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의 서늘한 보라색 눈동자가 나를 뜯어먹을 듯 샅샅이 살폈다.
“……저번보다 더 말랐고.”
독화처럼 차가운 황후의 미모는 소문대로의 잔혹성을 떠오르게 했다.
황후가 되자마자 저를 반대한 정적들을 모두 숙청해 버린 황후.
황태자에게 걸림돌이 될 세력은 온갖 암수로 없애 버린 여인.
“돌아가는 길에 황궁의 약초원에 일러 네게 줄 약초를 슬라데이체로 보내게 하마.”
“감사함미다, 폐하.”
“어린 나이에 생긴 병은 커서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건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야.”
하지만 황후는 정쟁에서 희생당한 자신의 유모를 위해 3일간 상복을 입고 장례를 지키기도 했다.
한마디로, 황후는 권력을 탐하더라도 제 사람 하나는 끝내주게 잘 챙겨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오늘 널 부른 데엔, 네게 부탁할 게 있기 때문이다.”
“무엇임미까, 폐하?”
“넌 제국의 지워진 황족에 대해 아느냐?”
내가 눈을 크게 떴다.
황후가 제 앞에서 폐태자에 대해 떠든 시녀를 매질해 죽인 건 아주 유명한 일화였다.
“저, 저눈…….”
“편히 대답해도 좋다. 내가 먼저 꺼낸 이야기이니,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문책하지 않겠다.”
“폐, 폐태자 저하를 말씀하시는 게 마즈심미까?”
“그래. 그 폐태자.”
황후가 피처럼 붉은 입술을 달싹였다.
“이제부터 황후의 이름으로 널 폐태자의 놀이 친구로 넣고자 한다.”
놀이 친구요?!
“폐태자를 만나보겠느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폐태자의 놀이 친구라니!’
세간엔 폐태자가 어떤 인물인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전생에선 저주받아 폐위당한 후 조용히 지냈고, 성인이 되자마자 갑작스레 사라졌다는 것만 빼고.
‘마왕 때문에 정신없어서 알아볼 여유도 없었고.’
그래도 그렇지! 자기 정적인 황자의 놀이 친구로 날 보내다니!
‘사실 내가 점수를 못 딴 건가?’
황후가 내 표정을 보고 정정했다.
“물론 폐태자와 진짜 친구가 되라 보내는 것은 아니다.”
“그로타묜…….”
“폐태자의 친구라는 명목으로 붙어서, 내 명령을 수행해 주길 바라는 거지.”
스파이잖아요!
놀이 친구로 보낸다고 했을 때보다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폐, 폐하. 전 그로케 어려운 명령을 수행하기엔…….”
“나도 안다. 넌 참으로 착하고 선량한 아이지. 네가 폐태자를 만난다 하여도 해를 끼칠 명을 수행하지 못하리란 건, 짐작하고 있었다.”
황후가 딱 잘라서 말했다.
‘그렇다면 뭘 바라는 거지?’
“폐태자 궁에 내 사람이 들어가는 걸로 족하다.”
황후는 천천히 폐태자 궁의 상황에 대해 설명해 줬다.
저주로 인해서 봉인된 폐태자 궁.
그것 때문에 폐태자 궁을 출입하기 매우 어려웠다.
‘……황태자를 미워하는 황후 때문인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현재 폐태자 궁에는 의사와 사제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난 슬라데이체 영애인 동시에 정식 사제였다.
“구치만 황후 폐하, 다른 귀족 출신 사제도 이찌 안 나요?”
“내가 들여보내려던 사제는 황제 폐하의 손에 처리되었단다.”
황후의 보라색 눈동자가 빤히 날 담았다.
“그리고 넌, 어린 나이에다 널 놀이 친구라는 명목을 붙여 보낼 수 있는 사람이지.”
황후는 나 외의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황후 정도 되는 사람이, 그런 조건에 맞는 사제를 못 구할 리 없었다.
“제가 황후 폐하를 배신하 쑤도 이쨔나요.”
나는 예리한 빛을 발하는 보라색 눈을 마주하며 또박또박 말했다.
그러자 황후가 피식 붉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다면 사람을 잘못 본 내 책임이겠지.”
“그, 그로케……?”
“이건 널 내 사람이라 생각해서 하는 부탁이다.”
명령이 아닌 부탁.
황후는 우아하게 손을 뻗어 내 뺨을 간질이듯 문질렀다.
“걱정이 된다면 거절해도 좋다. 그 어떤 문제도 일어나지 않을 거다.”
“나나, 할래요!”
나는 활짝 손을 들며 말했다.
황후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듯 긴 속눈썹을 떨었다.
“이게 무슨 짓인지는 알고 하느냐?”
“그치만 황후 폐하께 도움대는 일이쟈나요.”
난 해맑게 꺄르르 웃었다.
“황후 폐하, 나나에게 위험한 일 안 시킴미다.”
“너처럼 작은 아이에게 이런 일을 시켜도 되는지 모르겠구나.”
황후는 고개를 기울여 나와 시선을 맞췄다.
“내가 네게 부탁하고 싶은 건, 폐태자에 대한 정기 보고다. 대단할 걸 알아올 필요는 없다. 그곳에 가서 네가 본 것들을 말해주기만 하면 돼.”
‘내가 황후의 사람이 되어서 그런가?’
어쩐지 황후는 세간에서 말하던 것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나나 잘하 쑤 이씀미다.”
“그래도 늘 조심하거라.”
한없이 우아하던 황후가 이를 까득 갈았다.
“그 짐승의 자식은-”
비틀리는 붉은 입술.
잠깐 떠올린 것만으로도 뿜어져 나오는 살의.
“-그 무엇보다 끔찍한 자이니.”
폐태자를 떠올리는 황후의 보라색 눈동자가 증오를 담고 번뜩였다.
등줄기에 오싹, 식은땀이 흘렀다.
‘이거, 줄을 잘 타야겠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