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태자 칼릭스는 여자를 보며 까칠하게 물었다.
“누구지?”
“그보다 본인 몸 상태부터 확인해 보는 게 먼저 아닐까?”
여자는 칼릭스를 향해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였다.
칼릭스가 눈썹을 찌푸리며 뻐근한 몸 상태를 확인했다.
‘몸은 멀쩡해.’
갈수록 어둠이 걷히며 주위가 환해졌다.
울창한 나무가 늘어져 있는 숲, 여자의 너머로 웬 동굴이 보였다.
두리번거리는 칼릭스를 보며, 여자가 픽 웃었다.
“몸은 멀쩡한 모양이네.”
“여기는 어딘가?”
“어허. 어른한테 반말이 뭐야.”
“……반말은 그쪽에서 먼저 했을 텐데?”
유폐되었어도 칼릭스는 황족이었다. 거기다 태어나자마자 황궁에 갇히기까지 해서 웬만하면 윗사람을 만나 존대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도대체 이 여자의 정체는 뭐지?’
어쩐지 난감해하는 칼릭스의 반응을 보며 여자가 귀엽다는 듯 웃었다.
‘웃는 얼굴이 무척 익숙한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목구비도 칼릭스가 아주 잘 아는 누군가를 닮은 것 같았다.
‘나나와 관련된 사람인가?’
나나 생각이 들자, 칼릭스는 저도 모르게 걱정부터 들었다.
‘많이 울고 있으려나.’
솔직히 칼릭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조금 고약한 행동이긴 했다. 특히 나나처럼 상냥하고 착한 아이라면.
‘그래도 날 잊지는 않겠지.’
나나가 우는 건 마음 아팠지만, 이번 일로 평생 그 애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을 거란 생각에 조금 만족스럽기도 했다.
그때 앞의 여자가 칼릭스의 어깨를 탁 짚었다.
“무슨 생각해?”
칼릭스가 까칠하게 손을 튕겼다.
“함부로 만지지 마라.”
“흐음. 뭘 믿고 그렇게 까칠하게 나오는 거야? 내가 널 죽일 수도 있는데.”
“그러시든지.”
“아, 미안, 미안. 너무 심각해 보여서 기분 좀 풀어주고 싶었어.”
웃다 못해 눈가에 물기마저 어린 여자가 눈가를 닦았다.
“내 이름은 마리엘 슬라데이체야. 여기는 시공간의 틈이고.”
“마리엘 슬라데이체?”
그건…… 슬라데이체 대공비의 이름일 텐데.
‘어째서 이렇게 나나를 닮았지?’
그때 칼릭스의 의문을 짐작하기라도 한 듯 마리엘이 눈을 새초롬하게 떴다.
“저주에 갇혀 죽은 줄 알았던 네가 왜 여기에 온 줄 아니?”
“그건 모르겠군요.”
“말을 높였네?”
“……슬라데이체 대공비면 폐태자보다 신분이 높으니.”
뼛속같이 황족의 모습에 마리엘이 다시 한번 배를 잡고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가 여기에 와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어. 일단 네가 저주를 이겼기 때문이고.”
순간 마리엘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씁쓸해졌다.
“두 번째는 네게 저주를 건 사람이 나이기 때문이야.”
“…….”
“내가 원망스럽니?”
칼릭스는 물끄러미 마리엘을 바라봤다.
“나나 때문이었습니까?”
“……그래. 네가 가진 저주는 사실 나나가 태어날 때부터 받았던 저주야.”
“…….”
“난 나나를 위해서 너한테 저주를 옮겼어. 나나가 아니었다면, 너는 저주받지 않았겠지.”
칼릭스는 저주를 받았다는 명분으로 폐위되었다.
‘황태자로서의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이건가?’
하지만 칼릭스는 관심없었다.
“그래서, 제가 저주를 가져가서 나나는 편해졌습니까?”
“응?”
“제가 저주를 짊어져서 그 애가 그렇게 웃을 수 있었다면 상관없습니다.”
칼릭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표정으로 마리엘에게 답했다.
“내가 가져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고마워.”
마리엘은 칼릭스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칼릭스, 너는 언제나 같은 선택을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