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29/172)

“이게 얼마짜린지 네가 알면 뭐가 달라지겠어? 괜히 귀찮게 하지 말고 저리 가라.”

“너 같은 애가 근처에 꼬이면 격 떨어져서 팔 물건도 못 판다고.”

둘은 나를 앞에다 두고 서로서로 말을 건네며 나를 비웃었다.

살짝 주눅 들었지만 어깨를 펴려고 노력했다.

“져눈 스라데이체에서 와씀-”

“그래. 그 금안의 사제 말이다. 너가 그 아이인 걸 우리가 모를 것 같으냐?”

“대공이 뭣 모르고 데려간 걸 신전 사람들 전부 알고 있다. 거기다 그건 둘째 치고, 넌 고아에 입양아 주제에 이 비싼 걸 탐내는 거냐?”

“그래. 얼마인 줄은 아느냐? 무려 1억 벨이다.”

1억…… 벨?

가격에 놀랄 새도 없었다. 내 얼굴을 본 두 사람이 ‘그럼 그렇지’ 하며 나에게 시비를 걸었기 때문이다.

“신전의 손님에도 품격은 있다. 사제 중에서도 너는 하급이고 우리는 상급인 것처럼 말이지. 천박해도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아아. 그러고 보니 길거리 거지들이 꼭 그러더군. 사지도 못하는 빵집 유리창에다가 얼굴을 들이밀면서 침을 흘리지 않나. 더럽게.”

그렇게 낄낄거린 신관이 당당하게 말했다.

“흠씬 두들겨 팼더니 도망가더군. 주제 모르는 쥐새끼는 그게 답이지.”

두 사람의 시선은 내 눈에 가 있었다.

황금안을 가지지 못한 일반 신관이 이런 식으로 평민 황금안 아이를 무시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난 사제복을 꽉 쥐고 고개를 들어 슬라데이체라는 걸 말하려고 할 때 누군가 내 앞을 막아섰다.

“너네. 지금 뭐라고 지껄인 거냐.”

나를 막아선 벨리알을 보고 신관 둘은 침을 꿀꺽 삼켰다.

슬라데이체를 뜻하는 은발 머리에 붉은 눈. 거기다 녹금안 귀걸이까지.

‘벨리알 슬라데이체.’

슬라데이체의 망나니라고 불리는 자였다.

신관들은 고위 귀족들에게 익숙했기에 얼른 고개를 숙이고 시치미를 뚝 떼기 시작했다.

“공녀님이 저희에게 안내를 부탁드려서 말입니다.”

“예, 로자리오를 한번 꺼내 달라고 하시더군요.”

“그래?”

하지만 신관의 이야기를 들은 벨리알의 얼굴은 점점 굳었다.

“내가 들은 건 슬라데이체 공녀를 거지니, 쥐새끼니, 모욕하던 말이었는데.”

그 말에 난 번쩍 고개를 올려 벨리알을 바라보았다.

‘날 처음으로 슬라데이체라고 불러줬어.’

어느새 빼 든 검을 빙글 돌린 벨리알이 화가 난 얼굴로 내뱉었다.

“그래서. 지금 슬라데이체를 길거리 거지에 비유했다, 이거지.”

“그, 그것이 아니라!”

“저거 니네 거냐?”

벨리알이 검으로 로자리오를 가리키자 둘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벨리알이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그런데 감히 그딴 이야기를 했단 말이지?”

단숨에 박차고 나간 벨리알이 아무렇지도 않게 저보다 키가 큰 두 사람의 멱살을 잡았다.

“야, 눈 감아.”

그 말에 나는 바로 눈을 꼭 감고 귀를 막았다.

쿵!

그렇게 한참 큰소리가 나는 듯했으나, 벨리알이 말한 대로 눈을 꾹 감고 귀를 막고 기다렸다.

신관들의 신음이 들려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사람의 신음이 들렸다.

놀라서 눈을 번쩍 들었다.

싸우느라 일어난 먼지 사이로 벨리알이 신성력에 당한 듯 옆구리를 잡고 있었다.

“벨랼, 안 돼.”

다친 거야?

신성력은 누군가를 치료하는 것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도 있다.

특히 마기를 쓰는 벨리알에게는 상극이었다.

치료해 줘야 해.

눈물을 꾹 참고 ‘벨랼, 벨랼’ 하면서 가까이 가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대공님…….”

대공님이 분노에 찬 얼굴로 말했다.

“내 자식들에게 손대고도 무사할 생각은 하지 않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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