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화 (91/172)

“음냐…….”

껌벅거리며 눈을 떴다.

언제 이렇게 졸고 있던 거람.

눈가를 비비면서 일어나는데 내 몸에서 무언가 툭 하고 떨어졌다.

재킷이었다.

“응?”

“깼어?”

나른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앞을 보았다.

아벨이 내가 끄적인 종이를 흔들며 웃고 있었다.

‘저걸 어느새!’

아니, 생각해 보니 내가 자고 있었지.

난 부끄러움에 양 볼을 만지작거렸다.

“그, 저…… 틀릴 수도 있는데…… 어디서 본 수식 같아가지고-”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빙의하기 전 공부했던 내용 같아서 풀어본 것이다.

너무 옛날 기억이라서 틀릴 수 있지만.

아벨은 그런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내 동생은 똑똑하구나.”

입가를 벌리고 사르르 웃는 모습에 난 조금 놀랐다.

물론 지금까지 계속 미소를 짓고 있긴 했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

음. 만난 지 얼마 안 됐으면서 그걸 판단할 수 있을 리는 없지만, 왠지 그런 생각이 드는걸.

‘그래도.’

칭찬받았다.

기쁜 마음에 배시시 웃었다. 도움이 되길 바랐는데, 생각처럼 된 거 같아서.

나를 내려다보는 아벨을 흘긋 보았다.

궁금한 점이 있었다.

“저 아벨 님은 대공비님을 따라 마법사가 된 거예요?”

쥬테페와 벨리알과 달리 아벨은 대공비님과 오래 있었겠지?

대공성을 나간 이유도 대공비님 때문이라고 했으니까.

가만히 있었으면 차기 대공이 되었을 아벨이 굳이 마법사가 된 이유가 대공비님 때문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때 아벨이 툭 말했다.

“아벨.”

“네?”

“아벨 님이 아니라 아벨이라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벨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여상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걸 수도 있고. 아닌 걸 수도 있고.”

하지만 아벨은 뭉뚱그려 대답했다.

저렇게 말하는데 캐물을 순 없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언젠가 더 친해지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궁금하지만 참아야지!’

그 생각으로 입을 꾹 다무는데 아벨이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니랑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겠네.”

아니, 이 모습에서요?!

그렇게 예쁘신 분도 궁금한 점이 생기면 입을 꾹 다무는 버릇이 있었단 말이야?

정말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죄짓는 기분이다.

“……대공비님 너무 아름다우시던데.”

“레이디도 충분히 아름다워.”

아벨은 내 손을 들어 가볍게 입을 맞췄다.

날 올려다보는 아벨의 붉은 눈동자는 대공님의 서늘함과도, 쥬테페의 활기와도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

“먼저 갈래? 여길 정리하고 따라갈게.”

마지막까지 다정하게 나에게 말한 아벨이 ‘아’ 하더니 눈을 예쁘게 휘며 웃었다.

“대공성에서 처리할 일은 레이디의 도움이 없어도 되니까. 잠깐 나 혼자 어디 좀 갔다 올게.”

대공성에서 처리할 일?

의문이 들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일단 끄덕였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방해하지만 않으면 된 거겠지.

‘뭔가, 근사한 사람이네.’

얘기만 들었을 땐 벨리알만큼이나 엄청 무례하고 난폭한 사람일 줄 알았는데.

‘엄청 멋있는 어른 같아.’

갑자기 들어온 나를 적대하지도 않고, 어떤 면에선 슬라데이체 가족들보다 더 편히 대공비님 얘기를 해줬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몇 번 보지도 않은 그가 벌써 조금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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