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172)

패트릭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이게-!”

패트릭이 당장 주먹을 휘두를 것처럼 팔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패트릭은 평소처럼 날 때릴 수 없을 거다.

‘오늘 내가 슬라데이체에 간 건 사실이니까!’

근처의 한 소년이 문가를 살피며 패트릭을 말렸다.

“페, 패트릭. 보육 사제님이 나나를 곧 부르실지도 모르는데…….”

슬라데이체 대공령에 갔다가 살아 돌아온 나나를 계속 슬라데이체에 보낼 텐데 싸우거나 때린 흔적이 남는다면 벌점을 받게 된다!

그리고 우리 같은 견습 사제가 벌점을 받으면 정식 사제가 될 때 문제가 된다.

‘빨간 줄 같은 거지.’

“하지만 이게 지금 내 말을 무시하잖아!”

“나나 무시하지 아나써.”

“너 대공가 한 번 갔다 왔다고 네가 뭐라도 된 줄 아는데.”

패트릭이 씩씩거리며 내 멱살을 쥐고 들었다. 작은 나는 패트릭의 손에 달랑달랑 들렸다.

레이나가 옆에서 풉, 하고 비웃었다.

저게 진짜…….

나는 기죽지 않고 패트릭 눈을 또랑또랑하게 바라보았다.

“때리면 선새미하테 말하 꼬야(때리면 선생님한테 말할 거야).”

“웃기고 있네. 보육 사제님이 네 말을 믿겠냐?”

화를 참지 못한 패트릭이 나를 때리려고 주먹을 다시 치켜든 순간.

벌컥-

“우리 나나! 선생님이랑 잠시 얘기 좀 하겠니?”

우리를 감독하는 부사제님이 손에 백금 수표를 들고 나타났다.

부사제님은 방 안의 상황을 보자마자 돌처럼 굳었다.

“너희 지금…….”

정확히는 패트릭과 그의 손에 멱살이 잡힌 조그만 나를 번갈아 보았다.

“부, 부사제님. 이건 다른 게 아니라…….”

패트릭은 당황해서 바로 나를 놓아주었다. 하지만 부사제님의 엄격한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패트릭. 선생님도 다 봤다.”

부사제님은 워낙 귀찮음이 많은 성격이라 웬만큼 큰 소동만 아니면 가벼이 넘어갈 사람이다.

“벌점을 받아야 정신을 차리겠니?”

하지만 저 태도를 보면…….

‘슬라데이체에서 연락이 왔구나!’

백금 수표를 기부금으로 보내면서.

‘저 정도 돈이니까 내가 다치게 둘 수 없겠지.’

백금 수표는 신전에서 기부금으로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었다. 기한 없이 최대한도까지 편리하게 쓸 수 있는 거니까.

부사제님이 성큼성큼 걸어와 내 안위를 살폈다. 무려 사제복에 묻은 먼지까지 털어주었다.

“나나, 어디 다친 곳은?”

“녜, 선새미. 곤데(네, 선생님. 그런데)…….”

“그래. 패트릭이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슬라데체 얘기 안 해조서 패트리가 하내씀미다(슬라데이체 얘기를 안 해줘서 패트릭이 화냈습니다).”

나는 큰 눈에 큰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았다.

“하지만 슬라데체 기밀 한부로 말하묜 패트리랑 신됸 모두 큰이리 난대씀미다(하지만 슬라데이체 기밀 함부로 말하면 패트릭이랑 신전 모두 큰일이 난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내 이야기에 부사제님의 얼굴이 점점 심각해졌다.

패트릭은 하얗게 질려서 마구 고개를 저었다.

‘원래 이렇게까지 안 했겠지만.’

이제 나는 멍청하게 당하지 않기로 했다. 패트릭이 무어라 변명하기 전에 긴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훌쩍거렸다.

“미아남미다. 패트리.”

부사제님은 ‘아니다, 나나야’ 하며 나를 토닥여 주다가 패트릭을 향해 홱 고개를 돌렸다.

“패트릭! 넌 도대체 무슨 기밀을 알려달라고 한 거냐!”

“서, 선생님. 그게 아니라-”

“네 변명은 듣고 싶지 않다. 사제가 되어서 기밀을 물어본 것도 모자라, 자기보다 어린애를 괴롭히기까지! 어서 나나한테 사과해!”

패트릭은 무척 억울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부사제님이 더 엄한 얼굴로 말했다.

“패트릭, 너는 벌점이다. 더 큰 벌을 받고 싶지 않다면 당장 사과해라.”

정식 사제가 되려면 보육 사제님들의 평가 또한 아주 중요하다.

결국 패트릭은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하다.”

하지만 고개 숙인 얼굴은 아직도 억울해 죽겠는 모양이다.

‘그러면 내가 계속 당하고만 있을 줄 알았니?’

나는 키득거리는 웃음을 숨기며 의젓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냐. 패트리. 나나 괜찬슴미다.”

“우리 나나는 참 착하기도 하지.”

부사제님은 자상하게 내 어깨를 감싸며 칭찬해 주었다. 하지만 난 여기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이번엔 레이나를 보며 말했다.

“선새미. 레이나 교육원으로 승격 대씀미까?”

“아니……? 넌 왜 교육원에 있니?”

보육원의 애가 교육원에 오는 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물론 평소라면 굽실거리는 모습 따위 무시하고 지나가는 부사제님이지만 지금은 다르지.

레이나가 어깨를 화드득 떨며 “저, 전!” 했지만 부사제님이 호통쳤다.

“너도 감점이다! 얼른 보육원으로 돌아가. 앞으로 교육원에서 보일 때마다 감점을 매길 거야.”

레이나는 그 말에 세상이 무너진 표정을 짓더니 이내 다른 보육 사제님 손에 질질 끌려 나갔다.

“우리 나나. 나나는 잠깐 나가서 선생님이랑 얘기 좀 하자.”

“녜!”

밖으로 날 데리고 나온 부사제님이 편지를 보여주었다.

“우리 나나가 슬라데이체에서 사제의 의무를 아주 잘 수행한 모양이구나.”

편지에는 슬라데이체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백금 수표에는 떡하니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부사제님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내일부터 넌 교육원으로 승격될 거야.”

교육원으로 승격……!

사제님에게서 직접 들으니 더 확 와닿았다.

그럼 이제 보육원에 있지 않아도 되는 거네.

‘그렇다면.’

그 사람을…… 더 이상 안 봐도 되는 거야.

기뻐하는 날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만족스러운 표정의 부사제님이 편지를 내밀었다.

“내일도 슬라데이체에 가렴. 분명 믿음이 깊어지셔서 더 큰 보답을 주실지도 모르니.”

그건 모르겠지만,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부사제님이 주신 편지를 작은 손에 꼭 쥐고 폴짝폴짝 뛰었다.

그다음 날, 난 다시 마차를 타고 슬라데이체 대공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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