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인처럼 얼굴의 반이나 가득 채운 검은 저주 때문에 그렇지, 폐태자는 굉장히 잘생긴 편이었다.
‘참, 이렇게 보고 있을 때가 아니지!’
저 바다 같은 눈동자를 보다 보면, 묘하게 빠져드는 것 같다니까.
“아무거나 말하면 되잖아요.”
“저번에 가져왔던 크림 브륄레?”
막 크림 브륄레를 꺼내다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알았지?’
폐태자는 온종일 궁에 갇혀 지내는 것치고, 눈치가 빨랐다.
‘은근 모르는 것도 없고.’
하지만 오늘 내가 준비한 건 크림 브륄레만이 아니다.
“다, 다른 것도 있어요!”
“그 초코 쿠키?”
“땡!”
“초코 스쿱 쿠키겠네.”
자랑스럽게 초코 스쿱 쿠키를 꺼내던 손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떴다.
폐태자가 불만스럽게 물었다.
“왜.”
“전하, 속마음이라도 읽는 거 아니죠?”
“네가 간식 가져온 게 한두 번이냐. 다 네가 좋아하는 걸로 가져오면서.”
찔끔 놀라서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그동안 기왕 같이 먹을 거 내가 가장 좋아할 간식들로 가져오긴 했다.
“뭘 줘도 좋다면서요.”
“그러니 나도 네가 가져올 간식이야 뻔히 꿸 수밖에.”
폐태자는 눈짓으로 그동안 내가 가지고 왔던 다른 잡동사니를 가리켰다.
“그래도 앞으로 저런 물건들은 그만 가져와.”
폐태자 궁을 꾸미는 것에 더해서, 나는 선물처럼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곤 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이러다 내 방이 아니라 네 방인 줄 알겠어.”
“에이, 물건은 있으면 좋아요. 또 막상 쓰려고 하면 얼마나 필요한데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위에 올려진 컵을 꺼냈다. 그리고 거기에 가지고 온 차를 따랐다.
“봐요. 있으니까 바로 따라 마실 수 있고 좋잖아요.”
“저 꽃은?”
“아이 참, 꽃들이 있으니 전하의 방에 생기가 돌잖아요.”
“그러면 뜬금없는 저 토끼 컵은 뭔데?”
“제 전용 컵이죠.”
저 토끼 컵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 탁월한 사업 수완으로 이뤄낸 기적 같은 존재였다.
‘토끼 쫑쫑이 콜라보 머그컵!’
마시멜로 카페가 성공하면서, 토끼 쫑쫑이 출판사와 콜라보할 수 있었다.
나는 아주 사랑스럽게 토끼 머그컵을 만지작거렸다.
‘이거 만드느라 진짜 힘들었지.’
토끼 쫑쫑이의 특징인 다른 토끼보다 크고 귀여운 귀.
일반 머그컵처럼 그려져 있는 걸로는 쫑쫑이의 매력을 다 살릴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컵에서 토끼 귀가 톡 튀어나와 있는 아주 귀여운 디자인을 고안했다.
물론 고안과 생산은 달라서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샥 등 뒤로 내 최애 토끼 쫑쫑이 컵을 숨겼다.
“이거 버리면 안 돼요. 제가 가장 아끼는 거란 말이에요.”
“안 버려.”
“약속했어요.”
난 헤헤 웃으며 간식을 들고 그의 곁에 앉았다.
폐태자가 익숙한 듯 쿠키를 주워 먹었다.
“근데 이 스쿱 쿠키, 저번보다 더 맛있는 것 같다?”
“그쵸? 묘한 맛이-”
폐태자가 그런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문을 열어둔 창가에서 가을 특유의 쌀쌀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이 내려왔다.
그렇게 다음 날, 다다음 날도.
폐태자의 말에도 그의 궁에는 점점 내 물건으로 가득 채워졌다.
잠깐 낮잠 잘 때 필요한 전용 담요, 장난치다가 흘려서 갈아입을 때 필요한 옷 같은 것들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