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이잉- 철컹!
감옥 내부에서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감옥 안에서 나나가 활기차게 외쳤다.
“제가 구해드릴 수 있어요!”
나나의 신성력이 신전 사람들을 묶고 있던 결계를 부수기 위해서 움직였다.
감옥 근처까지 여유롭게 움직이던 리미에의 표정이 설핏 굳었다.
‘내 예상보다…….’
결계가 신성력의 힘에 부딪혀 휘청거리는 게 느껴졌다.
“복구.”
리미에가 능숙하게 마기를 움직여 감옥에 있는 결계를 안정시켰다.
갑작스러운 신성력으로 크게 흔들리던 결계가 다시 제 모습을 되찾았다.
리미에가 감옥 문을 열고 들어가 나나에게 우아하게 인사했다.
“지금 남의 신전에서 무슨 짓을 하는 것이지요?”
감옥 안에 있던 나나가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버, 벌써-”
“이미 진작부터 와 도착해 있었답니다. 다만 당신이 무슨 행동을 할지 지켜보았을 뿐이에요.”
리미에는 안타깝다는 듯 선량한 미소를 지으며 나나에게 걸어갔다.
‘일행이던 릭이나 마족이 보이지 않는다.’
이 여자를 버리고 갔든가, 마수와 싸우고 있는 게 틀림없다.
‘봉인구에 오래 갇혀 있던 데다 마기를 빼놓았으니 마수를 상대로 멀쩡하지는 못할 거야.’
물론 그 릭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잘나 봐야 인간은 인간.’
마족의 힘으로 강화시킨 마수의 상대가 될 리 없다.
“이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나 보죠?”
리미에가 노란 눈을 번뜩이며 나나에게 한 발자국 다가갔다.
“어서 도망치게!”
감옥에 갇혀 있던 노사제가 나나에게 다가가는 리미에를 보며 소리쳤다.
“리미에와 최대한 같은 공간에 있어서는 안 돼! 그러면 힘을 모두 빼앗기게 될 걸세!”
“그게 무슨…….”
나나가 당황스러운 듯 몸을 떨었다.
“이미 늦었어요.”
이 감옥은 리미에의 마기로 이루어져 있다.
신관들의 생명력과 신성력을 빨아들이던 결계가 새로운 먹잇감을 발견하고 기뻐 날뛰었다.
“꺄악!”
벽을 비롯해 사방에서 뻗어 나온 검붉은 기운이 나나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나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내, 내 신성력이…….”
“그러게 왜 남의 공간에 묻지도 않고 함부로 들어온 거예요. 심지어 신전 주인 몰래 멋대로 마족까지 풀어주고요.”
결계가 나나의 신성력을 빨아들였다.
‘양이 상당하다 싶더니, 예상보다 훨씬 뛰어난 양인걸.’
리미에는 마왕의 봉인을 깰 제물로 신성력과 생명력을 모으고 있었다.
이 정도로 순도 높은 신성력이라면, 마왕의 부활을 앞당길 수 있는 수준이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뉘우치고 제게 협조한다면 당신에게 자비를 베풀어드릴게요.”
리미에가 나나를 위로하려는 것처럼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 신전에 온 목적이 뭐죠?”
“저, 저희는 우연히 이 신전에 떨어진 것뿐-”
“거짓말하지 마.”
나나의 금안이 흔들렸다. 리미에가 무표정한 얼굴로 일갈했다.
“제가 금안을 알아보지도 못할 줄 알았나요?”
“그, 그건……!”
“잘 선택해요. 신성력은 곧 바닥날 거고, 그다음은 당신 생명력일 테니까요.”
감옥 안에 갇혀 있던 노사제가 절망하며 외쳤다.
“리미에!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이냐?”
노사제의 주름진 눈가로 후회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마왕의 손을 잡아서는 안 돼. 너는 지금 속고 있는 게야.”
“비올라 사제님은 가만히 계세요.”
“얼핏 생각하기로 네 생각은 옳을지도 모른다. 하나 전부 틀렸다. 네 능력과 축복은 모두 주신께서 내려주신 것. 신의 판단을 네 멋대로 해석하지 마라.”
리미에의 얼굴에 짜증이 올랐다.
“제가 뭘 잘못했다는 거지요?”
그 순간 노사제의 몸 위로 검은 기운이 용솟음쳤다. 노사제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전 여전히 주신의 뜻을 받아 세상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다만 큰 뜻을 이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을 감내하는 것뿐이고요.”
“리, 리미에…….”
“저라고 마기를 받아들이는 게 쉬웠겠어요? 아주 무섭고 힘들었답니다. 혹여 잘못될까 봐. 모두에게 돌을 맞을까 봐.”
리미에는 슬픈 듯 두 눈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저는 그 모든 어려움과 두려움을 견디고 세상을 구하기로 결심했어요. 단순히 주신을 믿고 악을 처단하는 것으로는 안 돼요.”
고운 목소리는 신실하고 경건한 분위기마저 풍겼다.
“저는 악의 힘을 빌려 악을 소탕하고, 비올라 사제님처럼 무능한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 거예요.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 결과를 보고 나시면 아무 말 못 하게 되실 거예요.”
그때 가만히 있던 나나가 금안을 반짝이며 픽 웃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무엇이 우습나요?”
“아, 리미에 당신 태도가 웃겨서요.”
나나는 결계에 사로잡혀 신성력을 빼앗기는 와중에도 리미에가 우습다는 것처럼 대놓고 키득거렸다.
“왜 큰 뜻을 위해 희생을 치른다면서 그 희생에 당신의 희생은 없죠?”
“잘 알지도 못하는 일에 함부로 말 얹지 마세요.”
리미에의 목소리에 은근한 노기가 떠올랐다.
“제가 세상을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고 있는데요. 이게 다 저만을 위해서 하는 줄 알아요?”
“그러면?”
“제 온 인생을 바쳐 희생해도 세상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영혼마저 바쳐가며 헌신하기 위해 그러는 거예요.”
리미에의 얼굴을 본 나나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부터였구나, 모든 사람을 아래로 보던 건.”
“도대체 그게 무슨-”
“넌 틀렸어.”
나나가 리미에를 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네가 희생한다고 하는 소리는 다 개소리야. 넌 세상을 구한답시고 네 이득만 취하고, 네 것은 조금도 희생하지 않으니까.”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망발을-”
“내가 누구냐고?”
그 순간, 나나의 신성력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던 결계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신성력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신성력을 빼앗기는 건 오랜만이라서 조금 힘들었지만 그래도 익숙한 일이라 할 만했네.”
검붉은색이던 신성력이 점점 오로라색으로 물들어갔다.
‘내 통제력이 전부 사라져 가고 있어……?’
쿠우웅-
거대한 진동이 들렸다.
마수가 있는 숲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붕괴였다.
‘내 마수들이-’
자리에서 당당히 일어난 나나가 리미에에게 자신만만하게 웃어보였다.
“난 네 다음 대 성녀야. 이 정도면 자격이 충분하지?”
그 순간, 마기와 신성력의 통제력을 잃자 리미에의 내부가 진탕이 되었다.
우욱-
리미에가 붉은 피를 토하며 비틀거렸다.
“다, 다음 대 성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