
하지만 말하자. 목이 뎅겅 하고 잘리고, 슉 날아가기 전에 말하는 거야.
짧은 손가락을 이리저리 엮으며 슬쩍슬쩍 입을 열었다.
“대, 대곤밈, 웅디네 해욥 비미리 이쏘요. 차자쬬(대, 대공님, 운디네 해협에 비밀이 있어요. 찾았죠)?”
“……네가 내가 거기서 뭘 찾았는지 어떻게 알지?”
먹힐 줄 알았어.
생각해 보니 쫄 것도 없다. 나는 저 사람과 협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알고 있는 게 많은걸.
“나, 나나 그고 알고 이써요(나, 나나는 그거 알고 있어요)!”
그 생각으로 자그마한 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반짝였다.
“나나가 도아주 쑤 있는데(나나가 도와줄 수 있는데)…….”
내 말에 대공의 눈이 희번뜩 빛났다.
“히끅-”
무서워! 아, 안 되겠어. 오늘은 여기서 후퇴다.
“이, 이고(이거)-”
난 울먹거리며 가지고 온 주머니를 책상 위로 슬그머니 밀었다.
“내무리에요(뇌물이에요)…….”
악당에게는 뇌물이 잘 먹힌다고 해서 내가 아주 큰맘 먹고 가져왔다 이 말이야.
이깟 걸로는 안 먹힌다고 뭐라고 할까 봐서 얼른 의자에서 뛰어내렸다.
“응춍 바드세여(은총 받으세요)!”
배꼽 인사를 하는 것과 동시에 뛰어나가는 놀라운 스킬을 시전했다.
그래야 무서움에 내 두 눈에 그렁그렁 매달린 눈물을 못 볼 거 아니야.
‘내가 아끼는 뇌물까지 줬으니까…….’
이렇게 당신이 원하는 걸 많이 알고 있다고 티도 냈으니까. 당신만은 나 죽이면 안 돼! 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