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39/172)

쥬테페의 시선이 그 여자애를 향했다.

그러자 그 여자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긋 웃으며 치마를 넓게 펼쳐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라리나 소렌블이에요.”

“두 번째로 뵙는군요.”

쥬테페는 왠지 달가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천사 같은 미소를 지으며 응대를 해주었다.

쥬테페의 다정한 대답에 탐욕스럽게 눈을 빛낸 라리나가 서둘러 말을 붙였다.

“티파티 이후 짧게 무도회를 여신다고 하는데, 저희도 춤 한 번은 출 수 있다더라고요. 그때 저와 마지막 춤을 춰주실 수 있으실까요?”

“죄송합니다. 안타깝게도 티파티가 끝나면 돌아갈 예정이라서요.”

정말 정중하고 다정한 거절이었다.

보통은 이러면 실례했다고 말을 거두거나, 다음을 이야기하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라리나는 갑자기 나를 노려보았다.

“왜죠?”

마치 그게 내 탓이라는 듯이.

‘난 네 살인데.’

나보다 네다섯 살이나 많은 쥬테페를 사이에 둔 방해물이 되기엔 너무 어리지 않나요.

“저번에도 그렇게 말씀하시고 돌아가시지 않으셨나요, 만약에 동생분 때문에 그렇다면 먼저 보내주시고 저랑…….”

그 말에 난 눈을 찌푸렸다.

저 언니가? 선 넘네.

난 입을 열었다.

“그곤 시레인데(그건 실례인데).”

앗. 나도 모르게 말이 먼저 나갔잖아. 조금 더 천천히 말할 생각이었는데…….

라리나가 날 노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어쩔 수 없지, 생각하며 무릎을 살짝 굽혀 인사를 했다.

“레디 소렌브(레이디 소렌블).”

그리고 최대한 또박또박 말을 하려 애를 썼다.

“곤자니미 애두러 거졸하쎠는데도 그리 말하는 곤 예법에 어긋나지 아늘까요. 저희는 다음 티파티(공자님이 에둘러 거절하셨는데도 그리 말하는 건 예법에 어긋나지 않을까요. 저희는 다음 티파티)-”

하지만 라리나는 그런 내 말을 끊고 들어왔다.

“여동생분이신 건 아시지만, 이건 저와 쥬테페 님의 대화입니다만.”

턱을 치켜들며 말하는 라리나의 표정에는 ‘감히 네가 나를 이길 수 있어?’ 하는 당당함이 깃들어 있었다.

난 여기서부터 벌써 머리가 아팠다.

‘봐봐.’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고 있었다.

평민 출신 사제에서 갑자기 귀족 영애가 된 나와 본투비 귀족 영애와의 기 싸움.

이건 사교계에서 아주 재밌는 눈요깃거리였다.

난 리미에가 부러웠지만, 이런 기 싸움 때문에 사교계 하나만큼은 전혀 부럽지 않았다.

라리나가 당당한 얼굴로 고개를 숙여서 나에게 말했다.

“아직 예법을 덜 배워서 모르시니 알려드리죠. 불순물이 가라앉아 깨끗한 물이 되었다 해도 진흙 물은 결국 진흙 물이죠, 개울물이 아니랍니다.”

결국 자신은 순수한 귀족이고 난 그냥 평민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의 얼굴이 나를 향했다. 여기서 내가 눈물을 흘리거나 당황할 거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난 오히려 웃었다. 편했기 때문이다.

‘일곱 살 여자애라서 좋네.’

저렇게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고.

“레디 소렌브.”

나의 부름에 라리나가 얘기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눈 금안의 아이. 교육언을 통해 대신전에 갈 몸이어씀미다(저는 금안의 아이. 교육원을 통해 대신전에 갈 몸이었습니다).”

“그래서?”

“금안의 사제눈 대신전 사제 중에서도 특별함미다. 귀족분들이라 하여도 함부로 대하시 쑤 엄지요(금안의 사제는 대신전 사제 중에서도 특별합니다. 귀족분들이라 하여도 함부로 대하실 수 없지요).”

약간의 허풍이 섞였지만, 허를 찔렸는지 라리나가 조금 당황했다.

귀족가의 자제 라리나는 내 허풍을 눈치챌 만큼 나이가 많지 않다.

난 라리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아무도 들을 수 없도록 작게 속삭였다.

“제가 당신처럼 행동하길 바라심미까.”

내 무표정에 당황한 듯, 라리나의 눈이 커졌다.

“너…….”

바로 떨어져서 다시 빙긋 웃었다.

“저눈 그리 무모하지 안슴미다. 이고세는 이고스 예의와 봄절이 이찌요(저는 그리 무모하지 않습니다. 이곳에는 이곳의 예의와 범절이 있지요).”

가슴에 손을 가져 대었다.

신전의 격을 깎지 않는 동시에 사교계를 존중한다. 내 말에 사람들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나에게 시비를 거는 이는 라리나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예법을 아는 척하지 말라는 겁니다! 어디서 겉핥기로 배워서 아는 척을 하는 겁니까!”

아까의 나의 표정을 본 라리나는 믿을 만한 구석이 생겼다는 듯 결국 자신의 오만함을 드러내 버렸다.

난 그걸 기다렸다.

“그 말인즉슨.”

고귀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겉핥기로 배운 아이의 예법을 인정했다는 말인가?”

티파티를 주관한 마르셀라 대부인이었다.

대부인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부채를 한번 손바닥에 착 내려쳤다.

“대, 대부인님…….”

라리나가 당황한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그, 그것이 아니라. 저는 그저 이 아이의 행동이…….”

“전 이해할 수 없군요. 레이디 소렌블.”

마르셀라 대부인은 부채를 뺨에 가져다 대었다.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라리나를 세세하게 훑었다.

“아무리 봐도 이곳에 예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사람은 당신인데 말입니다.”

그 말에 라리나의 눈이 충격을 받은 듯 흔들렸다.

라리나가 주위를 훑어보았다. 모두가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몇몇은 기분 나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기도 했다.

그녀의 편이었던 친구들도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라리나는 완전히 편을 잃었다.

그리고 일순 장내가 술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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