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신들은 내 시험지를 들고 분노를 하며 의회 측에 따지기 시작했다.
“저희 측도 모르는 일입니다.”
“바로 전날에 시험지를 바꾸고도 모를 수가 있단 말입니까?”
“성인도 풀기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시험이라고 낸 것입니까!”
그러며 가신이 쾅 소리와 함께 시험지를 내려쳤다.
시험은 과하게 어려웠다.
솔직히 내가 봐도 어려운 문제뿐이었다.
지금까지 풀리지 못한 고대 술식이며 정책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의회 측도 자신들은 모르는 이야기라며 손을 내젓고 있었다.
그들 역시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험지를 도중에 바꾸는 건 저희로서도 일례가 없던 일이오.”
“그럼 담당자가 누구란 말입니까.”
“그건…….”
사람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그 끝에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부의회장이 있었다.
가신들은 분노한 얼굴로 부의회장을 보았다.
“부의회장!”
“이건 너무 하지 않습니까!”
“무어가 말입니까.”
“이 시험 말입니다!”
가신들은 기가 찬다는 얼굴로 부의회장에게 비난의 화살을 꽂았다.
“당신이 공녀님을 마음에 안 들어 한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잘못되었습니다!”
“제가 공녀님을 마음에 안 들어한다는 억측은 어디서 나온 것이며, 이 방식이 잘못됐다는 건 무슨 말입니까?”
부의회장이 어이가 없다는 듯 픽 웃었다.
“시험은 진행될 것입니다. 4차 시험은 의회에서 멈추지 않는 한 그렇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게 규칙입니다.”
사람들은 분노했지만 곧 입을 닫았다.
시험은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시험이 중단됐다는 선례는 없었으니까.
이 엄격한 규율은 대공조차도 막을 수가 없었다.
부의회장이 독단적으로 시험을 진행시키려 하자 의회원들은 부의회장을 설득하려 했다.
“부의회장. 이건 너무 과한 처사요.”
“시험을 멈추시오. 이건 제정신이 아니오.”
“아니요, 시험을 멈출 수는 없소. 규칙에 따르시오. 안 그렇다면 의회의 규칙을 거역한다는 뜻으로 알겠소.”
다들 끙 소리를 내며 물러갔다. 부의회장은 자신뿐만 아니라 대공의 권위까지 내세웠다.
부의회장이 만족스럽게 입매를 끌어 올렸다.
“현재 내게 거역할 수 있는 자는 없어 보이는군. 의회의 권위에 따라 시험을 멈추지 않겠다.”
지금 의회에서 부의회장이 가장 높은 지위다. 그러니 바로 맞서긴 어렵겠지.
하지만.
‘멈출 수 있거든?’
오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니까.
난 부의회장을 보며 싱긋 웃었다.
“그롬 으회에서 몸추면 몸추겠네(그럼 의회에서 멈추면 멈추겠네)?”
부의회장은 계략이 가득한 얼굴로 웃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공녀님.”
말귀를 못 알아챈 모양인데.
‘당신보다 높은 직위가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되지.’
그 순간.
뚜벅.
워커 소리가 복도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고 단정한 제복 차림의 여성이 등장했다.
분노한 얼굴의 의회장이었다.
의회장은 모두가 얼음이 되어버린 시험장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휘날리는 붉은 망토. 절도 있는 걸음걸이.
모두가 의회장 카밀라를 바라보았다.
카밀라는 내 앞까지 다가와서 시험지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단번에 시험지를 찢어버렸다.
“의회장 카밀라 브로딘의 이름으로 말하지. 4차 시험은 여기서 중지다.”
거대한 돔 안이 웅웅 울릴 정도로 웅장한 목소리였다.
다들 가만히 있는 가운데 부의회장이 다급하게 뛰쳐나왔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부의회장은 부들거리는 입꼬리를 애써 올리며 말했다.
“시험은 중지할 수 없습니다. 의회장님께서 직접 바로잡으신 규칙 아니십니까?”
“규칙이라, 그렇지.”
카밀라가 차가운 눈으로 부의회장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부의회장도 잘 알겠군. 규칙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 중지된 시험은 다시 치면 되겠지, 이분이라면 당연히 통과하실 거고.”
그 말에 당황은 했지만, 가만히 있었다. 의회장의 뜻이 있겠지.
카밀라가 부의회장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 얼굴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여기서 밝혀라.”
“무엇을 말입니까?”
“밝히면 용서하겠다.”
“무엇을 말입니까, 누님?”
부의회장의 뻔뻔한 태도에 카밀라는 결국 고개를 숙인 채 한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의회장의 권한으로, 당장 상정해야 할 긴급한 공식 안건이 있다.”
