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8화 (128/172)

데뷔가 내일모레까지 다가오자,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바빠졌다.

심지어 나는 내 데뷔에 맞춰서 사업 홍보까지 할 예정이라 더 정신없었다.

그래서 카밀라가 나를 대신해 일을 처리하고 결과만 얘기해 주었다.

“공녀님, 이번 새로 드레스 사업에 남성복 액세서리 한정판 물량 전부 준비해 두었습니다.”

“화장품 공장에 생겼던 그 전염병은 어떻게 됐어?”

“공녀님의 조치로 더 이상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 좀 보십시오.”

나는 카밀라가 내민 서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근 영지에서 다른 전염병의 조짐이 보인다고?”

“예. 워낙 이상해서 대신관에게 연락을 해봤지만, 연락이 닿지 않더군요.”

“아, 대신관은 지금 정신없을 거야.”

내 바람과 다르게 깨어나신 교황님의 예후는 좋지 않았다.

‘의식을 자주 잃으신다. 제대로 말을 못 하실 때도 있고.’

‘심각한 병에 걸리신 건가?’

‘모르겠다. 나이 때문일 수도 있으시다는데…… 아무튼 깨어나신 것만으로 다행이라 봐야 할지.’

대신관 역시 교황님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는지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일단 전염병 일은 우리가 알아서 조사해 보자. 아니면 내가 그믐달 길드에 의뢰해 볼게.”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번에 물어보신 슬라데이체 공자님들의 싸움 말입니다.”

카밀라의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휘어졌다.

“공녀님의 걱정과 달리 정말 큰 싸움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로?”

얼마 전 정보 길드장과 거래를 가장한 데이트를 즐기고 온 날. 집안이 난리가 나 있었다.

‘둘이 싸웠어? 왜?’

‘별일 아니야. 사소한 일로 좀 다퉜어.’

‘그래, 도토리. 우리도 가끔 서로 격해질 때가 있어.’

평소라면 자기편을 들어달라고 바로 연락했을 오빠들이라 무척 걱정됐다.

“카밀라가 말할 정도면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니란 건데…… 혹시 무슨 일인지 몰라?”

“죄송합니다. 저에게도 말씀해 주시진 않았습니다. 본격적으로 캐볼까요?”

“아냐, 됐어.”

오빠들이 걱정되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게까지 캐내는 건, 너무 지나친 일 같았다.

“그럼 데뷔 준비는 이걸로 끝! 카밀라 고생 많았어!”

나는 데뷔 날 입을 드레스를 확인한 뒤 카밀라를 돌려보냈다.

창밖을 보자 벌써 하늘이 컴컴해져 있었다.

나는 창문을 열고 턱을 괸 채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이제 진짜 데뷔하네.’

설레는 마음 반, 걱정되는 마음 반이었다.

‘정보 길드장도 돌아왔는데.’

동시에 사라졌던 두 사람 중 하나가 돌아오니 유난히 칼릭스 생각이 많이 났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소피아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공녀님. 급한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이 시간에?”

평범한 손님이라면 소피아의 표정이 저렇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분이신데?”

“그것이…….”

그때 소피아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해, 나나.”

소피아의 뒤로 나타난 남자가 후드티를 벗었다. 훤칠한 금발 아래 자색 눈동자가 빛나는 남자.

황태자 에스테반이었다.

“워낙 급한 일인데다 비밀리에 너한테 전달해야 할 사안이라 직접 오게 되었어.”

에스테반이 곤란한 듯 눈동자를 굴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아니에요, 전하. 그렇게 급한 일이라면 어쩔 수 없지요.”

아버지나 쥬테페가 있었다면 집안이 한바탕 난리가 났겠지만, 다행히 다들 일이 많아서 집을 비우던 차였다.

“소피아, 차 좀 부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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