그리고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12년 전. 내 딸을 죽인 범인이 이곳에 있다.”
사람들이 단번에 술렁거렸다.
살해. 그 무거운 단어에 모두가 입을 막았다.
부의회장의 눈이 마구 흔들렸다.
부의회장은 어떻게든 의회장의 입을 막기 위해서 두 팔을 벌리며 한 발자국 다가갔다.
“의회장님, 그건 따로 의회를 열어서…….”
“안 된다. 여기에 모든 사람이 모였으니 이곳에서 해야 해.”
“그렇다 하여도 그건 너무 사적인…….”
“사적이지 않아!”
카밀라가 결국 책상을 쾅 하고 내려쳤다.
카밀라는 이를 아득, 갈며 배신감 어린 눈으로 부의회장을 바라보았다.
“내 딸은 누구보다 뛰어났다. 다음 부의회장 후보로 거론될 만큼.”
“누님…….”
“밝히면…… 용서하겠다고 했지. 그런데 넌 기회를 놓쳤어.”
카밀라는 괴로운 얼굴로 영상석을 책상에 올려놓고 작동시켰다.
부의회장이 영상석을 보고 희게 질렸다.
영상석이 가동되었다.
-내가 조카를 죽였다. 그래서 뭐?
부의회장의 목소리가 돔을 웅웅 울렸다.
추악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살해를 설토하는 모습이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었다.
카밀라는 그런 부의회장 앞으로 다가섰다.
부의회장은 영상석에서 흘러나오는 제 모습을 보며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카밀라는 부의회장을 보며 가라앉은 눈으로 물었다.
“내가…… 그렇게 미웠느냐.”
“…….”
“나를 미워하는 건 상관없다. 그래도…… 그래도 내 딸은! 내 딸은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베르카드!”
“누님이 뭘 압니까!”
부의회장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고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했다.
“누님이 밉습니다. 그래요. 왜 저한테 부의회장이라는 자리를 줬습니까? 차라리 모자란 저를 그냥 무시하시지!”
베르카드가 고개를 치켜들고 카밀라에게 악을 썼다.
“어차피 뺏길 자리인데! 왜 저한테!”
짝-!
그 순간 베르카드의 얼굴이 휙 돌아갔다. 카밀라가 부의회장의 뺨을 때린 것이다.
차분한 그녀와 달리 베르카드는 놀란 눈으로 자신의 뺨을 감쌌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천대를 받아본 듯이.
“하.”
하지만 이내 웃었다.
“그래도 누님은 절 못 버리십니다. 혈육은 이제 저밖에 남지 않았습니까.”
“…….”
“누님은 그런 사람이지 않습니까. 제가 그것도 모르고 이런 짓을-!”
그 순간 의장이 무언가를 부의회장 얼굴 위로 흩뿌렸다. 수많은 서류였다.
“넌 틀렸어.”
카밀라가 마치 정점에 군림한 사자 같은 얼굴로 말했다.
“난 널 봐줄 생각이 없거든.”
부의회장은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들어 올렸다.
“네 말대로, 규칙을 따라.”
그의 비리가 낱낱이 적혀 있는 서류들이었다.
카밀라는 등을 돌렸다.
“끌고 가.”
철컥, 기사들의 갑주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부의회장의 팔이 들렸다.
그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발길질을 하며 다급하게 외쳤다.
“누님! 누님! 부모님께서-”
카밀라는 끝까지 뒤돌아보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부의회장은 마침내 끌려 나가고 쾅 문이 닫혔다.
카밀라는 떨리는 입술로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내 앞에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소중한 4차 시험을 엉망으로 만들어 죄송합니다. 공녀님.”
“……괜찮아.”
“……제 딸의 죽음이 석연찮았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혈육이 관계있다는 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었습니다.”
카밀라는 그 말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눈엔 여러 가지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제 손으로 혈육을 결국 저버렸다는 슬픔과 딸의 원한을 갚았다는 기쁨.
“제 실비아의 원한을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카밀라는 곧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말에 고맙지만 동시에 슬펐다.
주먹을 쥔 의회장의 손을 잡고 마주 웃었다.
“갠차나. 이제 끝나써.”
안 웃어도 돼.
그런 뜻을 내포하고 있는 의미로.
카밀라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날 꽉 끌어안았다.
“실비아…….”
그렇게 말하며.
난 의회장의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눈앞에 퀘스트 창이 떴다.
[퀘스트 완료!]
[의회장의 딸의 죽음을 밝혀내고 부의회장을 몰아냈습니다.]
[신앙심 +30이 주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